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도 많이 해서 가끔 헷갈린다. 오늘 책향기님 서재에 가서 난 이사를 몇번이나 했어요..하고 돌아섰는데 다시 생각하니 몇번이 빠져있었다. 정말 이사 지겹도록 했던 기억이다.
결혼 시작하며 첫번째 집은 포천과 의정부의 경계선에 있는 농가의 스레트 지붕에 친정집 창고같은 그런 집이었다. 군부대가 있는 관계로 얼기설기 지어서 월세를 주던 농가가 군부대 주변 마을에 유행처럼 번지던 때였다. 우리도 결혼을 하고 군부대 옆에 방을 얻다 보니 새로 지은 방한칸에 부엌한칸인 그런 집이었다. 흙마당이고 월세 오만원인 집..우리집 외에 마당 한쪽에 또 다른 군인가족이 살고 있었다..그땐 전기요금내는게 정말 아까웠었다.우리집엔 세탁기도 없었는데 전기요금을 옆집 군인가족이랑 같게 냈던것이다.주인집에는 대가족이 사는 집이었다, 다행이 모두 좋으신 분들이어서 김치도 잘 얻어먹고 김장도 해주시고 그랬었다. 살다보니 날림으로 지은 집이라 춥고 덥고 습기도 많이 차서 일년도 못 살고 두번째 집을 찾았다.
두번째집은 날림으로 지은 집이 아니고 주인집하고 붙어있는데 이집도 마찬가지로 군인들에게 월세주려고 개조한집이었지만 단단하게 잘 지은 방이었다.역시 방한칸과 부엌한칸이 전부였다.그런데 첫번째 집은 마당한쪽에 화장실이 있었는데 이 집은 화장실을 대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 그런집이었었다. 이집도 월세 오만원이 전부인 그런 월세방이었다. 그런데 이집에도 문제는 있었다.주인집에서 이 방을 달팽이 양식하는곳으로 사용했던지라 냄새에 민감했던 내게 그 알지 못하는 냄새가 어느날은 심하고 어떤 날은 날듯 말듯하고 그랬다. 그래서 이사를 가야지 하고 생각하던 참인데 주인집에서 옆에 공장을 지어 방 두개를 세주기로 했다며 우리더러 나가라고 한다..얼씨구..좋아해야하는데 정말 슬펐다. 내가 나가는것과 주인집에서 나가라고 하는것은 정말 엄청난 차이가 있더란 말씀..군인아저씨 몇명이 와서 이삿짐을 싸고 싣고 했다.
세번째집은 부대에서 몇정거장 떨어진 곳에 방을 얻었다,.결혼한지 이년도 안되었는데 세번째 집인것이다. 이곳 역시 월세 오만원에 주인집은 나무로 군불을 지피는 집이다. 옛날집인데 개조한집..내가 사용해야 하는 부엌은 지붕을 어떻게 연결해 방옆에 월세를 주기 위해 만든 그런 부엌이었지만 부엌문은 그야말로 바람불면 날아갈것 같았던 집이다. 이곳에 살다 보니 군인관사가 생겼다, 그런데 관사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단독 몇채인데 그 옆에 대대장이 살고 있었기때문에 군인 가족들을 만나면 말이 많았었다.
네번째 집은 전세다~~~~!!드디어 월세에서 벗어나고 결혼 이년만에 전세집을 얻었다.그것도 방두칸에 부엌이 딸린 독채..주인집은 애견을 하는 집이었고 교회 권사님이었는데 두분다 좋으신 분들이었고 아이들도 이뻤다.,결혼하고 전세를 얻으려 해도 그 주위에 전세를 주는 집이 없었는데 전세를 얻고 보니 월세 안나간다는 생각에 절로 부자가 될것만 같았다.그러나 꿈은 야무졌다..아이가 생긴것이다. 엄청난 입덧으로 맨날 링거를 꼽아야했고 유산끼가 심해 조마조마 한 열달을 보냈다.그러고 큰아이를 낳았다.공주다..못생긴 공주..지금 생각하면 정말 못생겼었는데 너무나 이뻤다.지금은 정말 이쁜 아이다..아이가 아장 아장 걸어다니며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클때 시내로 발령이 났다. 아..산골 시골을 벗어나는가 싶어 정말 정말 좋았다. 네번째 집까지는 그 동네에서 옆동네로 이사하는 정도였는데 다섯번째 집은 의정부시내 관사 아파트로 들어가게 되었다.
다섯번째 집은 아파트 관사다, 열여덟평.이제 평수를 말할수 있게 되었다..아니 결혼하고 처음으로 평수라는 말을 알게 된 것이다. 군인아저씨 몇분들이랑 시아버지가 오셔서 이삿짐을 나르고 정리하고 했다. 포장이사가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기억인데 모르겠다. 암튼 이때까지 군인아저씨들이 이사할때마다 애썼다는 것밖에는..한창 변화하던 마을의 시골 주택에서 살다 아파트로 오니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위아래층 사람들도 좋고 첫번째 집에 살때 같은 마당에 살던 군인 가족도 이미 와서 살고 있지..진짜로 내게 살만한 곳이 되었다. 이사하고 곧 둘째가 생겼다.그래서 이곳에서 둘째를 갖고 낳아 둘째 백일을 치루고 며칠후에 또 이사를 했다.
여섯번째 집도 군인관사 아파트다. 열여덟평. 꼼꼼한 아이들 아빠는 사병들을 데리고 먼저 도배며 장판까지 다 깔고 바르고 해서 내가 따로 손보며 다녀보질 않고 그저 이사하는날 이삿짐따라 옮기기만 하면 되었다,,큰아이가 다섯살 가을에 선교유치원에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이년정도를 보냈나보다.
일곱번째 집..열여덟평. 또 발령이 나서 일곱번째 집이다, 강원도 화천 삼팔선안에 자리잡은 군인관사 아파트다..달랑 세동인데 한동 덩그라니 떨어진 그런 아파트..모두가 가족처럼 지낸곳이기도 하다., 포장이사를 하기시작한다. 군인아저씨들 안 불러도 되는게 젤 고맙고 좋았다. 일곱번째 집도 이사하는날 처음 본다. 미리 벽지 붙이고 손보아 페인트칠까지도 해서 깨끗하고 아담한 아파트였다. 나중에 주위분들 이야기를 들으니 아이들 아빠가 엄청나게 빤질거리고 다니며 집을 꾸몄던가 보다..약 삼년을 살았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했고 삼학년 초에 전학을 한다..
여덟번째 집은 스물네평 아파트다. 역시 군인관사다. 이곳에선 육개월정도를 살다 발령이 났다.처음으로 아이가 전학을 하고 적응할만 하니 이사를 했다,.아이 전학문제가 젤 염려였다.
아홉번째 집도 관사인데 열여덟평으로 오래된 아파트였다. 연탄을 넣다가 기름보일러로 교체한 그런집이었는데 엉성한 아파트였다. 결국엔 리모델링 들어가는 바람에 옆동으로 또한번 이사해야했다. 큰 아이가 두번째 전학을 했는데도 힘들어 해서 짠했던 기억이다. 또 전학하고 뒤처지면 아이들이 무시하지나 않을까 해서 공부도 엄청나게 시켰던 기억이다,.그게 큰 문제가 되기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음해에 둘째녀석이 초등학교 입학을 했다.,
열번째 집이다. 열여덟평.옆동에서 리모델링한다고 이사와서 삼개월을 살고 다시 발령을 받아 이사를 하게 된다. 윗집 수도관이 터져서 언 계단을 온 통로 식구들이 얼음을 깨고 걸레로 닦으며 정이들었었다,.
열한번째 집..역시 군인관사 스물두평아파트. 아이가 겨울방학을 하고 옮겨서 였던지 유난히 춥고 썰렁했던 이삿날의 기억.처음으로 일층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한참 뛰고 날고 하던 둘째녀석에게 정말 좋은 집이었다. 다행이도 아이들이 적응도 잘하고 선생님들도 좋은분들을 만나 아직도 우리아이들에게 연락하시고 그런다.
열두번째..군인관사 새아파트 서른두평. 관사에서 살던사람들중 경력이 있는 순서로 새아파트 입주권을 주었는데 아이들 아빠도 해당이 되어 새아파트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가까운 곳이어서 아이들 학교도 그대로고 부대도 멀지 않아 당연히 이사를 했다..아니, 나중 후임을 생각해서 이사를 해야만 했었다.,그래야 우리가 다른곳으로 발령나면 후임이 이 집에 살수 있으니까..갑자기 집이 넓어지니 살림도 커지고 새것으로 변하게 되었다.
열세번째 집이다.스물 두평 군인관사아파트다. 발령이 났지만 이사를 안해도 된다고 해서 버티다가 아이들 아빠가 혼자 못살겠다고 성화여서 아이들을 또 전학시키며 이사했다. 큰아이가 육학년이었다. 다행이 여름방학때 이사해서 중학교 가는데 별문제가 없었다.
열네번째..드디어 내집이다. 서른 두평 아파트. 아이들 아빠가 서울로 발령이 났다..큰 아이가 중학교 일학년이었다. 큰아이가 중학생이고 하니 전학은 그만시키자는게 우리들의 다짐이었다,그래서 학교가까운 곳에 아파트를 샀다. 이 집은 이사다니며 처음으로 내가 아이들 아빠랑 함께 쓸고 닦고 함께 꾸미며 이사오기전에 들여다 본 집중 하나인것 같다. 이사들어오기전에 우리들 맘에 들게 수리를 조금씩 했는데 정말 행복했었다. 그전엔 그런 기쁨도 없이 그냥 이사하는날 따라가면 되었으니까..이사하고 전학도 안시키고 그러니 진즉에 아파트 사서 따라다니지 말고 있을껄 싶었다.다행이 큰아이는 자기가 가고 싶어하는 고등학교에 갔고 둘째도 가고 싶어 하는 중학교에 들어갔다. 다행이다. 이렇게 편하고 좋을수가 없다..그러나 월욜날 새벽에 나가는 아이들 아빠를 보면 너무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내집이라서 고치고 싶은곳 손보고 고치고싶은곳을 맘대로 손불수 있다는것이 정말 좋다.얼마전에도 현관 타일을 바꾸며 그런 생각을 했다..이래서 자기집을 사나봐..ㅋㅋ아니 무엇보다도 아이들 전학을 안시키고 좋은 친구들과 둘수 있어 덜 미안했던 것이다..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사할때마다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속상하고 그랬었는데 이젠 추억이라 말한다.
또 언제 열다섯번째 집이 생길지 모른다..하지만 난 지금 이집이 너무나 좋다. 언제나 곧 이사를 또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살다가 이사를 안해도 된다는 생각에 더욱 그럴것이다..
오늘 책향기님 덕분에 문득, 지나온 내 집들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나 아득한 먼 옛날 이야기 같고 내가 어떻게 그렇게 살았나 싶다. 그러나 그 당시엔 힘들었어도 지나온 집들과 수많았던 날들은 언제나 아늑하고 좋았던 내 보금자리들이며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앞으로도 그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