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통 민음사 모던 클래식 51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하늘을 찌르는듯한 마천루의 숲(불과 한두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소위 말하는 성전이라는 건축물 이외에 지금처럼 높다란 건물을 축조한다는 발상자체가 신성모독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그리고 손을 뻗으면 언제든지 닿는 풍부한 먹거리(이 또한 불과 몇세기전에는 왕족이나 귀족들 속칭 선택받은 자들이외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기도 하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로 상징되는 현대라는 산물은 인류에 축복임에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마치 인류역사에서 보상받지 못한 부분을 확실히 보상받기 위해서 더욱더 이런 혜택에 천착하고 손에서 놓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 역시 기억해 두어야 한다. 이제 이러한 혜택 소위 말하는 첨단문명은 새로운 종교가 되었고 모든 이들에게 모토로 그리고 롤모델로 의심의 여지 없는 하나는 진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예전 인류가 가졌던 가치관이나 삶의 이정표를 속도가 느려터진 구세대 PC보다 못한 취급을 하게 되고 애써 기억에서 하나둘 씩 지워나가는 작업을 당연시 하고 있다. 마치 새로운 정보와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뇌를 깨끗하게 포멧하는 것 처럼... 

치마만다 은고지 아디치에의 <숨통>은 작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작지만 정말 소중한 삶과 기억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한번쯤 되돌아볼 여유를 제공하고 있는 작품이라 해야겠다. 특히 팍스아메리카로 명명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모든 가치관과 삶의 척도를 미국식에 정조준하고 그를 향해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치킨런 게임에 참가하여 종착점을 향해 앞만 바라보고 뛰어가는 주자들에게 바로 뒤에 뛰어오는 주자와 한참 뒤에 뒤쳐저 있는 주자들을 아주 잠시나마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그늘막같은 쉼터를 제공하고 있는 작품이다. 총 12편의 단편들을 묶어 자칫 지루함을 가져올 리스크을 헤치하면서도 각 단편들 하나만으로도 정제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어 독자들로 하여금 책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키준다. 무엇보다 각각의 작품들의 등장인물이나 시대적 지역적인 배경들이 서로 상이하면서 단편들 전반을 흐리고 있는 플롯은 아프리카 정확하게 나이지리아인들의 삶과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아프리카 문학을 접할 수 없는 국내독자들에게 반가운 작품일 수 밖에 없다. 기꺼해야 아웃오브 아프리카라는 영화나 각종 다큐를 통해 접하게 되는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어찌보면 제3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아프리카일 수 밖에 없음을 이번 작품을 접하면서 새삼 느끼게 한다. 나이지라아 출신 작가의 숨결이 그대로 담겨있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은 남다를수 밖에 없다. 그리고 문화적 이격감으로 인한 아프리카의 몰이해를 걱정할 필요성을 제거해서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한 아프리카를 만날 수 있다는 점(물론 수박 겉핧기 식이지만 그래도 기존 서구의 시각으로 바라보던 아프리카에서 장족의 발전을 기대할만하기도 하다)에서 상당한 반향을 가져 오기도 한다. 

12편의 단편을 통해서 우리는 저발전 상태에서 고도로 발전된 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이들의 삶 그리고 축북받은 사회에서 다시금 바라보게되는 자신이 거쳐왔언 족적들을 통해서 과연 어떠한 삶이 진정한 삶일까라는 무거운 주제를 접하게 된다. 단지 아프리리카(여기서는 나이지리아로  한정되었지만)가 대변하는 피폐한 물질문명의 사회가 자본주의 최상층에 자리한 미국을 위시한 서구자본주의 사회보다 떨어지는게 무엇일까라는 극히 간단명료한 질문에 쉽게 답을 할 수 없게 한다. 이는 비단 작가의 고향인 나이지리아 뿐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뭐라 확정적인 언급을 회피하게끔 하는 동변상련의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글로벌시대을 맞이하여 전향적인 사고를 가지고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바이블같은 문구가 각인된 우리에게 <숨통>은 왠지 모르게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정답이 아닐 수 도 있다는 속사임으로 다가온다. 물론 그러한 속사임은 아주 작고 시간의 흐름속에 묻혀지겠지만 여전히 귀가에서 맴도는 작가의 속사임에 귀기울려지는 이유는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본성에 가까운 것임을 간파하게 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즐거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한다.

작중 유령편에 나오는 가짜 장티푸스약을 파는 사람의 "제 약은 사람들을 죽이지 않습니다. 단지 병을 고치지 않을 뿐이지요"의 말을 건강을 해치는 파렴치한 범죄행위로 진단하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제도화된 틀 속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병을 고치지 못할뿐 사람을 죽이지 않는 약과 병을 고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반대급부로 원하는 약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과연 어떤 선택을 요구하는 세상일지는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이심전심으로 알고 있는 지금 <숨통>은 우리들 스스로에게 그나마 숨쉴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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