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은 전나무 - 안데르센 명작 동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이상헌 옮김, 마르크 부타방 그림 / 큰북작은북 / 2007년 12월
평점 :
너무도 유명한 안데르센인지라, 웬만한 이야기는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았는데, 의외로 안데르센의 모르는 작품들도 많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워낙 많은 동화들을 남겼으니까.
지난 여름에는 안데르센전을 다녀왔는데 만들어 놓은 인형 중에서 어느 작품의 주인공인지 모르겠는 게 더러 있었다.
이 작품 역시 내게는 낯선 만남이다.
그렇지만 금세 익숙해져서 친해진, 좋은 동무가 되었다.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 숲속에 작은 전나무가 있었다.
처음엔 너무 작은 자신이 볼품없어 보여 얼른 자라는 게 꿈이었다.
작은 전나무에게는 따스한 햇볕도, 신선한 공기도, 예쁜 꽃들과 귀여운 다람쥐들도 통 관심에 없었다.
그저 얼른 자라서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는 멋진 나무가 되고 싶었고, 저 꼭대기에서 한눈에 넓은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기를 소망했다.
가끔 산토끼 한마리가 깡총깡총 뛰어와 작은 전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했지만, 전나무는 산토끼와 친구가 될 줄도 몰랐다.
어느 덧 키가 성큼 자라서 산토끼와의 만남도 힘들어졌을 때에도 그저 키가 자란 자신이 반가웠을 뿐이다.
그 무렵, 사람들은 숲속에 들어와 나무를 베어갔다.
그렇게 베어진 나무는 이집트로 향하는 커다란 배의 돛대가 되기도 했고, 어느 따뜻한 거실에서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작은 전나무는 자신에게도 그 기회가 빨리 왔으면 싶어 애가 탔다.
햇살은 애달아 하는 전나무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을 기뻐해. 자유롭고 파릇파릇한 너의 젊음을 즐기렴!"
그러나 바람과 안개와 햇살의 위로는 전나무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갖지 못하나 것, 손에 잡지 못한 것을 향한 그의 갈망은 끊이지를 않았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흘러갔다. 이제 작은 전나무는 더 이상 작지도 않았고 누가 보아도 늠름한 멋진 전나무로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숲을 떠날 시간이 왔다.
사람들이 와서 그를 도끼로 베어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해 왔지만, 또 자신이 자랐던 정든 곳을 떠난다는 것이 슬프고 안타까웠지만,
전나무는 새로이 만나게 될 세상에 대한 두근거림이 가득했다.
누구보다도 잘나게 멋지게, 폼나게 살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전나무는 따뜻한 거실 한 가운데에서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온갖 화려한 장식들을 걸치고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것!
전나무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그 화려한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얼마 뒤 전나무는 사람들 시선이 닿지 않는 다락방에 버려진 채 관심에서 멀어졌고,
이제 그를 찾는 것은 작은 생쥐들 뿐이었다. 놀랍게도, 별볼일 없어진 전나무를 생쥐들은 부러워 했다는 것!
생쥐들은 전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며 감탄했고 지금 그의 처지가 나쁘지 않다고 말을 했다.
전나무는 지금은 이런 처지지만 곧 다시 좋은 때가 올 거라고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전나무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러나 전나무의 마지막은 다시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했다.
봄이 왔을 때 전나무는 작은 나무로 잘리어 화덕 속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사그러들 운명에 도착했다.
그대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우리한테 익숙한 이야기 중 하나로 '아낌 없이 주는 나무'가 있다.
어린 나무였을 때이건, 큰 나무가 되어서인건, 또 늙어 밑둥만 남았을 때이건, 제 가진 모든 것을 아낌 없이 내주었던 멋진 친구.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것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의 가치를 알았으며 또 그것을 대가 없이 내어준 아름다운 이였다.
이 책의 주인공 전나무는 많은 것을 가졌고 또 얻었었지만, 그것의 가치를, 그 아름다움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늘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며 안타까워 했다.
어찌 보면 우리들이 맞닥뜨리곤 하는 삶의 문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하기 일쑤인 우리들,
또 시간이 지난 다음에 그때 하지 못한 것들을 잡고 싶어 안달나 하는 모습...
햇살과 공기와 바람이 얘기해 주듯, 지금 이 순간을 기뻐하고 즐기는, 또 노력하는 우리를 소망해 본다.
인생의 마지막 종착점에 닿았을 때조차,
아! 내 인생은 긴 여정이었고, 버릴 것이 없었으며, 그리고 황홀했도다...라는 감탄사가 나올 만큼!
책의 판형이 아주 크다. 큼직한 그림과 두꺼운 종이가 마음에 든다.
글씨가 제법 많지만 7살 정도 어린이도 읽을 수 있을 정도라고 보여진다.
멋진 책과의 만남은 늘 그렇듯 두근거림을 동반한다.
반가운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