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9시의 커피]'하쿠나 마타타'로 떠올리는 프레디 머큐리

   
  내 가슴과 당신의 가슴이 서로를 단단히 안고 있어요. 
지금은 그 둘을 떼어놓을 수 없지요. 나의노래, 당신의 노래.
내가 가진 모든 빛과 그림자를 동원하여 나의 뿌리가 깊이 들어가 당신을 발견합니다.
나의 꽃이 세상의 빛을 볼 날을 기다리는 그곳에서    -이사벨 베어먼 버처
 
   

그는 늘, 에스프레소를 즐겨한다. 한 잔 마시고, 또 한 잔 마신다.   

그는 에쏘를 시키곤, 그림을 그린다. 가만보면, 만화인 것 같다. (사실 그림체가 뛰어난 것 같진 않다. 하긴,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덥수룩한 차림새에, 예술가 '삘'도 좀 난다. 그런 사람 있잖나. 좀 더 알면, 재밌고, 흥미로우며,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 그는 그런 사람 같았다.   

죽을 날을 받아둔, 혹은 현대 의학으론 완치될 수 없는 병을 지닌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건, 어떤 것일까?

요즘 내가 '삘' 받은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지형(김래원)이 그런 무모(!)한 돌진을 한다. 알츠하이머 환자 서연(수애) 옆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소망 하나, 그러니까 닥치고 사랑, 그 하나 때문에. 두 사람, 그저 사랑을 한다. 언젠가는 잊고 말겠지만, 그까이꺼 대수냐.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하겠다는 두 사람의 약속, 나는 그것이 참 아프면서도 감탄한다. 밤9시의 커피가 졸졸졸 흘러내릴 때 담기는 내 마음이다.  

얼마 전 개봉했던 구스 반 산트의 <레스트리스>도 빼놓을 순 없겠다. 부모의 죽음 이후 은둔자로 살아가는 에녹(헨리 호퍼, 작년에 돌아가신 데니스 호퍼의 아들 되겠다!)과 3개월을 선고받은 말기 암 환자 애너벨(미아 와시코브스카)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진다.' 침울해야 할 이야기인데, 그들의 사랑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름답다. 그들은 살 수 있는 데까지 살아내고, 사랑할 수 있는 데까지 사랑한다. 한 마디로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살고 사랑한다.  

알고 보니 이 남자, 럴수 럴수 그럴 수가. 어느 날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그녀의 병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욕망이 솟구치다니, 내가 병적인 걸까? 아니면 이건 무의식적인 자기 파괴일까?'

헉, 이건 또 뭔가요. 병. 그가 사랑하는 그녀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양성보균자란다. (참고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AIDS는 다르다. HIV는 AIDS의 원인 바이러스나, 무증상 HIV감염상태는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면, AIDS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즉, HIV감염인 중 일부가 AIDS환자인 셈이다.)

AIDS보균자와 사랑에 빠진 남자라니. 이건 또 무슨 드라마요, 영화인가, 했다. 물론 전도연과 황정민이 주연했던 <너는 내 운명>도 있었고, 그것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니, 세상에 없을 일은 아니렸다. 

그랬거나 이런 상황, 진짜 만만치 않다. 실존적 고민은 물론이요, 삶의 가치관과 생을 송두리째 흔들고 바꿀 수 있는 상황 아닌가. 그가 늘 마시는 에쏘는, 그런 그를 드러내는 커피가 아니겠는가.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그의 상황이 덤덤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덤덤함이 외려, 그가 얼마나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랑을 한다는 건,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병이 걸렸든 아니든. 하지만 쉽지 않음은 분명하다. 누구나 죽지만, 누구도 죽는 걸 의식하면서 살아갈 순 없다.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곧 죽을 운명임을 알면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랑한다는 것.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얼마나 있을까. 

AIDS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가령, <천일의 약속>의 알츠하이머 환자한테 까였다고 지랄독설하는 향기의 엄마(이미숙)를 보라. 그런 편견 혹은 차별이 종횡무진하는 세상에, AIDS에 대한 세상의 지독하고 악랄한 혐오를 감안하면, 오 마이 갓! 세상의 차별적 시선이 AIDS라는 병보다 더 마음을 깎아내릴 것이다.ㅠ.ㅠ 매순간 그렇게 마음을 다치며 상처를 견뎌낼 여자도 그렇지만, 그 여자 옆에서 함께 버텨야 할 남자는 어떻고. 

나는 어떤가. 다른 사람은 어떨까. AIDS라는 단어를 접하고,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대놓고 더럽다며 막말하는 사람, 있겠지만 흔하진 않을 거다. 아마도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일 게다.

가장 흔한 반응은 깜짝 놀라며 곧 이해하는 척하지만 경계하는 쪽이 아닐까. 반사적으로 내게 가까이 오지 마시라, 는 표정과 몸짓을 보이며. 다른 하나는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며 이해하고 격려하려는 쪽. 과연, 나는 어느 반응을 보일까. 후자라고 믿고 싶지만, 아마 내게도 일말의 불안과 공포가 똬리를 틀고 있진 않을까. 


그는 종종 와서, 에쏘를 찾았다. 어쩌다 알게 됐지만, 그와 나는 동갑이다. 나는 그를 위해 전용 에쏘를 만들었다. 지금 그가 살고 있는 생의 엑기스를 위해.

"그저 내 지성을 믿었어요. 나 스스로 이에 대한 판단과 판단에 대한 점검을 해낼 거예요." 

그는 또박또박 그리 말하고 있었다. 자기를 지킬 수 있고 보호할 정도의 지성. 지금처럼 엄혹한 시대에 그것은 쉽지 않다. 그에겐 그런 지성이 있다. 쉽지 않은 상황을 행복으로 치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게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호감을 가진 여자였지만, 처음부터 그와 맺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 여자는 이혼을 겪었고, 아이도 있었다. 어느 날, 자신의 집에 그녀를 불러 오붓한 저녁식사를 나누고 있었단다.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그녀는 이 관계가 끝나지 않길 바라는 바람을 고백하면서 더 깊은 이야길 꺼냈다.

"난 에이즈 환자예요. 양성이에요, 양성보균자죠. 내 아들도요."  

그녀의 고백이었다. 얼마나 힘들게 이야길 꺼냈을까. 충분히 그것을 알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아득함 같은 것?...

"절벽에서 떨어지는 아찔함이었어요. 똑... 딱... 심장이 멎었다 다시 뛰는 줄 알았어요. 아니면 새 심장으로 완전히 바뀌었거나."

그는 에쏘를 한 잔 더 시켰다. 아주 진하게 달라고 했다. 지독하게 진한 에쏘.

그들은 맺어졌다. 그래야 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도 그를 사랑한다. AIDS 따위, 시궁창에게나 내동댕이칠 무엇. 그들은 서로에게 어떤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고르에게 도린, 레논에게 요코, 달리에게 갈라, 프리다에게 디에고, 릴케에게 살로메, 그 반대의 경우여도 마찬가지일. 그들 각자에게 당신이라는 존재는, 무채색의 세상을 바꾸게 하는 놀라운 색깔이었다.

"난 그녀가 정말 좋아요. 예전부터 줄곧 그랬어요. 게다가 우린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맞는 커플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게 이런 것 아니에요?"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맞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걸 바라면서도 그건 로망이요, 그저 꿈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엄하고 험한 세상이 본디의 그들을 바꾼 까닭이다. 먹고사니즘, 자본이 요구와 강요에 무릎 꿇은 때문이다.  
 

 

 

그는 쉽게 설명한다. 이따금 성기에다 20분의 1밀리짜리 얇은 고무를 끼워야 한다는 이유로, 그녀가 좋고, 그녀와 있을 때의 행복을 포기할 순 없잖아요? 아무렴! 평생 콘돔을 껴야 한다고 사랑을 포기할 순 없다. (물론, 누군가는 그 사소한 이유로 포기할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그건 사랑이 딱 그만큼이라는 뜻이다!)   

그는 말을 잇는다. 

"알다시피, 실제로 이건 전혀 불편하지도 않아요. 콘돔 없이 시시하게 하느니 그걸 끼고 화끈하게 하는 게 낫잖아, 안 그래요? 하하"

콘돔이 하나의 의식이 될 수 있다는 것. 나는 이들 커플로부터 처음 알았다. 이 얇은 고무는 바이러스의 침투를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들이 섹스라는 사랑을 할 때, 하나의 의식이 됐다.  

그들이라고 당황했던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세 번째 관계에서 콘돔이 터져버렸단다. 와우~ 듣는 나도 깜짝 놀랐다. 서로, "빌어먹을"을 계속 외치며, 자정에 의사한테 전화를 건다고 호들갑도 떨었단다. 그의 기분은 어땠을까. 허공에 붕 뜬 기분이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끔찍했던 시간이었어요. 이 여자는, 옆에서 당신에게 행복이 되고 싶지, 위험이 되고 싶지진 않아, 라고 울면서 말하는데, 괜찮다고 했지만, 깊은 불안에 휩싸여 있었어요."

다행하게도,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 없음을 알렸단다. 운 좋은 건, 그들의 전담의는 세상의 많은 지질한 의사와 달랐다. 환자를 편안하게 해줬고, 무엇보다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다. 그는 생전 처음, 완벽한 자격을 가진 전문가가 자신들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줬다고 말했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단다. "HIV는 감기처럼 마구 전염되지 않아요. 아시다시피, 이 빌어먹을 것이 꽤 까다롭게 굴거든요. 하하." 섹스한다고 바이러스가 무조건 옮는 것, 아니다!

나는 늘 이 남자에게 에쏘 한 잔을 더 준다. 내가 그의 행복을 위해 줄 수 있는 작은 마음이다. Especially for you. 꼭 그말을 덧붙여서. 에쏘에는 그런 뜻이 포함돼 있음을 알려주면서. ^^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행복해지는 거예요. 또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뿐이고.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난 결코 상대를 보고 진심으로 감탄해본 적이 없었어요. 매혹이나 존경에 관해 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감탄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이 감탄은 기쁨과 함께 기꺼이 상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게 하거든요." 

그도 그지만, 나는 그 여자도 참 멋지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라고 왜 처음에 동정심이 없었겠나. 허나, 그녀는 그것을 없애줬다. 방금 그가 말한 그런 이유로. 그 여자는, 신발 속의 모래알처럼 귀찮게 따라다니던 그의 일말의 동정심마저 말끔히 제거해버리도록 만들었다.    

이 남자, 빙충이(!)처럼 자신의 여자에 대해 말했다. 그녀에게 이렇게 얘기해줬단다.

"당신은 무엇보다 장난삼아 관계하지 않은 유일한 여자야. 섹시하기도 하고 강하면서도 약한 여자지. 게다가 늘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게 멋진 세상을 꿈꾸게 하고…. 마치 내가 근사한 남자가 된 것처럼 날 으쓱하게 만들거든. 사실 당신은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에, 삶에 필요한 재능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야."

그의 표정은 한 없이 행복해보였다. 부러웠다. 젠장, 이런 레어템 같은 여자를 득템하려면,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하는 거지?!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인 건가. ㅠ.ㅠ  


그는 성공한 남자다. 유명해지거나 어떤 권력이나 돈을 획득해서가 아니다. 그는 그것들보다 훨씬 더 위대한 사랑을 획득했으니까. 무엇보다 자신의 여자의 행복을 사랑할 줄 아는 남자니까.

랠프 왈도 에머슨이 '무엇이 성공인가(What Is Success)?'라는 詩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감으로써/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투스는, "세상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지 말라. 그저 되어가는 대로 받아들여라"고 말했다. <천일의 약속>에서 지형 엄마가 지형과 서연의 사랑에 대해 그랬듯, 그들의 사랑을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그저, 사랑의 운명을 따랐을 뿐.

나는 내 동갑내기 만화가의 사랑을 위해, 12월1일 밤9시의 커피는, '푸른 알약'이라는 에쏘 메뉴를 내놓는다. 그 사랑의 향을 당신도 함께 맡아줬으면 좋겠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려주겠다. ^.~

12월 1일, 세계 AIDS의 날.

그와 그녀를 생각하면서 나는 커피를 뽑았다. 그의 이름은 프레데릭 페테르스(프레드), 그녀의 이름은 카티.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푸른 알약》이다.  

실화다. 에이즈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루지만, 소재는 소재일 뿐, 그냥 그들의 따뜻하고 행복한 사랑이 있다. 다만, 조금은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삶이 있다. 울고 웃을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다. AIDS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우리의 차별적 시선을 의식하는 건, 그저 덤이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세상의 많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만큼 그들 역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의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서연과 지형, 애너벨과 에녹도 그렇듯, 프레드과 카티의 사랑, 혹독한 듯해도, 그렇게 혹독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삶은 물론 상대를 사랑할 줄 아니까. 살 수 있는 데까지 살고, 사랑할 수 있는 데까지 사랑하는 것. 그만한 축복,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랑할 수 있는 시간, 길지 않다. 사랑도 모르거나 사랑을 모른 채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시대다.

알겠지? 12월1일의 커피, '푸른 알약'이 알싸하고 아름다운 풍미를 품은 이유! 그리고, 이날 온다면, 이런 형이하학적인 비밀도 살짝 알려주겠다. 프레드가 알려준 거다.ㅋ  

프랑스에 가서 콘돔을 사용하게 되면,
'마닉스 엥피스 002'를 써 보란다. 끝내준단다.
반면, '세일로'는 형편없어!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마닉스 엥피스 002를 쓰기 위해서라도, 프랑스에? 하하, 농담이다.^^;

무엇이 성공인가? _ 랠프 왈도 에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서 존경받고
어린아이에게서 사랑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에게서 찬사를 받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운 것을 식별할 줄 알고
다른 사람에게서 장점을 발견해내는 것  
건강한 아이를 하나 낳든
한 뙈기의 밭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는 것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감으로써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What is success? _ Ralph Waldo Emerson

To laugh often and much;
To win the respect of intelligent people
and the affection of children;
To earn the appreciation of honest critics
and endure the betrayal of false friends;
To appreciate beauty;
To find the best in others;
To leave the world a bit better, whether by
a healthy child, a garden patch
or a redeemed social condition;
To know even one life has breathed
easier because you have lived;
This is to have succeeded.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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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밤9시의 커피]존 레논 `커피`덴셜 : 라이터의 비밀
    from 맺고,따고,볶고,내리고,느끼고,사랑하라! 2011-12-09 02:10 
    큰별 생일 축하해~ 이 남자, 어제도 라이터를 놓고 갔다. 버릇이다. 자주 오는 건 아닌데, 어째 오늘도 왔다.꼭 자기 영역을 표시하기 위한 행위같기도 하다. 내가 여기 왔다 갔음. 라이터는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남자, 아우라는 딱 예술가다. 어째 보면 예수를 닮은, 오다기리 죠와 살짝 엇비슷한, 그러고 보면 히피풍이다. 동그란 안경은 존 레논의 것이다. 자주 오는 건 아니다. 커피 취향도 남다르진 않다. 드립커피를 즐겨한다는 것
 
 
 
황교익 선생님의 일리!

많은 사람들이, 먹는 문제에서만큼은, 지난 시절보다 경박해졌다. 경박하게도, '경박'이라는 단어를 쓴 까닭은, 그만큼 먹는 문제가 절박하기 때문이다. 경박과 절박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한 사례를 보자.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통큰 시리즈의 첫 시작은 센세이션이었다. 값싸고 양 많은, 이런 수식으로 사람들을 유혹했고, 많은 사람들은 꼴딱 넘어갔다. 그토록 애용하던 동네 치킨집에 대한 저주(?)를 퍼부으면서. WBC건, 월드컵이건, 올림픽이건, 자신들에게 그토록 즐거움과 행복을 안겨줬던 동네 치킨집이었다. 

값싸고 양 많으면, 그게 착한 것, 좋은 것 아니에요? 

먹거리에 대한 걱정이 차고 넘친다지만, 글쎄, 대부분 이들은 모순덩어리다. 그래, 그건 어쩔 수 없다치자. 월급만 빼고 모든 것이 오르기만 하는 엄혹한 시절이니. 그렇다고 터무니 없이 값싼 먹거리에 대해 어떤 의심도 않는다는 건 문제가 있다. 유통 단축이겠거니, 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에 대한 신뢰일까? 

자본이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진 않는다. 엄혹한 시절을 관통하는 고객들을 위한 애틋한 마음에 그러진 않는다. 계산기 철저히 튕긴 배팅이다. 다른 것도 물론 그렇겠지만, 먹거리에 대해선 의심이 필수다. 자본은 절대 손해보지 않는다. 반대도 참이다. 손해 본다면 그것은 자본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만고불변 진리 중 하나. 내가 편하면 누군가는 힘들다. 그 바닥에선 절대! 공존은 없다. 치킨값이 싸져서 고객인 나의 후생이 증진한다면, 반드시 누군가의 후생은 하락한다. 노동자 누군가는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 동네 치킨집이 부각됐지만, 드러나지 않은 다른 문제가 분명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경박해졌다는 것은, 싼 것은 무조건 좋은 것, 하는 외침 때문이다. 속도 모르고, 당장의 내 이익, 내 후생만 증진한다고 좋아하다니, 뼛속 깊이 자본이 침투한 결과 아닌가?  

더불어 먹거리라면, 그 먹거리가 어떻게 왔는지, 우리는 좀 더 꼼꼼해야 한다. 산업화된 공장식 먹거리는, 먹거리에 대해 꼼꼼했던 우리의 촉수를 무화시켰다. 무조건 많이 팔아먹겠다는 심뽀만 공기 중을 떠돈다.   

먹는 것은 곧 정치다. 먹는 것이 어떻게 정치가 되느냐고, 순진한 물음을 하는 당신에게 아래 글은, 그 답이 될 것이다. 먹는 것 갖고 정치 타령하지 말라고 깝죽대는 인간들이야말로 정치적인 인간이다. 그것이 정치가 아니라고 우김으로써, 자신들의 낯가죽 두꺼움을 감추려는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먹는 것, 어디서 왔는가. 당신이 먹는 것, 어떻게 가공되고 유통됐는가. 

그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황교익, 임지호, 박찬일 등 한국에서 먹거리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알려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그것을 배웠다. 그리고 먹거리의 정치학도. 자, 자본이 덕지덕지 때처럼 묻은 먹거리에 의해 당신이 경박해지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보자.  

물론, 커피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산지별 커피 취향이 확고한 것이 아니라면, 커피의 브랜드, 회사 규모보다 커피 로스터나 바리스타가 제공하는 정보에 집중해보자. 아무 커피나 먹자는 건, 아무 먹거리나 입으로 쑤셔넣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느 국가의 어느 산지에서, 어떤 농부가 재배했는지도 알아보라. 커피는 과일이다. 과일은 그렇게 꼼꼼하게 고르면서 커피는 대충대충 슬렁슬렁 고른다면? 당신은 아직 커피(맛)를 모르는 것이다! 

   

당신도 자본에 의해 조작된 먹거리에 오염돼 있지 않은가!
『한국음식문화박물지』 황교익

커피를 한창 배울 때, 의아했다. 왜, 맛없는 스타벅스와 커피빈을 사람들은 숭앙할까. 여전히 다양하고 옹골찬 커피에 매료되고, 그런 커피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이젠 조금 안다. 황교익 선생 식으로 말하면, 한국인은 “브랜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막 만든 두부가 맛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브랜드 찍힌 포장두부를 먹는다. 하루키 표현에 의하면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를 하지 않고 두부를 먹는 셈인데, 황교익 선생은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한 브랜드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지금의 한국 포장두부 시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은 두부의 맛보다는 두부의 포장지에 찍힌 브랜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한국음식문화박물지』, p.202)

한 맥주CF 카피를 인용하자면, “커피 맛도 모르면서”, 많은 이들이 커피를 마신다. 실은 스타벅스를 마시고, 카페베네를 마신다. 혹자는 문화가 어쩌고저쩌고 할 것이다. 개뿔이다. 스타벅스의 참모습을 알면, 그런 소리 안 나온다. 한 예를 들까? 스타벅스 공동설립자이자 회장인 하워드 슐츠는 이리 말한다. “우리는 서로를 파트너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말도.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그런 기업을 키워 내고 싶었다.”

우선, 파트너라고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 예우를 보자. 해외의 경우인데, ‘스냅셔터’라는 암행 감시원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매장에 와서 본사 규칙대로 행하는지를 상부에 보고한다. 문제는 늘 바쁠 때만 오고, 꼴찌를 하면 구조조정 된다. 더 큰 문제는 스냅셔터 대부분이 지점 운영과 시스템을 모르는 대학생이다. 

또 스타벅스는 학생노동자 노동계약서의 주당 근무시간을 19.45시간으로 한다. 이유가 있다.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의무기준이 20시간이다. 15분이 모자란다. 꼼수 아닌가? 아울러 스타벅스는 정기적으로 각 지점에서 활동하는 노조원을 해고한다. 오죽했으면 세계산업노동자동맹의 회원들이 스타벅스 지점 앞에서 전단을 나눠 줬을까!

스타벅스, 공정무역 커피를 사용한다고 내세운다. 2008년 말, 스타벅스는 현재 5%에 달한 공정무역 커피 비율을 10%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2008년 스타벅스는 전체 매출의 0.02%를 커피 농민에게 기부했다. 이를 통해 얻은 홍보가치는 훨씬 높다. 마케팅의 승리다.

한국의 다른 브랜드 커피전문점이라고 다르진 않다. 얼마 전, 문제가 된 주휴수당(일주일에 6일을 근무하면 하루를 쉬더라도 휴무일 몫으로 지급해야 하는 수당)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주휴수당을 착복(!)하다가 고발, 조사 등이 이어지자 뒤늦게 이를 지급했다. 한국의 원두커피 시장을 주도한다는 브랜드 커피전문점들의 행태다. 당신이 지불한 커피 값, 커피생산자, 바리스타 등에게 고루 분배되지 않는다. 대기업 자본의 주머니만 채운다. 커피의 눈물이다. 

물론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알아야 할 의무는 없다. 허나 이 말은 새겼으면 좋겠다. “먹는 것이 정치다.”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먹는 것에 왜 ‘정치’를 갖다 붙이나. 대형마트의 ‘통큰’시리즈가 있었다. 많은 소비자들이 값이 싸다는 현상에 집중했다. 이면은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이 말을 들어보자.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그들에게 이득을 주는 먹을거리에 탈정치적인 포장을 한다. “서민들이 먹기에 합리적으로 싸다”는 것이다. 싼값으로 만들기 위해 빠져나간 돈이 결국은 농민과 노동자의 피땀임을 그들은 숨기고 있는 것이다.”(『한국음식문화박물지』, pp.275~276)

지난 10월19일의 가을밤, 서울 홍대부근 가톨릭청년회관에서 『한국음식문화박물지』(따비 펴냄) 저자이자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수요악식세설이 열렸다. ‘한국음식문화, 한국인의 음식문화’를 주제로 한 강연. 우리는 제대로 먹고 있는가,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의 사유를 자극하는 시간이었다.  



음식은 과연 문화인가?

황 선생은 우리의 음식문화 판에 각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책을 계속 낼 계획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내가 갖고 있는 감각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강연을 듣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건넨다. 이 세상에 진리는 없다. 개개인마다 일리가 있을 뿐이다. 무리한 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 이날의 얘기나 책도 일리로 알아줄 것을 먼저 당부한다. 

그는 ‘음식문화’에 대해 우선 언급한다. 많은 이들이 음식문화라고 하면, 조선 음식을 먹거나 이야기하고, 고급레스토랑에서 폼을 잡아야 문화행위를 하는 양, 인식한다. 그는 이것을 비판한다. “실제 우리 삶에서의 음식이 진짜 문화다.”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다.

그는 이 말이 맞다고 말한다. “술자리에 3~4명이 앉아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라고 했을 때, 즉시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언제 처음 먹었고, 누구와, 누가 해 준, 어떤 기억이 있는지 물으면 근원에 있는 욕구 등이 드러난다. 자꾸 이야기하다보면 대부분 운다. 깊은 추억이 나온다. 애인, 남편, 아내에게 한 번 시도해봐라. 자기도 알지 못한 뭔가가 나온다.”

먹는 것을 보면, 출신지, 가족관계, 가정환경, 성격, 학력, 경제력 등이 나온다. 개인의 기호 안에 고유한 무엇이 포진해 있는 것이다. 기호가 그런 것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개인의 기호가 뭉치면, 공통분모가 생긴다. 그것이 집단의 기호다.

“집단의 기호가 만들어지는 안에 음식습관․예절이 만들어진다. 이런 집단 기호에 경제사회적 요소 등이 영향을 미친다. 기호는 집안→문중→생활문화 공유지역→정치경제공유지역 등으로 확대될 것이다. 음식문화의 출발점은 개인의 기호인데, 문화라는 것이 따로 뭔가 있는 게 아니라 나한테서 비롯된다.”

헌데, ‘음식문화’라는 말을 꺼내면, 많은 이들이 전통음식부터 이야기한다. 문화의 전통이 먼 곳에서 내려왔고, 전통음식 안에 문화의 흐름이 있을 것이라고 상정한다는 거다. 황 선생은 10여 년 전 한복선 궁중요리연구가가 책을 내면서 했던 말(“아름다운 우리 음식은 점점 잊혀져가는 반면 뼈다귀해장국, 부대찌개, 쇠머리국밥 등 국적불명의 경박한 음식들이 우리 식탁을 대신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을 꺼내고 이리 덧붙인다.

“안타깝단 말이 측은하다는 뜻 같은데, 일상에서 흔히 먹는 음식을 경박하다고 붙일 정도로 궁중음식, 전통음식을 하는 사람이 우월하다는 듯 말하는 것은 화가 난다. 한식세계화도 이런 것과 같다. 문화부장관이 된장찌개를 호텔에서 팔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문화가 일반인들의 문화가 아닌 저 멀리에 있다고 상정한다.” 



정부에서 만든 한식세계화 책(『아름다운 한국음식 100선』)을 보면, 표지에 신선로가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궁중음식이 전통이고 문화인 것처럼 말한다. 황 선생은 이를 비판한다.  

“신선로나 부대찌개나 같다. 하나의 음식 형태를 놓고 전통이라고 할 수 없다. 신선로가 전통음식이라면, 신선로를 있게 한 집단이나 공동체, 사상 등 모든 게 들어가 있어야 한다. 한국음식에선 탕 문화가 전통의 하나인데, 부대찌개도 신선로와 같이 탕이다. 햄, 소시지 등의 외래 식재료가 들어왔지만 음식을 만드는 형태는 전통을 잇고 있다. 그래서 부대찌개는 전통음식, 흔히 먹는 전통음식이다. 국적불명, 아니다.”

“문화란 대체로 소재의 유사성에 있다기보다 그 최종의 소비 양태에 따라 분화 또는 분류되는 것임을 이 부대찌개가 잘 보여 주고 있다.”(p.189)

그는 외려 신선로가 국적불명이란다. 대만이 한국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리플렛의 메인 사진으로 신선로를 쓰고, 인도네시아, 태국에도 신선로가 있다. 청나라 왕조도 신선로를 중요한 식기로 쓰는 등 중화문화권의 민족들은 신선로 문화권이다. 내용물은 차이가 있겠으나 신선로는 아시아의 그릇일 뿐, 한국의 그릇이나 한국의 음식이라고 할 순 없다는 것이다.

영양, 전통, 향수의 소비 시대

황 선생은 국내 외식업계의 열쇳말로 영양, 전통, 향수를 들었다. 우선 영양. 햄버거는 1970년대 정부에서 권장한 영양건강식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 햄버거는 정크푸드가 됐다.  

“식품영양학계가 똑같은 음식을 두고 달리 말했다. 식품영양학자 말은 믿으면 안 된다. (웃음) 영혼이 없는 학자들이다. TV에서 브로콜리가 건강에 좋다하면 다음날 브로콜리가 동난다. 영양에 이렇게 집착하는 민족이 없다. 몸에 아무리 좋아도 수분이 90% 넘는다. 몇 가지 영양이 골고루 들어가 있는 음식을 먹는 게 맞지, 하나만 그리 먹는 건 아니다.”

전통에 대해선, 한정식을 들었다. “한정식의 상차림 기본은 다 못 먹게 하는 것이다. (웃음) 태생이 요정 음식이다. 접대의 음식이다. 당신을 위해 음식을 허비할 정도로 신경 썼소, 하는 거다. 솔직히 한정식은 미개한 것이다. 전통이라 생각하는 것 중에는 합리적이지 못하고 맛있게 음식을 못 먹게 한 것도 많다. 이것을 쥐고 있으면 안 된다. 한정식, 없애야 한다.”

향수는 1981년 국풍행사를 들었다. 광주를 잊게 하려고 전두환이 행했던 쇼. “전국 향토음식이 대거 올라왔다. 타이밍이 적절했다. 60~70년대 서울 와서 타향살이하는 사람들이 고향음식에 향수를 느낄 때였다. 지역 음식과 풍물을 통해 애향심을 자극했다. 전두환의 기획만 아니었다면 이런 행사는 자주 하는 게 좋다. 향수에 대한 소비가 80년대 만들어진다.”

황 선생은 이 세 요소의 조작 가능성을 들었다. 식품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영양, 구분도 안 되는 음식에 붙이는 전통, 지자체 혹은 업자의 마케팅 차원의 향토음식. “실체를 알고 먹는가, 모르고 먹는가는 큰 차이가 있다. 누군가 조작한 것을 먹는 건, 온전하게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생얼로 보자는 것이고, 책을 쓴 이유다.”  

자본의 조작, 정치와의 결합

가장 심한 조작의 실체로 든 것이 자본이다. 자고로, 식품은 맛있고, 윤리적이고, 정상적인 마케팅으로 나서야 한다. 그러나 포장만 그런 경우, 대다수다. 대부분 대기업의 식품이 그렇다고 황 선생은 주장한다. 풀무원을 예로 든다. 자연, 위생, 건강, 환경, 유기농 등 풀무원을 둘러싼 이미지다. 창업자인 고 원경선 이사장의 이미지도 이에 거든다.

“원경선 이사장을 존경하나, 풀무원은 그 존경심과 관계없이 원경선 이사장을 이용한 나쁜 집단이다. 풀무원 매출액의 절반이 두부인데, 그 두부가 한국의 식탁에서 가장 나쁜 음식을 만든 원흉중 하나다. 두부는 금방 만든 것이 가장 좋다. 그런데 풀무원이 딴죽을 걸었다. 80년대 중반 보름 정도 유통기한을 지닌 포장두부를 만들어 전국에 유통했다.”

“플라스틱 용기에 물과 함께 담겨 있는 두부를 먹는다.… 하루키 식으로 말하면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를 하지 않고 두부를 먹는 것이다.”(p.201)

두부에 더운물에 넣으면 맛이 간다. 그런데도 고소한 맛이 나는 이유는, 해바라기씨유 때문이다. 포장두부의 고소함은 해바라기씨유의 것이다. 두부의 고소함이 아니다. 황 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가짜 맛 두부다. 문제는 또 있다.

“풀무원이 자기 공장에서만 생산하면 봐주겠다. 그러나 2개를 제하고 스물 몇 개 하청기업이 만든다. 그래서 전국에 뿌릴 수 있다. 대기업이 가진 전형적인 형태다. 소규모 두부공장을 다 죽이면서, 건강, 환경 등을 이야기한다. 소비자가 맛있는 두부를 먹을 권리도 다 죽이고. 좋은 이미지를 지닌 업체조차도 이런 조작을 한다. 원경선 이사장의 원래 뜻과도 멀다.” 



김치의 경우다. 일본 사람은 ‘김치’라고 읽지 못한다. 기무치다. 그러나 한국인은 김치라고 읽지 않는다고 타박한다. 반대의 경우다. 일본의 다쿠앙은 무를 말려서 절인다. 한국의 단무지는 생무를 사용해서 다르다. 일본 사람들은 그러나 단무지를 보고, 시비 안 건다.

“음식문화는 이동․전파하면서 먹는 사람이 제멋대로 부르고 먹으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김치’로 읽으라고 강요한다. 일본 사람들 따라할까? 따라할 일 없다. 그러면 얻는 것은 뭘까? 애국심 마케팅은 한국 식품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난다. 어디에 뭔가를 수출했다고 애국심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걸 긍정하지 않으면 매국노 취급당하는 분위기다. 자본이 건드리는 부분이 건강, 애국 등이다. 속을 보면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어내려고 이렇게 이용한다.”

“김치에 대한 이 민족적 자부심은 권력자들이 정치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조성한 측면이 다분히 있는데, 여기에 대해 한국인이 큰 반감을 가지지 않는 것은 김치로라도 세계에서 주목받고자 하는 민족적 열등감이 일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p.136)

이 조작의 카르텔에 정치도 빠질 순 없다. 정부가 자본 대신 마케팅을 해 주는 경우다. 정부 예산으로 전시회를 열어주고 쇼도 해준다. 황 선생이 든 예는 서울떡볶이페스티벌이다. 떡볶이연구소가 차려졌고, 첫해였던 2009년, 70억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됐다.

“떡볶이 세계화는 일반인과 아무 관련이 없다. 우리는 여전히 맵고 짜고 단 고추장떡볶이를 먹는다. 그런데 떡볶이연구소는 정부 돈으로 뭔가 열심히 한다. (웃음) 한식세계화를 한다고 모인 위원회 면면을 보면 다 프랜차이즈 사장들이다. 외국에 점포 세웠다고 치킨 프랜차이즈 사장도 들어가 있다. 정부가 한식세계화와 관련된 업체를 지원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국인은 여전히 고추장떡볶이를 열심히 먹고 있으며, 또 누군가 떡볶이 세계화를 외치면 환호할 것이다. 한국인은 자신이 즐겨 먹는 음식을 직시하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p.172)

먹는 것이 정치인 이유다. 자본과 정치는 끊임없이 야합하고 결탁하면서, 먹거리(의 유통과 소비)를 조작한다. 이런 신성동맹 구조는 어떤 현상을 낳을까. 황 선생 왈. 자본들이 끝없이 식당을 운영․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 그들은 혀를 놀려 소비자들을 낚고 주머니를 채운다. 

“한 달에 한 번 식품대기업 CEO들이 모여 조찬을 한다. 무슨 얘기를 하냐. 먹는 식초 만들었던데, 우리 같이 개발하자, 이런다. 경쟁하는 것 같지만, 한 통속이다. 자기들끼리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구조다. 중소업체, 절대 못 들어간다. 밀다원이라는 우리밀 전문기업이 시장을 넓혀나가다가 메이저 6개의 협공과 견제에 부도났다. 결국 제분공장은 삼립으로 넘어갔다.”

황 선생은 한탄한다. 소규모로 정직하게 뭔가를 하려고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가령, 지금 대기업만 하는 식용유도, 좋은 기술을 지닌 소규모 회사들이 있으나 그들은 시장에 진입 못하고 있단다. 소비자들은 좋은 식용유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자본에 의해 뺏기고 있다.

“한식세계화도 대기업 식품회사 지원책이다. 일반과 아무 관계없다. 일반식당 음식의 질 개선에 대한 예산은 하나도 없다. 우리 일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정부에선 할 생각이 없다.” 지금-여기의 우리에겐 국가가, 정부가 없음을 먹거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치는 먹는 것을 나누는 행위이다. 누가 더 먹고 누가 덜 먹을 것인가, 누가 좋은 것을 먹고 누가 나쁜 것을 먹을 것인가가 정치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한국인은 먹는 것이 정치적인 일과 관련이 없는 듯이 여긴다. 심지어 음식을 먹는 데 골치 아픈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라 한다.(p.274)

한국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

황 선생이 책의 마지막 챕터를 ‘정치’로 한 것은 이런 이유다. 우리가 먹는 것이 자본과 정치에 의해 조작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것을 벗어나게 하려면?

“지금과 같은 정부의 행태는 아니다. 투표할 때 잘해야 한다. (웃음) 개인의 것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큰 구조에서 자본과 정부가 결탁해 잘못된 인식을 주는 것에서 벗어나려면 개인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 들리는 이야기만 듣고 흘러가면 똑같이 흘러간다. 내가 먹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뭘 먹고 살지? 하는 것. 내 삶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먹을거리에 대한 당신의 작은 선택이 땅을 사랑하고 축복된 가족의 행복과 연결되고 지역의 진실한 농가와 식품기업을 응원하고 건강한 아이들, 활력 있는 사회실현에 연결됩니다.”(『잘 먹겠습니다』, p.93)   


그는 취재를 갈 때, 위성사진으로 산, 계곡, 들을 먼저 본다. 자연환경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위성사진을 통해 땅이 갖는 생태적 조건이 보이고, 그곳 농산물이 어떤지 감이 잡힌다. “맛있는 농산물이 나고, 재배가 잘 되는 지역의 공통점이 있다. 북으로는 산이 싸고, 남으로는 강이 나 있는 곳. 먹는 것이 자연에서 오는 것임을 알고, 땅을 다시 봐야 한다. 내가 먹는 게 어디서 온 것인가 알면, 자연이 어떻게 나에게 오는지 느낌을 가지게 되는 날이 온다.”

물론, 그 느낌은 현장에 자주 가봐야만 느낄 수 있단다. 그렇게 가다보면,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내가 무엇을 먹고 살고 있는가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이 가능해진다는 것이 황 선생의 조언이다. 먹거리를 통한 존재의 확인. 

커피 만드는 사람인 나는 황 선생(의 말씀)을 감히 지지한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내가 먹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 그것이 우리의 생의 감각을 깨우고, 우리를 삶의 주체로 서게 만들 거라고 믿는다. 그것은 가깝게는 좀 더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만들고, 멀리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길로 인도할 것이다. 

최근 이춘호 영남일보 기자는 ‘맛집은 없다’고 선언하면서 신문의 맛집 소개 코너를 접었다. 대기업이 반제품형 먹거리를 지천으로 토해내고, 반제품 식재료는 조미료에 범벅된 현실. 숱한 파워블로거가 맛도 모르면서 맛집 운운하고, 각종 가이드북과 포털은 맛집 인플레이션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맛의 평등이 이뤄졌다. 맛집 천국이다. 주방의 찬모들은 기자에게 이리 말한단다. “이렇게 화학조미료를 퍼붓는데 손님이 몰려드는 걸 이해가 안 되네. 참 이상하지.”

맛의 주체성을 잃어버린 탓이다. <트루맛쇼>가 지적했듯, 자본이 장악한 미디어에 속고, 화학조미료가 지배하는 음식에 길들여졌다. 이 기자는 “동태, 황태, 북어, 삼계탕, 대구탕, 복어탕, 추어탕의 국물맛이 동일해진 슬픈 세상이 도래했다”고 한탄했다.  

그는 “감칠맛은 ‘자연의 맛’이 아니다.… 이제 그만 맛있는 식당을 예찬하자. 맛있는 식당은 얼마든지 조작을 통해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요리는 마음이, 정성이 양념으로 들어가야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양심적이고 우직한 식당과 함께 개개인의 각성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렇게 다짐하는 개인들 말이다. ‘나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이제부터 먹을거리를 진지하게 선택하겠습니다.’(『잘 먹겠습니다』, p.100) 다시 되새김질한다. 먹는다는 건, 먹혀지는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의 응원을 받아 힘껏 사는 것이다. 참 고맙고 미안한 일이다. 먹는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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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기대, 없었어요. 나는 그저 공연장에 있었고, 그저 흘러나오니까 흘러나오는 대로 귀를 열었고, 피곤과 고단에 쩐 몸을 풀썩 흐트려 놓고 있었을 뿐이지요.  

그러다, 부르르르, 몸이 반응을 합니다. 음악이 몸을 깨우고, 마음에 스밉니다. 음악이 온 몸을 감싸면서 신경계를 타고 곳곳에 전이되는 그런 느낌. 혹시, 아세요? 쉽지 않은 경험이죠. 아마도 지독히 몸이 고단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뭐 그럼 어때요. 

감동입니다. 그 파르라니 푸르라니 떨리는 라이브의 음색. 루시아라는 이름. 생소했어요. 어? 발랄하고 예쁘네? 노래보다 말을 먼저 들었을 때 느낌은 그랬는데, 음악이 흐르면서 저는 그만 풍덩 빠지고야 맙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흐르고서야 알아차리고 말았습니다. 저의 둔감한 센스하곤! 

에피톤 프로젝트. 심규선. 아. 부디... 그 노래를 듣고서야 그만... 눈물샘이 먼저 알아챕니다. 눈물이 또르르르... 그제서야 알아차렸습니다. 멍.충.이, 준수. 심규선이 루시아였음을. 에피톤 프로젝트와 함께 작업하던 뮤지션이었음을. 

아, 어쩜 좋아요. 제 마음에서 오지은, 한희정, 요조, 타루, 다 밀어버리고선, 루시아는 단박에 만신전에 오르고 맙니다. 배신자요? 어쩔 수 없어요. 속수무책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고야 만 겁니다. 손 쓸 도리도 없이, 마음 붙잡아 둘 여지도 없이. 그저 그럴 수밖에 없는 그런 것.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것이 아닌, 뮤지션을 건졌습니다. 서경식 선생님 알현이 목적이었던 그 자리에서요. 이런 걸 본말이 전도됐다고 하나요? 아님, 레어템 획득? 그는 분명, 레어한 뮤지션이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껄이자면, 레어한 여인일 겁니다. 더디고 무책임한 감이지만, 저는 그런 감을 잡았으니까요!

오늘, 커피를 만들면서 커피향과 함께 한, 아니 공기와 함께 한 거의 모든 시간, 그녀의 음악이 공기 중에 흐르게 하거나, 허밍이 떠돌아다닙니다. 가을비라고 믿고 싶은 눈물이 나무가 그만 잡은 손을 놓아버린 잎 사이로 흐르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음악들에 위로 받고, 슬픔을 함께 나눴습니다. 고맙습니다. 루시아. 그리고 그 음악들. 지금도 그렇고요. 밤별이 노래와 함께 흘러요.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 그녀는 용감하고 씩씩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눈치 챘을 거예요. 그녀의 말에 묻어있는 어떤 슬픔과 여운. 짝사랑 앓으면서 만들었다는,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의 정조도 그랬지만, 그녀의 말꼬리에 붙은 어떤 마음의 조각들.  

부디, 이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박수를 쳤는데, 나는 그 박수가 미웠어요. 산통 다 깨는 기분이었어요. 단 몇 초라도 정적과 고요가 필요했거든요. 그 짧은 순간이라도 이 노랠 음미할 수 있으면 했어요. 어떤 라이브 음악은 그렇지 않아요? 박수보다 그저 안에서 곱씹으면서 잔향을 품고 싶은.

당신도 그런 적 있죠?  

당신이라는 시간, 그 길고짧음은 큰 의미 없다고 보는데, 당신 없는 계절의 바뀜, 어쩌면 혹독해요. 지금 나무들처럼 많은 것을 놔야 하는데, 당신과 함께 한 순간이 너무 빛났던 까닭일까요.  

당신을 떨쳐버리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지만, 나도 당신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하고, 몸을 때론 혹독하게 다그칠 때도 있어요. 헌데, 정말 루시아의 말처럼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상관없이 당신이 있어요. 당신은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 모르죠?

내가 당신을 생각하며 할 수 있는 건, 당신이 만족할 수 있는, 당신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지게끔 만드는 커피를 추출하는 것이었는데. 당신은 그런 마음을 들게 한 사람이었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커피를 만들고 있는 걸까요. 내가 가진 도구로 당신을 향한, 당신에 대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날들, 모든 것들이 꿈만 같아요.  

그래도 있잖아요. 나도 이 계절이 혹독해도, 이토록 좋은 음악을 해주는 뮤지션들을 만나고, 어설피 깝죽대는 내게 자극과 지혜를 심어주는 서경식 선생님과 같은 좋은 어른들, 내게 커피를 내리게끔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렇게 아주 혹독하지만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새, 11월이 안녕을 고하고, 12월이 안녕을 말해요. 루시아의 노래 중에, 안녕, 안녕 이라고 있는데, 묘하게 맞물리네요. 음악의 힘은 참 강해요. 말했던 가요? 나는 다른 무엇보다, 음악이 가장 힘이 세다고 생각한다는 걸. 서경식 선생님도 비슷한 말씀을 전하셨는데, 칸딘스키가 그랬대요. 음악은 예술 중에서 최고의 분야라고.

부디, 함께 들어요.
루시아의 말을 빌자면, 이것은 무탄산, 열량이 없는 달콤함으로, 죄의식이나 책임감은 조금도 함유되지 않았으니까. 부디, 이것을 낭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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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다. 죽을 수밖에 없는 병에 걸린 여자와 그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라니. 그럼에도,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임을 인정해야 한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사랑 말고 다른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신파는 사랑이라서 영원할 것이다.

<천일의 약속>은 그런 드라마다. 이런 드레진 드라마, 참 오랜 만이다. 아마, <죽도록 사랑해>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작가의 역량이 고스란히 배우의 연기로 틈입한다. 그런 앙상블 속에서 드라마는 충분히 감정을 싣는다. 대사는 찰지며 대사 사이의 감정은 촘촘하다. 허투루 짜맞춘 기성품 혹은 쪽대본 드라마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뭐, 닥치고 사랑이다. 서연과 지형의 사랑이다. 나는 그 사랑 앞에 그저 허물어질 뿐이다. 비겁했던 내 뒷걸음질을 부끄럽게 만드는 그들의 사랑. 마음을 움직이는 건, 그 사랑이다. 오롯이 사랑, 오로지 사랑.

서른 겨우 넘어선 애가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미치는 게 있을 수 있냐고 노발대발하는 지형의 아버지에게, 지형의 어머니는 단 한 마디로 설명한다. "사랑이다." 졌다. 맞다. 그게 사랑이다. 알츠하이머라는 것 알면서도 그 사람밖에 없는 것, 아버지 어머니는 관심 밖인 것. 오늘보다 내일 더 사랑하는 것. 닥치고 사랑!

사랑은,
안 먹는다고 고집했던 치매약도 먹게 한다.
치매에 좋은 음식리스트도 뽑게 만든다.
전사로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생각날 때 하기로 한다. 내일, 생각 안 날 수 있으니까.

그런 한편으로,
<천일의 약속>은 김수현 작가가 마음 먹고 쓴 '부모 교훈극' 같다.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이자 액세서리로 여기거나 결혼(생활)까지도 관여하는 헬리콥터 부모들을 향한 일갈. 그건 사랑이 아니지. 아무렴. 부모들이 꼭 봐야 할 드라마. 

그런 면에서 지형 엄마는 참, 현실적이면서 바람직한 상. 
지형 엄마는 드라마를 통해 세상의 엄마들을 향해 엄마수업을 진행하는 것 같아.   

닥치고 사랑!


결혼식 전날, 결혼식에 참석할 순 없는 지형 엄마가 지형에게 진심으로 건넨 이 말이 자꾸 맴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끝없이 사랑해.
 
사랑한다면, 내 유일한 존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그저 외로워서 혹은 내 옆 이성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다른 어떤 여자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끝없이 사랑해.  

아울러, 늘 생각날 때마다, 미루지 않고 꺼내야 할 이 말들. 수애병 걸려도 잊지 말고 할 말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그래, 또 무엇이 필요할까. 다 필요없다. 모든 것을 다 무화하는 것, 사랑.
세상이 멸망해도 딱 이것 하나면 충분하다, 사랑. 세상 모든 것의 총합보다 큰 것, 사랑.
사랑, 이 두 글자 얼마나 상투적이고 식상한가 싶지만, 사랑만이 모든 것이다.
서연과 지형처럼, 지순한 사랑은 서로를 아름답게 의탁하도록 해주고 두려움 없이 헌신하도록 만든다. 어떤 설명도 해설도 필요없다. 닥치고 사랑! 

그래서 그만큼, 나는 그 사랑이 아프다. 사랑 그놈 참...  

  


근데, 웨딩드레스 입은 수애, 미치도록 아름다운 여자. '드레수애'다워.
세상 모든 선녀들을 모아놓아도 수애 발끝에 따라갈까. 닥치고 수애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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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 김수영. 詩로, 술로, 노동으로, 온몸으로, 시대와 사회에 저항한 사람. 대개는 시대가 시인을 만든다. 시인은 시대속에서 부대낀다. 허나 어떤 시인은 그 등장만으로 새 시대를 연다. 나는 김수영이 후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詩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새로운 시인의 등장이었다. 

이 너절하고 졸렬한 야만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오롯이, 詩다. 자본과 폭력앞에 詩想이 떠오르지 않는 시대니까. 희망을 노래하고 온몸으로 희망을 뿜던 송경동 시인이 구속됐다. 

그 개새끼들은 詩를 모른다. 詩가 왜 필요한지, 시인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시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시인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시인은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몸을 지녔다지 않나. 시인의 아픔이자 숙명이다. 송경동 시인이 우리 앞에 나선 것은 그런 까닭에서였을 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詩를 말하는 것'이 사치가 된 시대, '시인이 나선 것'이 죄가 된 시대, 죽은 시인의 시대. 누군가는 그래도 아직 다른 나라보다는 시집이 많이 팔린다며 안도하지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시인을 척결하고자 자본과 국가는 혈안이 돼 있는데, 무슨 희망 따위를 말할까.  
  

 

김수영이 필요하다. 이젠 우리가 김수영이 돼야 하지 않을까. '난닝구' 입고도 저런 미친 존재감을 발할 수 있는 사람. 저 포스, 저 아우라는 정직한 자기성찰과 반성, 일상성에 대한 수용과 폭력을 향한 저항을 할 줄 알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진정한 시인이란 선천적 혁명가"라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그는 혁명가였다. 요절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혁명은 좀 더 앞당겨졌을지도 모른다.

2011년 11월27일. 김수영 탄생 90주년. 너에게 김수영을 권한다. 지금, 김수영이 필요한 시간.

시인을 석방하라던 이라영 씨의 말, 나도 그녀 말을 따른다. "시를 행한 죄-시인을 석방하라" 

 


수애
그런데 사실은... 있잖아... 지금, 김수영보다 수애가 더 좋아. ^^;;
수애가 지금 내겐 곧 詩이자 시인이란다. 더 정확하게는 서연, 이서연(<천일의 약속>).
저토록 강인하고 지적인 여자, 뭣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사랑을 할 줄 아는 여자. 우히~

그녀가 3년이라는 축복을 부여받았으면 좋겠다. 천일이잖아. 천일의 약속. 천일동안.


강릉
정작 커피축제 때는 못갔다. 커피향 가득한 공간이 된 강릉의 향기가 궁금했는데, 허난설헌을 만나기 위해 강릉을 갔다. 400여년 전 스물 일곱에 요절한 허난설헌은 어쩌면 시대가, 사회가 죽인 타살이 아니었을까.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가 받아야했던 멸시와 굴욕. 

강릉 초동마을의 늦가을.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은 없었고, 詩가 있었다. 허봉, 허초희(허난설헌), 허균, 시인이자 사회를 바꾸고 싶던 개혁가들의 자취가 덕지덕지. 조선, 한국, 그 앞선 시대 모두 이땅에선 기득권이 바뀐 적이 없다. 개혁이건, 혁명이건 성공하지 못했다.

강릉의 커피는, 커피대자본(들)의 획일적인 커피 맛과 향을 뒤집어주는 '커피혁명'을 바람.

스물일곱.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조플린, 짐 모리슨, 커트 코베인, 에미미 와인하우스가 요절한 나이. 그들은 결국 난설헌을 따르고 싶었던 거야. 난설헌이 스물일곱 요절의 시초였었어! 

그런데, 얼마나 예쁘고 총명했으면 난설헌이라고 불렸을까. 영정사진이나 조각은 너무 늙었고, 고전적이야. 재미가 없어. 강릉시의 미적 감수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난 아름다운 난설헌을 보고 싶어. 아름다운 여자, 난설헌. 수애 정도의. 

아놔~ 나 지금, 수애병인가 봐. 알츠하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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