-
-
지식 e - 시즌 3 ㅣ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3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추천글을 쓴 우석훈 교수는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을 읽다가 찔찔 짜는 꼴불견을 연출했다고 고백했다. 나 역시 그랬다. 면접보러 나가는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을 보다가 훌쩍훌쩍 울고, 그러다가 중요한 전화 한통을 못 받기까지 했다. 앉아 있었으면 덜 챙피했을 텐데 서서 울었으니 더 민망했다.
충격의 크기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내게는 노란색 표지의 씨즌 1 지식 e가 가장 최고의 책이었다. 그때는 지식e라는 프로그램을 알고는 있었지만 보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후 방송으로 많이 접하고 씨즌2에 이어 씨즌3까지 만났지만, 감동의 크기가 줄어들지 않는다. 슬픔의 면역이 되어있질 못하다. 우리가 가야할 길이 멀고 또 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서른 편의 에피소드가 실렸다. 10개씩 잘라서 homoartex, homoviolence, homoethiques로 인간의 창조성, 폭력성, 윤리성을 말하고 있다. 본문의 내용은 실제 방송에 나왔던 그 자막들과 영상들을 편집했는데 시적인 운율감을 자랑한다. 그리고 보완할 내용들은 그 뒤에 이어서 여러 페이지에 걸쳐 진지하게 설명한다. 1편에서는 참고문헌에 붙여서 설명을 한단락씩 끊었는데 책이 2편, 3편 나오면서 보여주는 것들에 대한 일종의 균형점을 찾은 듯하다. (책으로는 음악을 들을 수 없지만, 삽입된 곡에 대한 제목만이라도 소개해 주면 참 좋겠다. 개인적인 바람이다.)
지식e의 방송이 많은 정보를 주며 또 이 사회에 요구되어야 할 바람직한 지식을 전달하지만 가장 감탄을 끌어낸 것은 그 '창의성' 때문이었다. 기존에 이런 방송이 있었던가, 이런 시도가 있었던가. 교육방송인 탓에 주목을 덜 받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시청률에 개의치 않고 뚝심으로 밀어붙일 수 있었던 역설이 성립한 듯 하다. 시청자로서 독자로서는 참 고마운 일.
homoartex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내용은 '대부분이 우울했던 소년'과 '콜라와 햄버거, 그리고 '미국의 정신''편이었다. 개인적으로 팀버튼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그의 독특함과 천재성에는 손을 꼽아주고 싶다. 그 음울함마저도 창의력으로 바꿔버리는 놀라운 재주라니. 아울러 워렌 버핏의 가치 투자라는 말이 참 신선하게 들렸다. '실용'이라는 말이 천박하게만 들리는 대한민국 현재에서 경제활동의 올바른 '가치'를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오직 그들만이 알고 있다'는 낙타에 관한 이야기인데 뭐랄까... 선문답 느낌이었다. 그들만이 알고 있는 신의 100번째 이름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만이 알고 있다니 내가 알 도리는 없지만 이런 설정이 나온 것은 대체 무엇 때문? 방송 볼 때도 궁금했는데 책이 나오면 혹 의문이 풀릴까 했지만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제작진은 알까?)
homoviolence와 homoethipues는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는 내용이었다. 폭력을 지양하고 앞서 생각해야 하는 윤리성. 그 윤리성을 파괴하는 폭력성. 그래서, 두 챕터 20개의 이야기는 참으로 아팠다. 내가 지하철에서 찔찔 짜야만 했던 바로 그 이야기들.
이미 본 내용이 많았음에도 다시 봐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다. 이 이야기들이 아프지 않으려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이 비극적인 주인공들이 다시 보이지 않을 그런 세상이 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때가 언제일지 감히 짐작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프고 더 서럽다. 그런 날이 빨리 다가오도록 앞장서는 매체로 이 책이, 이 방송이 꾸준히 한 몫을 해내기를 바랄 뿐.
국가가 자행했던 온갖 폭력. 그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고 그리고 피해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다. 보상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은 정말 극소수. 국가는 그 잘난 이름을 앞세워 '민영화' 칼바람을 일으키고 있는데, 오늘자 뉴스에서 가스 민영화 소식을 들었다. 이제 좀 더 지나면 민영화 아닌 것을 찾는 일이 부질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대체 국가가 그 모든 것을 멋대로 해치울 권리를 누가 주었을까. 아니 이 정권이 그래도 된다고 누가 허락했을까. 우리가 동의하지 않았는데 멋대로 굴러가는 이 시스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숨에 갑갑증만 더 늘어난다. 존 레논이 노래했던 'imagine'이 문득 떠오른다.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짧은 글짓기 숙제가 있었는데 교과서에 밑줄을 잘못 그어서 선생님이 내주지 않은 엉뚱한 단어에 '밑줄'을 그어 본의아니게 짧은 글을 지었었더랬다. 단어는 '제국주의'였고 교과서 본문은 삼일운동에 관한 내용이었다. 6학년 짜리가 제국주이란 어려운 단어로 어떻게 짧은 글짓기를 할 것인가 고심을 하다가 '우리나라가 일본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적었었다. 잘못 해간 숙제였으니 달리 써먹을 일도 없었지만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내게 남아있는 것이 아이러니다. 과연, 우리나라는 제국주의 국가가 아닌 것일까. 해외에 식민지를 세워본 적 없건만, 이 나라가 자행하는 부도덕한 일들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버마에 군수품을 수출했던 대우인터내셔널, 티벳을 억압하는 중국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달라이 라마의 방한은 극구 거절하기, 국외뿐 아니라 국내로 들어오면 더 디테일해지고 더 한심해진다. 국가란 국민을 보호해주는 울타리라고 믿고 살았던 그 시간을, 지금의 어린이들에게도 줄 수 있는 날이 올까?
책의 말미에 제작진들이 제작 후기와 감상 등을 나눈 페이지가 있다. 이제는 그곳을 떠나고 없는 김진혁 피디를 생각하며 또 다시 한숨 한번 베어 문다. 다른 제작진들이 처음 제작동기를 잃지 않고 의미있고 보람된 작업을 계속 해주기를 소망해 본다.
ps. 노랑 표지가 개인적으로 가장 예뻤고, 빨강 표지도 못지 않게 예뻤지만 파랑표지는 좀 안 이뻤다. 다음엔 어떤 색이 나올까? 주홍색도 예쁠 것 같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