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스캔들 창비청소년문학 1
이현 지음 / 창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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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생인 보라... 튀지도, 밟히지도 않는 평범한 학생이다. 그러나 비혼모인 이모가 교생으로 오면서 보라의 평범한 일상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학급 아이들끼리 만든 비밀 카페에 이모의 사생활이 담긴 사진이 오르면서부터이다.

이야기 자체는 참으로 쉽게 술술 읽힌다. 그러나 읽으면서 잘 쓰여진 청소년 소설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모의 사진을 올린 L이라는 아이를 찾는 과정과, 담임인 럭셔리 장의 폭력, 학교내 불량 서클인 스톰과 연관된 은하의 가출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겉돌기만 한다. 아이들은 중심을 못 잡고 이리저리 우왕좌왕하기만 하고, 문제에 대처하는 어른들의 행동방식 역시 유치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왜 이모는 아이들의 질문에 좀 더 진지한 설명을 해 주지 않았을까..? 중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 "난 결혼은 안했지만 딸은 있어."라는 말만 해주었을 때 아이들이 받을 심리적 혼돈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리고 자신은 월급이나 받는 그저 그런 선생과는 다르다는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던 담임 럭셔리 장은 왜 감정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말도 안되는 폭력을 휘두르는 것일까...?

현실에서 보이는 모습과 인터넷상에서 보이는 모습은 당연히 다를 수 있다. 그 사이의 간극을 메꾸어나가고, 진짜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성숙이고 성장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결말은 그러한 성장과 성숙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담임의 프락치 노릇을 했던 아이는 반 아이들의 은근한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대안학교로 떠나고, 학교와 담임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폭발하고 가출했던 은하는 결국 소설의 끝까지 돌아오지 않으며, L과 올빼미의 정체 역시 별다른 이유없이 몇몇 아이들만의 비밀로 묻히고 만다. 문제를 정면돌파할 듯 보였던 이모가 반을 바꿔 실습을 마치는 것 역시 비겁해 보인다.

소재 자체는 참신하지만 그 소재를 풀어가는 문제의식이나 엮어내는 솜씨가 아쉬웠던 청소년 소설이다.

<사족> 흔히 청소년 소설에서 학교측의 부당한 처사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게 무기정학이다. 그러나 적어도 의무교육인 중학교에서 무기정학은 사라진 지 오래다. 교내봉사(학교봉사), 사회봉사의 징계가 있을 뿐이고, 종종 등교정지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도 정해진 일수 이상(보통은 2주)을 넘길 수 없다.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좀 더 학교생활을 알아보고 글을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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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의 집 1~7 세트 - 전7권 - 개정증보판 장애공감 1318
야마모토 오사무 지음, 김은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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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년 내가 맡았던 학급(중 2)에 진행성 근이영양증을 앓는 학생이 있었다. 매우 중증이어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이라곤 오른손 엄지와 검지손가락, 눈동자, 입술 뿐이었다. 보조교사가 수업시간마다 공책 위에 손을 올려놓아주고 손가락 사이에 연필을 쥐어주어야 글씨를 쓸 수 있었다. 고개를 움직일 수 없으니 칠판 아래쪽에 있는 글씨는 볼 수 없었고, 용변 또한 보건실 전용침대에 누워 보조교사가 받아내야만 했다. 전동휠체어에 맞는 책상을 특수제작하고, 컴퓨터실 문턱엔 오르기 쉽게 경사진 보조깔판을 놓아주었다.

담임이었지만 실상 내가 그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침에 부모님이 아이와 함께 등교하면 보조교사와 함께 오는 걸 봐주고, 체육시간에 못 나가고 혼자 교실에 남아있으면 종종 내려가서 이야기를 해주는 것 이외에는...

5월, 수학여행이 다가오자 학교에서 그 아이 문제로 회의가 열렸다. 부모님은 수학여행에 참가시키고 싶어하는데 이를 허가할지 말지에 관한 회의였다. 1학년 때 수련회에도 함께 참가했으니 수학여행도 함께 보내고 싶어하는 부모님 마음은 당연했고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러나, 학교 입장은 달랐다. 수련회는 한 장소에서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지만 수학여행은 2박 3일 동안 내내 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한다. 전동휠체어 폭이 넓어 관광버스에는 탑승할 수 없는데, 설령 부모가 승용차를 끌고 함께 수학여행지까지 따라온다 하여도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아이를 승용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태우고 돌아다니는 일은 빡빡한 일정상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돌봐주는 보조교사가 자신의 중 3 딸이 중간고사를 보는 기간이라며 해고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수학여행은 못 가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내가 학교의 입장을 전달하고 수학여행에 가고싶어 하는 아이와 학부모를 설득해 단념시켰다. 아이의 건강과 다른 아이들의 안전을 생각한 부득이한 결정이라고 설득했지만, 사실은 내 맘 속에도 행여나 여행 중 아이의 병세가 악화되지는 않을까, 통제할 수 없는 안전사고라도 생겨 내 신상에 해로운 일이 생기진 않을까 염려하는 맘이 있었던 것도 같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나는 남은 기간 내내 그 아이 얼굴을 보는 게 부끄러웠다.

종업식을 끝내고, 임신으로 잠시 학교를 쉬게 되면서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을 잠깐 잊고 있었다. 그러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이 만화책에서 나는 그 부끄러움을 다시 떠올렸고, 부끄러움을 잊고 살았다는 게 또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만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배척하는 사람들 속에 바로 내 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책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무심히 지나쳤던, 혹은 구경삼아 쳐다봤던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그러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내가 가르쳤던 아이의 모습이 미도리와, 가케오와, 유타와 겹치면서 꽁꽁 숨겨두었던 양심의 한 자락을 쥐고 흔든다.

아이의 꿈은 식물학자가 되는 거랬다. 엄마는 아이가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지난 해에만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친구 세 명이 세상을 떠났단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의 삶은 어찌됐든 계속되는 법이다. 미도리, 가케오, 유타 등등의 농중복장애인과 그 부모들이 도토리의 집을 만들어냈듯이 녀석 역시 식물학자의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나같은 담임이 아닌 강직하고 심지굳은 담임을 만나 아이들과 함께 수련회도 가고 수학여행도 가는 평범한 즐거움을 맘껏 누리며 어른이 되어가길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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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사계절 1318 문고 36
라헐 판 코에이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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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톨로메는 장애를 가진 열 살 짜리 아이다. 곱사등이에다가 난쟁이까지... 겉모습만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추한 몰골을 지니고 태어났다. 바르톨로메는 이 겉모습 때문에 가족들 이사에서도 버림받을 뻔 하고, 눈물어린 애원 덕에 간신히 함께 이사한 집에선 골방에 갇힌 채 남들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야 했다. 게다가 형제들의 도움으로 몰래 배우기 시작한 글에서 기쁨과 환희를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예기치 못한 사고로 공주의 눈에 띄어 공주의 인간개로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바르톨로메의 삶을 따라가며 책을 읽다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곤 한다. 내면의 영리함과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추한 겉모습만을 바라보는 숱한 사람들 속에서 어린 소년이 겪었을 수치심과 모멸감, 분노와 좌절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했던 바르톨로메에게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첫 번째 기회는 그에게 글을 가르쳐주었던 젊은 수사였고, 결정적인 기회는 내면의 감정을 그림으로 나타내도록 도와준 궁정의 화가들이었다. 바르톨로메의 순수하고 영리한 내면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감동시켰고, 바르톨로메는 궁정 화가의 제자가 되어 자신의 꿈을 펼쳐나갈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심한다. 다시는 그렇게 비참하게 살지 않겠다고...

이 책은 겉모습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훨씬 중요하다는 만고의 진리를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당연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에게, 바르톨로메는 겉모습과 내면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그리고 내면의 아름다움이 사람을 얼마나 빛나게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또한 자신의 인간성과 정체성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도 함께 보여준다. 바르톨로메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면 눈부신 결과 또한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은 나에게 교사로서 학생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가도 가르쳐 주었다. 바르톨로메의 재능을 발견하고 펼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역시 어른들이다. 성당의 수사가 글을 가르쳐주지 않았더라면, 궁정 화가들이 바르톨로메의 재능을 그저 스쳐 지나갔더라면 바르톨로메는 그저 불쌍한 장애아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사가 성당의 규율을 어겨가면서 바르톨로메를 받아들여 글을 가르치고, 화가들이 신분과 장애 때문에 정식 인가받은 화가가 될 수 없는 현실임을 알면서도 바르톨로메를 제자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바르톨로메는 자신의 꿈을 이뤄나갈 수 있게 되었다.

교사로서 해야 할 일도 응당 그러해야 하리라. 똑같은 교과서를 가르쳐 시험으로 평가하고 그 점수로 아이들을 줄세워야 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일지라도, 그 아이의 내면은 하나하나 다르다는 것을 명심하고 아이들을 살피고 북돋는 작업을 쉼없이 해야 하겠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뿌듯할 수가 없다. 요즘 청소년 책은 너무도 훌륭한 작품들이 많아 어른들이 함께 읽어도 손색이 없는 것들이 많은데, 이 책은 그런 청소년 책 중에서도 최고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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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 상 한빛문고 9
이미륵 지음, 윤문영 그림 / 다림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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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는 작가 이미륵의 자전적 소설이면서, 한 편의 성장 소설로도 읽힐 수 있을 듯 하다. 또한 구한말과 일제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과 그 가족들의 모습을 다룬 역사 소설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일제시대를 다루었다면 무거운 느낌이 들 법도 한데, 이 책은 그런 느낌 없이 한 폭의 수묵화를 바라보듯 따뜻하고 잔잔한 느낌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묘사나 3. 1 만세운동에서 항일 전단지를 뿌린 일로 망명길에 오르는 장면을 그릴 때에도 그 따뜻한 느낌은 변함이 없다.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과거를 긍정하고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을 완성해 나가는 저자의 모습이 오롯이 담겨있는 듯 하다.

숨차게 책장이 넘어가는 재미는 덜하지만, 책장을 덮고도 오랫동안 계속되는 여운은 다른 어느 책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장난을 좋아하고 어려운 학업에 끙끙대던 어린아이가 외로운 망명길에 올라 삶과 죽음을 고민하는 의학도가 되고, 고향을 생각하며 향수에 젖는 청년이 되어가는 과정을 함께 하며 내 마음과 영혼도 한 뼘씩 성숙해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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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
김현근 지음 / 사회평론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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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우리 반 학급문고 중 한권이었다. 처음엔 성적이 좋고 특목고를 준비하는 녀석들이 주로 읽겠지 싶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여서 의외인 그런 책이었다. 책 내용은 가난하고 평범한 청소년이 우연한 기회에 갖게 된 유학의 꿈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결국 그 꿈을 이루는 것이다. 

물론, 현근이가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차분하고 치밀하게 그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모습은 참으로 대견하다. 그러나 현근이의 모습이 우리나라 모든 학생의 역할 모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공부 잘하는 녀석이 있으면 꼴찌가 있는 게 당연하고,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인내력을 가진 녀석이 있는 반면, 매사 의존적이고 소심한 녀석도 있게 마련이다.

어느 쪽이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공부는 잘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아이도 있을 수 있고, 목표의식이 강하고 인내력은 강하지만 독단적인 품성을 지닌 아이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런 아이들이 서로 어울려 함께 살도록 해주는 것 아닐까...?

공부가 꿈인 아이도, 멋내는 게 꿈인 아이도, 사람들 만나 노는 게 꿈인 아이도 있다. 그 꿈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겠지. 현근이 얘기를 읽으면서 나는 현근이가 아닌 수많은 나의 제자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행여나 모두 "공부"의 꿈을 꾸라고 강요하진 않았는지 반성했다.

초등학생들에게까지 일제고사를 치르게 만드는 우리나라 위정자들은 혹시 모든 학생의 꿈이 "공부"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순간 마음이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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