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처음 만나본 김영하의 소설이었다.  유명세를 치루는 이름들에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늘 생각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프로 소설가'라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이렇게 능숙하고, 이렇게 능란한 이야기의 진행이라니. 460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지루할 틈 없이 읽어내려갔다.  심지어 학생들에게 얘기도 해줘가면서.

이 책은 사생아로 태어나서 유일한 가족인 외할머니를 잃고, 그 할머니가 남겨진 어마어마한 빚으로 집에서도 내쫓긴, 고시원에서도 다시 내쫓긴, 갈데 없는 막장 인생을 살 위기에 처한 한 젊은이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80년생인 주인공과 그 또래의 청년들은 이태백의 대표 주자들로서 고학력 백수의 전형이었다.  후진국에서 태어나서 개발도상국에서 성장하고 선진국(아직 고지가 멀었지만..;;;;)에서 대학까지 나온 주인공(과 그 또래의 청년들)은 남들 하는 만큼 노력하고 열심히 살아왔지만 제 인생에서 꼭 필요한 질문들은 하지 않고(혹은 모르고) 살아왔다.  자신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인지, 심지어 살아있는지조차 모르고... 또 궁금해하지 않은 채 살았고, 자신에게 요구되는 교육비와 생활비, 제 용돈의 출처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돌아가신 할머니의 상상을 초월한 빚더미 앞에서도 시종일관 수동적이고 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퀴즈쇼 채팅방에서 사모하던 연인을 현실에서 만났지만, 연애에 있어서도 한발자국 더 나가는 것에 본능적인 두려움과 습관적인 물러섬을 보여준다.  그것은 주인공 스스로 어찌할 수 없었던 태생적 한계와 결핍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젊은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후유증 같은 것이기도 했다.

우연과 오기와 그리고 운명같은 힘으로 나간 TV퀴즈쇼 덕분에 사랑하는 그녀를 만날 수 있었지만, 또 그때문에 이춘성을 만나게 되었고, 그를 통해 '회사'로 들어간다.  소위 회사로 불린 그곳은 지옥의 퀴즈쇼 링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 계약금으로 무려 천만원이나 쥐어주는 자금을 움직일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우주로 지식을 이동/축적시키는 곳이기도 하고 현실속에선 파주에서 강원도까지 이동하는,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상한 세계다.  작품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앞부분은 '회사'로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고시원에서 욕보고 지원을 만나게 된 것-과 회사에 적응하며 또 자신도 모르게 파괴되어가는 과정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회사는 거꾸로 말하면 '사회'가 되는데, 주인공은 회사라는 사회를 통해서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차례로 맛보고 다시 무일푼의 자신으로, 즉 원점으로 되돌아 온다.  그러나 서바이벌 세계의 살벌함을 맛본 그는 어느덧 한층 성숙해져 있다.  작품을 성장소설로도 볼 수 있는 관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그러나, 어리고 철없고 그래서 미성숙했던 주인공은, 사회의 쓰라린 맛을 보고 난뒤 보다 자라고, 철들고, 좀 더 성숙해졌지만, 사회의 거대함과 무서움, 그리고 불친절함과 불신까지 모두 배워서 나온다.  눈앞에 있는 연인과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고, 불확실한 미래의 불투명한 빛에 오소소 소름이 돋기까지 한다.  그렇게 세상은 하나를 배우고 하나를 잃어버리는 '자연스러움'을 가르쳐주었다.

한참 도약해야 할 나이의 젊은이가 주인공인데, 그 주인공이 나보다 어리다는 사실에 살짝 마음이 아팠고(..;;;), 책 곳곳에서 등장하는 '책'과 '퀴즈'의 세계가 즐거웠고, 4차원 세계라도 다녀온 듯한 혼란스러운 어지러움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책 말미에 붙어있는 해설은 어찌나 어렵던지 머리가 핑핑 돌았다. 김영하와의 첫 만남은 신선했고 즐거웠으며, 다시 김영하를 찾을 때에는 그의 역사 소설 <검은꽃>을 만나고 싶다.  그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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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11-2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읽고파지네요

마노아 2007-11-24 11:36   좋아요 0 | URL
추천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