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성, 라퓨타...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들은 유명하니만치 이름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예전 애니였던 탓인지, '나우시카'와 함께 보진 않았었다.

그러다가 교회 아이들에게 보여줘야 겠단 생각이 들어서 보게 되었는데..

보고서 한참이나 얼어 있었다. 예전 애니를 탓하며 이런 명화를 놓치고 살았다니...

이건 명분만을 소중히 여기다가 아무것도 못한다는 바로 그것이지 않은가....

미야자키 하야오, 그는 자연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런 자연애를 강요하진 않는다. 다만 치욕스런 사람의 욕망을 앞서워 꼬집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같은 인간임에도 그런 욕망에 의해 살아가는 인간들을 탓하며 자연편을 들게 된다. 아무 욕심 없이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던 그런 동심, 그런 까닭에 더욱 그리워지는 지도 모르겠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마치던 날, 만세를 불렀다. 전북도청에선 그 날 저녁 폭죽을 터뜨리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나도 그 축제 분위기에 맘껏 동참하며 행복해했었다. 꼭 전북의 발전 없음이 모조리 새만금 때문인양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과연 자연이 무슨 죄였는가. 인간의 탐욕스러움이 그런 불균형을 만들었을 뿐인데 말이다.

그런 역설 때문인지 지금 난 전북이 좋다. 자연이 살아 숨쉬고 살기 좋은 자연과 인간의 땅이 그대로 있기 까닭이다. 라퓨타, 그 곳은 문명의 극단이었지만 인간이 물러난 그 자리엔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는 놀라운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멋지다. 그리고 눈물겹다. 오늘 라퓨타를 보면서 난 노마디즘의 유목적 삶을 동경하며 가슴으로 맘껏 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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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디즘 2
이진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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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에 비하여 2권은 좀 수월했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유목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부분에선 맘에 쏙쏙 와닿았다. 그런데도 한 권을 다 읽고나선 참 버겁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책을 오기로 읽긴 했는데 아직도 역량이 부족한 탓에 수박 겉핥기만 하는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적용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재밌었다. 철학적인 사유의 현실적 적용,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가 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생각하며 사는 사람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동지로 생각하며 사는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린 그런 자기만의 벽을 만들며 살고 있진 않은가. 그런데 이 책은 바로 그런 자기를 버릴 줄 아는 넉넉함과 포근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며 어떻게 매끄러운 공간으로 돌아올 것인지를 알려준다.

  노마디즘 '수많은 고원을 넘나들며 유목적인 사유를 하는 것' 이다. 힘겨울 지라도 그 고원들을 넘어가서 내가 진정 누구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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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디즘 1
이진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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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선택하기 까지 망설였다. 쉽사리 와닿지 않는 내용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난 서양철학에 대해서(물론 동양 철학도 제대로 아는 건 아니지만) 깡통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까닭은 천의 고원을 넘나들며 사유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보다,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에 산에 오른다는 그런 심리와 같은 것이 었다. 무모한 도전욕..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자 하는 심리까지 말이다.

  처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땐, 몇 페이지 읽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다가 그만두었다. 역시 무모하다^^. 그렇게 접어둘까 생각했었다. 이런 식으로 읽어봐야 나중에 한번 본 책이지 하는 자족 밖에 없을 터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그 도전욕을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이를테면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겐 자존심까지 버려가면서 백번을 찍어보고자 하는 심리와 비슷한 게 아닐까. 그래서 좀더 쉬운 책을 집어들었다. 동저자가 쓴 '철학과 굴뚝 청소부' 말이다. 물론 그 책도 나에겐 버거운 책이었다. 하지만 그림과 함께 실린 책이었기에 보는 내내 집중해서 볼 수 있었고 철학의 양상들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 기본적인 사유 안에 고미숙씨의 책들을 읽으면서 고원적인 사유, 매끄러운 공간의 사유를 현실에 적용하는 법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기본적인 지식들을 가지고 다시 덤벼들었다. 그랬더니 역시 처음보단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건 새발에 피에 불과한 거였다. 이런~~~ 나의 비천한 지식이 이렇게 드러날 줄이야^^ 좀 기분 나쁘긴 했지만, 엄연한 내 현실이었기에 이를 악물고 읽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누가 뭐래도 '되기'와 '유목적 사유' 부분이었다. 하지만 음악과 미술에 관해 논하면서 논지를 이끌어가는 부분에서는 도저히 이해는 커녕 집중할 수 조차 없었다. 고원을 넘는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횡적 학문의 깊이를 넓혀야 겠다는 생각을 그래서 하게 되는 것이다. 동서양의 기본적인 상식들을 넘나들어야 겠다. '생각의 탄생'에서 나오듯이 그렇게 여러 방면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사유하고 싶다.

  '앉아서 유목하기' 말만 들어서는 역설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유목이란 정착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목의 기본은 행동적인 측면에서 말하는 게 아니라 사유의 측면에서 하는 말이다. 바로 나를 내려놓는 無我를 통해 세상과 맘껏 소통할 수 있는 경지, 그게 바로 앉아서 유목하기의 경지인 것이다. 그럴 때 진정 나로서 세상을 향유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이런 정도의 리뷰 밖에 쓰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새로운 도전욕이 인다. 이젠 푸코와 소쉬르에 도전해볼까한다. 그렇게 지평을 넓혀나가다보면 이 책을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날도 곧 오리라. 그 땐 다시 열하일기에도 도전해볼 것이다. 기대된다. 책을 통해 새로운 배치가 형성된다는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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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전사 - 근대와 18세기,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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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와 전사' 뭐가 새로운 느낌이 드는 제목이다. 진부하지 않아서 좋고, 그렇다고 전혀 생소하지 않아서 더더욱 좋은 그런 제목이다. 제목을 보고서도 망설임 없이 고를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미숙'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이미 책에 대한 불신은 있을 수 없었다. 분명히 '수유+너머' 연구소의 다양한 강좌의 산물일 터이고, 고미숙이란 저자의 횡적 연대를 꾀한 문학의 산물일 터이니 믿음이 절대적일 수 밖에 없잖은가.

  이런 장황한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이 책은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해준 책이 되었다. 우선 책 자체를 보라. 600페이지에 이르는 내용을 가진 책임에도 지루하지도, 그렇다고 싱겁지도 않다. 글쓰기의 하나의 지평을 제시하면서도 다방면의 사유가 가능하다. 그 전부터 해오던 박지원과 푸코의 사유 방식에 근대와 전근대를 휘젖고 다니는 사유란 한마디로 놀라울 뿐이다. 그런 확트인 '闊潑潑'한 사유 덕분인지 읽는 내내 손에 힘이 들어가고 머리에는 온갖 희망이 싹텄다. 또한 나의 삶이 얼마나 고루한 경계 짓기에 분주했는지 반성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역사란 진보한다'라는 명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함과 동시에 '우리 몸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하는 명제에서부터 글쓰기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다방면으로 탐색하고 연구하는 책이다. 그 안에 녹아드는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서부터 철학에 대한 깊은 사유, 그리고 의학 등을 두루 관찰하는 치밀함까지 담고 있다. 과연 이 책을 뭐라고 할 것인가? 난 감히 연암 박지원의 말을 빌려 '유격대(소단적치인)'와도 같은 그런 의외성을 가진 책이라고 말하리라. 유격대는 전혀 생각치 못한 생소한 루트를 통해 적을 급습하여 단번에 허를 찌르는 군대 내 조직이다. '나비와 전사'는 바로 그런 글인 까닭에 읽는 내내 우리의 허가 여지 없이 노출되며 우리의 고정관념이 여지 없이 박살 난다.

  그래서인지 다 읽고나선 왠지 모를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내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가 받아들여 오던 것이 한 순간에 여지 없이 무너지는 혼란스러움... 그건 꼭 내 자체에 대한 부정과도 같은 것이었다. 김형경씨의 '사람풍경'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런 혼란스러움과 같은 것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은 좋았다. 언제나 경계를 나누기에 급급했던 내 자신에 대해, 그러면서도 그 경계 안의 내 것만을 고집하며 최고의 것인양 여겼던 나의 무지에 대해 반성해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젠 감히 말할 수 있다. '역사란 진보하지 않는다', '모든 학문은 유기적으로 통합될 때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길과 언덕 사이에 길이 있다' 라고 말이다. 지금 이런 이야기가 무슨 소리인지 궁금한 사람은 이 책을 꼭 보길 바란다. 올해 나의 書緣 가운데 뜻깊은 만남을 꼽으라면 난 '김형경씨'와 '고미숙씨'를 꼽을 것이다. 이젠 고정관념의 누습에서 벗어나 '나비'처럼 훨훨 날아 '전사'처럼 급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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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논어 3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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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권으로 마치는 도올 논어다. 왠지 다 읽고나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20편까지 다 해서 끝내지 않는 것일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한참 빠져 들만 하니깐 끝나는 데이트 처럼 묘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읽으면서 그의 깊이 있는 사유에 감탄도 하고 , 그의 호학에 관한 열정에 깊이 있는 동감도 하고 그랬다. 결국 내가 바라는 삶도 호학에 관한 열정으로 사는 삶이었으니까. 그런 나의 삶에 대한 고찰은 논어를 읽으며 형성 되었던 거다.

  공자의 호학정신, 그런 정신으로 그는 단골로서 예악에 지존이 되었던 삶에서 지식적 예악의 지존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많이 안다고 사람의 성품이 바르게 되는 건 아니란걸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다. 소위 대학교수라고 해도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 그렇다면 공자의 호학정신은 단순히 많이 아는 것이 아닐 것이다. 과연 뭐였을까?

  그건 여러 사람들 속에서 녹아들 수 있고,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오로라를 발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런 오로라를 발할 수 있는가. 바로 內自省, 內自訟하는 삶이며, 남에게 알려지기 보다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삶이며, 말의 효용보다 행동의 효용을 믿는 삶이다. 그런 삶으로 공자의 사상이 닦아졌기에 공자는 지금에 이르러 성인이란 칭호를 받을 수 있었으며, 그런 빛은 논어를 통해 현실에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이다.

  논어를 읽으며 단지 공자의 위대함만을 느낄 것인가. 그래서 안된다. 바로 나를 돌아보고 그런 주견들을 세워나가 내가 성인의 대열에 들 수 있도록 절차탁마하는 것이어야 한다. 도올 논어, 참 재밌으면서도 학문의 열정을 붇돋워 준 책이다. 약간의 소망이 있다면 도올 논어가 계속 나와 20편까지 완결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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