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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앙리에타를 읽으면서 아멜리 노통브를 졸업해야지 생각했는데,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조금씩 그녀의 작품들을 읽곤 했다.
그래도 꽤 오랫동안 그녀의 책들을 멀리 했는데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책장에 꽂힌 책을 보고는 다시금 애정이 살아나 냉큼 빌려왔다.
그런데, 첫장부터 좀 남달랐다.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과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고, 이야기의 진행도 묘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원래의 작가 스타일은 도망가지 않았다. 다다다다 말싸움도 빠지지 않았고 작가와 책 이야기를 통한 공방도 어김 없었다. 물론, 그것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스타일'에 조금 지쳤을 뿐.
작품 속에 등장인물은 많지 않다. 77살의 노인과 그가 속여서 감금하다시피 하고 있는 미모의 23세 여인. 둘의 관계는 기묘하다. 1918년 폭격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하젤은, 노인의 간계에 의해 자신의 얼굴이 화상으로 망가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후 거의 감옥과 다를 바 없는 섬에 고립되어 5년 동안이나 외부 접촉 없이 노인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던 것.
그러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없을 수 없다. 시름시름 앓고 있는 그녀를 돌보기 위해서 뭍에서 간호사가 왔고, 그녀는 이 노인이 하젤에게 취한 폭력을 단번에 갈파한다. 그러나 수색을 당하기 때문에 필기루를 통해 진실을 말해줄 수 없고, 옆방에서 다 엿듣고 있기 때문에 입술을 통한 진실 전달도 불가능했다. 필요로 하는 것은 오로지 '거울'. 거울을 직접 보여주어야만 그녀가 자신의 얼굴에서 잃었다고 알고 있지만 강하게 붙잡고 있는 미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거울을 만나기까지의 긴 투쟁(?)이 작품 속에서 이어진다.
처음엔 이들의 쓸데 없는 말싸움과 공방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의미 없는 논쟁으로는 아무 즐거움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은을 통한 거울 만들기에 실패하면서 섬안에 같이 갇힌 간호사의 대탈출 활약이 나오면서 작품의 방향이 틀어지기 시작한다. 재밌게도, 작가는 두 가지의 결말을 만들어 냈다. 하나의 결말을 썼지만, 또 다른 결말도 갖고 싶었던 것. 168쪽에서 끝난 이야기는 다시 135쪽의 뒤에서 이어지는 또 다른 결말을 진행시킨다. 첫번째 결말이 좀 평이했던 것에 비해서 두번째 결말은 아멜리 노통브 다운 '튀는' 맛이 있었지만, 두 결말 모두 '특별한' 재미나 감동은 주지 못했다.
매번 그녀의 작품에서는 비슷한 크기의 재미만을 느꼈을 뿐인데도 관성처럼 습관처럼 작품의 끈을 놓지 못한다. 그것 역시 작가가 가진, 또 작품이 가진 매력이라면 매력이랄까.
노인이 보여준 폭력적 사랑에 동의할 수 없고,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순간에 얼토당토 않은 사랑학을 펼쳐놓은 하젤의 심리 상태도 공감하기는 힘이 든다. 정의의 사도가 되어서 노인을 심판하고자 한 간호사 푸랑수아즈 당황스러운 변신이었다. 도무지 건질 것이라곤 별로 없었는데 왜 별점이 넷이냐고 물으면, 역시 그게 또 작가의 '마력'이라고 하겠다. 일종의 늪같은... 시간이 더 흐르면, 그녀에게서 한단계 진화된 발전과 성장을 볼 수 있을까? 그녀의 서랍속에서 잠들어 있는 그 무수한 작품들 중에서 말이다. 큰 기대는 별로 안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