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노는 물이 달라? 난 마시는 물이 달라! [제 597 호/2007-05-04]
지난해 가을 호주에서는 물맛의 지존을 가리는 이색대회가 열렸다. 세계 내로라하는 물들이 참여한 이 대회에서 영예의 1위는 놀랍게도 멜버른시의 수돗물이 차지했다. 더 황당한 결과는 세계적 생수 ‘에비앙’이 재처리한 하수도 물보다 낮은 순위였다는 것. 물 이름을 알려주지 않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한 미각 한다는 심사위원들이 평가한 결과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행사가 열린 적이 있다. 서울시가 수돗물을 홍보하기 위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물맛을 가려내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시행한 것이다. 이름이 쓰여 있지 않은 병에 담긴 물을 차례차례 마신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맛있다며 가리킨 것은 수돗물. 정체를 알게 된 이들은 ‘뜨악~’하는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고 한다. 물에 대한 우리의 오해와 진실은 무엇일까?

대부분 사람들은 믿고 마실 수 있는 맛있는 물로 투명한 병에 담긴 생수를 떠올린다. 슈퍼마켓의 냉장고에는 각종 생수가 늘어섰고 백화점에 가면 세계 각국의 프리미엄 물이 진열돼 있다. 연예인들이 즐겨 마신다는 피지 생수, 심해에서 퍼 올려 몸에 좋은 성분이 가득하다는 해양심층수, 어른은 마실 수도 없다는 아기 전용물 등 종류별로 늘어선 기능수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1L 당 1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몸에 좋고 맛도 색다르다는 소문 때문에 잘도 팔려나간다. 세계의 온갖 진귀한 물을 모아놓은 인터넷 쇼핑몰이나 메뉴판에 오직 물만 파는 물카페까지 등장했다. 값비싼 가격의 생수가 물맛이 좋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와 다르다.

물맛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포함된 성분에 따라 물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탄산이 포함된 광천수는 톡 쏘는 맛이 나 상쾌한 느낌을 준다. 평소 즐겨마시는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의 맛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같은 광천수라도 철 성분이 많이 포함된 약수에선 철 비린내가 풍겨 일부 사람들은 기피하기도 한다.

때문에 출신지와 맛을 따져가며 물을 마시는 마니아들도 있다. 물 전문 사이트에 가면 ‘에비앙은 빙하수라 맛이 무겁다’나 ‘천연 옥의 산지에서 뽑아 올린 지하수는 부드러워 목에서 잘 넘어간다’는 평이 올라와 있다. 빙하수에는 칼슘 같은 미네랄이 많이 맛이 텁텁하게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깊은 땅 속에서 퍼 올린 지하수는 여러 광물 사이에서 흐르던 물이라 맛이 깨끗하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물 마니아들에겐 섭섭한 이야기겠지만 물맛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물의 성분이나 출신지가 아닌 온도다. 전문가들은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식힌 물이라면 어떤 생수든 다 비슷한 맛을 낸다고 지적한다. 실제 국내에서 시판되는 많은 생수는 수원지가 서로 다른 물도 똑같은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 결국 소비자는 브랜드를 마시고 있는 셈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서울시의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사람들이 수돗물을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 이유도 같은 원리다. 상온 아래에서 느껴지던 수돗물 특유의 냄새나 찝찝한 맛이 차갑게 식힌 물에서 사라진 것이다. 수돗물 전문가들은 수돗물을 냉장고에 두었다가 마시면 생수 못지않게 맛있는 물이 된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미국 위스콘신주에서는 수돗물을 병에 넣어 생수로 판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지방자치단체는 아예 가정까지 차가운 수돗물을 전하는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수돗물의 변신은 수돗물에 대한 막연한 거리낌을 씻어줄만 하다. 사람들이 수돗물을 맛없다 느끼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원인 호수나 강의 흙냄새와 정수장에서 소독을 위해 넣는 염소 냄새 때문이다. 염소 냄새는 한꺼번에 많은 양을 넣는 것이 아니라 정수장에서, 중간 공급지에서 적절한 양을 나눠 넣으면 사라진다. 이 밖에 물탱크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수질감시시스템이 개발됐고, 급수관 안으로 쏙 들어가 내부를 진단하는 미니로봇도 곧 만들어질 예정이다.

우리 몸의 3분의 2는 물이다. 이 가운데 1~2%만 사라져도 사람은 심한 갈증을 느끼고 더 많은 물이 손실되면 탈수증상을 일으켜 사망한다. 단식하는 사람은 몇 주간 버티지만 물이 없으면 단 5일도 버티기 힘들다고 한다. 사람이 하루에 마시거나 다른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물의 양은 약 1L. 맛을 떠나 1L의 물만 있어도 사람은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한 통에 7만원이 넘는 자작나무 수액이든, 수도세만 내면 마실 수 있는 몇 원짜리 수돗물이든 인간의 삶을 유지해준다는 점에서는 다 같은 물이다. 물을 마시고 푸른 나비가 노니는 신천지를 보는 경지에 이르지 않는다면야 내 입맛에 맞는 시원한 물 한 잔이면 족하지 않을까. 잔뜩 목이 마른 이의 입술로 떨어지는 차가운 물 한 방울,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물은 그런 물이리라. (글 :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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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04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어떤 물이든지 적절한 온도에 맞춰 먹으면 가장 맛있습니다.
겨울에는 상온에서 미지근한 물만 먹어도 시원하고, 봄과 여름 등에는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해서 먹는게 제일 맛있죠. (웃음)
난 세상에서 뜨거운 물이 제일 싫습니다. 뜨거운 국물도, 뜨거운 음식도.
아- 이래서 내가 추운 '천왕성인' 인가봐. (긁적)

마노아 2007-05-04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시원한 물 한잔 들이키면서 너무 행복해 했어요^^ 겨울엔 따뜻한 물도 나쁘지 않은데...
저도 대체로 차가운 물을 선호해요. 헌데 한의원에서는 제 몸에 찬 게 안 좋다고 하네요. 그래도 역시 찬 게 더 좋아요^^ 아이스 코코아 짱!!

비로그인 2007-05-04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큭. 자신이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물론, 한의원에서도 나름대로의 정보로 이야기하는 것이겠지만. 자신의 몸은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자신이 '먹고 싶은 것 혹은 먹기 싫은 것'이 있다는 것은 -
'그거 꼭 먹어야 돼. (혹은) 그건 꼭 먹으면 안돼' 라고 몸이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므로. 생각은 뇌에서 전달하고, 뇌는 온 몸의 세포들에게서 받은 정보를 종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말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지 않을까요? (웃음)

마노아 2007-05-04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말하는 게 있지만, 때로 '유혹'일 가능성도 크지요. ^^ 암튼, 유혹에 강한 인간이 아닌지라 먹고 싶은 것 대체로 먹습니다. 그리고 먹기 싫은 것 대체로 안 먹어요. 이거 편식이지요..;;;;

비로그인 2007-05-04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긁적)
저도 먹고 싶으면 먹고, 먹기 싫으면 안 먹습니다만.

마노아 2007-05-0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말랐잖아요. 와방 부러워요(>_<)

비로그인 2007-05-05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 마노아님 이제 초능력자가 되신겝니까.
꿈에서 절 한번 보시더니, 이젠 저에 대해 다 아시는 것 같습니다. (웃음)

마노아 2007-05-0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더 알게 되면 미아리에 자리 펴겠습니다.^^

비로그인 2007-05-05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쿳-
그럼, 저는 공짜로 점 봐주시는 겁니까? (웃음)

마노아 2007-05-05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잠깐 낮잠 자는 데 이번엔 알라딘 사람들이 떼로 나왔어요. 저 요새 이상해요^^ㅎㅎㅎ

비로그인 2007-05-06 0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어~ 마노아님, 알라딘 서재놀이에 새삼 푹- 빠지신 것 아닙니까. (웃음)
물론, 저도 이런 말 할 처지는 못되지만 (긁적)

마노아 2007-05-0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목원에 갔는데 단체로 만났어요. 마치 짜고 모이기로 한 것처럼요^^
엘신님 꿈은 무사(?) 합니까? ^^

비로그인 2007-05-07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 저의 꿈~? ㅡ_ㅡ? (긁적)

마노아 2007-05-07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인되면 다들 저처럼 꿈에 나오고 그러는 게 아닌가 봐요? (난 왜 그러지??)

비로그인 2007-05-07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하하핫 !!!!!!!! 난 또 무슨 소리라고. ^^
아직은 알라디너 중 꿈에 나온 사람은 없습니다만, 내공이 더 있어야되는가 봅니다.
(웃음)

마노아 2007-05-07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에서 밤새 놀면 일어나서 얼마나 피곤한데요. 게다가 생각이 안 나면 또 얼마나 궁금한데요..;;; 내공이 필요한 게 아니라 기가 약한 게 아닐까 생각 중이에요...;;;;

비로그인 2007-05-0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닙니다.
꿈을 잘 꾸는 것은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뜻이며, 수면중 뇌 활동이 왕성하다는 뜻이므로
앞으로는 마음껏 꿈을 즐기십시오. 억지로 기억해낼 필요는 없습니다.
어느 순간, 꿈에서 나왔던 장면이나 물건, 상황을 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되살아납니다.
^ㅡ^

마노아 2007-05-08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잡다한 꿈을 많이 꾸면 숙면을 방해받은 기분이에요. 같은 시간을 자더라도 꿈을 꾼 날은 더 피곤해요. 대부분 기억 못하지만, 아주 가끔 선명하게, 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꿈들도 있지요. 그런 꿈들은 대체로 로맨틱해요. 로맨틱한 게 아니면 꾸고 싶지 않아요^^;;;;

비로그인 2007-05-08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참. 오늘 새벽에는 또 엄청난 포스의 꿈을 꾸고 말았습니다. (긁적)

마노아 2007-05-08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곡, 엄청난 포스라니, 무지 궁금해요! 전 어제 꿈에 아프락사스님 나오셨어요. 아니 죽음의 백세주 잔치에 저는 없었는데 어인 일인지^^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