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초의 시종님에 대해서는 첫만남부터 어떤 이상한 착각을 가지고 시작되었더랬습니다.

첫번째는,
"도대체 로렌초가 누구야?"
라는 얼토당토 않은 궁금증부터 였죠;;

도대체 로렌초란 사람이 얼마나 잘났기에 이렇게 박학다식한 분이 그 시종을 자처하실까 싶었어요.
거기다 님의 이미지는 그동안 제가 접해보지 못한 어떤 고상한 세계만의 아름다움이 있어서 아아, 과연 나의 무식이 이 분과 부딪혔을 때 도대체 어떤 스파크가 일어날까 하는 호기심과 더불어 아, 이 무지렁이가 어찌 이 분과 친해질 수 있을까? 라는 걱정도 좀 있었습니다. 물론, 그 걱정은 98% 노파심일 뿐이라서 지금 제 기억에는 도대체 이 사람과 어떻게 말을 텄었나 하는 구체적인 일조차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아주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가 있었지요.

아, 또 삼천포로 나갔는데...아무튼 첫번째 궁금증은 로렌초님도 좋아하시는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책을 읽고 조금 풀렸더랬지요. 서재 생활 초기에 우연히 읽은 책이었는데, 그 책으로 인해 님과의 인연도 틀 수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 책을 리뷰함으로 저는 로렌초님이(아마도 저는 처음부터 님의 풀네임을 한 번도 불렀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흐흐) 이탈리아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고;; 그 여파로 저 역시도 한동안 도서관 서가에서 이탈리아사 근처를 서성거리기도 했었답니다. 하지만 아직은 배울 게 참 많지요.

두번째 착각은,
분명히 이 사람은 오빠나 언니일 거야. 하지만 언니일 가능성이 더 많아.
였어요.

처음에 저는 님의 현란하고 수준 높은 리뷰가 눈이 부셔서 두 눈을 뜨고 마주대할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도대체 알라딘 마을은 어떤 곳인거야?!라는 당혹스러움부터 해서, 이곳저곳 소설부터 시작해 각종 역사 사회분야까지 발을 넓힌 님의 리뷰, 글은 저를 매우 놀랍게 만들었습니다. 이 착각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어요.
꽃이 있는 곳에 향기가 나고 음식이 있는 곳에 냄새가 난다고,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를 보게 되면 으레 '내공 닦느라 저 사람 나이가 좀 있을거야'라고 생각하게 되어버리잖아요?

어느 날 님이 남자라는 충격적이고도 몹시 반가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님이 84년생이라는 것을 밝히셨을 때 저의 놀라움은...우어..마치 끓어오르는 라면물과도 같았답니다.
이 사람이 동생이라니, 나보다 어리다니, 아아 헛살았구나...하는 심정, 이해하실라나요 흙!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듯 저도 님의 박학다식함 때문에 님을 오해했던 것, 용서를 바라지는 않을래요 (웬 오버?) 그건 님의 책임이라구요 ㅜ_ㅜ

세번째는 착각이 아니라 생각이었는데,
글에서 느껴진 어떤 단단함과는 달리 로렌초님은 여린 사람이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님과 친해지기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은 가을에 어느 날 갑자기 님이 사라져버린 일은 서재 생활 초기에 접어들었던 저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전 님이 무슨 일로 왜 사라지셨는지를 알지 못했었거든요.

사람에게는 스스로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성격이 내재하고 있고, 또한 그 성격들은 만나는 사람에 따라 다른 면모를 보여주게 되는 것인데 제가 그때까지 알고 있던 님은 상당히 똑똑하고 예의바르며 거기다 살짝살짝 치고 받는 재치가 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참 단단한 사람이었지요.
조금 넘치지 않나 싶은 농담을 던져도 님은 서글서글 웃으며 잘 받아주신데다가
글에서 보이는 분명한 생각과
수준 높은 단어선택은 저로 하여금 아, 로렌초님은 이런 사람일 거야..하는 막연한 그림을 그리게 했었는데 그 사건으로 인해 제 마음 속에는 '아, 이 사람에게도 블랙홀처럼 어쩔 수가 없는 아주 여린 구멍이 있는 것이었어..'라는 생각이 덧칠되어 그 전까지의 그림은 새롭게 변신하게 된 것이었어요.
갑작스런 님의 부재로 제 즐겨찾기 브리핑은 상당한 가뭄에 시달렸고 그렇게 가끔가끔 님의 서재를 찾아가며 방명록에 글을 남기면서 오히려 우리 사이의 우정은 더 돈독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100일만에 님은 돌아오셨지요. :)

네번째 생각은 님이 돌아오신 후에 떠오른 겁니다.

제 생각일 뿐이지만 님은 돌아오신 후에 그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솔직해지신 것 같아요.
그 전까지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카페트 속에 깔려있었다면 요즈음 공과 사의 경계의 이야기 폴더 속의 이야기들에서는 청년, 소년, 그리고 사람 냄새가 폴폴 풍긴답니다. 상처받았던 일을 담담하게 기술하거나 가끔은 기분 나쁜 일을 토로하기도 하시는 모습은 리뷰에서 느껴지는 단단함과는 또 다른 매력이지요.
그리하여 아주 가끔은 제가 누나처럼 다가가 님께 이런 저런 아는 척을 하며 괜히 인생이 어떻고 저떻고 개똥철학을 늘어놓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겁니다 흐흐. 이건 아마도 님의 생활에 서재가 더더욱 소중한 공간이 된 건 아닌가, 조심스런 추측의 결정적인 근거가 되어주었습니다.

다섯 번째 생각은 첫번째 이벤트 마당과 관련이 많아요.
님의 전공을 물으셨었지요? 흐흐, 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답니다.
이탈리아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것도 그랬지만 대개 사학과 분들이 서로 다른 성격의 글들에 대해서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폭넓게 독서를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님의 서재를 보면 그런 다양한 관심의 표현이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요즘 제게 세상 소식을 알려주는 신문 스크랩의 영역도 님이 좋아하시는 공연예술문화에 국한되어있지만은 않지요. 거기다 님의 독서 역시 한 분야에 머물지 않고 문학 역사 사회학을 두루두루 섭렵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문학만 편식하는 저를 가끔 부끄럽게 만든답니다;;
오늘은 민음사 수상후보작들을 올리셨던데 제 생각일 뿐이지만 님이라면 충분히 몇 년후에 저 수상후보작에서 뵐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내공면에서도 그렇고, 그동안의 이야기만 해도 충분하지만 님은 미래가 더욱 창창한 분이잖아요.
세상 살다보면 전혀 의도한 적도 없는 상상초월의 풍파를 만나게 되기도 하고 때로 어떤 한 시기는 너무나 심심해서 견딜 수 없기도 한데 님이라면 그 풍파를 만나더라도 결국엔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그 풍파 자체를 소화시켜버릴 수 있는 분이라고 믿어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지는 모르지만 글을 쓰신다면 더더욱 님께나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나 큰 보탬이 되지 않을까...생각하고 있습니다 :]

여섯 번째는...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이제 더 만들어가고 싶네요.
온라인상의 관계라는 게 오프라인보다 더 열린 면이 있기도 하고, 실은 닫힌 면이 더 많기도 하지요. 그런 만큼 제가 말할 수 있는 것도 어느 정도의 한계와 검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프라인이라면 누나인 척하면서(저 후배들한테 나이많은 척하는 거 엄청 좋아했거든요 흐흐) 별별 간섭다하고 괴롭히며 희열을 느끼겠지만 또 온라인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님이 좋아하시는 공연의 후기를 곁눈질하며, 영화감상을 읽고 드문드문 의견을 나누기도 하며, 아픈 일에는 괜스레 나서서 욕도 같이 하면서..그렇게 제가 온라인상에서 디딜 수 있는 만큼의 역할을 다지고, 또 만들어가고 싶네요.

간간히 보이는 님의 리플에 관한 투정이나 즐찾 이야기를 읽고 나면 전 너무 즐겁답니다. 가끔 느껴지는 님의 소년같은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요 흐흐. 그러니 앞으로도 서재 안에서 말하고 싶은 만큼, 보이고 싶은 만큼의 자유를 만끽하며 우리 오래도록 만나자고요.

너무 길어 지루하지는 않으셨는지 모르겠어요.
로렌초님, 이벤트와 함께 장학금 받으신 거 다시 한 번 축하해요 :) 다음 학기에도 부탁해요~ 흐흐. 아, 다음 기숙사에 뽑힌 것도요. 올해는 술도 많이 드시고, 실수도 많이 해보시고, 스펙타클한 한해 보내시길 바랄께요. 앗, 이럼 안되는 건가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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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2005-02-14 20:40   좋아요 0 | URL
우잉? 웬 추천 2랍니까 허허;;;;;;;;
바로 이런 소리소문없는 추천을 두고 닌자같다고 해야하는 건가;;;;
히히, 아무튼 고맙습니다 :]

마늘빵 2005-02-14 21:15   좋아요 0 | URL
헉... 84년생이셨나요? 그럼 나도 헛살았네. ㅠ_ㅠ

날개 2005-02-14 21:23   좋아요 0 | URL
닌자 1번 저입니다..^^* 사과님 글에 감동먹어버려서..ㅎㅎ

미완성 2005-02-14 21:43   좋아요 0 | URL
아프락사스님..저도 회한의 눈물을..엉엉엉 ㅜ_ㅜ

날개님..앗, 날개님 역시 날렵한 님께서 닌자 1번을 해주셨었군요 키득키득. 아니 감동이라면 두 개의 마당에다 글을 올리신 님께 제가 받아야할 것이건만...>.<

가을산 2005-02-15 09:33   좋아요 0 | URL
크크크..... "끓어오르는 라면물"이라니! ^^
정말 멋진 리뷰였습니다. 공감합니다.

부리 2005-02-15 13:08   좋아요 0 | URL
닌자 3은 저예요 사과님, 멋진 글이옵니다. 오후 8시에 꼭 확인하세요.

미완성 2005-02-15 18:34   좋아요 0 | URL
가을산님..가을산님의 코멘트를 보니 점심때 라면을 먹었었는데 또 먹고 싶어져요;;
헤헤, 님도 공감하시는군요. 로렌초님 참 매력있는 청년이지요?

부리님..에이~ 이렇게 밝혀버리시면 닌자가 아니잖아요오~ 오늘따라 부리님의 댄스는 제 주위의 스산한 공기를 따뜻하게 변하게 하는 힘이 있구만요. 추천 고마워요 부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