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가 완결됐다. 예약구매를 했더니 17일에 배송이 왔길래 퇴근길 부터 붙잡고 읽었는데 오늘 - 오늘은 20일 -  책이 끝났다. 사실 처음 받았을 때는 '헉 책 두께가 왜 이래'라고 시작했는데 하루가 지나니 남는 양이 점점 줄어들면서 '말도 안돼 왜 이렇게 남은 분량이 적어'라고 울면서(?) 읽었다. 음 그리고보니 배송된 책을 본 회사 후배는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요, 그 책도 1년에 한권이에요?" 라고  이번에는 1년에 한권은 아닙니다 라고 회사 후배에게 말해줬다.(이 책까지 꼭 읽으면 좋을텐데..)

 

그리고보니 이 책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시오노 나나미는 일생의 시작과 끝이 만나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르네상스 이야기에서 시작해, 그 꽃이었던 시기의 베네치아를 공부하고, 또 황금시절 르네상스를 알게 위해 로마를 공부하고 다시 로마 멸망 후 지중해를 공부하고 다시 십자군으로 돌아와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이야기들. 시오노 나나미의 이야기는 그래서 시작과 끝이 다시 결국에는 만나게 되어 버린 느낌이다. 아 그리고보니 난 시오노 나나미를 [바다의 도시 이야기]로 시작해서 [십자군 이야기]로 현재까지 진행형이다. 역시 [로마인 이야기]가 좋기는 한데, 시오노 나나미의 장기는 전쟁이야기인지라 해전 시리지 3부작이 서술 자체는 최고가 아닌가 싶다.(지극히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생각)

 

그리고보면 시오노 나나미는 내게 '그냥 시오노 나나미' 이상은 분명히 된다. 고 2대 도서관에서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만나서 역사가 정말 재미나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로마인 이야기]까지 읽었고, 대학에서 학부생 시절에는 진지하게 서양사학과를 고민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리고보니 무려 로마인이야기 완결이 나왔을을대는 헤이리에서 하는 한길사 행사에서 가서 김석희씨 사인도 받아왔구나. (행사에 시오노 나나미는 오지 않았었다. 접. ) 아 웃긴건 난 당연히 다 읽은 (출간되자마자 읽었으니까) 15권을 가져갔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꺼내니까 14권이어서 정말 진심으로 실망했다. 아 그리고보니 독후감쓰기 대회에서 경품으로 받은 책이 [로마인이야기] 완결 시리즈였는데, 이미 난 집에 1년에 한권씩 모아서 한 질이 있었는데 OTL. 지금도 생각하는건데 말해봐서 다른 책으로 받을껄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난 지금도 [로마인 이야기]를 적어도 1년에 한번은 돌 수 있도록 꾸준히 잡고 있다. 지금은 [로마인이야기] 7권을 읽을 차례. 해마다 읽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내 생각이 변해간다는걸 느낄 수 있다. 로마는 카이사르가 그 때 암살을 당해서 진짜 제국으로 갈 수 있었떤게 아닐까. 아우구스투스의 손에서 만들어진 제국을 카이사르가 만들 수 있엇을까. 라는 그런 생각. 아 내년이 되면 다시 카이사르에 감탄하고 있을지도.

 

시오노 나나미씨, 다른 책을 또 출간하실거죠?

기다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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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님의 글이 너무 좋아서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그런데, 여지없이 이번에도 제대로 읽지 못할 것 같다. '못할 것 같다'가 아니라 사실 확실하다. 남들은 단편을 잘만 읽는다는데, 난 왜 이리 단편은 '절대로 못읽겠다' 라는 기분을 자주 느끼는지. 그리고보니 단편을 읽을 때 아주 가끔씩 난 '하얀건 종이요, 검은 건 글씨'라는 말을 실감하곤 한다. 분명히 책을 읽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냥 눈으로 '읽고'만 있을 뿐인 그런 경험을 난 중단편 모음집을 읽을 때 하곤 한다. 한마디로 암울하다.

 

물론 이런건 모든 단편을 읽을 때 드러나는 증상은 아니고 특정 작가들이 있다. 츠바이크의 단편 소설이나 하루키의 단편 에세이나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할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체호프나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아 잘 읽었다. 멋진 이야기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내게 단편의 매력은 둘 중 하나이다. 언어로 잘 표현이 안되는데 굳이 옮기자면 별거 아닌거 같은 이야기의 조각들이 모아보면 하나의 그림을 이루어 내는, 그래서 마치 글 속에 마치 어느 집안이건 배어있는 그 집 특유의 채취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그런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가서 '정말 그럴까?'라고 말하며 씩 웃는거 같은 작가를 만나는 것 같은 소설이다. 물론 두 타입의 소설을 딱 잘라서 여기까지는 이런 타입, 저기까지는 저런 타입 이라고 정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분명히 내가 잘 읽지 못하는 이야기에는 어떤 특징들이 있는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스토리를 파악하고 이해하기에 너무나 압축적인 이야기 구조가 나에게는 어려운게 아닌가라고,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게 아닌라 라고 요즘은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책의 범위가 줄어 든다는 이야기라서 조금은 우울해진다랄까?

 

*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이런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 지금까지 명쾌하게 '읽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작가는 이런 사람들이다.

 

 

 

 

 

 

 

 

 

 

글로 써놓고 보니 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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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5-09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어떤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좋다'고 하신 책과 '읽었다 라고 말할 수 없는' 책들에 제가 좋아하는 책들이 공통적으로 껴있어서 어떤식으로 저렇게 나뉘게 된건지 잘 모르겠어요. [행복한 그림자의 춤]의 경우에는 저는 몇개의 단편들만이 '유독' 좋았어요. 다른건 그저 그랬구요.

그런데 왜 슬퍼해요, 하루님. 슬퍼하지 마요. 저는 [꿈을 빌려드립니다]를 펼치기만 하면 잠이 쏟아지더라구요. 하하. 결국 다 읽긴 했지만 말예요.

하루 2012-05-09 23:32   좋아요 0 | URL
이 글을 쓰는데 하얀건 종이요, 검은건 글씨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때 제가 마구 생각나면서 정말 슬퍼지는거예요. 활자화 하니까 더 슬퍼지는 기분일이랄까. 장편을 잘 못 읽으면 그런가부다 하겠는데, 이건 단편이 더 격렬하게 갈리는지 모르겠어요. 흑흑. ㅜㅡ
줌파 라히리나 다시 읽어야 하는걸까요. 흑흑.
아 맞다, [행복한 그림자의 춤] 정말 읽으면서 흑흑거리고 있어요. 이를 어쩌죠. ㅜㅡ (제가 이 글을 쓰게 만든 바로 문제의 책이예요!)

2012-05-09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9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2-05-09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성당> 공감이에요. 김연수가 번역했다길래 잔뜩 기대하고 읽었는데, 저 역시 검은 건 글씨요 흰 건 종이더군요. 그에 비해 <체호프 단편선>은 정마 좋게 읽었어요. 저는 민음사판이 아니라 다른 판본으로 읽었어요. 초반에는 '그래서 뭐 어쩌라구?' 이런 마음이었는데 계속 읽다보니까 아, 정말 아름답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특히 그 장면에서 감탄했어요. 남자가 언덕 꼭대기에서 눈썰매를 타고 내려가면서,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사랑해!'라고 외치는 장면이요.

갈등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으면 명쾌하게 읽었다는 느낌이 안 드는게 아닐까요? 그런데 <그저 좋은 사람>이 위 그룹에 속하는 걸 보면 그것도 잘 모르겠네요. 저는 <그저 좋은 사람> 좋게 읽긴 했는데 그렇게 명쾌하다는 느낌은 없었거든요. 흐음, 저도 그 기준을 잘 모르겠군요. 나랑 성격이 다른 사람과 나는 왜 친해질 수 없는 걸까 고민하는 것처럼 슬퍼지네요 저도.

그런데 하루님, 상심하실 필요는 없어요. 책만 펴면 잠이 온다는 사람도 많은 걸요. 그래도 궁금하긴 하네요. 저 역시 남들이 좋다고 해도 잘 모르겠는 그런 책들이 많아서 ( '')..

하루 2012-05-09 23:39   좋아요 0 | URL
체호프의 감동을 저에게 나눠주세요 제발요~ 흐흐.
제가 지끔가지 체호프를 몇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사람들이 인물도를 그려가면서 읽는다는 러시아 장편 소설을 읽곘다!'라는 마음이 절로 들 정오예요. 그리고보니 투르게네프의 [첫사람] - 이건 장편이지만 - 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거 같기도 해요. 음 저에게 다른 출판사를 좀 알려주세요! 다시 읽어볼래요. 흐흐

이야기가 뭉개진다는 저번 이야기와 연결해보면 말씀하신대로 뚜렷한 갈등이나 서사구조를 발견 못하면 '뭐가 뭔지 모르겠다'라고 생각되는거 같다는 말에는 조금 동감이 되기도 해요. 그런데 분명히 [그저 좋음 사람]과 [올리브 키터리지]는 정말 다르게 다가오더라구요. 뭐가 다른지 전 정말 알 수가 없어요. 흑흑.

음음 도대체 '우와 좋은데'라고 말하는 책은 뭐가 다른걸까요. 흠흠.

비로그인 2012-05-10 00:35   좋아요 0 | URL
제가 읽은 체호프는 '열린책들'에서 나온 판본이에요!
흠냥, 정말 그 이유를 모르겠군요 ㅠㅠ
 

 

 

* 영화의 줄거리와 결말이 포함되어 있음

 

[그녀가 떠날 때]는 보는 내내 꼭 심장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독일에서 자란 아랍 문화권의 여인이 결혼 후 이스탄불에서 살고 있다. 결혼 후 그녀의 삶은 너무나 피폐하다. 폭력적인 남편과 그를 방조하는 집안. 이 모든 삶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독일, 자신의 가족에게로 돌아온다.

 

큰 결심을 하고 돌아온 집에서 가족은 말한다. 돌아가라고, 이곳은 니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너는 집안의 수치라고. 처음에는 차분하게 그녀를 다시 남편에게 보내려던 가족은, 강제로 그녀를 그리고 그녀의 아들을 이스탄불로 보내려고 한다.  집안이 속해있는 공동체에서 그녀의 일탈은 가족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공통체에서 버려질 것인가, 아니면 한 때 딸이자 언니였던 가족을 버릴 것인가. 그리고 그들은 선택한다.

 

떠나고 또 떠난다

영화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떠난다. 이스탄불에서 떠나고, 남편에게서 떠나고, 집에서 떠나고, 가족에게서 떠나고, 보호 시설에서 떠나고, 친구의 집을 떠나고. 그녀의 삶은 끝이 없는 도피의 연속이다. 보는 동안 피가 흐르는 것 처럼 느껴질만큼 이 영화는 시종일관 아프고 슬프다. 이 이야기가 피가 흐를만큼 아프게 다가오는건, 그녀의 가족과 그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가족은 그녀가 '일반적인 아랍문화의 여인'으로 돌아오기를 종용한다. 남편에게 순종하고, 구설수에 오르지도 말고, 집안의 수치가 되지 말것을 종용한다. 여동생의 결혼식장에 찾아가 내쳐지는 순간, 술에 취한 오빠가 보호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순간, 그녀의 심장에서는 새빨간 피가 넘쳐 흐른다.

 

그녀는 가족과 절대 멀어지고 싶지 않다. 자신의 삶을 찾고 싶고,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에게서 내쳐진다. 언니의 일탈 행위로 공동체에서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가족의 불안감은 영화를 보는 나의 불안감과는 분명 다르다. 아버지는 그녀와 남은 가족을 놓고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을 한다. 그리고 딸은 말한다.

 

너와 공동체 중에 선택을 해야 한다면, 너를 선택하지 않을 거야. .

 

언젠가는 날 선택하실 거예요. 아버지는. .

 

지금은 아닐지 몰라도 언젠가는 자신을 아버지가 선택해줄 걸로 믿는 그녀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날 용서하거라. 그리고 나서야 극단적인 가족의 선택이 밝혀진다. 아버지와  동생와 오빠는 명예살인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집안의 수치로 지명되는 여성을 집안의 남자들이 살해하는 바로 그 명예살인. 가장 가깝고 지켜줘야 할 것 같은 가족이 말이다.

 

가족 그리고 가족

하지만 그 가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거짓일까. 딸과 남은 가족의 미래 중에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아버지에게 딸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공통체에서 벗어날 용기가 없다고 비난할 수 있는가.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그리고 다른 가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동생을 언니의 행실로 파혼을 당하고, 오빠와 동생은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는 이 생활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족의 문제는 그 가족이 아니면 도저히 이해할 수 있는게 분명 있는거다. 행복은 하나의 모습이지만, 불행은 가정의 수 만큼이라고 하지 않는가.

 

물론, 명예살인이라는 문화와 제도에 대해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난 명예살인을 하는 다른 가족의 마음도 알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거다. 내가 이 이야기에 피를 흘리는 것 처럼 아픈 이유는, 끊임없이 가족에게 돌아가려고 하는 한 여인의 마음과 그 여인을 도저히 다시 가족으로 받아 줄 수 없는 가족의 마음이 둘다 모두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족 모두에게 마음을 편하게 쉴 가족은 이미 어디에도 없어져 버린 이 슬픈 가족이,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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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4-23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이 글 나중에 볼게요. 맨 위에 문장 보고 식겁 ( '')ㅎㅎ
요새는 영화를 통 안 보네요. 헌혈 한 번 하고 영화티켓을 받아야겠어요~

하루 2012-04-23 14:49   좋아요 0 | URL
정말 심장에서 피가 흐르는거 같은 영화예요
꼭, 꼭, 꼭 보셔요!!!!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는 내 손에서 길게 떠난 적이 없다. 왠만하면 항상 같이 읽는 책 중에 - 난 여러권을 동시에 읽는 편이다 - 한 권은 꼭 들어있으니까 사실은 1년 내내 읽고 있는 셈이다. 그도 그럴게 총 권수가 15권인데 잘 읽으면 1년에 한 시리즈를 한번 쭉 읽는거다. 그리고보니 정말 잘도 열심히 꾸준히 난 이 시리즈를 읽고 있구나 싶다.

 

 

 

 

 

 

 

 

이번 회차(?)는 작년 겨울부터 드문드문 읽고 있는데 , 어제 막 5권이 끝났다. 5권의 제목이 [로마인 이야기 5 - 율리우스 카이사르(하)] 이다. 제목을 보면 당연히 4권도 카이사르 이야기라는걸 알 수 있겠지. 항상 난 4권과 5권을 읽을 때마다 이버에는 카이사르의 위대함(?)에 대한 엄청난 작가의 경탄에 내가 공감해야 하는데, 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책을 읽으면 그는 정말 매력적인 인간이기는 한데, 어떤 부분에서 천재적인거지 라고 물음표를 띄우게 된다. 마치, 오케스트라 공연이 끝났을 때, 어디에서 박수를 쳐야하지 라고 물음표를 얼굴에 띄우는 것처럼.

 

시오노 나나미의 출간된 모든 책을 읽어 본 - 고등학교 적 부터 읽기 시작했으니 아 그리고보니 제일 처음 읽은 책은 [바다의 도시 이야기]였을 거다 - 입장에 시오노 나나미라는 사람이 인정(?)라는 인간이라는게 어떤 사람인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꼴사납지 않은 매력남이라고 해야하나. 그녀의 책들을 쭉 읽어보고 인물에 대한 평가를 읽어보면 그 인간이 악한지 선한지는 그녀의 평가 기준에서 저 멀리 던져져 있다. 체사레 보르자를 보고 카이사르를 보면 명확하다. 그녀의 남자관(?)을.

 

시오노 나나미가 서술하는 카이사르는 능력은 말할 나위 없는 사나이이다. 출중한 전략가이고 - 물론 전쟁과 정치 모두에서, 전쟁과 전투 모두에서 승리할 줄 아는 남자이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도 굉장히 잘 감지해서 그가 대중을 향해 사용한 언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런 기막힌 능력만 있어도 좋은데 성격까지 호탕하다. 쾌남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이런 남자에게 쓰는 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니까. 평생 많은 애인을 두었지만 그로 인해 문제가 벌어진 적은 없었고, 젊은 시절에는 산더미 같이 지고도 빛에 짓눌리지 않을 수 있었던 - 오히려 끌려 다닌건 채무자가 아닌가. 만화 같은 일이다 - 카이사르 라는 인간 매력에 풍덩 빠졌다랄까?  

내가 석방한 사람들이 다시 나에게 칼을 들이 댄다 해도, 그런 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소. 내가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내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오. 따라서 남들도 자기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오.

-로마인이야기 5 율리우스 카이사르(하)

 

사실 난 이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저 구절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저 한 구절을 읽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게 자신에게는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멋진 점은 어떤 말로도 깍아 내릴 수 없는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는 점이다. 빠른 변화와 적응을 강요받는 이런 때에, 매일이 고민의 연속인 이런 때에 내 생각에 충실하게 산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난 별로 만나 본 적이 없다. 물론 나도 저런 확신을 가지고 살지 못하기 때문이겠지만. 그래서 난 시오노 나나미의 홀딱 반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가 정말 매력적인 인간이라는건 인정할 수 있다.

 

오늘도, 작년처럼 저 몇 줄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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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름 선거날 이니까 선거 이야기로 시작하면, 투표를 하고 나왔다. 다소 걸음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그리고 어머니를 차에 모시고 붕붕 다녀왔다. 11시 반 즈음 다녀온거 같은데, 생각보다 투표를 하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랬다. 물론 대부분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시고, 아이 손을 잡은 젊은 부부들이 눈에 띄였지만, 일단 사람들이 투표를 하러 꽤 많이 나가는구나 싶었다. 투표소 주변에서 가게를 새로 오픈하는 곳은 이 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오픈 기념행사를 열심히 하고 계시는데, 선거날이 저렇게 쓰일 수도 있구나 싶어서 조금 재미나게 봤다.

 

투표율이 70%가 넘으면 다들 무언가를 한다는 약속들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무엇을 위한 약속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투표율이 높다는건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이 정치에 반영되는 거니까 바람직한 현상이기는 한데, 최근 투표율에 약속을 내거는 사람들은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그가 지지하는 정당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요컨데, 투표율이 높다져야 한다는게 정말 다양한 의견이 정치에 반영되는게 좋다는 생각 떄문인지 아니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은 투표율이 올라갈 수록 유리하다는 계산을 바탕으로 한건지. 이런 조금은 불신(?)에 가득한 생각을 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랄까. 물론 난 투표율은 가능한 높은게 좋다고 생각한다. 투표를 하지 않는자 정치를 비판하지 말라(?)는 마음이랄까.

 

 최근에 읽은 책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선거철에 읽어서인지 유독 각별하다. '나는 꼼수다'와 '나는 꼽사리다'로 대변되는 기성 정치 세력에 대한 비판 세력을 곰곰히 생각하며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저자힌 장하준씨야 말하면 입아픈 경제학자인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두 팟케스트로 대변되는 비판세력에 대한 생각을 조금 수정했다.

 

현재 정치판과 경제판은 모두 'MB탓'이라고 말하는게 너무 일상화 되어 있지 않나라는 - 아마도가 아니라 확실하다 - 생각을 곱씹었다. 5년이면 혹은 4년이면 멀쩡한 나라를 말아먹기에 충분한 시간이라 사람들은 말하지만, 역시 이 책의 저자들의 의견처럼 이 나라는 역시 MB만의 힘으로 말아먹지도 않았고, 토건업자만의 힘으로 말아먹지도 않은 건 분명해 보인다. 정치판은 끊임없이 MB정권을 심판해달라고 외치고, 나꼼수는 각하 헌정방송이라고 외치고, 나꼽살에서는 토건업자들이 나라를 말아먹었다고 외치지만, 과연 그 사람들의 힘만으로 나라를 말아먹을 수 있을까. 결국 대중은 모든 것을 단 한 사람에게 뒤짚어 씌우고 싶어하는게 아닌가. 결국 4년전 의원을 뽑은것도 대중이었고, 5년전 대통령을 선택한 것도 대중이었는데. '그때는 이럴 줄 몰랐다'라는 말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치사하고 자기 면피에 급급한게 아닌가.

 

이건 마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나서 모든 이슈가 탄핵으로 몰아쳤을 뿐, 그 외에 생산적인 어떤 담론도 생겨나지 못한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지금 이 상황은 MB에 대한 적개심과 토건업자에 대한 분노만으로 가득차서 '그들이 아니면 누구라도 상관없다'라는 마음과 무엇을 다르겠는가. 마치 탄핵 역풍이 지나고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 민주당이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처럼 난 이번 총선 이후에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나친 비관론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항상 정치는 똑같았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더 변하지도 않고 더 나아지지도 않고 그 비슷한 쳇바퀴를 계속 맴돌았을 뿐이다. 선거철이 되면 항상 써먹은 비슷한 담론이 또 다시 나와서 유령처럼 맴돌았을 뿐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대중은 항상 그 댓가를 치루었다.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를 선택했던 사람들은 그 댓가를 지금의 경제상황으로 고스란히 댓가를 치루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없는 상태에서, 정치가 4년에 한번 투표라는 행위만으로 상징되는 2012년 대한민국에서 앞으로 4년 동안 또 어떤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걸까.

 

+ 선거철 유일하게 관련된 포스팅이로구나.

 

+ 꼭 저 책은 선거철이 끝나고 나서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특히 나는 꼽사리를 듣는 사람들은 꼭 읽어봐야 한다. 그래야 양쪽을 보는 눈이 생기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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