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쏘시개
아멜리 노통브 지음, 함유선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전시상황. 혹한의 겨울. 집이 폭격을 받아 돌아갈 곳이 없는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50대의 교수와 30대의 조교와 그리고 그의 연인까지 단 셋.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불을 피워야 했고, 불을 피울 재료란 이제 책밖에 남지 않은 순간.

그때, 그 책들을 어떻게 태울 것인가.  과연 태워야 하는가. 태운다면 무엇부터 태워야 하는가...

등장인물 세명뿐인 이 책은 희곡이다.  100페이지도 되지 않는 아주 짧은 글.

생각해 보니, 아멜리 노통브의 글은 언제나 짧은 편이었고, 대사가 줄기차게 이어지고 지문에 해당하는 서술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매번 글의 스타일이 '희곡'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그녀가 발표한 희곡은 이 책 뿐이다.  오히려 그게 놀랍다. ^^

영화 "투모로우"에서 도서관에 갇힌 채 구조를 바라던 학생들이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 책을 태우는 장면이 나온다.  인류의 지성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에서, 인류의 가장 고귀한 자산 중의 하나인 책이 한낱 불쏘시개 정도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며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사실, 책을 좋아하고, 책이 얼마나 훌륭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이견을 갖진 않지만,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 책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것을(목숨이나 목숨에 준하는) 포기할 마음이 내게는 없다.  작가는 어떤 책이 가치있는가, 어떤 책이 형편없는가 등등을 김수현식 말싸움으로 다다다다 털어놓지만, 일종의 언어유희에 가까웠고, 내게는 크게 마음에 와 닿지를 않았다.

미안하게도, 내가 갖고 있는 책 중에서 불쏘시개로 먼저 버려야 할 책을 고른다면, 나는 아멜리의 책을 그나마 먼저 태울 것 같다.  재미를 넘어선 감동, 혹은 그 이상의 무엇을 내게 주지를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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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16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마노아 2007-01-17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옙, 산타님^^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