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 한국에 열리기까지 [제 723 호/2008-02-22]
 


태양과 빛, 영혼의 화가라고 불리는 반 고흐는 생전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물감 살 돈도, 생활비도 없어 동생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의 예술혼은 결코 꺾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죽어서 묻혀버린 화가들은 그 뒷세대에 자신의 작품으로 말을 건다”고 말했다. 그의 열정 가득한 그림은 전 세계를 유랑하며 영원히 꺼지지 않는 생명을 얻은 셈이다.

그의 작품을 국내에서 감상할 수 있는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이 2007년 11월 27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다. 전시회를 위해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과 크뢸러 뮐러 미술관에서 66점, 네덜란드 트리튼재단에서 1점을 모아 국내로 들여왔다. 그림 대부분이 유화로 해외 나들이가 처음인 ‘붓꽃’(아이리스)도 포함돼있다. 반 고흐전을 통해 미술품을 어떻게 운송하고 전시하는지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가난했던 반 고흐의 생애와 달리 그의 그림들은 가장 비싸게 거래되는 미술품 중 하나다. 작품마다 최고 1000억 원 보험에 가입해뒀기 때문에 전체 보험금만 1조4000억 원에 이른다. 그래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그림 67점을 다섯 대의 비행기에 나눠 운반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충고를 따른 셈이다.

먼저 미술품 복원사가 확대경을 쓰고 작품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피며 컨디션리포트를 작성한다. 작품의 상태를 미리 기록해둬야 운반한 뒤 훼손된 곳이 없는지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작품의 표면을 중성종이로 감싼다. 중성종이는 작품에 잘 밀착될 뿐만 아니라 그림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쓰는 종이는 대부분 산성을 띤다. 종이에 물이나 잉크가 번지는 것을 막는 데 쓰는 송진 추출물과 표백제인 황산알루미늄(Al2(SO4)3)이 산성 물질이기 때문이다. 종이의 주성분인 셀룰로오스가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하면 사슬모양의 분자 고리가 끊기며 색깔이 누렇게 변하고 부스러진다. 이때 종이의 산성성분은 산화반응을 촉진시키는 촉매 역할을 해 그림을 보호하는 기능이 떨어진다. 반면 일반 종이에 탄산칼슘이나 마그네슘 같은 염기성 물질을 첨가해 중화시킨 중성종이는 그림이 변질되는 산화반응을 줄일 수 있다.

잘 포장한 작품은 크레이트(crate)라는 미술품 전용 상자에 담아 운송한다. 고가의 미술품을 운반할 때는 비행기가 폭발해도 견딜 수 있는 ‘초강력’ 크레이트를 사용한다. 현재 유네스코는 예술품을 운반할 때 크레이트의 벽면을 펄프섬유나 유리섬유를 압축해 만든 널빤지, 스티로폼, 골판지까지 삼중으로 설계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이번에 사용한 크레이트는 완벽하게 방수 처리된 철제가방으로 운송도중 벌어지는 상황을 기록하는 블랙박스까지 들어 있다. 한 개 가격이 무려 1만 유로(한화 1350만 원)에 이른다.

크레이트 내부는 온도 20℃, 습도 55% 내외의 환경으로 전시장과 비슷하다. 난방기와 냉방기, 가습기가 합쳐진 항온항습기를 크레이터에 설치해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조절한다. 유화는 특히 습도 조절에 신경 써야 한다. 캔버스와 그 위에 뭍은 물감이 수축했다 팽창하는 정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습도 변화가 심하면 캔버스에서 물감이 떨어져나갈 위험이 크다. 크레이트 안이 지나치게 습하면 운반하는 도중 곰팡이가 생기고 너무 건조하면 캔버스가 수축해 그림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크레이트 안에 질소를 주입한다. 공기 중의 산소를 제거해 산화반응을 막기 위해서다. 질소는 불에 타지 않는 기체라 화재의 위험도 덜 수 있다.

전시회가 열리는 장소의 날씨도 주요 점검 사항이다. 서울의 겨울철 평균기온은 1~2℃, 평균습도 60%로 춥고 건조해 미술품을 운반하기에 썩 좋은 조건이 아니다. 외부 온도와 습도가 전시관과 달라지면 물감이 떨어져나갈 수 있다. 공항에 도착한 뒤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무진동 차량에 실려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이송한다.

서울시립미술관에 도착한 작품들은 곧바로 포장을 뜯지 않고 24시간 동안 밀봉상태를 유지하며 ‘현지기후 적응훈련’을 시작한다. 전시회 전날에야 작품들을 전시관으로 옮겨 포장지를 벗긴다. 그림을 싼 종이에 작품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 섞여있을 수 있어 포장지도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한다.

전시관에서는 온도와 습도는 물론 조명도 중요하다. 종이나 염료는 파장이 짧은 자외선을 오래 받으면 산화반응을 일으킨다. 따라서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에는 반드시 자외선차단 필름을 붙이고 형광등에도 자외선 흡수 필터를 부착해야 한다.

오래된 그림이나 사진은 조도를 촛불 다섯 개 정도의 밝기인 50럭스(lux)로, 기름 성분의 안료 덕분에 광선의 영향을 덜 받는 유화는 150lux 내외로 유지한다. 약한 빛이라도 오래 쬐면 그림이 받는 빛의 양이 누적되므로 전시하는 작품을 계속 교체해야 한다.

‘불멸의 화가 반 고흐전’은 3월 16일까지 열린다. 이번 주말에 가족과 함께 반 고흐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가져보면 어떨까. 미술 작품을 이송하고 전시하는 과정에 고분 분투한 큐레이터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그림을 감상하는 동안 화젯거리도 더 풍성해질 것이다. (글 : 신방실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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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2-26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해서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거군요. 대단해요~~ 물론 고흐가 최고로 대단하지만!!

마노아 2008-02-23 16: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중에 고흐가 제일로 대단해요. ^^

bookJourney 2008-02-23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과정을 사진과 함께 설명해 놓은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 정말 신기하더라구요. ^^


마노아 2008-02-23 18:23   좋아요 0 | URL
놀라운 과학의 힘이에요^^ㅎㅎㅎ

무스탕 2008-02-25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번 금요일에 보러갈거에요. 친구들이랑 갈건데 아는척좀 해야겠어요 ^^

마노아 2008-02-25 18:18   좋아요 0 | URL
2월의 마지막 날을 고흐와 함께 보내시는군요! 울 어무이도 목요일쯤 보내드리려고 해요. 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