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비노 - 유전자 이상이 만들어 낸 색다른 친구들 눈에 보이는 과학 1
강현옥 지음, 박기종 그림, 윤주열 사진, 이태원 감수 / 길벗스쿨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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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애완용으로 인기있는 알비노 고슴도치가 자신의 친구들을 하나씩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양한 알비노 동물들의 사진들을 보면서 그들의 서식지, 특색, 별명까지 일러준다. 알비노의 유전법칙도 설명해주고 있다. 또한 오드아이나 루시스틱과 같은 알비노의 다른 양상들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이 책 한권이면 알비노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을 모두 얻을 수 있다. 

  이 책의 매력은 단순히 신기한 동물들의 화보집이나 과학상식 책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정신은 책 속에 내내 녹아있기도 하지만, 책 마지막에 <알비노친구들과의 만남을 끝내며>라는 맺음말에 집약되어 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 그리고 친구들의 키, 생김새, 피부색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이상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인정하라는 대목이다.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외국인 백만 시대’를 맞아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교육이 꼭 필요한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 옛날에는 알비노들을...
   알비노는 사람에게도 나타난다. 어느 인종에 상관없이 일만칠천분의 일 확률로 나타난다.
  옛날에 알비노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을 당하거나 갇혀서 살곤 했다. 때로는 흰소나 흰 사슴들이 신성한 동물로 여겨지듯이 신성한 아이로 떠받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홍채가 붉은 색인 경우는 악마의 아이 취급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마녀로 몰려 처형당한 일도 있었다.
  멸시받거나 인권을 존중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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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른이 되면 말이야 걸음동무 그림책 2
게턴 도레뮤스 글.그림, 강효숙 옮김 / 걸음동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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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그림이야기부터 해야 합니다. 그림이 이야기의 부분이 아니라 전부이기 때문이지요. 그림은 마치 전개도처럼 2차원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을 처음 보면 어지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모든 페이지들이 학교에 가는 우리의 주인공 구스타브를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구스타브가 걷는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은 옆으로 뉘어지고 뒤집어져요. 아이들이 꽤 나이가 들 때까지 3차원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이해가 쉬운 그림일 수도 있답니다.

  그림을 아주 자세히 살펴보다가 각 페이지의 그림들을 모두 연결하면 구스타브네 동네의 지도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책은 페이지가 없는 것이구나  했지요. 종이들을 연결한 자국이 보이고, 담장의 색이나 그림들의 단절된 한 부분이 다음 페이지의 어떤 부분과 맞물리게 되어있습니다. 이 책은 크게 펼친 한 장의 지도를 잘라서 묶어놓은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실제도시의 평면도에 구스타브를 중심으로 사물들이 전개도처럼 펼쳐지고, 겹쳐지고, 그리고 또 한가지 구스타브가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들과 만들고 싶은 것들을 상상하게 하는 색상이 진한 부분들이 확대되어 강조됩니다. 사실은 그림읽기가 꽤 까다로운 그림책인 동시에 보면 볼수록 숨은 많은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그럼 어떤 이야기들이 있나 볼까요?

  1. 구스타브이야기 : 빨간 모자를 따라가세요. 
  7시 45분에 구스타브는 집을 나섭니다. ‘서둘러라! 구스타브, 또 늦겠구나’ 엄마의 이런 외침을 뒤에서 들려오지요. 구스타브는 개를 산책시키는 아저씨를 만납니다. 아저씨의 수염이 어찌나 이상하던지 구스타브는 ‘어른이 되면’  수염을 예쁘게 깍아주는 면도기도 발명하기로 해요. 골목을 벗어나서 쓰레기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공원으로 들어섰어요. 아침부터 오리들이 어찌나 꽥꽥대던지 구스타브는 ‘오리와 이야기 할 수 있는 작은 기계’를 공원에 만들어두기로 합니다. 공원을 가로질러 나와서 길로 들어서니 수많은 어른들이 바삐 출근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구스타브는 어린이들만 다닐 수 있는 작은 길을 만들기로 합니다. 광장을 지나가면서는 구스타브는 광장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보고 싶어서 또 생각합니다. ‘키를 아주 크게 해주는 기계를 만들 거야. 그러면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볼 수 있겠지?’ 구스타브의 머릿속에는 광장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상상하고 있어요. 기차역을 지나치면서는  ‘의자 옆에 특별한 장치가 달린 기차도 만들 거야. 여행하는 사람들이 멋진 풍경을 보고 싶을 때 언제든 기차를 세울 수 있는 그런 장치가 달린 기차 말이야.’하고 생각합니다. 기차역의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미 7시53분입니다. 구스타브의 마음은 급해집니다. 그러나 다리를 건너면서 수많은 뾰족지붕을 보니 또 상상의 나래가 펼쳐집니다. ‘지붕위에 길을 만들 거야 날씨 좋은 날 그 길을 걸으면 마치 하늘 위에서 산책을 하는 기분이겠지?’ 구스타브의 상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아요. 소방차에 관한 상상, 기구에 관한 상상... 이런 모든 상상을 하다가 구스타브는 지각을 하고 말아요. 학교 앞에 가니 아무도 없어요. 이미 선생님께서 수업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구스타브는 선생님께 혼이 나고, 어른이 되면 해야 할 또 한 가지가 생긴답니다. ‘내가 어른이 되면, 그러면 말야, 조금만 더 빨리 다니는 게 좋겠어.’

2. 초록 새 이야기 : 초록 물방울무늬를 따라가요.
  초록 새는 어느 집 지붕에서 잠을 잤어요. 구스타브가 학교에 가는 시간에 초록 새의 하루도 시작됩니다. 그 시간이 바로 집주인아저씨가 창을 열고 쫒아내는 시간이거든요. 초록새는 구스타브처럼 공원을 가로지르고, 군밤장수 포장마차 위에서 늘 함께 놀던 세 명의 친구 새들을 만났어요. 친구들과 하늘을 날고 놀다가 광장 중앙에 있는 화단에서 사랑하는 새를 만났어요. 기차역 건물 옆 지붕에서 함께 산책도 하고 날기도 하면서 사랑을 나누었지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공원에서 다른 새를 향해 떠나고 말아요. 초록 새의 사랑이 깨지고 말았어요. 초록 새는 혼자 나무에 앉아서 구스타브가 종이배를 띄우는 것을 지켜봅니다.

3. 또 다른 이야기들 : 각각의 색상을 따라가세요. 
  오늘 아침은 사건이 많은 날 같아요. 쓰레기차와 신선한 야채 차는 매일 아침 동네를 도는 차이니 당연하지만요. 광장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 웅크리고 비켜주지 않는 바람에 차들이 엉켜서 서로 경적을 울려대는 바람에 아주 시끄러웠어요.
  돈 가방을 실고 달아난 도둑이 나타나서 아침부터 경찰차는 동네 여기저기를 수색하며 다녀야 했어요. 화재가 났는지 소방차도 출동했어요.
  또 다른 사람들의 아침도 엿볼 수 있어요. 공구가방을 든 하늘색아저씨가 어디로 출근하는지 따라가보세요. ‘유성 운송회사’차도 보세요.
  마르셀가게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세 아저씨와 로제가게에서 차를 마시는 아저씨 이렇게 4명이 다음 그림에서는 공장 담 옆으로 난 길을 줄지어 걷고 있어요. 공장으로 출근하나봐요. 또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있어요. 찾아보세요.

  아이들이 그림을 여러 번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에 재미를 느낍니다. 자신이 설정한 새로운 주인공이 다음 페이지에서는 어디에 있는지 어떤 페이지에서는 나타나고 사라지는지 찾으면서 아주 재미있어 합니다. 그림을 계속해서 보고 또 보더군요.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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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슨 미워하기 좋은책어린이문고 9
로빈 클레인 글, 백지원 그림, 신혜경 옮김 / 좋은책어린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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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가 몇 번이나 깔깔깔 웃었다.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표현된 소녀들의 순수하고도 유치한 심리표현과 문장 자체가 주는 코믹한 재미때문이었다.:

  선생님은 파리처럼 수많은 홑눈이 합쳐진 곁눈을 가진 것 같았다. 선생님은 모든 방향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옆이든 뒤든 그 누구도 선생님의 레이더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선생님은 심지어 보이지 않는 것, 그러니까 배리 홀리스가 책상 서랍 속에 감춰둔 오락 기계와 만화책가지 정확히 짚어 낼 정도였다.(p.14)

  얼마나 기뻤으면 케일선생님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희귀한 새를 발견한 조류학자처럼 말이다. 선생님은 옆에 서 있는 나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힌 나머지 내 얼굴은 점점 달아올랐다. 내가 절대 참을 수 없는 한 가지가 바로 무시당하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늘 내게 집중되는 것을 좋아했다.(p.41)

  자존심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거짓말도 척척 지어낼 수 있는 에리카 유켄은 사춘기 소녀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봄직한 상상을 즐기며 사는 소녀이다. 정부에서 지원을 받는 바링가 이스트 초등학교 6학년인 소녀는 자신이 이런 곳에 있을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운명의 장난으로 병원에서 자신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그러니까 자신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다른 아이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뭐 그런 생각이다. 에리카는 배우가 되어서 부자동네에서 우아한 생활을 하는 미래를 꿈꾸며, 동생이 실컷 어질러 놓은 방에서 거울을 보며 연기연습을 즐긴다.

  그런데 이러한 그녀의 자존심은 외모는 물론 공부도, 품성도 나무랄 데 없는 앨리슨이 전학오면서 타격을 받기 시작한다. 앨리슨은 첫 날부터 에리카의 증오의 대상이 된다. 동시에 에리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앨리슨과 상대적으로 비교하게 되고 시기와 질투심으로 유치하게도 쉽사리 흥분한다.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감정에 빠져서 앨리슨의 모든 행동을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가식적 행동으로 해석하고 밀쳐낸다.
  앨리슨의 깔끔한 옷도, 단정한 글씨도, 알 수 없는 표정도 모두 너무너무 미워보인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도 자꾸만 앨리슨에게만 관심이 간다. 학교에서 떠난 캠프에서 같은 방에 배정을 받고, 함께 연극을 기획하며 에리카는 자신을 어른스럽게 다독여주고, 자신의 질투까지도 모두 용서해주는 너그러운 앨리슨에 대한 미움을 서서히 누그러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앨리슨이 자신이 시기할 만큼 그렇게 부럽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앨리슨에게는 딸이 무대에서 주연으로 연기하는 줄 알고 모든 소품을 구하고 만들어서 만사 제치고 달려온 엄마와 다정한 레니 아저씨 같은 사람도 없다. 그리고 앨리슨네 집이 비록 최신 전자제품들과 멋진 자전거와 스케이트보드가 있다 해도 너무나 조용하고 썰렁한 거실과 가구만이 있을 뿐이다. 식구들의 말소리, 때론 다툼소리, 그리고 달그락거리는 접시소리들같은 따뜻한 소리들이 그곳에는 없었던 것이다. 세상은 불공평한게 아니었나보다^^


  가족의 따스한 사랑은 겉으로 보이는 어떠한 가치와도 바꾸어질 수 없다는 것을 사춘기소녀 에리카와 치기어린 경험을 함께 하며 어린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정도 그렇다. 진정한 친구를 사귀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자존심이나 외면적 비교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서로의 내면을 잘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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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빌라와 쪼꼬퐁퐁
줄리아 도날드슨 지음, 이주혜 옮김, 황명희 그림 / 삼성당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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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잭과 콩나무 동화를 읽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해본다. 잭이 거인을 골탕 먹이고, 하프와 암탉과 많은 돈을 가지고 콩나무줄기를 타고 내려오던 때, 그때의 그 조바심나던 순간, 마치 내 뒤에서 거인의 큰 발자국소리가 쫒아오기라도 하는 양 숨가쁘게 어서 책장을 넘겼었다. 쫓아내려오던 거인은 콩나무와 함께 쓰러진다. 휴~ 잭이 우리 편이니까^^.

  그런데 거인의 나라가 혹시 아직도 건재하다면...??? ‘오우 노우~ 말도 안돼!’라고 생각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있다면? 우리에게 잭의 모험담이 수세대에 걸쳐 전해내려오고 어린이들에게 읽히듯 거인의 나라에서도 잭에게 골탕을 먹은 거인의 이야기가 슬픈 전설로 내려오고 있을 것이다.

  바로 여기 이 책에서 그러한 상상이 실현된다. 거인의 후손인 잠빌라가 잭의 후손 쪼꼬퐁퐁들을 수집해간 것이다. 전설을 믿는 순수한 거인소녀 잠빌라는 거인나라 땅 끝에 콩꼽을 던져둔다. 이야기처럼 콩꼽은 하룻밤만에 쑥쑥 자라 콩꼽나룽이 되어있어서 잠빌라는 쪼꼬퐁퐁의 나라로 내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시덥잖은 일도 항상 다툼거리인 스테판과 콜레트 남매는 얼결에 거인소녀에게 수집당해 자신들의 몸조차도 어찌될 지 모르는 판에 어리광만 부리는 막내동생 파피의 안전까지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상황에 이른 것이다.

  어른들은 상상도 못할 위험한? 수집품을 인형놀이상자에 숨겨둔 잠빌라와 졸지에 애완동물신세로 전락한 삼남매. 누구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든지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잠빌라가 포악하고, 자신들을 먹어치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던 삼남매는 잠빌라가 콜레트처럼 수집광인 순수한 소녀라는 것을 알고 안도하는 한편 탈출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잠빌라의 오빠 잽에게 발각되어 삼남매는 위기를 맞는다.

  스테판은 동생들을 데리고 꼭 탈출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모든 일을 철저하게 준비하는 의젓한 행동대장이 되고, 콜레트는 동생을 돌보는 동시에 오빠를 의지하고 믿게 된다. 박진감 넘치는 비밀작전과 탈출감행, 마지막 순간에 빛을 발한 잠빌라의 우정어린 도움으로 삼남매의 모험은 무사귀환으로 끝나고, 잠빌라는 동생에게 해줄 흥미있는 이야기가 한가지 더 생기게 되었다.

  이 책은 순식간에 독자를 거인나라 그로일로 데려다준다. 책을 여는 순간 거인나라의 말로 책을 읽어야 하니까^^.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외국어^^에 서투른 독자를 위해  책 뒤편에 있는 <거인나라 말 사전>을 부록으로 첨부해두었다.

  옮기기가 무척 어려웠을 거인나라 말을 짐작가능한 우리말로 매끄럽고 재미있게 바꾼 번역이 책의 재미에 한몫 하고 있다. 귀엽고 아기자기한 삽화에 대한 칭찬도 빼놓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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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사냥 보림문학선 7
레이 에스페르 안데르센 지음, 매스 스태에 그림, 김경연 옮김 / 보림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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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연기로부터 어두운 그림자가 도망친다. 마녀사냥이라는 제목도 심상치 않은데 표지그림부터 우울했다.
  마녀사냥은 종교라는 이름하에 자행된 정당한 박해였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렇게 믿었다. 그리고 희생자들이‘마녀’였기 때문에 그들은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떳떳했다.
  검은 연기로부터 도망치는 어두운 그림자는 에스벤이라는 소년이다. 어머니가 마녀사냥꾼들에 의해 희생된 에스벤은 무작정 도망친 것이다. 마녀사냥꾼들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마녀사냥꾼들을 불러들이고 화형대의 장작값을 지불하고 화형대를 위한 사다리를 집행자들에게 판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이웃들이다.
  도망친 피오르에서 다행히 소년은 수도사 한스를 만난다. 그를 치료해주고 오두막에서 함께 사는 것도 허락한 그는 매일 에스벤이 원하는 만큼씩 그의 인생에 나타낸 무시무시하고 기억하기 힘든 사건을 이야기하게 한다. 그것은 그의 방식대로 에스벤을 치유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건을 소년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된다. 순수한 소년의 입을 통해서 사건을 듣게 되면서 독자는 편견이 없이 순수하게 사건 그 자체만을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자신들에게 도움이 될 때는 비굴할 만큼 잘 대해주고 찾아오던 이웃들이 어느 순간 집단의 광기하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그들을 고발한다.
  소년의 이야기는 가끔씩 끊기고 혼돈스러워 하지만, 한스의 조용한 기다림과 믿음 속에서 다시 용기있게 자신의 입으로 그 사건의 이야기를 이어간다.그렇게 피오르에서 소년은 마음을 치유하며 한스로 부터 피오르와 자연을 존중하는 법, 그들에게서 필요한 것들을 얻는 법 등을 배운다.

  소년의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한스가 던지는 심오한 질문들에 독자는 더욱 많은 생각을 해야한다.

  ‘하지만 네가 크고 힘이 셌더라면 그들을 넘어뜨리고 죽였을 게다. 왜 내가 도망쳤는지 들었을 때 나조차 그렇게 하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 마음 속에는 누구나 마녀 사냥꾼이 숨어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P.52)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비겁하고 나약했기 때문이야. 그들은 힘을 갖고 있었어.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언제나 나약하단다. 하지만 만약 네가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말이다. 너는 어디에 있는 어머니를 보는 것이 나았겠느냐? 다른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어머니냐, 아니면 그 바깥 괴롭히는 사람들 속에 끼어있는 어머니냐? (p.85)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머리를 강타당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충성심이나 애국심에 대하여 말하면서 비겁한 삶과 떳떳한 죽음을 이야기하곤 하였다. 충성심이나 애국심 이런 크고 정당한 이유도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선택을 강요받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대단히 혼돈스러웠다.
  또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뒤집어 보여준다.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은 강하다고 생각들을 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은 나약해지기 마련인 것이다.
  피오르의 평화로운 시간도 한스에게 찾아온 마녀사냥꾼에 의해 깨지고 만다. 에스벤은 한스에게 왜 도망치지 않느냐고 질문한다.  

    정말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사람은 그 자리에 머물면서  움을 받아들이게 된다. 너도 어느 날 그렇게 될 것 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너무 어리다. 사람은 싸움을 받아들일 수 있기 전에 인간이 무엇이며, 인간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p.128)

  소년의 도망침으로 시작했던 책은 안타깝게도 다시 소년의 도망침으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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