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컬링 (양장) - 2011 제5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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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목표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그러지 않는 삶은 분명한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또한 목표가 부재한 삶에 대한 의미부여성이 설득력을 잃듯이 이에 반한 목표지향적이고 명확한 삶의 가치에 대한 다양한 미사여구의 찬사들은 즐비하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고래적부터 바로 이러한 목표의식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당위성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을뿐 아니라 그러한 삶을 인생의 지고지순한 가치로 판단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나 요즘처럼 미래에 대한 불명확성과 변화무쌍한 미래의 삶에 대해서 바로 이러한 '목표의식'이 없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위험한 삶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라고 여겨지는게 세상 풍토이기도 하다.

 

특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겐 더욱더 '목표의식'이 필요하며 청소년기에 정해진 목표의식이 어떤것이냐에 따라 나머지 삶의 척도를 예측할 수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SKY, 서성한, 중경외시 무슨 고사성어 같은 말이지만 실은 대한민국 대학들을 서열화 하여 나타낸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열화를 기반으로 우리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목표의식을 알뜰하게 햠양시키고 있고 이에 순응하여 청소년들의 목표의식 또한 정해져 버렸다고 하면 너무나 지나친 비약일까...

 

컬링는 동계스포츠 종목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는 종목중에 하나로 가끔 올림픽경기시즌때나 TV방송을 통해서 한번쯤 스쳐가는 낯선 운동종목으로 비인기 종목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경기의 규칙이나 그 기원등 컬링전반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거니와 굳이 인기있는 종목도 많고 많은데 굳이 이런 종목에까지 신경써야할 당위성 또한 없는 종목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자면 여타 인기 스포츠 종목에 비해서 참여자나 관전자 양측 모두에게 별다른 목표의식을 부여하지 못할 소지가 다분한 그저그런 종목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냥, 컬링>는 생소한 컬링이라는 운동을 통해서 우정과 가치관 그리고 삶에 대한 깨달음을 다루고 있는 흔한 표현으로 성장소설에 분류되는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대게의 플롯이 대동소이하듯이 이번 작품에도 친구들간의 끈끈한 우정 그리고 가정과 학교생활의 갈등과 해소등 성장소설이 갖추어야할 덕목은 거의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영화 <국가대표>컨셉을 방불케 하는 내러티브는 스키점프를 컬링으로 대치한 것 같은 느낌마저 주고 있어 겉으로 표출되는 내러티브의 급반전등을 기대하기도 힘든게 사실인 평범한 스터럭쳐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성장소설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러한 구조적 표현적 내면적 평이성보다 끌리게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목표의식'의 부재라는 점에서 여타 성장소설과는 차별화 되면서 눈에 확 띄인다.

대게의 문학작품 특히 독자층을 청소년을 상대로 하는 작품의 경우 그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교훈적인 요소나 도덕적 가치관이 반영되기 마련이고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서 청소년층에게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만드는 구도가 정형화되어 있다는 면에서 이번 <그냥, 컬링>는 이러한 상식적인 구도를 벗어난다. 그래서 오히려 더 매력적인 면으로 다가온다고 해야겠다. 아무도 신경쓰지않고 아무도 처다보지 않는 심지어 웃음마저 자아내게 하는 이상하고 어리버리하게만 보이는 컬링이라는 운동을 통해서 작가는 요즘 우리 청소년들에게 만연되어 있는 왜곡된 '목표의식'에 대한 반기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컬링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하고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가고 적어도 게임을 통해서 승부욕이라도 고취할 수 있는 그런 목표의식은 전혀 보이지 않고 단지 컬링을 하고 빠져드는 이유가 '그냥'이라는 표현으로 그동안 기성세대에 의해 획일화된 목표의식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고차원적이고 자기희생을 통해서 인류애를 고취하는 틀에 박히고 이율배반적인 그러한 목표의식을 우리는 그동안 우리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음세대인 청소년들에게 강요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목표의식으로 인해 과연 인류의 삶이 고차원적이고 자기희색적이며 인류애를 고취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냐는 물음에 과연 누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으라차,며루치,산적,박카스처럼 흐릿한 목표의식을 가지면 대학진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고 그 이후 이들의 삶이 평탄하지 못하리라는 예측은 절로 가게 된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올바르다고 맹종하고 있는 '목표의식'이 과연 정말 정답일까라는 점과 뭐 특별한 이유없이 그냥 좋아서라는 미덥지 않게 보이는 사고가 틀렸다고 단정해야만 하는 현실속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한번쯤은 그냥 좋아서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필요한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특히 미래의 축이라 할 수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겐 더욱더 절실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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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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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하우스>를 접할때만 하더라도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배우자라는 후광정도의 유명세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을 읽으면서 남편인 포어와는 사뭇 다른 뉘양스(조너선이 타이포 그래픽이라는 유니크한 표현형식을 도입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면 니콜은 외형적 형식보다는 플롯 내부의 형식변화로 새로운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를 느끼면서 상당한 매력을 가진 작가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출간된지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사랑의 역사>를 읽고 그녀의 새로운 매력에 흠뻑 젖어들게 하는 기쁨을 갖게된 점이 무엇보다 책읽기의 즐거움을 배가 시켜준다.(특히 개인적으로 내러티브의 결말을 뻔히 예측할 수 있는 기존 여류작가들의 작품이나 붓끝같은 섬세함으로 일관된 표현방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취향에서 본다면 마거릿 애트우드에 비견해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니콜 크라우스의 작품에는 색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다-이는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폄하하는 뜻이 아니라 그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임을 말하는 것이다-)  

<사랑의 역사>역자 역시 지적했듯이 상당히 난해한 작품이다. 마치 비슷비슷한 색감을 정해진 프레임없이 맞춰가야하는 직소퍼즐 같은 작품이다.(역자의 이런 표현은 정말 책을 읽는 내내 공감을 갖게 할 만큼 정곡을 찌르기도 한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상당한 인내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왠만한 소설을 이삼일안이면 독파하지만 그녀의 소설은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마치 직소퍼즐을 맞추면서 내가 보는 색감이나 모양대로 맞춰나가다가 어느정도 아웃라인이 보이기 시작하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되듯이 그녀의 작품은 이런 퍼즐 맞추기와 흡사한 장고의 시간과 인내력을 요구한다. 얼핏 의도된 장치적 트랩들을 요소요소에 숨겨놓고 독자들의 곤욕을 즐기기라도 하듯 쉽게 그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 한다. 단지 소설이라는 문학장르가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해야한다는 덕목으로 따지자면 상당히 불량한 작품들 중에서 최상위의 반열에 자리잡고도 남을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내부적인 뒤틀림이 그저 외부 형식적 파괴로 인한 신선함을 능가하도 남을 만한 그녀 특유의 매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는 순간 이러한 곤욕과 인내는 그저 퍼즐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 불과함을 느끼게 된다. <사랑의 역사>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작품이다. 액자소설 형식을 취하고는 있으나 정형적인 영역을 무시하고 상호 내러티브가 삼투압의 현상과도 같이 넘나들면서 전체적인 스토리를 지배하는 독특한 구조적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이 내러티브 전반을 장악함으로서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레퍼토리하에 잘게 풀어놓은 알갱이 같은 이야기라는 점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고 작은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매력을 맛볼수 있기도 하다. 

<사랑의 역사>는 그야말로 극히 개인적인 인물들의 제 각각의 사랑을 담고 있다. 레오와 알마, 즈비와 로사, 다비드와 샬럿 그리고 아이작과 레오와 알마로 이어지는 연인간의 사랑, 부자부녀간의 사랑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전체적인 맥락은 역사라는 거대한 담론과 비견될 만큼이나 길고 깊은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다소 진부하게 그리고 뻔하게 느껴질 사랑 이야기를 한 차원 새로운 단계로 업그레이드 시킨점이 눈에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장치적, 화자시점적 난해함으로 가독성에 지장을 주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오히려 이번 작품을 미스테리하게 비쳐지도록 함으로써 단순한 사랑이야기를 한 단계 승화시켰다는 점이 마음에 와닿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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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통 민음사 모던 클래식 51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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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찌르는듯한 마천루의 숲(불과 한두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위 말하는 성전이라는 건축물 이외에 지금처럼 높다란 건물을 축조한다는 발상자체가 신성모독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그리고 손을 뻗으면 언제든지 닿는 풍부한 먹거리(이 또한 불과 몇세기전에는 왕족이나 귀족들 속칭 선택받은 자들이외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로 상징되는 현대라는 산물은 인류에 축복임에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마치 인류역사에서 보상받지 못한 부분을 확실히 보상받기 위해서 더욱더 이런 혜택에 천착하고 손에서 놓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 역시 기억해 두어야 한다. 이제 이러한 혜택 소위 말하는 첨단문명은 새로운 종교가 되었고 모든 이들에게 모토로 그리고 롤모델로 의심의 여지 없는 하나는 진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예전 인류가 가졌던 가치관이나 삶의 이정표를 속도가 느려터진 구세대 PC보다 못한 취급을 하게 되고 애써 기억에서 하나둘 씩 지워나가는 작업을 당연시 하고 있다. 마치 새로운 정보와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뇌를 깨끗하게 포멧하는 것 처럼...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의 <숨통>은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작지만 정말 소중한 삶과 기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번쯤 되돌아볼 여유를 제공하고 있는 작품이라 해야겠다. 특히 팍스아메리카로 명명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모든 가치관과 삶의 척도를 미국식에 정조준하고 그를 향해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치킨런 게임에 참가하여 종착점을 향해 앞만 바라보고 뛰어가는 주자들에게 바로 뒤에 뛰어오는 주자와 한참 뒤에 뒤쳐저 있는 주자들을 아주 잠시나마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그늘막같은 쉼터를 제공하고 있는 작품이다. 총 12편의 단편들을 묶어 자칫 지루함을 가져올 리스크을 헤치하면서도 각 단편들 하나만으로도 정제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책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키준다. 무엇보다 각각의 작품들의 등장인물이나 시대적 지역적인 배경들이 서로 상이하면서 단편들 전반을 흐리고 있는 플롯은 아프리카 정확하게 나이지리아인들의 삶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아프리카 문학을 접할 수 없는 국내독자들에게 반가운 작품일 수 밖에 없다. 기꺼해야 아웃오브 아프리카라는 영화나 각종 다큐를 통해 접하게 되는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어찌보면 제3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아프리카일 수 밖에 없음을 이번 작품을 접하면서 새삼 느끼게 한다. 나이지라아 출신 작가의 숨결이 그대로 담겨있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은 남다를수 밖에 없다. 그리고 문화적 이격감으로 인한 아프리카의 몰이해를 걱정할 필요성을 제거해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한 아프리카를 만날 수 있다는 점(물론 수박 겉핧기 식이지만 그래도 기존 서구의 시각으로 바라보던 아프리카에서 장족의 발전을 기대할만하기도 하다)에서 상당한 반향을 가져 오기도 한다. 

12편의 단편을 통해서 우리는 저발전 상태에서 고도로 발전된 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이들의 삶 그리고 축북받은 사회에서 다시금 바라보게되는 자신이 거쳐왔언 족적들을 통해서 과연 어떠한 삶이 진정한 삶일까라는 무거운 주제를 접하게 된다. 단지 아프리리카(여기서는 나이지리아로  한정되었지만)가 대변하는 피폐한 물질문명의 사회가 자본주의 최상층에 자리한 미국을 위시한 서구자본주의 사회보다 떨어지는게 무엇일까라는 극히 간단명료한 질문에 쉽게 답을 할 수 없게 한다. 이는 비단 작가의 고향인 나이지리아 뿐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뭐라 확정적인 언급을 회피하게끔 하는 동변상련의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글로벌시대을 맞이하여 전향적인 사고를 가지고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바이블같은 문구가 각인된 우리에게 <숨통>은 왠지 모르게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정답이 아닐 수 도 있다는 속사임으로 다가온다. 물론 그러한 속사임은 아주 작고 시간의 흐름속에 묻혀지겠지만 여전히 귀가에서 맴도는 작가의 속사임에 귀기울려지는 이유는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본성에 가까운 것임을 간파하게 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즐거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다.

작중 유령편에 나오는 가짜 장티푸스약을 파는 사람의 "제 약은 사람들을 죽이지 않습니다. 단지 병을 고치지 않을 뿐이지요"의 말을 건강을 해치는 파렴치한 범죄행위로 진단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제도화된 틀 속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병을 고치지 못할뿐 사람을 죽이지 않는 약과 병을 고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반대급부로 원하는 약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과연 어떤 선택을 요구하는 세상일지는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이심전심으로 알고 있는 지금 <숨통>은 우리들 스스로에게 그나마 숨쉴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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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순신의 삼국지 이야기 

<청일전쟁>을 쓸 때는 중국과 일본의 사료들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까지 열독했을 정도로 고증에 대한 그의 열정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진순신의 삼국지 이야기>는 이런 독서, 연구, 집필 이력의 연장에 있다. 진순신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제본이 헤지도록 <후한서> <자치통감> <삼국지>등을 읽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삼국지>의 무대를 찾아 네 차례나 현장을 답사하기도 했다.

이런 탄탄한 토대 위에서 나온 진순진의 작업은 작금의 문인들이 <삼국연의>라는 '허구'의 연장에서 상상력과 입담만으로 풀어낸 이른바 '현대판 삼국지'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중국 역사와 문명에 정통한 작가가 사실-사료-고증-현장에 발 딛고 이루어낸 성과인 것이다 

 

 

2. 삼국유사 길위에서 만나다

 

‘삼국유사 스토리텔링’의 세 번째 책. <삼국유사>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유통되었는지를 치밀하게 추적한 시리즈 첫 권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 일연의 글쓰기에서 현장 감각·정치적 감각·균형 감각을 포착한 두 번째 권 <삼국유사 글쓰기 감각>에 이어, 이번 책에는 일연의 발자취를 따라 실제 이야기 현장에 서서 <삼국유사> 대목을 음미할 수 있도록 안내한 인문 기행서이다. 

 

 

 

 

3. 인의로 천하를 얻다 

 

정사를 바탕으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깊은 고찰과 원숙한 필치로 그려낸 열전의 결정판. 시대를 넘어& lt;삼국지>가 주목받는 이유는 매력적인 ‘인물들’ 때문이다. 난세의 간웅 조조, 인의의 군주 유비, 강동의 독불장군 손권, 치세의 수재 제갈량 등은 물론 용맹하나 지략이 부족한 여포,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조운, 잔인한 야심가 사마의 등 개성 있는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역사를 이끌어 가는 것은 인물이다. 한 인물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거나, 역사적 상황이 한 인물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한다. <인의로 천하를 얻다>는 한 시대를 열정적으로 살았던 인물들이 인간으로서 고뇌하고 절망을 극복하거나 실패하는 진솔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들의 전쟁만큼 치열했던 삶은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전이 지닌 오랜 지혜의 정수를 전해 줄 것이다 

 

4.  일본, 한국 병합을 말하다   

 

일본의 진보 학자들이 2010년 일본의 이와나미 서점에서 간행하는 학술 잡지 「사상思想」에 '한국 병합 100년을 묻다'라는 주제로 특집호를 마련하고 같은 해 8월에 이를 토대로 심포지엄을 개최한 결과물을 단행본으로 엮은 책이다. 한국 병합을 주제로 한 「사상」 특집호가 나오자마자 매진 사태가 벌어지고 이 특집호를 보강해 단행본으로까지 출간하는 등 일본에서의 반응은 뜨거웠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한국 병합'을 둘러 싼 문제는 한일 양국에서 여전히 정치적, 역사적으로 논쟁적인 이슈임이 분명하다. 이 책을 기획한 미야지마 히로시는 이 문제를 놓고 일본 국내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상이며,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의 100년 동안에도 논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한국 병합이 어떤 의미로 자리매김해야 되는지 오늘날의 시점에서 다시 검토해 보자고 제안한다 

 

5. 제국의 시대와 동아시아 연대 

 

근대 이후 동아시아에서 제기된 지역연대에 대한 이상과 비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 지역이 거쳐야 했던 갈등과 좌절의 역사를 반영한다. 한국 근현대사와 동아시아 지역연대에 대해 천착해온 김경일(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교수)은 서남동양학술총서 <제국의 시대와 동아시아 연대>를 통해 그간의 이러한 문제의식에 한층 깊이를 더했다.

이 책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그리고 인종주의와 국가주의를 통해 발현된 근대의 전쟁·폭력·학살·차별 등과 아울러 전후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이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폭발적으로 나타난 근대 이후 동아시아의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역연대를 모색했던 지식인들의 움직임을 객관적 시선으로 살피면서 오늘날 동아시아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연대의 방향을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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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시 no.6 #1 무한도시 no.6 1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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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탄생에서 진화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는 그야말로 고달픈 투쟁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유인원에서 분파되어 사람속으로 진화하면서 인류는 자신의종을 제외한 그 어떤 다른 종의 번영을 감내하지 못하였고 그들종의 희생으로 자연계를 점령하고 군림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더 이상 경쟁자가 없는 세상은 이제 인류라는 같은 종을 대상으로 목적이동이 되었고 그 게임은 제로섬 게임과 같이 전부다 획득하던지 전부다 내어주어야 하는 브레이크없는 기관차의 질주를 하고 있다. 과학혁명에 근거한 산업혁명은 지구상에 사는 인류에게 거대한 희망을 던져준 동시에 또 다른 어둠을 드리우고 불과 몇십전 부터 시작된 디지털 혁명은 세상을 다른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논리를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끊임없는 질주는 언젠가 그 종착점에 다달을수 밖에 없지만 그 누구도 그 종착점이 어떤 곳인지 대해선 장담할 수 없기도 하다(아니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유토피아소설보다는 디스토피아 픽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인간의 불안정한 감정 표출의 일부분일 것이다. 한때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미래소년 코난>이나 마거릿 애트우드의 <인간종말 리포트>는 화려한 과학문명의 끝에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작품들이다. 억제되지는 못하는 소비와 그에 따른 욕망 그리고 권력욕은 결국 인류라는 자체를 불행으로 초대하는 특별 초대장인지도 모르고 지금도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그 초대장을 손에 쥐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아사노 아츠코의 <무한도시 NO.6>는 이러한 결코 받고 싶지 않는 초대장을 거머쥔 인류의 미래를 그리고 있는 미래소설이자 디스토피아계열의 작품으로 일본에서만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이다. 핵전쟁과 이어지는 기상이후로 황폐화 된 지구에서 그동안 반목과 질시를 반성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재출발하는 여섯 신성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디스토피아소설의 참맛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상상력의 한계성을 느끼지 못하게 할 정도의 미사여구도 없고 화려한 인물의 설정이나 미학적인 배경도 엿 볼 수 없다.(다소 거대한 반전이나 교묘한 추리구조 그리고 화려한 배경묘사를 기대했던 독자라면 약간은 시큰둥한 작품으로 비쳐질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요소들이 통상의 미래소설이나 디스토피아소설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사뭇 다르게 현실을 최대한 반영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무한도시 NO.6는 미래상에 존재하는 특별한 도시가 아니라 어쩌면 현재 거대하게 성장하고 있는 매트로도시의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감을 높여주고 있다. 거대한 도시의 성장이 주변지역을 낙후시키듯이 서쪽구역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NO.6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마치 시나리오를 접하는 듯한 구조로 내러티브를 끌어가고 있어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도 한다. 장면 하나 하나 촬영하듯이 써내려가는 내러티브에 속도감을 가하고 있어 한번 손에 잡으면 그 끝을 보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 끝을 향해서 가다보면 끝이 조금이라도 늦게 오길 바라는 그런 느낌마저 들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암울한 미래상을 그리고 있지만 한편으로 작가가 그려내는 미래가 단지 먼 미래가 아닌(배경을 2017년으로 상정했다는 점에서 무언의 의미가 존재한다)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말해주는 작품으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대변해주고 있다. 굳이 작중 흥미를 배가시키기 위해서 자극적인 소재를 첨가하지 않더라도 작품을 이처럼 돋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또다른 매력이기도 하다.(이는 현실과 괴리된 막연한 미래상이 아니라 마치 현실을 재현한듯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여 현실감을 증폭시키므로서 미래를 독자들 스스로가 상상하게 하는 재미가 가미되어 있다) 재미와 흥미본위를 넘어 이번 작품에는 강렬한 메세지를 담고 있다. 그 메세지는 다름 아닌 우리가 상상하는 유토피아적인 미래가 어쩌면 우리 자신 스스로가 만들어낸 덫에 의해 산산조각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은 비단 작가의 눈에만 그려지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어쩌면 마지막일 수 도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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