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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전사 - 근대와 18세기,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비와 전사' 뭐가 새로운 느낌이 드는 제목이다. 진부하지 않아서 좋고, 그렇다고 전혀 생소하지 않아서 더더욱 좋은 그런 제목이다. 제목을 보고서도 망설임 없이 고를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미숙'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이미 책에 대한 불신은 있을 수 없었다. 분명히 '수유+너머' 연구소의 다양한 강좌의 산물일 터이고, 고미숙이란 저자의 횡적 연대를 꾀한 문학의 산물일 터이니 믿음이 절대적일 수 밖에 없잖은가.
이런 장황한 말을 할 필요도 없이 이 책은 나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해준 책이 되었다. 우선 책 자체를 보라. 600페이지에 이르는 내용을 가진 책임에도 지루하지도, 그렇다고 싱겁지도 않다. 글쓰기의 하나의 지평을 제시하면서도 다방면의 사유가 가능하다. 그 전부터 해오던 박지원과 푸코의 사유 방식에 근대와 전근대를 휘젖고 다니는 사유란 한마디로 놀라울 뿐이다. 그런 확트인 '闊潑潑'한 사유 덕분인지 읽는 내내 손에 힘이 들어가고 머리에는 온갖 희망이 싹텄다. 또한 나의 삶이 얼마나 고루한 경계 짓기에 분주했는지 반성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역사란 진보한다'라는 명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함과 동시에 '우리 몸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 하는 명제에서부터 글쓰기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다방면으로 탐색하고 연구하는 책이다. 그 안에 녹아드는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서부터 철학에 대한 깊은 사유, 그리고 의학 등을 두루 관찰하는 치밀함까지 담고 있다. 과연 이 책을 뭐라고 할 것인가? 난 감히 연암 박지원의 말을 빌려 '유격대(소단적치인)'와도 같은 그런 의외성을 가진 책이라고 말하리라. 유격대는 전혀 생각치 못한 생소한 루트를 통해 적을 급습하여 단번에 허를 찌르는 군대 내 조직이다. '나비와 전사'는 바로 그런 글인 까닭에 읽는 내내 우리의 허가 여지 없이 노출되며 우리의 고정관념이 여지 없이 박살 난다.
그래서인지 다 읽고나선 왠지 모를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내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가 받아들여 오던 것이 한 순간에 여지 없이 무너지는 혼란스러움... 그건 꼭 내 자체에 대한 부정과도 같은 것이었다. 김형경씨의 '사람풍경'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런 혼란스러움과 같은 것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은 좋았다. 언제나 경계를 나누기에 급급했던 내 자신에 대해, 그러면서도 그 경계 안의 내 것만을 고집하며 최고의 것인양 여겼던 나의 무지에 대해 반성해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젠 감히 말할 수 있다. '역사란 진보하지 않는다', '모든 학문은 유기적으로 통합될 때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길과 언덕 사이에 길이 있다' 라고 말이다. 지금 이런 이야기가 무슨 소리인지 궁금한 사람은 이 책을 꼭 보길 바란다. 올해 나의 書緣 가운데 뜻깊은 만남을 꼽으라면 난 '김형경씨'와 '고미숙씨'를 꼽을 것이다. 이젠 고정관념의 누습에서 벗어나 '나비'처럼 훨훨 날아 '전사'처럼 급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