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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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가 쓴 책 한권으로 살짝 엿본 글쓴이 김영갑은 참으로 특이한 사람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제주도에 1980년대 초반 홀로 건너가 특별한 생계수단도 없이 20여년을 사진만 찍으면서 산다.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고 홀로 자연과 벗삼아 지내는 것을 좋아한다. 가까운 지인은 물론 형제들과도 연락을 거의 끊고 지낼 정도로 철저하게 고독한 삶을 고집하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운 노인들과 섬마을 아이들과는 곧잘 친구가 된다. 제주도의 자연 속에서 새소리, 꽃한송이, 풀한포기, 바람 한줄기를 섬세하게 느끼면서 대자연 속에서 사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그런 희열을 사진으로 남기고자 미친듯이 사진찍는 일에 몰입을 한다. 밥을 굶는 것은 아무렇지 않아도 필름이 없어 사진을 못 찍게 되면 미칠듯이 괴로워한다. 루게릭병에 걸려 카메라 셔터조차 누를 힘이 없는 상태에서도 폐교를 임대하여 제주도에 두모악이라는 사진 갤러리를 완성한다...


이 책은 이러한 기인 김영갑의 제주도에서의 삶, 사진가로서의 열정, 루게릭병과의 투병기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그가 찍은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찍은 사진들도 많이 들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글쓴이는 종교의 색채가 없는 사진가의 모습을 한 수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속적 가치에 대한 초연함, 자연과의 일체성, 끊임없는 고독의 추구, 그리고 병마로 모든 것을 잃으면서도 결코 병마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는 모습이 수도자와 너무나 유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짧은 글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글쓴이의 삶과 사진들을 통해서 잊고 지내왔던 대자연의 포근함, 우리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들, 그리고 인간의 불굴의 의지를 느끼고 내 자신을 잠시나마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각박한 도시에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는 나에게 잠시나마 이처럼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배꽃님께 감사드린다.


이십여 년 동안 사진에만 몰입하며 내가 발견한 것은 ‘이어도’다. 제주 사람들의 의식 저편에 존재하는 이어도를 나는 보았다. 제주 사람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를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호흡 곤란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을 때 나는 이어도를 만나곤 한다.....이젠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다. 필름값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형편이 좋아졌다. 그런데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없다. 병이 깊어지면서 삼 년째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다. 끼니 걱정 필름 걱정에 우울해하던 그때를, 지금은 다만 그리워할 뿐이다. 온종일 들녘을 헤매 다니고, 새벽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던 춥고 배고팠던 그때가 간절히 그립다. 그때는 몰랐었다. 파랑새를 품안에 끌어안고도 나는 파랑새를 찾아 세상을 떠돌았다. 등에 업은 아기를 삼 년이나 찾아다녔다는 노파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낙원이요, 내가 숨쉬고 있는 현재가 이어도이다. 아직은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도 날숨과 들숨이 자유로운 지금이 행복이다. 이제 난 카메라 메고 들녘으로 바다로 떠돌기를 더는 꿈꾸지 않는다. 아직도 두 다리로 걸으며 숨을 쉴 수 있는 행복에 감사한다. 풍선 불기를 연습하지 않아도 호흡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p2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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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7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 2007-01-1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 이렇게 스스로 숨쉴수 있다는게 행복이며 자유라는 것 조차도 잊고 살때가 너무 많았어요..알라딘이 아주 어수선 했었네요..행복한 발바닥님은 잘 지내시지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19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배꽃님께 정말 감사했답니다. 집사람 심부름(?)으로 음식점에 음식 테이크아웃 하러 갔다가 음식 나올때까지 이 책을 읽었는데 음식 가지고 나오면서 강남역에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보고 순간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답니다. 저도 배꽃님처럼 조금이라도 자신을 더 자주 돌아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
권형진, 이종훈 엮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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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위인전을 읽는 것이 무척 장려됐었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어린이들이 이순신 장군이나 그 밖의 많은 위인들의 전기를 읽으며 나도 그분들처럼 국가와 민족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했을 것이다. 어린이가 훌륭한 사람들의 삶을 읽으며 이를 모범으로 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읽는 위인전, 또는 우리 생활이나 역사 속에서의 위인이나 영웅이 우리에게 보여지는 모습 그대로의 인물이었냐 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 인물을 어느 누군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각색하여 우리에게 제시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을 화두로 쓰여졌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서는 대중 민주주의가 발달한다. 대중의 지지가 정치권력 획득의 기반이 됨에 따라 정치권력은 대중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획득하고 나아가 권력을 획득한 이후에는 대중을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영웅’을 만들어낸다. 영웅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회에서의 영웅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등장한 시대나 장소는 모두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체주의적인 독재사회에서 정치권력이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영웅의 탄생과 관련된 사실관계가 전부 조작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영웅들 중에는 실제로 탁월한 도덕성이나 성실성을 바탕으로 범인과 구별되는 ‘영웅성’을 가진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부인할 수 없는 점은 어떤 영웅도 정치권력의 의도적 편집과 각색이 없었다면 대중들의 삶의 일부가 될 정도의 영웅의 위치에는 오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을 엮은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고증이 주 내용을 차지한다. 그래서 특히 익숙하지 않은 독일 나치시대, 소련․중국․북한(우리가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놀랄 정도로 북한의 무지에 익숙해져버린 것 같다)등 공산주의사회, 프랑스의 비시정권, 스페인의 프랑코 체제 - 사실 익숙했던 것은 우리나라의 영웅, 이승복과 이순신 장군 밖에는 없었다. ;; - 에서의 영웅 이야기는  역사적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인하여 이해와 흥미가 좀 떨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프랑스 비시정권이 괴뢰정권이었다는 단순한 통념과 달리 초기에는 프랑스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었다는 점이나 현대에도 정치적 권력과 종교가 ‘영웅’이라는 매개체로 융합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신화화되고 바이마르 시대를 거쳐 히틀러의 나치정권이 집권할 때까지 대중독재의 영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반작용으로 영웅이 대중들의 삶을 어떻게 규율했는지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엮은이의 말에 이런 말이 나온다. ‘오늘날 대중의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은 타의적이고 동시에 자의적인 의지들에 의해 혼합되고 있다.’ 이 책에 나온 대중독재의 영웅들은 그런 면에서 정치권력의 의지에 의하여 대중이 소비하도록 만들어졌고, 대중이 그러한 영웅들을 소비하면서 대중의 자의적인 의지가 가미되어 대중의 사적공간을 지배하는 경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대중은 언제나 영웅을 원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영웅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났고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많은 영웅들이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매스미디어 시대인 요즈음 어찌 보면 어느 때보다도 많은 영웅들- 연예인들이나 스포츠 스타들, 정치적 지도자들, 스타 과학자(-0-;;), 그리고 수많은 시민 영웅들 -이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명멸을 거듭하고 있고 그들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 크다고 할 수 있다.

  

반드시 모든 영웅들을 비뚤어진 시각으로 볼 것까지는 없다. 하지만, 때로는 불순한 목적을 가진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영웅을 만들어 내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웅이 우리의 삶을 일정부분 규율할 수 있음은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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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04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대 속에서 만들어진 영웅들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06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웅 모두가 만들어졌다고는 볼 수 없겠죠. 그리고 영웅을 바라보는 모든 시선을 부정적인 것으로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만들어진 영웅에 대한 문제의식만 갖고 있으면 되겠죠. 최근 황박사 사건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신용불량국가 - 국제금융기구와 외채에 관한 진실, 세계 밖의 세계
다미앵 미예.에릭 뚜생 지음, 조홍식 옮김 / 창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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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외채라고 하면 부유한 국가가 개발도상국의 필요와 요청에 따라 빌려준 자금을 개발도상국이 경제성장 실패로 인하여 갚지 못하고 있는 채무하고 생각할 것이다. 돈이 없는 국가는 돈을 빌려야 하고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 갚지 못한 것은 빌려간 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채무자 책임이 아닌가? 하지만 외채 문제는 그와 같이 단순한 논리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구조적이고 복잡하며 악랄하다.


외채문제의 발생원인

제2차세계대전 이후 제3세계의 발전가능성이 국제금융질서에 완전히 종속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불평등한 교역조건과 교역조건의 악화로 예속의 굴레가 형성되었다. 즉, ①달러가치의 폭락과 유가의 폭등으로 인해 서방의 대규모 은행들은 갑자기 늘어난 달러를 잔뜩 보유하게 되었고, 선진산업국들은 넘쳐나는 달러를 제3세계국가들에 경쟁적으로 낮은 이자율로 차관을 제공했다. ②한편 미국은 경제위기를 탈출하기 위하여 이자율을 대폭 높이고 그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이자율이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그 결과 변동이자율이 적용되었던 차관은 이자율의 상승과 높은 위험부담의 영향으로 하루아침에 돈을 3배나 더 갚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③남부 국가들은 자금을 상환하기 위하여 원자재 수출을 통하여 달러와 같은 경화를 벌어야 했는데, 남부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원자재 수출에 나서면서 원자재 가격은 1980년대 이래 폭락하였다. 소득은 줄어드는데 더 많은 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여 남부국가들은 외채 상환을 위하여 다시 외채를 더욱 비싸게 얻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p62-65)


차관의 쓰인 곳

그렇다면 남부국가들에 차관으로 제공된 자금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제공된 차관이 남부국가 주민들을 위하여 제대로 사용되었다면 차관도입의 명분이나마 세울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차관은 북부 강대국들의 전략적 동맹국의 독재정권에 의해 도입되었고, 부패한 정권은 차관액의 상당 부분을 횡령했다.(자이레를 30년 동안 지배한 모부투 세세 세코의 사망당시 재산은 80억 달러였고 이는 자이레 외채의 2/3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일가의 재산은 400억 달러로 추산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횡령된 자금은 북부국가의 은행에 다시 예치되었다. 그나마 채무국에 도착한 자금은 현지주민의 일상적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남부의 천연자원을 수탈하여 세계시장에 좀 더 쉽게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p53-57)


악순환의 고리 -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위와 같이 생성된 외채의 굴레를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이다. 채권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을 통하여 채무국들에게 엄격한 재정적 규율을 강요하는데 이는 개발도상국의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것이기보다는 이들을 세계시장에 통합시키고 개발도상국의 재정적 균형의 회복을 위해 더 많은 수출과 더 적은 지출을 그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계획들의 지속적인 추진으로 지난 20여 년간 고통 받은 것은 남부의 주민들이다. 지난 20여 년간 개발도상국들 사이에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빈곤이 확산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러한 정책적 실패는 운이 없다거나 이해의 부족에 따른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을 의도적으로 적용한 데 따른 것이다.(p94-95)


부의 이전

일반적으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차관을 제공하므로 자금은 북부에서 남부로 이동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발도상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가 북부로 흘러들고 있다. 1998년 이후 동남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위기 이후 4,400억 달러가 남부에서 북부로 이전되었다. 공공외채에 관하여 본다면 남부국가들이나 국가가 부채를 보장하는 기관들이 북부로 이전시킨 금액은 1995년부터 2001년까지 2,480억 달러에 이른다. 이런 수치에는 남부 지배층의 자본도피, 다국적 기업의 이윤회수, 민영화 과정에서 저렴하게 팔린 남부 기업들이 북부 지배층 소유로 넘어간 것, 남부 국민들이 생산한 원자재 가격의 하락, 브레인의 탈출, 유전적 자원의 파괴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 결과 개도국들은 100의 돈을 빌려 이미 750을 상환하고도 현재 450의 빚을 지고 있는 상태에 처해 있다. (p132-135)


상식의 전환

외채의 악순환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상황이 떠올랐다.

한 가정에 망나니 가장이 있었다. 매일 술을 마시며 가족들을 폭행하고 가족들이 일해서 모아온 돈을 노름으로 날리고 큰 빚을 지고 잠적해 버렸다. 가족들은 돈을 만져보지도 못한 채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그러자 채권자들은 수시로 집에 찾아와서 사사건건 가정 일에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학업을 당장 그만두고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으면서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한다. 그러면서 채권자들은 선심 쓰는 척 돈을 갚을 수 있도록 자기가 돈을 꾸어준다. 자기의 지시에 잘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그리하여 가족들은 죽어라 일을 하면서도 항상 굶주리며 빚은 계속해서 늘어만 갔다...


돈을 빌렸으면 이자까지 쳐서 갚아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며 자본주의의 원칙이다. 이를 원칙으로 여기는 것은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면 채무자들은 돈을 갚지 않을 것이고 채권자들은 돈을 빌려주지 않아 자금의 흐름이 끊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개도국들은 어떻게든 외채를 상환하는 것이 원칙에 맞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독재자가 빌려 횡령한 돈을 국민 전체가 부담하는 것이 상식에 맞는가? 독재자의 부채 상환을 위하여 수많은 국민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도 그 국가의 독재자가 빌렸으니 해당국가 국민들이 무조건 갚아야 한다는 것이 상식에 맞는가? 게다가 남부는 이미 원금의 7.5배를 갚지 않았는가.


우리는 1997년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어찌보면 외채 문제를 몸소 체험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는 단기간에 외채의 굴레를 벗어난 극히 예외적인 예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우리 경제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IMF가 강요한 조치들로 인하여 양극화 심화, 기업들의 헐값 매각, 빈곤층의 증대 등 수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다수 개도국의 예를 보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그들의 정책은 총체적 실패를 가져왔다! 그들의 주장이 허구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해당 국가가 그들의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국민들의 노력이 부족해서 원래 의도된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말만으로 책임을 전가한다.


20여 년간 시행한 정책이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정책을 시행한 대상에게 전가하는 것이 비상식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영양분도 섭취하지 못하여 굶어죽고 있는 나라에서 외채의 상환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과도한 영양섭취에 따른 비만으로 각종질병에 걸리는 나라로 자금을 이전시키는 것이 비상식이다. 독재자를 비호하며 차관을 제공하고 독재자가 횡령한 자금을 예치하는 금고를 제공한 자들이 독재의 피해자인 국민들에게 독재자에 대한 차관의 상환을 요구하는 것이 비상식이다. 그러한 부채가 개도국들의 외채라면, 그것은 전액 탕감하는 것이 상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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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02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위 정치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과 비상식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정말 궁금하네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0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무엇이 상식이고 무엇이 비상식인지 헷갈리곤 합니다.
 
침묵과 열광 -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
한재각.강양구.김병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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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의 전염

희대의 황우석 사태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지도 벌써 1년이 되어온다. 당시 전 국민이 감동과 환희, 그리고 실망과 환멸을 순차적으로 느꼈으리라 본다. 당시 나도 배아 복제나 그 밖의 과학적 배경지식에는 완전한 문외한이었지만 황우석 교수가 ‘세계최초’로 배아복제 줄기세포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과학자이신 아버지께서는 황우석 교수 신드롬에 대하여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셨고 나는 아버지께 오히려 다른 한국 과학자가 잘 되면 아버지도 한국 과학자로서 기뻐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따져 물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적으로 황우석 교수에 대한 한마디의 비판조차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퍼져있던 황우석 교수에 대한 ‘열광’이 우리 집 안에까지 퍼져 있지 않았나 싶다.


의혹과 좌절...모두 기억 속으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성일 원장과 황우석 교수의 치고받기식 기자회견과 Science지에 게재된 논문이 조작된 것일 수도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마치 청룡열차를 타고 제일 높은 곳까지 갔다가 한번에 추락한 느낌이랄까...그런데 더욱 놀라웠던 것은 Science지에 실린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황우석 교수가 인정하고 난 이후에 황우석 교수가 했던 기자회견의 내용과 조작사실이 밝혀지고 난 이후 상당수의 사람들이 황우석 교수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식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었다. 당시 나는 도저히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러한 현상에 대하여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었다.


학자로서의 자격조차 인정받을 수 없을 정도로 근본적인 잘못을 저지르고도 일말의 반성 없이 전국민을 상대로 능숙한 언론플레이를 하는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 모습을 보면서 인간 황우석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황우석 사태가 우리 사회의 어떤 한 단면의 병폐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 사태로부터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배워서 한 단계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1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사실 황우석 사태는 내 기억에서 빠르게 잊혀져 갔다. 예전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동이 있었지 라는 정도의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황우석 사태에 관한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추적, 분석한 이 책을 읽고 정말 잊을 수 없는 그 사건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에 관하여 다시 깨닫게 되었다.


황우석 사태의 구조적 원인 - 박정희 패러다임과 과학기술동맹..

이 책은 1999년부터 황우석 교수의 행적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비주류 학자에서 우리 사회의 힘있는 주류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맺으며 과학기술계의 거대권력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상세하게 추적한다. 저자들이 ‘과학기술동맹’이라고 일컫는, 황우석 사태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정치, 사회, 의학, 언론, 과학 등 각 분야의 주류 실세들이 황우석 교수와 어떤 것을 매개로(give and take의 대상...ex: 논문에서의 공동저자, 국민적 영웅 과학자와의 친분과시 등) 인적 관계를 맺고, 그 대가로 황우석 교수가 자신의 연구관련 분야에서 특권적 권력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이 저자들의 치열한 노력으로 상세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그 과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왜 이런 초유의 사태가 있었으며 이것을 통해서 우리 사회는 어떤 것을 배울 것인가라는 의문에도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우리 모두가 황우석 교수가 중심이 된 사기극에 그토록 ‘열광’했던 원인 중 주요한 것으로 저자들은 결과주의, 애국주의, 민족주의 등으로 이루어진 박정희 패러다임을 들고 있다.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세계최초’라는 수식어 앞에 황우석 교수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용납될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난자매매 사실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난자를 제공한 여성 중 연구실내 여성연구원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뒤에도 그에 대한 비판은 금기시되었다. 솔직히 그 당시 나도 무언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워낙 큰 국가적 이익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는 소위 ‘대승적 차원’에서 넘어가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건대 그러한 나의 심리를 형성한 데에는 저자들이 지적한 소위 박정희 패러다임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비록 ‘과학기술동맹’에 의하여 황우석 사건이 전국민을 상대로 한 사건으로까지 확대되고 ‘열광’의 강도가 광신의 수준까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황우석 사태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고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집단적 의식구조의 투영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학기술동맹’이 상징적으로 나타내듯이 법과 절차가 아닌 인맥에 의한 밀실야합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사를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후진성이 결정적 기여를 했음 또한 당연하다.

 

‘열광’에서 ‘침묵’으로...

황우석 교수의 사기극이 밝혀진 지금 이를 ‘열광’으로 만든 힘있는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침묵하고 있는 이들의 과거 낯뜨거운 ‘삽질’이 낱낱이 까발려져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적나라한 삽질은 씁쓸한 구경거리가 된다. 한번의 행동으로 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황우석 교수 사건 전체와 관련하여 한 발언이나 행동을 통해 사회적 공인을 판단할 수 있는 부분적인 자료는 얻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과학기술시대의 각성한 시민들이 많아지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황우석 교수의 가장 큰 공헌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한 것처럼 황우석 교수 사건이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끝으로 ‘열광’에 휩쓸리지 않고 7년간이나 치열하게 이 사건을 추적, 분석하여 ‘침묵’하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린 저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p.s.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며칠전 과학기술동맹의 주요 일원이었던 이병천 교수가 스너피의 여자친구격인 암캐 세 마리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황우석 교수 또한 조용히(?) 연구를 재개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걱정스러운 것은 그런 언론 보도가 황우석 사태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는 아직도 진행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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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9 0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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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콘서트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1
팀 하포드 지음, 김명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별다른 생각없이 선택을 하고 결정을 내리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미시적인 것부터 거시적인 것까지 다양한 경제학적 원리가 알게 모르게 작용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굳이 경제학적 관점에서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합리적인 개인들은 매순간순간 선택을 할 때마다 각자 기준에 따라 경제학적인 판단을 거쳐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몇 가지 있었다.

먼저 스타벅스의 커피값이 비싼 이유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이 있었는데 결론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기꺼이 스타벅스의 커피를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마시려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를 리카도의 차액지대론을 이용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스타벅스의 수입의 상당부분은 건물 임대료로 들어가고 건물 임대료가 높게 형성되는 까닭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에 위치한 건물이 희소하고(커피전문점은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에 얼마나 가깝게 위치하느냐에 따라 판매량이 급격히 변하기 때문에 커피전문점 입장에서는 목이 좋은 점포를 구하기 위한 높은 경쟁이 존재한다.) 사람들이 높은 가격을 주고서라도 커피를 마시려고 하기 때문(임대토지에서 생산되는 생산물의 가격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높은 커피가격에 분개하는 사람 중의 하나지만, 결국 사람들이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줄지 않기에 높은 가격이 유지되는 것 아닐까. 스타벅스는 된장녀 논란까지 불러왔지만 일반적으로 같은 가격 물건이라도 가격을 높이 붙여야 더 잘 팔린다는 우리나라에서의 기현상은 경제학적으로 어떻게 설명될 지 궁금하다. 


저자는 그와 함께 그린벨트나 의사나 법조인 등 전문직의 자격증제도가 진입장벽으로서 재화의 공급을 제한하여 독점적 지위를 가능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제도가 공익적 측면을 고려한 것이기는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는 대로의 경제학적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오염, 교통체증(외부불경제)이나 자기 집 앞 길거리 청소(외부경제)를 통틀어 외부효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 책에는 세금을 통하여 외부효과를 조절하는 예가 나온다. 일전에 조세법 교과서를 읽으면서 세금의 힘과 중요성에 대해 절감했는데 세금과 경제의 상관관계를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요즘 부동산 광풍을 세금으로 잡으려한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실패했다는 지적이 우세한데 이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도 흥미로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인상깊었던 것은 나이키 공장에서 노동착취를 통하여 신발을 생산해내는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다국적 기업들이 개발도상국에서 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싼값에 제품을 생산하고 이를 비싼 값에 팔아 높은 수익을 올려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다국적기업이 개도국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는 비판도 예전부터 있어 왔고, 특히 아동 노동이나 노동조건이 열악한 시설의 기업에 대하여는 불매운동이나 이를 원천적으로 수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도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저자는 노동착취나 열악한 노동조건의 근본원인은 다국적기업이 제공한 것이 아니고 다국적기업의 공장에서라도 취업하여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일할 곳 없이 거리를 떠도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하면서 최빈국에서 기술 선도국가(!)가 된 한국을 예로 든다. 저자의 이런 지적은 사실 많은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저자의 논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열악한 근로조건의 다국적기업 공장을 폐쇄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질 것이 없다는 지적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나 수입금지법안보다는 다국적기업과 개도국 노동자간에 진행되고 있는 극심한 양극화의 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다국적기업 및 금융자본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개도국 주민들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처럼 어쨌든 경제적 발전을 이루어 물질적으로 훨씬 더 풍족해진 우리나라의 예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은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기는 힘들 것 같다. 적어도 당분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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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6-12-13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바닥님, 이 책 읽으셨군요. 저도 올해 6월에 읽은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경제학적 사고를 많이 키운 계기가 되었답니다. 오늘 님의 리뷰에 또 한번 읽고 생각을 던져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웃음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외로운 발바닥 2006-12-1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짧은 이야기거리가 너무 많아서 좀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기자기한 삽화와 함께 경제학적 사고를 할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는 책 같아요.

Meme 2008-01-14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타벅스 커피가격의 기현상은 초반에는 우리나라에 외국브랜드라는 프리미엄(?) 아닌 프리미엄의 이미지와 불완전한 정보였던 것 같구요.. 현재는 우후 죽순 생기는 커X빈, 파스X찌, 할리X스 +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질좋은 국내 일반커피집 때문에, 경제적 지대는 줄어드는 추세인것 같긴 하네요..
하지만 여전히 외국커피브랜드 매장이 우리나라 커피시장에서 큰 수익을 올리는 원인은 1. 역시 좋은 입지를 차지하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이것은 다국적기업 및 거대자본의 독점화 경향) 2. 기꺼이 이정도 가격은 지불하겠다는 한국인 집단이 아직도 많아서 그런것 같습니다 + 브랜드를 먹고 사는것도..(즉 알수없는 사치성 추가)... 3. 또한 이런 비싼 커피집은 일반적으로 자주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것 같군요..(책에는 가격민감도로 설명) 쓰고보니 제 말이 왤케 복잡한지...ㅡ.ㅡ;
암튼 경제학이 이런 복잡한 현상을 단순화 시켜 기본적으로 일반적인 시장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모형, 경제이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점은 보완해 나가야겠지요.. 말이 너무 길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