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리랑 이후 처음 읽는 작가의 소설이다. 그것도 대하소설이 아닌,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단권 소설이다.
(작가의 역작들에 비하자니 '장편 소설'이란 수식어가 멋쩍다.)

작품 속 주인공은 윤혁이다.  북에서 특명을 받고 남파된 공작원. 일명 간첩, 혹은 빨갱이, 그리고 장기수에다가 전향자.

그의 이념적 쌍생아 박동건의 죽음을 알리면서 작품은 시작한다.  박동건이 꺼져가는 생명으로 마지막까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자신은 전향자가 아니라는 것.  그가 고문으로 기절해 있을 때 강제로 제 지문을 찍어가 전향자로 만들어버린 것에 대해 끝끝내 항의하고 저항하고 싶었던 것.  윤혁은 그 마음을 알아차린다.  자신 역시 전향자이지만 의지만은 전향한 것이 아니라고 속울음으로 늘 외치고 있었으니까.

그들이 생명을 내걸고 남으로 내려왔을 때에는 꿈꾸었던 이상이 분명 있었다.  그들은 사회주의의 미래를 아름답게 보았고, 얻을 수 있는 장래의 것이라고 확신했다.  당이 솔선수범해서 인민을 지키고 보호하고 위해주는 그 대동의 세계를 이미 몸소 체험했으니.

그래서, 몽둥이 찜질도 견디고 혹독한 수감 생활을 버티면서 전향을 입밖에 내지 않았던 것인데...

그런데 세상이 바뀌었다.  소련이 무너지고, 북한의 인민들은 굶주리고 있었으며 당은 부패했다.  어떻게 그런 몰락이 가능했는지, 그 원인을 알고 싶지만 속시원히 풀어줄 사람이 없다.  전향자가 되어 출소하고 난 뒤 따라다니는 보호관찰자 김형사.  그는 소련의 몰락과 북한의 현실을 들먹이며 손가락질하기 일쑤였고, 그의 심기를 건드려 더 큰 화를 입기 전에 그냥저냥 말을 얼버무리는 윤혁이지만, 자신 역시 그의 지적이 틀렸다고 말할 근거를 찾지 못한다.

자신이 빨갱이가 되어 붙잡힌 이상 가족들이 안전할 수 없고, 친척들이라고 온전할 리가 없을 터.  30년 수감 생활로 그는 피붙이들의 공적이 되어 있었다.  이념을 믿고 신념을 지키며 끝없는 인내로 버텨왔지만, 지나간 세월은 그에게 무상하고 허무할 뿐이다.  빈 몸뚱아리에 의지할 것 아무 것도 없는 그에게, 그래도 생을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준 존재가 있었다.

감옥에서 만난 노동운동가 강민규의 열정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고, 소녀가장 경희와 남동생 기준이는 보살핌을 펼쳐줄 수 있는 정체성을 내어줌으로써 윤혁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안겨주었다.

정말 사회주의는 왜 무너졌을까?  자본주의가 훌륭해서는 절대 아닐 것이다.  다만, 이상적 사회를 구축해 나가기에는 인간이 너무나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욕심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회주의에서 추구하는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애쓰는 만큼 귀한 땀을 흘릴 수 있는 것도 인간이지만, 그 귀한 신념마저도 욕망 앞에 허물어질 수 있을 만큼 약한 존재도 인간이기에 나로서는 사회주의의 몰락이 불가능의 실현처럼 보이지 않는다.  3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바쳐서 당의 무오류를 믿어온(혹은 믿는다고 생각한) 이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세상은 너무나 달라져 남과 북의 최고 권력자가 정상회담을 갖고, 더 이상 수업 시간에 미국의 양민 학살을 얘기한다고 해서 잡혀가지 않는다.  윤혁의 수기는 몇 만부가 팔려 나가고 인터뷰가 쇄도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은 여전히 금서가 존재하며 국가보안법이 혈기등등하게 살아서 푸르게 빛나는 곳이기도 하다.

작가는 첫 장에서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인간의 삶, 그것은 결국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연습'이다

.... 라고 말했다.

사회주의는 실패했지만, 사회주의의 정신은 아직도 살아있고, 그것을 발판으로 한 시민운동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윤혁의 이념과 사상은 그의 지나온 삶을 돌아볼 때 완벽한 실패로 보이지만, 그는 강민규와 경희 기준 남매 등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었고, 책이 출간된 뒤 맺어진 보육원 최원장과의 새출발도 시작하였다.  길게 보면, 그들의 싸움과 투쟁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인생은 언제나 실전이고, 역사 역시 연습이 없는 무대이지만, 실패와도 같은 그들의 시행착오들이 모두 모여서 인류사의 큰 족적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그 고단한 반복에 지치고 다치고 헐떡이면서도 손에서 놓지 않는 것, 그것 역시 인간의 아름다움.  그래서 우리는 무수한 한숨 끝에서도 '희망'을 노래한다. 

'문학의 위기' 가운데서도 문학은 영혼의 호흡 작용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작가의 희망도 그 한 부분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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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0-05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그 무수한 실패들이 가끔은 절망스럽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혁명은 길을 묻지 가능성을 묻지 않는다란 구절을 발견했는데 그럼에도 지금 진행되는 온갖 희생들이 마음이 아파서 세상이 바뀌긴 하는거야라고 묻고 싶어요.

마노아 2007-10-05 23:13   좋아요 0 | URL
우리 살아있을 적에 그 실패들에 대한 대가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도 생겨요.
그래도, 멈출 수가 없는 거겠죠. 가능성을 묻지 않는다...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