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샘 성적표가 왔는데 알아? 미적분이 F야.
(I just saw that Sam got an F in calculus.)
부인: 알아요. 성적표 봤어요.
(I'm aware, Jack. I get a copy of his report card too.)
10월 4일 MBC에서 방영한 외화 <투모로우>에 나오는 대사다. 원어인 영어 대사를 보면 남편과 부인 사이에 존대나 하대가 없지만, 우리말로 더빙하는 과정에서 남편은 반말을 하고 부인은 존댓말을 하는 관계로 바뀌어버렸다.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의 모임인 ‘외화다시보기모임’에서 이처럼 TV외화에서 습관적으로 사용되는 언어 성차별을 모니터링 해 결과를 보고했다. 이 모임은 지난 9월 9일부터 10월 29일까지 약 2개월간 공중파 방송에서 방영된 영어권 외화 27편을 대상으로 원어와 더빙 대사를 비교했는데, 그 결과 상당 수가 성차별적 더빙을 하여 방송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가장 빈번한 예는 위의 사례처럼 남녀가 부부관계나 연인관계로 등장할 때, 남성이 반말을 하고 여성이 존댓말을 하는 경우다. 모니터링 대상 영화들 중 남녀가 연인 또는 부부로 등장하는 영화는 15편인데 그 중 80%에 해당하는 12편의 영화에서 이 같은 현상이 발견됐다.
남녀 커플이나 부부 사이에서만 아니라, ‘악당’과 여성들과의 관계에서도 여성들이 존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더빙을 한 사례들이 많았다고 지적됐다. ‘외화다시보기모임’은 특히, 영화 속 나쁜 캐릭터인 ‘악당’을 향해 주인공(남성)을 비롯한 모든 남성들이 반말을 하지만, 유일하게 여성들만 존댓말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회적 계급이 다른 경우에서조차, 성별에 따라 존대와 하대를 하는 등 성차별적인 더빙이 이루어졌는데, 그 사례로 영화 <파프롬 헤븐>에서 백인 집주인 여성은 흑인 정원사 남성이나 흑인 가정부 여성에게 존대를 하지만, 백인 집주인 남성은 정원사와 종업원을 비롯한 누구에게나 하대를 하는 것으로 더빙됐다.
‘외화다시보기모임’ 회원들은 이 같은 외화더빙 모니터링을 통해, “원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존대와 하대가 한국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차별적인지 알 수 있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또한 “성차별적 의식에 기반한 번역”이 성차별 의식을 더욱 확산시키고, 우리 사회에 차별적인 언어사용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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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윤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