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주 목요일에는 모처럼 지인들을 만났었다. 점심 때 한 명, 저녁에 강연 같이 간 또 한 명.
낮에 밥 먹고 있을 때 어느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두 달짜리 시간강사 자리였는데 주당 17시간이란다. 국사는 2단위인데 왜 17이란 숫자가 나오는 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시간표 조정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주일 내내 나가야 한다고. 주당 18시간만 되어도 기간제 계약인데 한 시간 차이로 강사 급여가 나간다. 실업급여를 받는 나로서는 시간 표 조정을 해서 주4회 정도만 출근한다면 가겠는데, 아니라면 역시 실업급여만 받는 게 나은 형편이다. 전화를 준 사람은 지금 당장 학교로 와서 면접 보라고 한다. 아니, 내가 백수긴 하지만 그렇게 아무 약속도 없는 사람은 아니거든요?(물론 아주 오랜만에 약속을 잡은 날이었지만..;;;) 이 분이 당황하신다. 첫번째 전화한 사람은 안 받았고, 두번째 전화한 사람은 아이 때문에 병원 간단고 못 온다고 하고 세번째 전화한 나도 일이 있어서 오늘은 못 온다고 하고.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을 것이다. '니들이 배가 부르구나'
내 입장을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저녁 먹을 때 또 같은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러면 내일(금요일)은 면접 보러 올 수 있냐고. 다시 물었다. 시간표 조정이 되냐고. 안 된단다. (이 사람이!) 그래서 못 가겠다고 했다. 내 참... 니들도 사람 구하기 힘들다는 것을 좀 알아봐라!
2. 조국 교수님과 금태섭 교수님의 강연회는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다. 두 분이었지만 적절한 시간 분배로 지루할 틈도 없었고, 특히나 조국 교수님의 훈훈한 미모와 지성미는 그날의 대박 선물이랄까..;;; 문득, 체셔고양이님이 생각났다. 알라딘에 계셨다면 그 자리에 누구보다 즐겁게 참석하셨을 분인데...
3. 아프님이 강연 끝나고 시위 현장으로 가실 때, 따라가야 마땅했는데 그러지 못했다.(이땐 장관 고시가 하루 먼저 당겨진 것도 아직 몰랐었다.) 함께 했던 지인은 내가 늘 '야곱'이라 부르는 언니인데,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언니야가 생맥주를 무지 사랑하신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교수님 변호사님과 두개 출판사 분들 뒷풀이에 따라가게 되었다. 같은 테이블이 아니어서 두분 강사님과는 대화 한 번 못했지만 출판사 분들 얘기 듣는 것은 흥미로웠다. (나의 야곱도 출판업계 종사자이다.)
4. 2차 뒷풀이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우린 따라가지 않고 따로 시간을 가졌다.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경복궁역 어느 벤치에 앉아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는데, 바깥에서 치열한 순간을 맞이한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할 만큼 행복함을 느꼈다.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2008년 들어서 행복하다고 느낀 것은. 그녀가 지친 나에게 들려준 위로의 말은 '불의 검'의 한 대목이었는데 내게는 너무 과분한 말들이었지만 아무튼 나는 위로를 받았고 행복했었다. 돌아와서 한참을 울 만큼.
5. 원래는 토요일의 대규모 시위에 나갈 생각이었는데 금요일에 어느 글을 읽고는 가만 있을 수가 없어서 시청에 다녀왔다. 사실 백수인 내가 돈이 없어서 그렇지 시간은 많은데 집에 있는 것은 몹시 죄송한 일이다. 근데 왜 계속 집에 있었냐고?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는가. 머리 속이 복잡했다. 나 저기 있다가 잡혀가면 직업은 '무직'으로 기록되고, 이러다 교사도 못하는 거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12시 땡 치면 신데렐라처럼 돌아오는 나로서는 연행될 거시기도 없었지만, 그건 가보고 나서야 알게 된 거고...
6. 토요일까지는 혼자 다녀와서 좀 적적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은 마음일 텐데도 좀 외롭단 생각. 그래서 어제 일요일에 모처럼 알라디너들과 함께 있었더니 참 힘이 나고 좋았다. 전날의 그 유혈진압을 보고 들었던 무서운 마음도 많이 가시고. 어무이께서는 비싼 보약 먹여놨더니 왜 엄한 데 가서 힘 빼냐고 뭐라뭐라 하신다. 뉴스도 잘 안 보시고 국민일보만 애독하시는 우리 엄니께서 보일 수 있는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참 기운 빠지더라.
7. 닭장차를 끌어내리고, 혹은 넘어뜨려 보고도 하고, 넘어가보려고도 하는 모든 시도들. 그 다음 순간을 상상해 본다. 저기를 뚫고서 청와대까지는 가지 못한다. 몇겹의 바리케이트를 넘어야 하는데 그 전에 시민들은 진압이 되고 피를 흘릴 것이다. 피 흘리지 않고 우리의 뜻을 제대로 전달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현재 상황에서 제일 짜증나고 우려되는 결과는 '고시철회'만으로 유야무야 되는 것. 그거 하나로 시민들을 달래고 나중에 뒷통수 칠까 봐. 그리고 시민들이 혹 그걸로 만족할까 봐. 어차피 그 놈을 대통령으로 올려준 건 무수한 대한민국 국민들이었으니.
8. 그래서, 십만 군중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서울에서 백만, 전국적으로 몇백만 군중이 한 뜻을 모을 수만 있다면...
월드컵 때 광장에 모였던 그 수많은 사람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괴물을 본 천만이 넘는 시민들... 물론 나도 그 중에 하나다. 오락과 즐거움을 위해서 뭉칠 수 있었던 만큼 국민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서 좀 더 힘을 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라면 촛불 하나만 들고서 대통령 물러나라고 외칠 때 진짜 파워가 되지 않을까. 청와대까지 뚫고 들어가지 않더라도. 뭐,,, 나의 상상이다.
9. 그래서, 티벳을 생각했다.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폐쇄된 그 공간에서 짐승처럼 진압되었던 그 사람들. 얼마나 아프고 서럽고 외로웠을까. 80년 광주처럼...
아까 어느 기사를 보니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하며 촛불을 들었다며 사진이 작게 실려 있었다. 찡했다. 우리도 그렇게, 바다 건너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연대해 줄 마음들을 꼭 갖기를 바라며...
10. 잠을 영 못 잔 것도 아닌데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다. 벌써 여름 증후군이 오는가. 해마다 여름이 되면 너무 무기력해져서 기운 끌어올리느라고 애를 먹었다. 보약 먹은 건 아직 효과가 안 오나?? 한의사 샘이 빵이랑 과일도 먹지 말란다. 우쒸. 대체 뭘 먹으란 말이냐! 그럼 간식으로 먹을 것은 떡? (아, 고개를 돌리니 백설기가 보인다.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