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출간 됐다. 반가운 소식이다. 가격은 여전히 세다. 두께도 여전히 두껍다. 그래도, 반가운 건 반가운 거다. ^^ (게다가 표지도 더 예뻐졌다.)
이 책은 예전에 교보문고에 가서 잠깐 들춰본 적이 있었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그 긴 페이지가 연표로 구성되어 있었다. 동양사와 서양사가 나란히 진행되는데, 이 책은 통사를 어느 정도 섭렵한 뒤에 보자 뭐 요런 마음으로 돌아왔었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저자 때문이다. 수요역사연구회. 그 안에 내가 참 좋아했던 교수님이 계시다.
황민호 교수님.
대학교 때 먼저 이분의 사모님께 조선사를 배웠다. 김소은 교수님. 정말 열과 성을 다해주시는 분이었는데 학생들이 네가지 없게 굴 때가 많아서 개인적으로 많이 불끈 했었다. 나로서는 너무 즐거운 수업이었건만, 한학기 출강하시고 다시 뵙지 못했다. 그런데, 그 다음 학기엔 사부님을 만날 수 있었다. 바로 황민호 교수님.
2003년 1학기는 교생실습으로 바쁜 때였다. 그렇지만 3월 첫수업부터 너무 매력적이었던 교수님 수업을 빠지고 싶지 않아서 교생 실습 중에도 학교에 갔었다. 다행히 복지과 수업은 야간에 있어서 약간의 진도 차이는 있지만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것.
근데, 충격적인 일을 당했다. 자리(그것도 맨 앞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기다리는데, 교수님이 나를 발견하시고는 불편하다고 나가라고 하시는 것이다. 너무 정색을 하고서 나가라고 하시는 바람에 졸지에 쫓겨나고 말았다. 쫓겨나서 벽 뒤에 숨어서 수업을 좀 듣다가, 내가 예전에 들었던 수업과 어느 정도 겹쳐서(야간반 진도가 더 느렸다.) 중간에 돌아와버렸다.
집에 와서도 도저히 납득도 안 가고 이해도 안 가고 분해서 못 참겠는거다. 교수님 이름으로 검색을 했더니 수요역사연구회가 나왔다. 거기 홈페이지에서 교수님 이메일 주소를 찾아서 편지를 썼다.
아니, 학생이 수업 듣겠다고 앉아있는데 그걸 쫓아내는 선생님이 어디 있냐고...
솔직히 쪼오금 이해는 갔다.(인정은 못해도...) 같은 수업 두번 하는데, 이미 들었던 학생이 다시 앉아 있으면 좀 뻘쭘할 수 있겠다. (우스개 소리도 잘 안 나올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학생을 쫓아?(버럭!)
교수님께서 답장 주셨다. 정색해서 미안타고. 나중에 저녁 한끼 사주시겠다고.
물론, 그 후로도 같이 식사할 기회는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꼬박꼬박 음료수도 미리 교탁 위에 올려놓고 그랬는데...칫!
교수님 수업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아마 현대사를 공부하게 되는 많은 이들이 접했을 그런 충격들.
베트남전과 삼일운동 민족대표33인, 군위안부 문제, 그리고 한국전쟁.
한국전쟁을 수업하고 나서는 세상에 믿을 놈이 없어보였다. 내 머리 속에 온갖 '음모론'이 도사리는 듯한 그런 느낌.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수업할 때의 말투는 이때 교수님 말투와 거의 흡사하다. 말 끝머리를 ~~~하죠. 라고 끝맺는 스타일. 어쩌다 보니 따라하고 있더라.^^ㅎㅎㅎ
교수님 수업은 정말 의미있었고 재밌었고 그야말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소중한 시간이지만 단점이 하나 있었다. '수치'에 있어서는 오타의 결정체라는 것.
그러니까 엄청 필기를 열심히 했던 나는, 그 자료들을 다시 조사하는 작업을 꼭 거쳐야 했는데 연도는 반드시 틀린다. 지명도 꼭 틀린다. 사람 이름도 자주 틀린다. 그래서 수업 노트 그대로 공부를 하면 틀린 사실을 잘못 기억하고 말아 낭패가 생길 수 있다. 시카고 대학이라고 했는데 찾아보면 워싱턴 대학이라는 등 아주 중요한 것들은 아니지만 잘못 기억해서 좋을 것도 없는 그런 내용들.
아무튼 참 독특했던 분이셨다.
어떤 책을 읽으면 좋겠냐고 학생들이 질문을 많이 했었다.(나도 그랬다.) 하지만 단 한번도 책 이름을 집어서 추천해주신 적이 없다. 무조건 많이, 닥치는 대로 읽으라고 하셨다. 그때는 그 말이 너무 성의없어 보였는데, 지나고 나니 이해가 간다. 그 무렵의 우리들(뭐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은 골라 읽을 학번이 아니라 있는껏 힘껏 양껏 마구마구 흡수해야 할 때였다. 그렇게 공부하고 나서 스스로 재정립을 시켜야 했다. 누군가에게 기대기만 할 게 아니라.
지금도 모교에 출강하시는 지는 모르겠다. 다른 학교에 전임으로 가셨을 지도... 강의 계획서에 따르면 더 많은 수업을 들었어야 했는데(듣고팠는데) 그 진도를 다 못 나간 게 지금도 아쉽다. 어디서 수업하는지만 안다면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청강하고프다.
책이 재출간 된 것을 보고서 기뻐하다가 말이 많아졌다. 돈 모아서 책사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