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눈먼 자들의 도시 완결편 '눈뜬 자들의 도시'다. 앞의 책에서 작품의 배경이 어디인지 전혀 알려준 바가 없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고국인 포르투갈이 배경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시간적 배경은 도시 전체가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눈이 멀어 버렸던 바로 그때로부터 4년 뒤의 일이다.  이번엔 도시가 온통 암흑으로 변해버리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때만큼이나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니 백지투표 사건이 그것이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에 있었던 선거일.  그 투표장에서 우익 정권의 표가 손 꼽을 만큼 나오고 중도표는 그보다 적게, 좌익 표는 더 적게 나왔다. 그리고 무려 70%가 백지 투표였다.  당황한 정부는 날짜를 바꾸어 재토표를 선언해 보지만 앞서보다 더 처참한 결과가 나온다. 무려 83%의 백색투표가 나왔던 것.

정부는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지만 딱히 답이 없다.  그들은 도시 전체에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시민들을 남겨둔 채 몰래 도시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리고는 버려진 수도를 향해 치안부재 상황에 대한 협박을 내지르나, 도시는 여전히 평화로웠고 일상의 삶을 유지해 나간다.  약이 오르는 것은 정부쪽.  살인, 방화 기타 등등의 범죄가 판을 칠 것이라 여겼는데, 도시와 그곳의 시민들은 스스로 나가버린 정부 따위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뭔가 극적인 반전의 순간을 마련하길 원했던 정부는 열차 폭파 사건을 일으켜 도시를 전복시키려는 음모 집단이 있다고 죄를 뒤집어 씌우기까지 한다.  이때까지 정부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시장은 이 사건에 회의를 느끼며 사직을 청한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놀라운 편지 세통이 도착한다.  각기 다른 수신자를 가진 같은 내용의 편지는 4년 전 이 나라가 모두 실명 상태에 빠졌을 때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한 여인을 소개한다.  이제 작가의 시선은 전작 '눈먼 자들의 도서'와 겹치기 시작한다.  그때 등장했던 인물들이 다시 나와서 당시 상황을 간단히 언급할 기회도 가진다.  이제 그 뒤를 쫓는 자는 경찰의 경정.  정부의 음모에 따라 그는 이 백색투표의 배후에 눈멀지 않았던 그 여인이 놓여 있다고 몰아가지만, 앞서 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행보에 회의를 느낀다.  정부는 치명적인 희생양으로 여인을 점 찍었고, 신문과 방송은 마녀 사냥하듯 그녀를 규탄한다.  경정은 신문사에 기고를 하여 이 일의 부당함을 알리지만 그의 앞에 예정된 끝은 절망에 가까우니 자작극으로 폭파 사고도 일으킬 수 있는 정부가 못할 일이란 보이지 않는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인간이 이룩해 낸 그 문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인간이 앞장세우는 윤리 도덕이라는 것도 얼마나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는데, 이제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도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  국민을 위해서 존재해야 할 정부는 폭력으로서 제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하고,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국민의 심판에 대한 불복 역시 폭력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공권력이란 결국 국민의 손에서 나온 것이고 그들을 다시 끌어내릴 수 있는 것 역시 국민의 선거에 의해서 가능한 것인데, '백지투표'를 통해 그들이 가져야 할 반성이나 책임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오로지 불순분자를 만들어 내어 사회 전체를 공포로 휘감아 공황상태로 만드는 것이 대통령과 총리와 장관들의 태도였다.

그 광기 앞에서 모두가 눈 멀었을 때 홀로 세상을 보았던 한 여인도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그녀의 눈물을 핥아주었던 개 역시 눈을 감는다.   정부의 부재 속에서도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던 그 도시의 사람들이 한 순간에 이성을 잃고 조작된 진실에 쓸리는 모습에, 황우석 사태나 디워 논란 때 보여진 파시즘적 행태가 겹친다. 

눈을 떠도 진실을 보지 못하고, 진실을 보아도 인정하지 않는 진정한 눈먼 자들의 세상은 아직도, 그리고 이곳에서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으며, 따옴표 하나 나오지 않고 인용문도 없이 그저 서술로만 작품은 진행된다.  대화의 맥을 놓쳐버리면 누구의 대사인지도 알아차리기 힘들어져 작품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책도 무겁지만, 마음도 역시 무거워지는 독서였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07-11-17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 놓고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는 책중의 하나입니다. 흑-

마노아 2007-11-18 10:27   좋아요 0 | URL
저도 오래 묵혔다가 요번에 읽었어요. 눈먼자들의 도시가 훨씬 재밌긴 해요^^

멜기세덱 2007-12-1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살펴보니 4개씩이나 당첨되셨더군요....대박^^

마노아 2007-12-14 14:54   좋아요 0 | URL
히힛, 감사해요. 멜기세덱님을 이제 덜 부러워 하려구요. 푸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