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메가박스에서 아들 녀석과 둘이 선택한 영화.
어렸을 적 명작동화 CD에서 가장 좋아했던 이야기.
"라푼젤~라푼젤~네 머리를 내려다오"
이 대목에선 모든 하던 일을 멈추고 귀 기울여 들었었는데.
혹시 그때의 기억이 났던건지,
여자들 영화가 아니냐며 몇 마디 하더니 군소리 없이 봤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얼마전 열광하며 보았던 토이스토리보다 더 재미있었다.
아...아마도 3D로 관람을 했기에
더 재미있게 느껴졌을 수도 있긴 하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 보다가 중간에 울컥 했던 적은 처음.
유쾌하고 아름답고 재미있고, 눈도 귀도 즐거운 영화.

사실, 책 리뷰 쓰는 것보다 영화 리뷰 쓰는게 제일 부담스럽다.
별 생각없이 재미있다~고 쓰면, 혹 누군가에게 기대를 주게 되고,
모든 사람이 다 경험해서 알듯이, 모든 영화는 기대하지 않고 볼 때 가장 재미있는 법이니까.
그러니까, 누군가 이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말고 보라고 하고 싶다.
사실 원작도 너무 유명하고, 이야기 구조도 별반 다를 바가 없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플롯이라는게 새삼스럽지는 않으니까. (애쓴다..ㅋ)
그러니까, 큰 기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비가 비싸 가벼울 순 없겠지만) 보시라.
그래야,
반짝반짝 빛이 나며 아름답게 출렁이는 그녀의 머리카락과
내 눈 앞에 쏟아질 것 같은 등불 들의 장관이 눈에 들어올 테니 말이다.
간절히 원하는 것들을 가지기 위해 애쓰는 각각의 인물들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들이 부르는 때론 애절하고 때론 맑은 노래에 마음을 열 수 있을테니 말이다.
디즈니 50주년 기념 야심작이라더니
여러모로 공들인 흔적이 곳곳에 보이고, 완성도도 괜찮다.
캐릭터에 집중하느라 그림을 소홀히 했던 과거에 비하면
정말 많이 섬세해 졌고 세심하게 신경 쓴 화면들은 화려하고 예쁘다.
한 가지, 영화가 끝나고 계속 찜찜하게 마음에 남는 것은,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라푼젤을 납치하고 그녀를 성 안에 가두고 키우는 마녀 고델.
그녀는 분명한 악역이다.
어린 아기를 자신의 욕망을 위해 납치하고 가두고 이용했으니까.
근데 나는 왜 그녀에게 동정심이 생길까?
그녀를 '엄마'로 부르며 따르는 라푼젤의 눈에서 보였던 사랑의 마음은
혹은 고델 그녀가 라푼젤에게 '사랑한다'고 하며 보냈던 손짓들은
다 거짓뿐이었을까?
그녀의 생일선물로 줄 물감 원료를 구하기 위해 삼일씩이나 되는 여정을 마다않고
외출하고 싶어하는 라푼젤의 뜻을 꺽고 실망하게 만든 것이 마음에 남아
라푼젤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는 고델.
라푼젤이 결국 자신이 공주였었고 납치당했다는 기억을 되찾았을 때
한치의 갈등과 아쉬움과 고민없이
십수년을 '엄마'라고 불러온 고델을 대적하고 비난했을 때
조금 감정의 괴리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바로 현실 인식.
아..맞다. 이게 디즈니 애니메이션이었지.
악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악인이고
주인공은 과정의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악인을 심판하는 권리를 가지는...
여하튼, 난 라푼젤의 머리카락이 잘리는 그 순간
한 줌의 재가 되어 너무나 허망하게 사라진 고델, 그녀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
라푼젤이 성 밖의 세상을 간절히 꿈꾸었듯이
고델 그녀도 영원한 젊음을 꿈 꾼 것. 그것이 잘못이었다면 잘못.

좀 삼천포로 빠졌지만...
제일 아름다왔던 장면. 3D로 보는데 나를 위해 올려진 등불 같아 잠시 울컥했다 ㅋㅋㅋㅋ
결말이 너무 뻔하고 급하게 마무리 된 것 같은 아쉬움 하나 빼고는 전체적으로 강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