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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평점 :
제목만 보고서 무슨 이야긴가 했다. 당연히 '미쳐야 미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건 이를 테면 '밥을 먹으니 배부르다' 처럼 아무 의미 없는 공허한 말처럼 들렸던 까닭이다. 하지만 한자를 읽고 나서야 이 책의 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어떠한 한 일이 제대로 몰두하는 '미쳐버리는 경지'가 있어야만 자기가 이르고자 하는 목적지에 '미친다'"라는 의미 였던 것이다.
이 책은 내가 가장 힘들어 하는 시기에 읽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 누구나 지금 자기의 시대가 가장 힘든 시대라고, 자기가 그 누구보다도 힘들게 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다가와 이러쿵 저러쿵 충고나 격려를 해주면, '니가 나에대해 뭘 안다고 그래'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말이다.
난 한문교사를 준비하고 있는 취업 준비생이다. 하지만 뼈저린 낙방을 겪고 나서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의미조차 상실할 정도로 낙심해 있었다. 이런 취업 실패의 아픔은 우리 시대에 비일비재한 일이기에 우리 시대의 취업 대란을 탓하기도 했으며, 나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한없이 추락에 추락을 거듭한 것이다. 골방에 들어 앉아 삶의 의미를 잃은 채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이 책은 나의 한심한 그런 모습을 비웃으며, '지금 나의 이런 방황이 얼마나 부질없고 미련한 짓인지'를 알게 해줬다.
이 책에는 한가지 일에 몰두하는 조선후기의 학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의 삶은 지금과도 똑같이 혼란스러웠으며 또한 신분적인 한계로 인해 쓰임도 받지 못하는 진퇴양란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처럼 나약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바로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에 몰두함으로써 그 일에서 일가를 이루는 경우도 있었으며, 무료한 일상에 활기를 주었다. 그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느끼게 된 사실은 '현실의 여건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할 뿐'이라는 깨달음 이었다.
정약용을 만나 인생의 묘미를 알게 된 황상의 이야기는 그래서 마음에 와닿았다. 황상은 자기가 머리가 안 좋음을 정약용에게 말한다. 하지만 정약용은 그런 황상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며 '三謹'의 조언을 해준다. 그에게 있어서 그 한마디 따스한 대답은 인생의 지침이 되었으며, 줄곧 새기고 새겨 죽던 그 날까지 切磋啄摩한다. 어리석음을 장점으로 여기던 스승을 만난 덕에 그는 인생을 줄곧 그런 긍정의 힘으로 힘차게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덕목이 이것이지 않은가.
또한 독서광 김득신의 '일만번' 이야기와 책에 미친 '이덕무'의 이야기는 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해야하는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책을 그렇게 미친 듯이 읽을 수 있었고 되풀이하여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그걸 힘든 노역이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며, 또하나의 즐거움이라 생각했기에 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어떤 한 일에 미칠 수 있는 근본은 그 일에 대해 즐거워 할 수 있느냐의 여부인 것이다.
힘든 시기에 버팀목이 되어주고 스승과도 같은 역할을 해준 책이다. 이 책은 나와 같이 자기의 갈길에 대한 회의에 빠진 사람이거나, 의심에 찬 사람에게 추천할만 하다. 또한 안대회 선생님의 '선비답게 사는 법'이나 '조선의 프로페셔널'을 읽은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