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님의 글이 너무 좋아서 [행복한 그림자의 춤]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그런데, 여지없이 이번에도 제대로 읽지 못할 것 같다. '못할 것 같다'가 아니라 사실 확실하다. 남들은 단편을 잘만 읽는다는데, 난 왜 이리 단편은 '절대로 못읽겠다' 라는 기분을 자주 느끼는지. 그리고보니 단편을 읽을 때 아주 가끔씩 난 '하얀건 종이요, 검은 건 글씨'라는 말을 실감하곤 한다. 분명히 책을 읽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냥 눈으로 '읽고'만 있을 뿐인 그런 경험을 난 중단편 모음집을 읽을 때 하곤 한다. 한마디로 암울하다.

 

물론 이런건 모든 단편을 읽을 때 드러나는 증상은 아니고 특정 작가들이 있다. 츠바이크의 단편 소설이나 하루키의 단편 에세이나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할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체호프나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아 잘 읽었다. 멋진 이야기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내게 단편의 매력은 둘 중 하나이다. 언어로 잘 표현이 안되는데 굳이 옮기자면 별거 아닌거 같은 이야기의 조각들이 모아보면 하나의 그림을 이루어 내는, 그래서 마치 글 속에 마치 어느 집안이건 배어있는 그 집 특유의 채취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이야기가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그런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가서 '정말 그럴까?'라고 말하며 씩 웃는거 같은 작가를 만나는 것 같은 소설이다. 물론 두 타입의 소설을 딱 잘라서 여기까지는 이런 타입, 저기까지는 저런 타입 이라고 정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분명히 내가 잘 읽지 못하는 이야기에는 어떤 특징들이 있는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스토리를 파악하고 이해하기에 너무나 압축적인 이야기 구조가 나에게는 어려운게 아닌가라고,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게 아닌라 라고 요즘은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책의 범위가 줄어 든다는 이야기라서 조금은 우울해진다랄까?

 

*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이런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 지금까지 명쾌하게 '읽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작가는 이런 사람들이다.

 

 

 

 

 

 

 

 

 

 

글로 써놓고 보니 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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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5-09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어떤 공통적인 특징들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좋다'고 하신 책과 '읽었다 라고 말할 수 없는' 책들에 제가 좋아하는 책들이 공통적으로 껴있어서 어떤식으로 저렇게 나뉘게 된건지 잘 모르겠어요. [행복한 그림자의 춤]의 경우에는 저는 몇개의 단편들만이 '유독' 좋았어요. 다른건 그저 그랬구요.

그런데 왜 슬퍼해요, 하루님. 슬퍼하지 마요. 저는 [꿈을 빌려드립니다]를 펼치기만 하면 잠이 쏟아지더라구요. 하하. 결국 다 읽긴 했지만 말예요.

하루 2012-05-09 23:32   좋아요 0 | URL
이 글을 쓰는데 하얀건 종이요, 검은건 글씨구나 라는 생각을 했을 때 제가 마구 생각나면서 정말 슬퍼지는거예요. 활자화 하니까 더 슬퍼지는 기분일이랄까. 장편을 잘 못 읽으면 그런가부다 하겠는데, 이건 단편이 더 격렬하게 갈리는지 모르겠어요. 흑흑. ㅜㅡ
줌파 라히리나 다시 읽어야 하는걸까요. 흑흑.
아 맞다, [행복한 그림자의 춤] 정말 읽으면서 흑흑거리고 있어요. 이를 어쩌죠. ㅜㅡ (제가 이 글을 쓰게 만든 바로 문제의 책이예요!)

2012-05-09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09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2-05-09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성당> 공감이에요. 김연수가 번역했다길래 잔뜩 기대하고 읽었는데, 저 역시 검은 건 글씨요 흰 건 종이더군요. 그에 비해 <체호프 단편선>은 정마 좋게 읽었어요. 저는 민음사판이 아니라 다른 판본으로 읽었어요. 초반에는 '그래서 뭐 어쩌라구?' 이런 마음이었는데 계속 읽다보니까 아, 정말 아름답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특히 그 장면에서 감탄했어요. 남자가 언덕 꼭대기에서 눈썰매를 타고 내려가면서,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사랑해!'라고 외치는 장면이요.

갈등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으면 명쾌하게 읽었다는 느낌이 안 드는게 아닐까요? 그런데 <그저 좋은 사람>이 위 그룹에 속하는 걸 보면 그것도 잘 모르겠네요. 저는 <그저 좋은 사람> 좋게 읽긴 했는데 그렇게 명쾌하다는 느낌은 없었거든요. 흐음, 저도 그 기준을 잘 모르겠군요. 나랑 성격이 다른 사람과 나는 왜 친해질 수 없는 걸까 고민하는 것처럼 슬퍼지네요 저도.

그런데 하루님, 상심하실 필요는 없어요. 책만 펴면 잠이 온다는 사람도 많은 걸요. 그래도 궁금하긴 하네요. 저 역시 남들이 좋다고 해도 잘 모르겠는 그런 책들이 많아서 ( '')..

하루 2012-05-09 23:39   좋아요 0 | URL
체호프의 감동을 저에게 나눠주세요 제발요~ 흐흐.
제가 지끔가지 체호프를 몇번이나 다시 읽었는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사람들이 인물도를 그려가면서 읽는다는 러시아 장편 소설을 읽곘다!'라는 마음이 절로 들 정오예요. 그리고보니 투르게네프의 [첫사람] - 이건 장편이지만 - 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거 같기도 해요. 음 저에게 다른 출판사를 좀 알려주세요! 다시 읽어볼래요. 흐흐

이야기가 뭉개진다는 저번 이야기와 연결해보면 말씀하신대로 뚜렷한 갈등이나 서사구조를 발견 못하면 '뭐가 뭔지 모르겠다'라고 생각되는거 같다는 말에는 조금 동감이 되기도 해요. 그런데 분명히 [그저 좋음 사람]과 [올리브 키터리지]는 정말 다르게 다가오더라구요. 뭐가 다른지 전 정말 알 수가 없어요. 흑흑.

음음 도대체 '우와 좋은데'라고 말하는 책은 뭐가 다른걸까요. 흠흠.

비로그인 2012-05-10 00:35   좋아요 0 | URL
제가 읽은 체호프는 '열린책들'에서 나온 판본이에요!
흠냥, 정말 그 이유를 모르겠군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