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의 집 1~7 세트 - 전7권 - 개정증보판 장애공감 1318
야마모토 오사무 지음, 김은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작년 내가 맡았던 학급(중 2)에 진행성 근이영양증을 앓는 학생이 있었다. 매우 중증이어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이라곤 오른손 엄지와 검지손가락, 눈동자, 입술 뿐이었다. 보조교사가 수업시간마다 공책 위에 손을 올려놓아주고 손가락 사이에 연필을 쥐어주어야 글씨를 쓸 수 있었다. 고개를 움직일 수 없으니 칠판 아래쪽에 있는 글씨는 볼 수 없었고, 용변 또한 보건실 전용침대에 누워 보조교사가 받아내야만 했다. 전동휠체어에 맞는 책상을 특수제작하고, 컴퓨터실 문턱엔 오르기 쉽게 경사진 보조깔판을 놓아주었다.

담임이었지만 실상 내가 그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침에 부모님이 아이와 함께 등교하면 보조교사와 함께 오는 걸 봐주고, 체육시간에 못 나가고 혼자 교실에 남아있으면 종종 내려가서 이야기를 해주는 것 이외에는...

5월, 수학여행이 다가오자 학교에서 그 아이 문제로 회의가 열렸다. 부모님은 수학여행에 참가시키고 싶어하는데 이를 허가할지 말지에 관한 회의였다. 1학년 때 수련회에도 함께 참가했으니 수학여행도 함께 보내고 싶어하는 부모님 마음은 당연했고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러나, 학교 입장은 달랐다. 수련회는 한 장소에서 모든 활동이 이루어지지만 수학여행은 2박 3일 동안 내내 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한다. 전동휠체어 폭이 넓어 관광버스에는 탑승할 수 없는데, 설령 부모가 승용차를 끌고 함께 수학여행지까지 따라온다 하여도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아이를 승용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태우고 돌아다니는 일은 빡빡한 일정상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돌봐주는 보조교사가 자신의 중 3 딸이 중간고사를 보는 기간이라며 해고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수학여행은 못 가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내가 학교의 입장을 전달하고 수학여행에 가고싶어 하는 아이와 학부모를 설득해 단념시켰다. 아이의 건강과 다른 아이들의 안전을 생각한 부득이한 결정이라고 설득했지만, 사실은 내 맘 속에도 행여나 여행 중 아이의 병세가 악화되지는 않을까, 통제할 수 없는 안전사고라도 생겨 내 신상에 해로운 일이 생기진 않을까 염려하는 맘이 있었던 것도 같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나는 남은 기간 내내 그 아이 얼굴을 보는 게 부끄러웠다.

종업식을 끝내고, 임신으로 잠시 학교를 쉬게 되면서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을 잠깐 잊고 있었다. 그러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이 만화책에서 나는 그 부끄러움을 다시 떠올렸고, 부끄러움을 잊고 살았다는 게 또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만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무시하고 경멸하고 배척하는 사람들 속에 바로 내 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책은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무심히 지나쳤던, 혹은 구경삼아 쳐다봤던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게, 그러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내가 가르쳤던 아이의 모습이 미도리와, 가케오와, 유타와 겹치면서 꽁꽁 숨겨두었던 양심의 한 자락을 쥐고 흔든다.

아이의 꿈은 식물학자가 되는 거랬다. 엄마는 아이가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지난 해에만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친구 세 명이 세상을 떠났단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의 삶은 어찌됐든 계속되는 법이다. 미도리, 가케오, 유타 등등의 농중복장애인과 그 부모들이 도토리의 집을 만들어냈듯이 녀석 역시 식물학자의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나같은 담임이 아닌 강직하고 심지굳은 담임을 만나 아이들과 함께 수련회도 가고 수학여행도 가는 평범한 즐거움을 맘껏 누리며 어른이 되어가길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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