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장바구니담기


그러나 나는 병원에서 일한다고 모두가 의사는 아니며, 공군에 근무한다고 모두가 전투기 조종사는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조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조종사와 비행기만으로는 하늘을 날 수 없다는 것,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폼나지 않는 일을 해줘야만 비행기는 논두렁이나 하수구에 처박히지 않고 하늘을 제대로 날 수 있다는 것, 그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이해해주길 바라는 거다.-56쪽

현대인은 아무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해요. 전기가 발명되고 매머드 도시가 등장한 이후로 현대의 밤은 일종의 교란상태에 빠져 있죠. 게다가 자본주의가 선물한 최고의 유산은 바로 불안이에요. 보험, 증권, 부동산, 주식...... 현대 경제는 불안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알다시피 불안은 숙면의 최고의 적이에요. 그리고 불면은 다시 불안을 만드는 악순환이 진행되는 거죠.-78쪽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시절은 없어요.
그런 시절이 있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않을 거예요.
우리는 행복한 기억으로 살죠.
하지만 우리는 불행한 기억으로도 살아요.
상실과 폐허의 힘으로 말입니다.-107쪽

우리나라에서 고양이로 변했다는 이야기는 아직 못 들어봤어. 아무래도 곰이나 호랑이가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이고 전통적이지.

그게 일반적이고 전통적이에요?

단군신화에 나와 있잖아. 그러니까 단군신화에 따르면 그 시대 사람들은 모두 곰이나 호랑이로 변하려고 했단 말이잖아? 지금은 모두 연예인이 되려고 하지만.-147쪽

불행은 결코 할부로 오지 않아. 불행은 반드시 일시불로 오지. 그래서 항상 처리하기가 곤란한 거야.-164쪽

우리는 불안 때문에 삶을 규칙적으로 만든다. 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삶을 맞춘다. 우리는 삶을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해서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만든다. 습관과 규칙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 말이다. 하지만 효율적인 삶이라니 그런 삶이 세상에 있을까. 혹시 효율적인 삶이라는 건 늘 똑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죽기 전에 기억할 만한 멋진 날이 몇 개 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182쪽

자신의 무덤을 보는 사람은 드물어요.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 집을 짓기 전에
먼저 자신의 무덤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무덤을 본 사람은
삶을 고귀하게 여길 줄 알거든요.-264쪽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한센 브라운의 딸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사람들 말로는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큰 폭탄을 만든다는데 그게 사실이에요?"
한센 브라운은 창백한 얼굴로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래, 아빠는 날마다 거대한 불행을 제작하지. 하지만 아빠가 지구 반대편에서 터질 불행을 제작하지 않는다면 그 불행은 우리집 응접실이나 너의 예금통장 같은 데서 터지겠지."-299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뽀송이 2007-01-09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이 책 읽고 싶었는데... 재미난가봐요!!

마노아 2007-01-0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입담이 보통이 아니에요^^ 성석제와 박민규 스타일 조금 나더랍니다. ^^

짱꿀라 2007-01-10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지르고 갑니다.

마노아 2007-01-10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의 장바구니가 꽉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