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도 있다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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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다 미리는 한국에서도 유명하다고 알고 있다. 그녀의 작품을 직접 접하진 않았지만 (대충 스쳐 봤던 것 같다) 유명하다고 느낄 정도니까. 굿즈에 홀려 어쩌다 구매해 읽었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일러스트 작품도 그랬던 것 같다.
 우선 작가와 사는 국가가 다르면 사회문화적 감성 코드가 다른 게 꽤 크게 느껴진다. 서유럽쪽 작품이 많이 와닿지 않았을 때도 그랬지만, 비교적 가까운 나라인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 글 자체가 (신문에 연재했던 짧은 에세이라서 그런지) 너무 당연하면서도 허무하고 가벼운 일기나 중얼거림 같았다. 한국에서도 이 작가가 인기 있다면 왜 그런건지 궁금해진 순간이 많았달까.
 원래 제목은 '내일 일은 모릅니다'로 매일의 느낌, 깨달음을 간단하고 자유롭게 적은 작가 자신다운 글이라고 한다. 의도는 알겠지만, 내겐 너무 가볍고 공감이 안되서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나이에 맞게, 남자답게, 여자 주제에, 이 얼마나 답답한 말인가. 굳이 답답함 속에 자신을 밀어 넣고 살 필요가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런 말을 안 하면서 살고 싶다. 그러는 편이 즐겁게 살 수 있고 또 훨씬 멋있으니까.

느리더라도 자기 속도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묵묵히 갈 수 있다는 데 피트니스의 매력이 있다.
"어리석은 자가 그 어리석음을 고잡허더 보면 현명해진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처럼 말이다.

삶이 지루하다 해서 늘 익사이팅한 경험을 만들고 매일 여행을 떠날 순 없지 않은가. 살아가려면 늘 고만고만한 일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피트니스의 지루함은 삶의 그런 모습과 닮아 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다정하게 배려해주거나 부드럽게 맞장구를 쳐주면 마음이 모락모락 따스해진다. 밤에 집에 돌아와서도 문득 그때의 따스함이 떠올라서, 그 사람과 또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만 하다가 시간이 흐르는 것을 나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서른일곱 살은 아직 젊지, 이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 웃는 사람도 있지만, 서른일곱 살인 나 나름대로 늙어가는 불안이 있다.

쓸쓸함은 혼자서 어떻게든 해야지.

둘이 정한 것이 있다. 상대방이 해준 것에 반드시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다. "빨래해줘서 고마워", "쓰레기를 버려줘서 고마워", "차를 타줘서 고마워" 등등.
일부러 말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고맙다는 말을 듣고서 비로소 깨달았다.

그렇지만 내가 굳이 싫은 사람을 위해서 계속 상처받을 이유도 없다. 내게는 그런 강인함이 필요하다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웬만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 나를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 같은 건 어차피 안 돼요"라고 말하기 싫다. 그러면 내가 너무 불쌍하다. 굳이 작게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딱 적당한 정도가 좋은데~ 싶긴 하지만 그게 참 어렵습니다.

사람은 상처를 주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런 하루하루를 힘차게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가끔은 ‘수고가 많아‘라고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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