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 더 컴퍼니 - 변화를 주도하고 성공으로 이끄는 혁신 전략
리사 보델 지음, 이지연 옮김 / 레디셋고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오염된 단어들이 있다. 변화가 그렇고, 혁신도 그렇다. 이에 따라붙는 창의나 창조 등도 마찬가지다. 특히 기업들은 이 단어(들)에 목을 맨 듯, 끊임없이 지저귄다. 그러나 안을 파고들면 내용이 없다. 동어반복에 좀 더 면밀히 따지고 들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포장된 수사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지. 니들 더 뺑이 쳐라. 떡고물 좀 떨어지게 해 줄 테니 회사 배 좀 더 불려봐라.

 

왜 그리 거칠게 말하나 싶을 텐데, 그들이 지저귀는 ‘혁신’의 공허함 때문이다.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라는 말을 교묘하게 포장했다. 이윤을 더 뽑아내기 위함이다. 외부 뿐 아니라 내부에서 경쟁을 부추긴다. 혁신이라는 말로 포장된 ‘등골브레이커’의 면모다. 기업, 물론 돈(이윤)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이윤인지, 그 이윤이 어떻게 나오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기업의 변화와 혁신이 단지 이윤을 위해서라면 그것은 공허하다. 변화와 혁신의 기저에는 노동이 검토돼야 하나 대개의 경우, 이런 배려나 생각은 빠져 있다. 기업과 사회의 관계 또한 텅 비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킬 더 컴퍼니》는 기업의 혁신과 변화를 말한다. 그것을 위해 회사를 죽이라고 말한다. 경쟁자의 입장에서 나의 회사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촉구한다. 그리고 회사에 만연한 좀비적 태도를 깨울 수 있는 다양한 프로세스와 방법을 제시한다. 나쁘지 않다. 어느 정도 회사가 커지고, 사람이 많아지다 보면 회사는 불가피하게 관성에 의해 움직인다. 표준화된 절차와 문서 작업이 따르고, 형식적인 일들이 많아진다.

 

“회사의 리더들이 사람이 아니라 프로세스에 초점을 맞춘다. 모든 업무를 표준화하고 형식화하다 보니 회사에 더 이상 개인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리더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프로세스를 살핀다.”(p.63)

 

책은 그것에 메스를 대라고 말한다. 필요하다. 회사가 관성에 의해 그냥 굴러가게만 하다간 시장에서 낙오되고 말 테니까.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관성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더 이상 신경 쓰지도 않고 무사안일주의 문화가 퍼진다. 관료화가 점점 똬리를 틀게 된다. 회사는 순응과 효율을 강조함으로써, 노동자들은 온순한 양 혹은 좀비로 전락한다. 노동자들의 주체성은 찾아볼 수 없다. 의사 결정 능력도 덩달아 감퇴되기 때문이다. 위험을 피하려는 문화가 바이러스처럼 휘감는다.

 

책이 강조하는 ‘생각하는 문화’, 나쁘지 않다. 저자는 그것을 ‘싱크잉크’라고 표현한다.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상적 회사를 지칭한다. 좀비 회사를 싱크잉크로 변화시키라고 말한다. 노동자들에게 탐구심, 호기심, 주인 의식, 창의적 문제 해결, 독립심을 심어주라고. 이것이 생산적인 혁신을 위한 기초를 놓는다고.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여기서 말하는 혁신의 내용은 결국 CEO와 임원, 주주들의 잇속을 챙기는 수단이다. 시장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방편에만 치우쳤다. 노동에 대한 진지한 탐구는 결여됐다. 회사를 죽임으로써 노동(자)의 성격과 질이 어떻게 바뀔 것이며, 사회 속에서 기업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유는 없다. 혁신이라는 말을 오염시킬 뿐이다. 혁신은 사람(노동)과 사회와 함께 결부돼야 할 문제지, 기업 안에서만 얘기돼선 안 될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것을 시장으로 환원하는 자세. 달갑지 않다. 기업 내 좀비문화를 바꾸기 위한 방법에서 좀 더 깊은 고민을 내포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업 내에서 시장으로 환원되지 않는 문화는 존재할 수 없을까. 함께 공유하기 위해 만드는 그런 문화들. 생산성과 효율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그것이 자연스레 따라올 수 있는 기업 문화와 노동에 대한 사유. 


그래, 맞다. 경영기술서에 뭘 그런 것까지 바라다니, 나도 참 오지랖이긴 하다. 네가 대안을 내놓아라, 하면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노동자협동조합을 꾸리는 일개 커피노동자가 세세한 그림까지 어찌 그리겠나. 다만 이 리뷰는 편향적이면서도 균형을 잡기 위한 것이다. 예단이지만,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 책이 건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리뷰를 쓸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런 사소한 태클을 거는 반대 의견도 좀 있어야지. 책도 말하지 않았던가.

 

“최선의 정책은 동료나 부하들이 다수 의견에 공공연히 반대할 수 있고 심지어 반대하도록 권장되는 회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p.76)

 

또 하나의 사소한 우려라면,

이 책이 권하는 다양한 방법론이 또 하나의 프로세스가 되지 않을까?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작성됐다. 

그러나 그런 사실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느끼는 바 그대로를 긁적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유.

그보다 중요한 것이 뭐가 있겠어요. 


 

그 대사 하나로 모든 것은 게임 셋.

(링컨의 흑인 하인이 링컨에게 건네는 대사)  

<링컨>. 이 장면만으로도 충분하고 완벽한 영화. 


평등, 자유, 공정함, 인간의 존엄성, 정의.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저 가치들로 보는 내내 심장이 두근두근 먹먹.


우리에겐 링컨 같은 대통령이 없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다.

링컨(권력)을 움직이게 만든 가치를 말하지 않음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링컨.

평등, 자유, 공정함, 인간의 존엄성, 정의의 또 다른 이름.

인민(people)의 이름으로.


링컨을 함께 하고, 봄비가 뽀뽀하는 광화문 거리를 함께 거닌 오드리에게 감사.

그래, 너에게도, <링컨>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러니까, 

3월7일의 냄새는 알싸했다. 안개 냄새 덕분이었다.  


봄안개의 밤이었다. 흡~. 봄이 밤이었고, 밤이 봄이었다. 

그 안개가 봄을 몽환적으로 만들었고, 냄새 덕분에 나는 충분히 봄이 될 수 있었다.


내가 볶고 내린, 

내 마음을 함께 흘려내린 커피를 오전 중 연신 맛있다며 마셔주었던 두 사람 덕분에,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였도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던 하루를 봄안개가 또 휘감았도다.  


아마도 그 커피와 안개에는 기형도가 블렌딩돼 있었다는 것을. 

차베스의 죽음에서 가장 가까운 내가 보유하고 있던 멕시코 치아파스 커피.

그 커피의 이름은 '기형도'였음을.  


그리하여, 

기형도의 [ 안개 ]가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봄밤. 3월 7일, 기형도 24주기(1989). 


1

아침저녁으로 샛江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邑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江을 건너야 한다.

앞서간 一行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空中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團은 샛江에서 한 발자국도 移動하지 않는다.

出勤길에 늦은 女工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동안

步行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食口가 되고

멀리 送電塔이 희미한 胴體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는,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江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空氣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속으로

植物들, 工場들이 빨려 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 당했다.

寄宿舍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三輪車는 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不幸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正午 가까이

工場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銃身을 겨눈다.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發水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邑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저녁으로 샛江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邑의 名物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株式을 가지고 있다.

女工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工場으로 간다




아울러, 

3월8일 오늘, 세계 여성의 날. 

빵(생존권)과 장미(인간의 존엄성과 인권)를 들고 나섰던 1908년의 오늘을 기념하며, 내가 아는 세상의 근사하고 아름다운 여성에게 조공하는 장미. ^^


오늘, 수운잡방에서는,

아름다운 여성 당신들에게 장미와 커피를. 어쩌면 덤으로 초콜릿까지.



@}-;--`--- 

@}->-- 

@>+-+--  

@}--,--`------- 


곧 수운잡방이 아름다운 당신을 맞이합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그 봄, 안개가 붑니다. 수운잡방이라는 안개. 당신의 마음을 감싸는 안개.

 



밤9시의 커피.

밤 9시가 넘으면 1000원으로 내려가는 커피 한 잔이 있는 곳. 그 커피 한 잔으로 생을 확인하고, 외로움을 위로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어떤 세계의 확장과 연결도 엿본다.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밤 9시가 되면, 낮에 만든 커피와는 또 다른 커피를 내린다. 그 커피는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다. 그리고, 당신과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3-03-08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품은삶 2013-03-10 00:46   좋아요 0 | URL
장미와 초콜릿,
여성이라면 당연히 받아야할 권리죠.^^

받아주세요.ㅎㅎ
 

 

2월25일,

거리를 거닐 때도, 미디어를 만날 때도, 온통 한 사람의 얼굴이 도배질하고 있었다. 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앞으로 5년 잘하길 바란다는 이성을 비집고 나오는, 저 지겹고 구린 얼굴과 쇳소리 비슷한 목소리가 싫었다. 그가 오십 차례 이상 내뱉은 '국민'이라는 카테고리에 나는 포함이 안 됐으면 하는 지극히 편협하고 옹졸한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진짜, 이땅의 역사적인 맥락에서 어설프게 형성된 '국민'이기보다 자주적인 근대화 과정을 섭렵한 '인민'이나 '시민'이고 싶으니까. (물론 알다시피 이 땅에 자주적인 근대화 과정은 없었다!)

 

그런 꿍한 마음을 치유해준 것이 아카데미 시상식이었으니.

이땅을 아주 이상하게 만들어놓은 미국(정부)이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아니 아주 무관할 수는 없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은 내게 하루 힐링이었다.

 

 

눈물이 찔끔.ㅠㅠ

 

내게서 줄리아 로버츠를 은퇴시킨 여신,

앤 헤서웨이(여우조연상)부터 시작된 힐링 릴레이는,

<레미제라블>팀의 감동적인 군무와 노래로 감정을 고조시키더니.

 

 

 

연기가 곧 '운명'이었던 십대의 소녀에게 혹했던 기억이 아직 짠하건만,

 

스물 셋의 나이, 마침내 오스카 트로피를 치켜 든 '꽈당' 제니퍼 로렌스.

 


 

새로운 영화를 내놓을 때마다 늘 나를 놀래키는 사랑과 이야기의 연금술사인,

아시아, 그리고 대만의 감독 이안과 그가 만든 눈과 마음이 휘둥그레지도록 놀랍고 감동스러운 이야기 <라이프 오브 파이>. 땡큐, 쉐쉐, 나마스떼! 이안 감독님의 천진난만한 수상 표정은 그야말로 압권.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미친 연기술사 <링컨>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 그 포스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최초의 3회 수상! 앞으로 우리는 링컨을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얼굴로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방점을 찍은 건, 미셸 오바마의 깜짝 등장에 이은 최우수 작품상 호명!

그의 입에서 <아르고>가 툭~ 나올 줄은 전혀 일절 네버, 와우~

 

감독 벤 에플렉의 기쁨 한 바가지를 우물에서 길어올린 듯한 속사포 랩 소견 발표와

그 옆에서 므흣하고 웃고 있는 제작자 조지 클루니의 그보다 아름다울 수 없는 모습.


 

할리우드의 시상식이 내 마음의 앙금을 깡그리 없애버렸다.

제 나라 대통령보다 남의 나라 영화와 배우들에게 마음을 뺏기고 힐링된 나를 욕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나라는 인간이니까.

 

2월25일, '원 배드 데이'에서 '원 파인 데이'로 바뀐 어느 날.

그래, 나는 어쩔 수 없이 앤 헤서웨이의 노예로다~ㅋ

 

<브로크백 마운틴>, 잭(제이크 질렌할)의 아내 루린에 대한 이야기를 외전으로 만들면 좋겠다. 그전부터 <프린세스 다이어리>로 알았다손 치더라도, 내게 처음 '배우'로 다가온 앤을 발견했던 그때 그 이야기. 그러고보니, 두 사람이 겹치네. 앤 헤서웨이, 리안. 덩달아 5년 전 1월22일 떠났던, 히스 레저.

 

아,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보고 싶다.

제니퍼 로렌스의 반짝반짝 빛나는!!! 구름의 흰 가장자리, 한줄기 빛나는 희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함께 보아요] 마을감수성을 자라게 하는 영화 ①
쿠바의 연인
정호현, 오리엘비스 / 이오스엔터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영화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영화가 그러할 수는 없죠. 체제 순응과 체제 강요(협조)적인 영화 또한 난무하니까요. 그러니, 영화를 보면서도 우리는 세상을 향한 감각의 촉수를 벼려야 합니다.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기.
여기, 함께 보고 싶은 영화들이 있습니다. 역시 권하는 것, 아닙니다. 제가 아는 한 이 영화들, 마을과 시민을 잇는 '레가토(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것)' 구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을공동체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고요? 아뇨, 그렇지 않을 겁니다. 모든 것은 차곡차곡 쌓여서 발현되는 법이거든요.

당신과 함께 마을감수성을 자랄 수 있게 하는 이 영화들, 보고 싶습니다.

 

<쿠바의 연인>

경쟁찬양지대로서 치열하고 지랄 같은 한국살이에 지친 여자(정호현 감독), 쿠바로 여행을 떠난다. 춤과 노래 그리고 여유, 이곳은 한국과 다른 낭만으로 다가온다. 금상첨화, 연하의 잘 생긴 쿠바남자 오리엘비스와 사랑에 풍덩! 두 사람, 결혼에 이른다. 지극히 한국적인 기준으로 적(성국)과의 동침이다!

이 영화, 뭣보다 쿠바의 마을풍경이 인상적이다. 그 남자 집에서 정류장까지 걸어서 5분인데, 30분이 걸리기 일쑤다. 이웃들과 일일이 손잡고 이야기하느라 그렇다. 정겹고 살갑다. 그런 마을살이에 젖은 오리엘비스의 말, 인상적이다. "돈보다도 삶을 사랑한다." 당연한 말인데도, 이 말이 생경한 이유? 따로 없다. 당신이나 나나 한국에 살기 때문이다. 맞다. 우린 지옥에 산다. 지옥에서도 찰나처럼 찾아오는 행복을 모르핀 삼아 우리는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해피해피 브레드>

마을카페를 꿈꾼다면, 이 영화가 주는 환상을 뿌리치기가 힘들다. 훗카이도 츠키우라 마을의 카페 마니. 미치도록 눈이 시린 도야코 호수를 배경으로 따끈따끈 맛있는 빵과 향긋한 커피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카페 마니의 풍경이다. 마을카페가 어떻게 힐링캠프가 되는지 엿보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라.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는 잔잔하고 소박한 일상에서도 누군가는 치유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가끔은 카페 마니를 찾아, 지랄 같은 세상사 모든 것을 놓고 커피와 빵의 향연에 심취하고 싶다. 홀수도 좋고, 커플도 좋다.

 

 

 

<일 포스티노>

마리오는 망명 온 파블로 네루다의 전용 우편배달부(일 포스티노)다. 여자 마음을 얻기 위해 詩를 알고 싶던 그, 네루다를 통해 메타포(은유)는 물론 세상이 詩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모든 것에 시상을 싣는다. 베아트리체와의 사랑도 함께다. 詩를 통해, 마리오를 통해 드러나는 세상, 감동적이다. 영화의 제목이 ‘일 포에타(시인)’가 아닌 ‘일 포스티노(우편배달부)’인 이유, 충분히 알 수 있다. 나는 사랑하는 당신의 일 포스티노가 되고 싶다. 메타포다. 마을의 일 포스티노, 매력적이다.

 


<카모메 식당>

이 영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연대와 관계의 영화다. 핀란드의 한 마을, 커피하우스를 연 사치에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피붙이는 아니지만, 정붙이로서의 연대 혹은 대안가족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들은 끈적끈적하지 않다. 뭣보다 그들, 생이 외로운 것임을 알고, 그것을 피하려 하지 않고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혼자임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의지하는 것도 민폐가 아니다. 그들이 마을이다. 식당(카페)이 곧 마을인 것, 식당에서 마을을 엿볼 수 있는 것, 행운이자 축복이다. 커피를 맛있게 하는 주문을 알고 싶다면, 영화를 열어볼 일이다. 참고로, 카모메는 '갈매기'라는 뜻이다.

 

 

[함께 보아요] 마을감수성을 자라게 하는 영화 ①
[함께 읽어요] 마을감수성을 자라게 하는 책 ①
[함께 읽어요] 마을감수성을 자라게 하는 책 ②

 

(또 이어집니다~)


댓글(2) 먼댓글(1)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함께 보아요] 마을감수성을 자라게 하는 영화 ①
    from 맺고,따고,볶고,내리고,느끼고,사랑하라! 2013-02-16 23:23 
    예전의 길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영화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영화가 그러할 수는 없죠. 체제 순응과 체제 강요(협조)적인 영화 또한 난무하니까요. 그러니, 영화를 보면서도 우리는 세상을 향한 감각의 촉수를 벼려야 합니다.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기.여기, 함께 보고 싶은 영화들이 있습니다. 역시 권하는 것, 아닙니다. 제가 아는 한 이 영화들, 마을과 시민을 잇는 '레가토(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것)'
 
 
saint236 2013-02-17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 포스티노 우연히 본 영화이지만 재미있게 봤던 영화입니다.

책을품은삶 2013-02-24 11:13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제겐 영원히 잊지 못할 영화 중 한 편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