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의 별명은 어린왕자였다. 40을 넘기기 전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아니, 빅뱅의 멤버 승리가 이승환이 자신의 아버지와 동년배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니, 그와 동갑인 김종서가 ‘신비주의’를 버리고 방송과 친해지고 싶다고 하기 전, 혹은 그가 12년 전 처음 작곡을 맡겼던 ‘신인 작곡가’ 유희열이 19살 윤하에게 옛날 가수 취급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새로 산 피규어와 아이팟 터치를 보면서 즐거워하며, 스키니 진을 즐겨 입는다. 하지만 때론 사람보다 세상이 먼저 늙는다. 발표한지 12년이 지난 ‘천일동안’은 KBS <해피선데이>의 ‘불후의 명곡’에 올랐고, 이승환은 ‘불후의 명곡’에서 자신과 ‘동갑’인 김종서의 나이가 밝혀지는 것을 걱정해야 했다.
가요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젊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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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40대 가수는 아직도 ‘무대진행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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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후의 명곡’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히트곡을 부른 40대 가수. 하지만 ‘불후의 명곡’에서 밴드를 끌고 나와 ‘불후의 명곡’으로 선정된 모든 노래를 록 버전으로 편곡, 스튜디오 안을 폴짝 폴짝 뛰어다니며 전곡을 라이브로 부르는 율동 로커. 1990년대를 열광시켰던 그 때의 오빠들은 대부분 더 이상 오빠가 아니다. 그들은 몰락한 가요계에 점잖게 쓴소리를 던지는 선생님이 되거나, 생계의 어려움을 스스로 희화화하며 버라이어티 세계의 중년 남자들이다. 아니면 ‘3040’을 위한 음악을 하며 함께 나이 먹는 즐거움을 아는 원숙한 중년 가수가 돼야 했거나, 점잖게 뒤로 빠져 ‘사장님’이 돼야 했다. 이승환의 한참 후배인 박진영도 ‘원더걸스를 스타덤에 올린’ JYP엔터테인먼트의 타이틀을 달고 가요계에 컴백했다. 하지만 이승환은 가요계 전체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밴드를 먹여 살리기 위해”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한다며 시니컬한 농담을 하고, 그의 현재 꿈은 일본에서 소규모 라이브를 하면서 그 곳의 밴드들을 라이브 실력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어린 왕자로 남기엔 20여 년 동안 이룬 것이 너무 많고, 나이든 오빠가 되기엔 여전히 힘이 넘친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어린 왕자가 아니다. 대신 그는 한국 음악계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젊은 남자다. 이미 1990년대가 ‘지나간 세대’가 되고, 당대의 스타들이 그 때 그 시절의 스타가 되는 지금, 이승환은 끊임없이 신곡을 발표하고, KBS <얼렁뚱땅 흥신소>의 OST수록곡으로 록 음악 ‘슈퍼 히어로’를 발표하며,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경제야 놀자’에서 자신의 골동품을 자랑하는 대신 피규어를 내놓았다가 ‘중년 오타쿠’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건 버라이어티 쇼에서 나도 아직 젊다며 어색하게 요즘 말투를 쓰는 중년 가수의 몸부림이 아니다.
그 언제까지 ‘현역’으로 남을 것 같은 기대감
이승환의 새 싱글 앨범 <Mallang>의 ‘내 맘이 안 그래’는 올해 한국 음악계에서 발표된 가장 정열적인 발라드다. ‘내 맘이 안 그래’의 뮤직비디오에서 파멸을 눈 앞에 두고도 그대로 돌진하는 남자처럼, 이승환은 이것저것 재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감정에 그대로 부딪친다. ‘못 다한 내 사랑에 보낸다. I loved you / 치밀어 오르는 내 슬픔에 바친다 / 내 눈물이 내 노래가 너에겐 곧 나였다’ 뜨거운 사랑, 모든 걸 걸어도 좋을 사랑을 부정하는 시대에, 이승환은 전력을 다해 바로 지금, ‘내 헌신과 내 진심’을 담아 한 사랑의 아픔을 절절하게 노래한다. 멜로디 구성은 과거보다 훨씬 콤팩트해졌고, 곡 시작부터 치고 들어오는 오케스트라 연주는 팽팽한 긴장감을 일으킨다. 이승환은 ‘내 맘이 안 그래’에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굳어버린 ‘천일동안’과 같은 대곡 지향의 발라드 대신 30초 안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지금 시대에도 현재 진행형의 노래가 될 수 있는 다이나믹한 발라드를 완성했다.
공연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한 번에 100kg의 스쿼드를 하고, 자신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김현철과 정석원과 유희열을 거쳐 이재명에 이르는 새로운 작곡가들과 함께 일하는 40대 청년. 그는 후배들에게 과거를 헌정 받는 대신, 빅뱅과 같은 날 KBS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커트 코베인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1989년생 관람객이 보는 가운데 무대 위를 뛰어다녔고, 그의 연말 공연은 예나 지금이나 국내 공연 중 가장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원숙해지되 열정은 그대로인 이 열혈남아의 모습은 언제나 한국 대중음악계의 ‘현역’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지 모를 가수에 대한 기대를 만들어낸다. 가족과 현실과 생활을 노래하면서 추억을 말하는 전설대신 지금 자신의 젊음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현역. 20여 년 동안 쌓인 원숙함으로 더 뜨거운 음악을 할 수 있는 현역. 이승환은 20대에는 수줍은 듯한 얼굴로 공연장을 뛰어다녔기 때문에 어린왕자였고, 30대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동안이어서 어린왕자였다. 하지만 지금의 이승환은 슈퍼히어로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로 달리는, 어린왕자의 코스튬을 한 슈퍼히어로.
: 지난 앨범 <Hwantastic> 때부터 TV에 많이 출연하고 있다.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하기는 어떤가.
이승환 : 예전보다는 자연스러워졌다. 아직 말할 틈을 안주는 곳도 있고, 태클 들어오는 (웃음) MC들도 있지만. 그런 거보면 나는 정말 예능은 못하겠다 싶기도 하고.
: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고 나서는 검색어 1위에도 올랐다 (웃음)
이승환 : TV의 힘이 아직 대단한 거 같다. 그리고 예전하고 다르게 활동하기 편해진 부분도 있고. 하지만 아직 여러 제약이 있다.
‘어린왕자’가 ‘방송계의 삽살개’가 되기까지
: 그래도 ‘불후의 명곡’같은 버라이어티에서 밴드와 함께 라이브를 할 정도로 변한 것 아닌가.
이승환 : 오늘 내가 출연할 <박철쇼> 대본을 보니까, 이승환은 까다로운 수다쟁이라고 적혀 있더라. 그만큼 까다롭다거나 까칠한 이미지인거 같다. ‘불후의 명곡’도 중장년층이 많이 봐서 제작진은 ‘하숙생’이 순위에 들었으면 하는 눈치더라 (웃음) 그런데 순위가 그렇게 나와서 그대로 갔고. 그런 자세가 내가 원하는 걸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거 같다. 다만 과거에는 내 그런 모습을 아예 수용하지 않았다. 내가 <열린 음악회>를 금년 들어 다섯 번 나갔다. 밴드 생계 때문에. 우리는 밴드가 나가는 것에 대해서 밴드비를 달라고 한다. 그게 예전에는 어림도 없었지만 요즘에는 준다. 그런데 아직은 윗분들은 싫어하신다고 한다. “걔 왜불러, 왜 돈 줘가면서 불러.” 그 분들에게는 내가 아직도 까탈스러운 애인 거다.
: 당신도 시장 상황에 맞춰 변하려고 하고, 시장도 당신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승환 : 과거라면 독불장군처럼 시장에 다가서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작년에 밴드 멤버 중 한 명이 나한테 대들었다. 작년에 내가 활동을 많이 못했는데, 예전 같으면 밴드들이 다른 세션을 뛰면서 생활을 했다. 그런데 공연들도 많이 없어지고, 실용음악과 나온 어린 친구들이 훨씬 싼 값에 많이 하니까 일거리가 없어지면서 나한테 화살을 돌렸다. (웃음) “형 때문에 굶어 죽겠다.” 그 얘기를 듣고 처음엔 버럭 했는데, 나하고 10년 이상 같이한 애들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뭔가 책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가 크다. 뭐든 나간다. 밴드가 나갈 수 있는 거면 뭐든. 예능 프로그램도 다 나가고. 케이블에서 요즘 내 별명이 방송계의 삽살개다. 불러주면 좋다고 뛰어간다고 (웃음)
: 시장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가 음악의 형식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Mallang>도 처음으로 발표한 싱글 앨범이다.
이승환 : 올해는 무조건 영업의 해다. 하하. 뭔가 인지도를 올려놔야 내가 할 수 있는 음악을 할 수 있으니까. 5집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던 음반 판매고가, 이제 바닥을 쳤다. 그러면 이제는 춘삼월에 개구리 팔짝하는 것처럼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대중 친화적이라고 자발적으로 얘기했다. 혹자는 대중 친화적이라는 발언에 대중을 우습게 보는 발언 아니냐고 하지만, 워낙 말하는 스타일이 이러니까. (웃음) 나는 늘 그냥 현실을 말해오지 않았나. 음반 시장 다 망했구요, 내 음반도 잘 안 나가요 이런 식으로. 이번에도 홈페이지에 글 올렸었다. 앨범 초도물량 듣고 깜짝 놀랐다고. 그런데 그런 식으로 가면 안 된다고 하더라. 마케팅으로는 우리 앨범 잘 돼요 이래야 한다고. (웃음) 사실 영업이라는 것도 그런 의미의 영업이다.
“음악에도 트렌디한 요소들을 찾아서 반영해야 한다”
: 지난 몇 장의 앨범을 통해 앨범 시대의 음악에서 싱글 시대의 음악으로 점진적으로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승환 : 그렇다. 이번에도 타이틀곡을 내가 알고 있는 작곡가 중에 가장 어린 작곡가에게 받았다. 언제나 내 음악은 트렌디하다고 생각했었고.
: 그래서 요즘 당신의 음악이나 공연을 보면 실제 당신이 목표로 하는 방향과 지금 변하고 있는 대중들의 요구가 어느 정도 조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승환 : 그렇다. 사실 그러지 않으면 위험하다. 공연만 해도 내가 너무 공연을 많이 해서 아이디어가 소진됐다. 그래서 더 새로운 걸 찾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공연은 관객들의 눈은 점점 높아지기만 하니까 예전 같은 방식으로는 절대로 안 되고, 거기에 맞춰주려면 초기 제작비가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니까 계속 물량 투입만 할 수도 없고. 그러다보면 트렌디한 요소들을 찾아서 반영해야 한다. 연말 공연에서도 영상 감독을 따로 고용해서 영상을 만들고, 공연장에서는 네 곳에 각기 다른 스크린을 배치해서 영상과 무대를 결합해볼 생각이다. 그런 걸 많은 분들한테 보여주지 못하는 건 안타깝긴 하지만. 우리 공연이 공연 티켓 사이트에서 예매율 1위인데도 지방 공연을 하루도 못 잡았다.
: 그런데 음악은 상업적인 조바심을 내지 않고 과거보다 더 편해졌다. ‘내 맘이 안 그래’에서도 ‘천일동안’처럼 곡의 세밀한 기승전결 보다는 임팩트 있는 멜로디에 집중한다.
이승환 : 옛날에 편집증적으로 음반 녹음을 할 때는 뭔가 너무 정제 돼 있어서 노래가 강하게 치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이번에는 그런 걸 안하니까 다이나믹한 느낌이 살아 있어서 그게 좋았다. 전에는 현악기를 차근차근 전개시키면서 곡을 전개했는데 이번에는 멜로디가 뭔가 잘린 듯이 텐션을 주기도 했고. 예전에는 난 녹음실에서 녹음하는 거 제일 싫어 이랬었는데, 요즘에는 그냥 가서 한다. 왜냐하면 일찍 끝낼 거니까. 그래서 별로 힘들지도 않고.
“나이가 드니까 뭔가 자유로워졌다”
: <Hwantastic>부터 본격적으로 당신이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승환 음악의 3기랄까.
이승환 : 맞다. <Hwantastic>부터 나와 함께 하는 엔지니어들이 완벽하게 자리를 잡기 시작하기도 했고, 사운드에 확신이 생겼다. 나 스스로도 <Hwantastic> 앨범이 굉장히 마음에 들고, 지금도 자주 듣는다. 편하니까.
: 그런 변화에 어떤 계기가 있었나.
이승환 : 글쎄, 나는 사실 공연을 할 때마다 공포가 많았다. 정말 내 무대에 자신이 없었고, 무대에 오를 때마다 과민성 대장증상에 시달렸다. 그런데 2년 전 <Greatest Hits> 공연을 하면서 뭔가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고. 내가 30대에 ‘붉은 낙타’를 통해 20대를 회고하면서 20대에 자유롭게 살아야 했었는데 안타깝다고 얘기 했듯이, 40대가 되니까 그게 더 커진 것 같다. 그래서 남들이 안 입는 스키니 진 같은 거 나는 요즘에 너무 많이 입는다. (웃음) 몸이 좋아진 것도 있지만 사고가 더 어려지고 더 자유로워진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예전에는 사회적인 시선, 통념 이런 걸 인식했다면, 이제는 내가 조영남 아저씨가 된 것처럼 (웃음) 인식을 안 하게 된 거다. ‘경제야 놀자’에 나온 내 집을 보고 네티즌들이 나한테 ‘중년 오타쿠’라고 하더라. 그래, 나 오타쿠야, 마흔 세 살이야. 내 나이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네. 그럼 나는 나대로 살면 되는 거지.
: 한국에서는 참 독특한 40대가 됐다.
이승환 : 나이를 모르고 봤을 때는 불편해 하지 않지만 나이를 알고 봤을 때는 불편하다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불편한 건가? 우리나라는 왜 타인의 취향에 대해 여유롭지 못할까. 왠지 다들 옴싹달싹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음악하는 사람이니까 남들하고 다르긴 하겠지만, 모든 남자들이 다 안에 어린아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모두 가장이라서, 위엄을 지키고 싶어 못 끄집어내는 것 같다. 나는 나 혼자만이라도 그런 것들을 보여주고 싶다.
: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나이에 맞춰서 변해 가는데, 그들과 점점 차이가 난다는 생각은 안 드나.
이승환 : 그 사람들에게 그런 생활이 괜찮다면 상관없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이유도 없고.
“나는 한 번도 열정이 사그라든 적이 없다”
: 다른 사람보다 특히 당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사는 것 같다.
이승환 : 맞다. 언젠가부터 결국 내 자신을 사랑하게 됐다고 해야 하나. 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함이 없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사실 주저주저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뭐랄까, 나는 요즘에 스쿠터 튜닝에서 다시 피규어에 취미를 붙였다가, 다시 멋있는 옷 입는 게 좋다. 그런 건 자기를 사랑하니까 가능한 거 같다.
: 그런 생각들이 음악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이승환 : 맞다. 난 좋아, 그렇게 된다. 망하면 그런 거지.
: 그러다보니 새롭게 도달하는 지점이 있는 거 같다. ‘내 맘이 안 그래’ 뮤직비디오는 예전처럼 물량 투입을 하지 않고 미니멀리즘에 가까울 정도로 간단하게 찍었다. 좋다고 느끼는 건 뭐든 자신 있게 하니까 예전하고 다른 걸 할 수 있는 것 같은.
이승환 : 맞다. 그 뮤직비디오 찍을 때 내가 피 흘리는 건 내가 제안했다. 예전 같으면 피 흘리는 건 분명히 나 스스로 차단했을 거다. 그런데 요즘에는 재밌겠다는 생각부터 먼저 든다. 그리고 원래는 그 뮤직비디오가 남자가 달려가다가 벽에 부딪치고 건물이 다 무너지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건물이 무너지는 건 감정 과잉 같아서 뺐다.
: 그런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젊은 시절(웃음)에는 일일이 설명했는데, ‘내 맘이 안 그래’는 곡이나 뮤직비디오나 그냥 치고 들어가서 부딪치고 무너지는 느낌이 있다.
이승환 : 요즘 열정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사실 우리 밴드가 한 때 매너리즘에 빠져서 한바탕 했었다. (웃음) “그래도 우리가 명색이 밴드인데, 음악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열정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고 했다. 그 때 나를 돌아봤는데, 나는 한 번도 열정이 사그라든 적이 없었다. 무대에 올라가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생각하고. 그런 힘이다. 분명히 머리는 소진되고 몸은 지치고, 가슴속은 외로워서 황량하지만 이상하게 음악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없어지지 않는 것 같다.
: 그 열정이 지금까지 당신이 쌓은 노하우와 결합해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시점은 아닐까. <Mallang>의 레코딩은 <Human>이나 <Cycle> 시절처럼 물량투입을 자랑하거나 현란한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도 매우 편안하다.
이승환 : 10년 동안 우리가 외국 엔지니어도 불러보고, 우리 엔지니어와도 같이 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노하우가 축적됐다. 그게 지금부터 빛을 내기 시작한 거라고 생각한다.
이승환은 계속 자란다
: 이승환은 계속 자란다는 건가 (웃음)
이승환 : 맞다. (웃음) 진화는 계속 되고 있다고 믿는다.
: 하지만 당신도 언젠가는 늙는다. 그러면 지금 당신이 이룬 것들은 앨범 외에는 남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승환 : 그래서 사실은... 주제넘은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내 공연 노하우를 전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녹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 귀로만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만 공연은 내가 강의를 하라면 할 수 있을 정도로 논리적으로 정리 돼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그런 걸 알려주고 싶은 가수가 딱히 없었는데, 요즘에는 윤하를 보면서 잘하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가요제>에서 공연하는 걸 봤는데 그 기나 느낌이 대단하더라. 이런 얘기하면 혹자들은 단신끼리 챙기냐고 할 수도 있지만 하하. 그래서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서 공연에도 먼저 참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내가 늙는 건 순응해야지. 내가 지금 음원 시장에 순응하는 것처럼. 내가 스쿼트를 100kg을 했는데, 그 때 무릎이 안 좋아져서 요즘엔 아파한다. 그렇게 늙는 거다. 받아들여야지.
: 하지만 당신이 늙는 건 아직 먼 얘기 같다. (웃음) 당분간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은 뭐가 될까.
이승환 : 이번 앨범이 안 되면.... 일본으로 어학연수? 하하. 잘되면 여름을 겨냥한 락 앨범? 그 정도? 계획이 별로 없다. 그리고 금년까지는 어떤 관계도 맺지 않는다는 거. 사람하고 관계를 맺으면 시간을 너무 뺏겨서, 공연에 올인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자유롭게 여자도 만나보고 싶고. 나는 아직도 인생의 최선의 가치가 이성간의 사랑이다. 내가 비록 3개월 벅차고 3년을 아파해도 차라리 3년을 아픈 게 낫다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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