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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큰 라라 ㅣ 푸른숲 어린이 문학 17
댄디 데일리 맥콜 지음, 김경미 옮김, 정승희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표지에 꽉 찬 뚱뚱한 소녀의 놀란 얼굴과 그 밑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아이들의 모습만 봐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일지 금새 짐작이 갔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길지 않은 이 동화책의 내용이 훤히 보일만큼!
그래서 이 책으로 독서 수업을 해야 하는데 내심 걱정이 되었다.
<뚱뚱한 아이>, <왕따>, <어려움을 극복하고 서로 화해하는 친구들>...뭐 이런 흐름을 예상할 수 있기에 과연 아이들이 흥미로와할 것인가. 동화책은 교훈도 중요하지만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이미 우리 아이들에게 왕따 문제와 친구 간의 소외 문제는 여러 책들을 통해 ,학교에서의 교육을 통해 알 만큼 알고 있고, 느낄 만큼 느끼고 있고, 해결책과 행동 방향까지도 정답처럼 알고 있는터라...
사실 내용면에서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파리 초등학교 4학년에 새로 전학 오게 된 라라. 맞는 책걸상이 없을 정도로 몸집이 큰 아이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힘겨워 보이는 듯 느린 아이, 몸무게가 족히 150kg은 넘을 것 같은 거구의 소녀. 그녀의 출현은 반 아이들의 모든 이목을 집중시켰고, 심지어는 다른 학년, 다른 학교의 아이들에게까지 회자될 만큼 큰 이슈였다. 당연히 그런 이벤트를 놓칠리 없는, 어떤 동화책에나 등장하는 악동 같은 녀석들 몇 명이 라라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또, 예상대로 라라는 그녀석들의 장난과 폭언, 과한 놀림에도 전혀 굴함 없는 착한 아이이다.
(그런데 왜! 뚱뚱한 주인공들은 다들 착할까? 만약 정말 날씬하고 예쁜 주인공이 라라처럼 착하기까지 하다면 그건 ’백치미’가 되는걸까? 여하튼 ’착한 주인공’은 너무 맹목적이다.)
어쨌든, 악동 무리들의 방해공작과 온갖 장난에도 불구하고 라라는 그들 각자의 마음을 읽어주고, 그들의 장점을 격려해 주며 결국 떠나는 그 순간에 그들의 마음을 얻게 된다. 전학을 가게 되었기에 해피엔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들 각자의 마음의 벽을 허물고 소통하게 되었다는 면에서는 해피 엔딩이겠지.
이렇게 줄거리만 보면, 이 동화는 너무 구태의연하다.
하지만 이 구태의연함을 의외로 신선하게 바꾸는 장치가 있다. 또 한 명의 주인공.
라라의 이야기를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하며 글을 써 내려가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래니.
이 동화는 전지적 작가 시점이 아니라 이 래니의 시점으로, 일인칭 시점으로 -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 주변 인물의 시점으로- 써 내려간다. 그러니 구태의연한 줄거리라도 관점에 따라 읽는 재미가 생긴다.
게다가 래니는 스미스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글 쓰기 연습을 하는 과정으로 라라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는데, 이 구성은 아이들에게 글쓰기의 요소들을 가르쳐 주기에 적절하다. <등장인물> <발단> <각인> <악역> <배경> <대화> <대립> <주변인물> <갈등> <긴장> <위기> <반전> <세부내용> <전환> <상승> <절정> <초절정> <대단원> - 각 챕터의 제목 부터가 소설의 전개 요소들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기 때문에.
형식적인 신선함.
구태의연한 이야기를 형식적인 신선함으로 풀어냈고, 그 형식은 그저 꼬아대고 순간의 재미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글쓰기의 재미와 전개 방식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하는 효과까지도 줄 수 있는, 의도된 형식이다.
이야기의 전개와 줄거리 따라가며 읽기에 바빴던 아이들은, 극의 전개라는 것이, 이야기의 흐름이라는 것이 이런 구성과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 같다. 챕터 제목에 부여된 형식적 전개는 라라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각 사건들과 연관지어져서 자연스럽게 체득되어진다고 할까.
물론 독서수업을 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의 흐름과, 형식적인 흐름 두 가지를 아우르는 관점을 가지도록 요구하기엔 아직 좀 무리였다. 이야기의 내용과 사건의 전개를 정리하기에도 바빴던 우리 아이들. 하지만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는 래니처럼 평범한 생활 속 이야기를 나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