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숙(30) 씨는 오늘도 회사 화장실에서 젖을 짜며 눈물을 흘렸다. 남몰래 화장실에 숨어서 젖을 짜고 있는 자신의 신세가 서글픈 게 아니었다. 이제 5개월밖에 안 된 딸에게 ‘화장실에서 짠 모유’를 먹여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답답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모유 수유를 고집하는 조씨의 하루는 고달프다. 조씨는 젖이 불면 근무 중에도 화장실로 달려가 유축기로 젖을 짜 둔다. 용기에 일정량이 모아지면 냉장고가 있는 타부서까지 가서 넣어두었다가 퇴근 후 챙겨서 가져와야 한다. 조씨는 “처음에는 휴게실을 이용했지만 워낙 보는 눈이 부담스러워 바로 그만두었다”며 “수유실이 없는 직장의 여성들은 대부분 어쩔 수 없이 화장실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18일 한국유니세프에 따르면 모유 수유를 하는 젊은 직장여성은 크게 늘고 있는 반면, 직장에 수유시설을 갖춘 곳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완전 모유수유율은 1988년 48.1%에 달했으나, 맞벌이가 늘어나면서 이후 급속히 떨어져 2000년에는 10.2%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뒤늦게 모유 수유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지난해에는 30%대까지 올라섰다. 서울아산병원 신생아실 관계자는 “모유를 먹이면 빠는 힘이 8배나 강해져 피가 머리로 몰리면서 IQ가 10 이상 높아지는 등 효과가 밝혀지면서 모유 수유를 하겠다는 젊은층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 직장이 수유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아 여성들은 부득이하게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여성들이 수유 장소로 화장실을 주로 이용하는 이유는 앉을 수 있고 씻을 수 있으며 개인 공간이 확보되기 때문. 얼마 전 시중 은행에서 IT회사로 전직을 한 최나지(29) 씨는 화장실에서 ‘끽끽’ 하는 기계음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최씨는 “알고 보니 유축기 소리였다”며 “수유실이 있는 전 직장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어 “내년 봄 결혼할 예정인데 남의 일 같지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복지시설이 갖춰진 대기업의 경우에도 수유실을 갖춘 기업은 20% 정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고,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게 모유 수유 단체들의 설명이다. 대부분 직장여성들이 모유를 먹이다가 포기하는 것도 직장 내 열악한 시설 때문이다. 실제 2001년 수유실을 설치한 이랜드그룹에 따르면 97년 5.8% 수준이었던 모유수유율이 2001년 42%에 이어 2002년 77%, 지난해에는 86%까지 올라갔다.

한국유니세프 이은미 과장은 “한 유명 아나운서도 방송사에 수유실이 없어 화장실과 차에서 젖을 짰던 것이 인연이 돼 홍보대사를 맡아줬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이어 “화장실에서 젖을 짜는 게 얼마나 잘못된 조합이냐”면서 “기업들이 새해에는 여성에 대한 복지혜택 1순위로 수유실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임진택 기자(taek@heraldm.com)

[헤럴드 생생뉴스 2006-12-1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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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2-18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산을 장려한다며..ㅡ.ㅡ;;;

비로그인 2006-12-18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유수유는 정말 힘든 과정이에요.
중간에 그만둘까 싶은 생각이 2년동안 몇 번이나 들어요.
집에서 아이키우면서도 그런데 하물며 직장다니면서는 얼마나 힘들지 안 봐도 눈에 선해요.

마노아 2006-12-18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언니는 조카들이 아토피가 심해서 음식 조절하느라 무지 애먹었어요. 진짜 직장생활하는 여성들은 모유수유를 고집하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