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큰 나무", 고규홍 글, 김성철 사진 중에서
해미읍성으로 들어서면 우선 동헌까지 들어가는 길 양쪽으로 탱자나무 울타리가 보인다. 그 한쪽에 조금은 그로테스크한 형상으로 우뚝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바로 해미읍성 호야나무(실제로는 회화나무를 그 지방에서는 이렇게 부른답니다. 제가 덧붙임)다....... 호야나무가 서 있는 뒤쪽으로 감옥이 있었다. 병인박해 때 그 감옥 안에 갇혀 있던 천주교인들은 아침저녁으로 호야나무 앞으로 끌려나와, 신앙을 버릴 것을 당요당하고 급기야는 나무에 목을 매달렸다. 호야나무의 표정이 어두운 까닭이다.
호야나무에서 옛 동헌 쪽으로 한 그루의 아담한 느티나무가 바라보인다. 시인 나희덕 님은 이 두 나무를 바라보며 <해미읍성에 가시거든>이라는 시를 썼다. 시는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 고요히 걸어 들어가 두 그루 나무를 찾아보실 일'이라고 시작된다.
해질 무렵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당신은 성문 밖에 말을 잠시 매어두고
고요히 걸어 들어가 두 그루 나무를 찾아보실 일입니다
가시 돋힌 탱자울타리를 따라가면
먼저 저녁 해를 받고 있는 회화나무가 보일 것입니다
아직 서 있으나 시커멓게 말라버린 그 나무에는
밧줄과 사슬의 흔적 깊이 남아 있고
수천의 비명이 크고 작은 옹이로 박혀 있을 것입니다
나무가 몸을 베푸는 방식이 많기도 하지만 하필
형틀의 운명을 타고난 그 회화나무,
어찌 그가 눈 멀고 귀 멀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의 손끝은 그 상처를 아프게 만질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더 걸어가 또다른 나무를 만나보실 일입니다
옛 동현 앞에 심어진 아름드리 느티나무,
그 드물게 넓고 서늘한 그늘 아래서 사람들은 회화나무를 잊은 듯 웃고 있을 것이고
당신은 말없이 앉아 나뭇잎만 헤아리다 일어서겠지요
허나 당신, 성문 밖으로 혼자 걸어나오며
단 한번만 회화나무 쪽을 천천히 바라보십시오
그 부러진 나뭇가지를 한번도 떠난 일 없는 어둠을요
그늘과 형틀이 이리도 멀고 가까운데
당신께 제가 드릴 것은 그 어둠뿐이라는 것을요
언젠가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사이를 걸어보실 일입니다.
----- 나희덕 <해미읍성에 가시거든>
삶과 죽음, 혹은 희망과 절망이라는 극단의 운명을 바라보며 긴 세월을 버텨온 두 그루의 나무가, 우리네 인생살이를 되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