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보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게 마련이다. 가끔 그 기억이나 장면들은 나로써로 어쩔 수 없이 통재불가능한 것이어서 그야말로 기억이 밀려들어온다.
예를 들면, 이런 순간인거다.
2리터짜리 저 큰 통에 들어있는 저 우유를 컵에 부을 때면 난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가 생각한다. 내게 겨울 혹은 크리스마스면 이 영화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영화인데, 아 무려 일반인에게 사연을 공모받아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한다. 아무튼 산드라 블럭과 빌 풀먼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인데, 마침 영화 DVD가 알라딘에 있는 모양이다,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 산드라 블럭은 아버지 마저 얼마전에 돌아가셔서 천애고아가 된 그야말로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여자이다.
그녀는 고양이 한마리와 살고 있는데,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밥을 먹으려고 하다가, 밥이라고 해봐야 냉동식품을 데운거에 불과하지만, 고양이에게 저 2 리터짜리 우유병에서 우유를 따라주는 장면이 나온다. 우유를 고양이 먹이통에 부어주고 자기는 냉동식품을 먹으려고 앉았는데 크리스마스 전날밤에 이게 머하는건가 싶은거다. 고양이 먹이통에 부어준 우유에다가 오레오 쿠키 하나를 찍어먹으며 크리스마스 전날의 외로움에 몸서리 치고 있던 그녀는 자신이 낮에 구해준 혼수상태 환자를 찾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바로 그 남자가 필 풀먼의 형이다)
사실 나도 왜 내가 2리터짜리 우유만 보면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 나오는 산드라 블럭이 고양이에게 우유를 부어주는 장면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오레오쿠키를 우유에 말없이 찍어서 먹던 그리고 고양이를 바라보던 산드라 블럭의 표정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그냥 그 우유가 맞나 보여서 일 수도 있고. 도무지 이유를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그렇다. 저 우유만 보면 그 때 그 영화가, 그 장면이, 그녀가 생각난다.
다른 한편은 [중경삼림]이다. 이건 비빔면이나 무장아찌를 먹을 때마다 한 장면이 생각나곤 하는데, 양조위가 집에 앉아서 면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어떤 장면이냐 하면, 여주인공 왕정문이 양가위 집에 들어가서 하나씩 물건을 바꾸는데, 왕정문이 바꾸는 것 중에 하나가 양가위 집에 있던 정어리 통조림 - 통조림인것만 확실하다 - 에 껍떼기 (뭐라고 불러야하지)를 다른 걸로 바꿔놓는 장면이 나온다. 바꾸는게 아마 과일통조리 껍떼기였던걸로 기억하는데, 아무튼 중요한건 그녀가 그 통조림의 껍질을 바꾸어놨다는 거고, 양조위는 면 요리에 그걸 점심으로 먹으면서 자신의 기억력을 탓한다. 그런데 왠지 이것도 이유를 알 수가 없는데, 아무튼 무장아찌를 먹거나 비빔면을 집에서 혼자 끓여 먹을 때면 , 특히 면을 끓여서 식탁에 놓고 장아찌를 앞에 놓고, 식탁에 앉으면 그 장면이 생각나곤 하는거다. 아 그래 이 장면이 있었지.. 라는 기분.
아직까지 이 두 영화에서 이 두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만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