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반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Mr. Know 세계문학 20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책장을 열어보니 내가 이 책을 산 날짜가 적혀 있다.  2005.10.29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못보던 책을 부랴부랴 읽은 것은 영화 향수의 공이 큰 것을 인정한다.  원작을 보고서 영화를 보면 대개 영화가 늘 못 미치기 마련이지만, 원작을 안 보고(갖고 있는데도) 영화를 본다는 게 내키지 않아서 서둘러 책을 읽어갔다.  내가 영화를 보려고 한 날짜에 영화가 더 이상 상영을 하지 않게 되어서 책을 2/3 정도 읽은 상태에서 영화관람을 마쳤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엔딩이 내겐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마 원작을 읽은 사람은 영화의 엔딩이 전혀 신선하지 않을 테지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 속에는 기묘한 느낌이 늘 존재했다.  그 자신이 언론에 전혀 노출되지 않고서 작품에 몰두하는 은둔형 작가이기 때문에 그 느낌이 더 강하게 비쳐질 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번 작품을 보면서 냄새에 천재적인 마성을 지닌 그르누이라는 인물이 작가의 어떤 기괴한 천재성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 책의 부제는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태어나서 첫 울음으로 그 존재를 알렸지만 그로 인해 어머니는 사형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어머니의 죄과는 둘째 치더라도, 그라는 사람의 존재에 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를 돌보았던 유모는 원했던 것과는 전혀 반대의 길목에서 죽음을 맞았고(돌연사가 아니었다는 게 하나 다행이랄까), 무두쟁이는 익사했고, 향수제조자 발디니는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압사했다.  후작은 산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 자신이 직접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 아닐지라도 이미 주인공 그르누이는 많은 생명을 앗아가며 죽음에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는 욕심이라는 것을 몰랐고 욕망이라는 것을 몰랐다.  돈에 집착하지도 않았고 부당한 노동에 대하여 항변하지 않았으며 깨끗한 잠자리나 훌륭한 식사를 탐내지도 않았다.  그를 몰두하게 하고 그를 열망케 한 것은 오로지 '향기' 뿐인데, 그 자신은 향기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에게선 악취도 향취도 나지 않는다.  냄새가 나지 않는 인간이란 '존재감' 마저도 없는 인간으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그는 누구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하고 배척받으며 자라왔다.  그 자신이 스스로에게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느끼게 된 불안과 절망감은 깊은 산 속 동굴 속에서 무려 7년을 지내온 그를 단숨에 인간 세상으로 내보내게 만들었다.

자신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줄 가짜 향기를 몸에 두른 채 세상 속으로 나간 그는 시간을 들여 향기를 정복하기 시작한다.  그는 만들고 싶은 모든 향기를 제조했고, 그것들을 소유했다.  아니, 소유했다고 믿었다.  그랬기에 만족했고, 그랬기에 행복했다.  그러나 그의 그 모든 욕망과 만족감은 실제로는 가짜임을, 그는 허무함 속에서 깨닫고 만다.  모두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 수 있는, 모두를 지배할 수 있는, 신이 보낸 천사라고도 믿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수를 만들었지만, 그것은 그의 것이 아니다.  다 이루었다는 그의 자신감은 아무 것도 갖지 못했다라는 절망감으로 금세 바뀐다.

모든 냄새를 다 맡을 수 있는 천재적인 코는 그에게 재능이 아니라 저주였다.  그의 재주는 신의 축복이 아니라 악마의 농간에 가까웠다.  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사랑을 구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를 포장한 향기에 취해있을 뿐 인간 그르누이에게 따스함 한조각을 주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려 찾고자 했던 진짜 향기도, 그를 향해 웃어주는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본질에 다가간 그는 절망에 빠지고, 그 절망의 향기 속에 제 몸을 내던진다. 향기 없는 자신을 향기로 포장하여 사람들의 욕망을 받아들였을 때, 그는 '만족감'이라는 것을 느꼈을까.

책은 400여 페이지로 두툼한 두께를 자랑하지만 상당히 금세 읽힌다.  재미도 있고 책의 묘한 마력에 취해 앉은 순간 더 읽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새로 나온 양장본의 표지보다는 문양이 새겨진 이 책의 표지가 소설 향수의 분위기를 더 제대로 살린 느낌이다.(내가 갖고 있는 책도 이 표지다.)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원작의 맛을 잘 살렸고, 그 신비로움과 기묘함과 기이함도 잘 표현했다.  물론, 원작의 강력한 힘이 뒷받침된 까닭이리라.   책이 나온 지 20년도 더 지났건만 세련됨에 있어서도 결코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겠다.  오래오래 베스트셀러로 남아 더 많은 사람들을 놀래키며 그 이름을 남겨줄 테지.  파트리크 쥐스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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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20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부분 영화는 원작에 못 미치지만,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에 따라 더 좋기도 하죠.
저에게는 [쥬라기 공원]이 그랬습니다. 2권으로 나뉘어진 '마이클 크라이튼'의 원작
소설을 상당히 재밌게 읽었었는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는 그야말로 대성공.
'과연 스필버그다 !!' 라고 감탄하게 만든 명작이죠.

[향수]에서는 마지막에, 매혹적인 향수를 뒤집어 쓴 주인공을 사람들이 산 채로 뜯어
먹는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어떤 향이길래 생인육을 뜯어 먹을 정도로 식욕을 불러
일으킨걸까..하고 궁금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본능은 식욕.
어느 영화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좀비들에게는 식욕의 본능만 남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은 이성이나 자아는 전혀 없는 그저 움직이는 세포덩어리에 불과했죠.
작은 향에도 두통을 느끼는 저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입니다. (웃음)

아키타이프 2007-04-20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작품 [좀머씨 이야기][콘트라베이스][향수]를 읽었는데 그중 [향수]가 저에게는 젤 재미없었습니다. 아마 좀머씨를 기대하고 읽어서 더 그랬던가봅니다.
하도 오래전에 본거라 기억에 남는건 후각이 유난히 발달해 있지만 자신은 무체취증이라 더욱더 냄새에 집착을 해서 광기스러운 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네요.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마노아 2007-04-20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라기공원은 영화로밖에 못 보았지만 정말 재밌게 보았어요. 역시 스필버그란 소리가 절로 나오더군요.
원작보다 영화가 좋았던 경우로 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꼽아요. 영화가 훨씬 좋았거든요. 그밖에는 대부분이 원작이 더 좋거나 비등했지요. ^^
저도 향에 약한 인간인지라 향수 자체를 선호하지 않지만, 주인공의 향기에 대한 욕망은 놀랍게도 설득력이 있었어요. 또 그가 살았던 18세기의 유럽이라면 더욱 그렇구요.
초딩5년 때 처음으로 극장에 갔는데 동시상영하는 극장이었어요. 홍콩영화 하나, 좀비 나오는 공포영화 하나였는데, 정말 굶주린 시체들이 다시 눈을 뜨더군요. 아으... 끔찍해요..;;;

마노아 2007-04-2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키타이프님, 전 처음으로 읽은 게 '깊이에의 강요'였구요. 그 다음은 '비둘기'였어요. 이어서 '좀머씨 이야기'를 보았는데, 저는 깊이에의 강요가 가장 좋았고 좀머씨는 사실 별로였어요. 모두들 개인차가 있네요. 작가 참 독특해요^^

비로그인 2007-04-20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릴 때, 중국영화에서 강시가 관에서 빳빳한 두 팔을 내밀며 벌떡 일어날 때가
가장 무서웠습니다....(긁적)

마노아 2007-04-20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꼬마 강시의 얼굴은 귀엽지 않던가요? ^^ 그 역을 소화한 배우들은 팔이 무지 아팠을 거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