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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그레이트 하우스>를 접할때만 하더라도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배우자라는 후광정도의 유명세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을 읽으면서 남편인 포어와는 사뭇 다른 뉘양스(조너선이 타이포 그래픽이라는 유니크한 표현형식을 도입하여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면 니콜은 외형적 형식보다는 플롯 내부의 형식변화로 새로운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를 느끼면서 상당한 매력을 가진 작가로 기억되기 시작했다. 출간된지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사랑의 역사>를 읽고 그녀의 새로운 매력에 흠뻑 젖어들게 하는 기쁨을 갖게된 점이 무엇보다 책읽기의 즐거움을 배가 시켜준다.(특히 개인적으로 내러티브의 결말을 뻔히 예측할 수 있는 기존 여류작가들의 작품이나 붓끝같은 섬세함으로 일관된 표현방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취향에서 본다면 마거릿 애트우드에 비견해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니콜 크라우스의 작품에는 색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다-이는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폄하하는 뜻이 아니라 그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임을 말하는 것이다-)
<사랑의 역사>는 역자 역시 지적했듯이 상당히 난해한 작품이다. 마치 비슷비슷한 색감을 정해진 프레임없이 맞춰가야하는 직소퍼즐 같은 작품이다.(역자의 이런 표현은 정말 책을 읽는 내내 공감을 갖게 할 만큼 정곡을 찌르기도 한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상당한 인내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왠만한 소설을 이삼일안이면 독파하지만 그녀의 소설은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마치 직소퍼즐을 맞추면서 내가 보는 색감이나 모양대로 맞춰나가다가 어느정도 아웃라인이 보이기 시작하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되듯이 그녀의 작품은 이런 퍼즐 맞추기와 흡사한 장고의 시간과 인내력을 요구한다. 얼핏 의도된 장치적 트랩들을 요소요소에 숨겨놓고 독자들의 곤욕을 즐기기라도 하듯 쉽게 그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 한다. 단지 소설이라는 문학장르가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해야한다는 덕목으로 따지자면 상당히 불량한 작품들 중에서 최상위의 반열에 자리잡고도 남을 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내부적인 뒤틀림이 그저 외부 형식적 파괴로 인한 신선함을 능가하도 남을 만한 그녀 특유의 매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는 순간 이러한 곤욕과 인내는 그저 퍼즐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 불과함을 느끼게 된다. <사랑의 역사>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작품이다. 액자소설 형식을 취하고는 있으나 정형적인 영역을 무시하고 상호 내러티브가 삼투압의 현상과도 같이 넘나들면서 전체적인 스토리를 지배하는 독특한 구조적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이 내러티브 전반을 장악함으로서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레퍼토리하에 잘게 풀어놓은 알갱이 같은 이야기라는 점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고 작은 성취감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매력을 맛볼수 있기도 하다.
<사랑의 역사>는 그야말로 극히 개인적인 인물들의 제 각각의 사랑을 담고 있다. 레오와 알마, 즈비와 로사, 다비드와 샬럿 그리고 아이작과 레오와 알마로 이어지는 연인간의 사랑, 부자부녀간의 사랑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전체적인 맥락은 역사라는 거대한 담론과 비견될 만큼이나 길고 깊은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다소 진부하게 그리고 뻔하게 느껴질 사랑 이야기를 한 차원 새로운 단계로 업그레이드 시킨점이 눈에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장치적, 화자시점적 난해함으로 가독성에 지장을 주는 것 역시 사실이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오히려 이번 작품을 미스테리하게 비쳐지도록 함으로써 단순한 사랑이야기를 한 단계 승화시켰다는 점이 마음에 와닿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