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승옥의 <무진기행> 은 한국 현대문학(본격적인 한글문학)의 시발점이라고 해도 큰 범주내에서 벗어나지 않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전쟁의 후유증을 제대로 치유하기도 전에 4.19혁명이나 5.16쿠테타 그리고 이어지는 경제발전 5개년 계획등 그야말로 초토화된 강토(물론 정신적으로 초토화된 우리네의 정신세계를 아울러서요)에 뜬금없이 정말 갑자기 자리잡기 시작하는 현대성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던 1960년대를 온몸으로 부딪혀 써내려간 작가이기 때문이죠. 1960년대는 지금의 잣대로 제단할 수 없는 근대성과 현대성이 혼합된 시대였고, 그 한복판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작품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들의 공통점을 굳이 찾는다면 그 배경이 서울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지기행에서 무진이라는 가상의 도시가 등장하지만 그 가상의 도시인 무진 역시 서울의 이라는 도시의 또 다른 이름이자 서울이라는 도시와 연결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작가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근대성과 현대성이 혼재하는 그야말로 뚜렷한 정체성이 없었던 당시의 시대상의 집합체로 인식하였던 것이고 하구요. 여기에 서울과 가장 어울릴 것 같은 '나' 를 등장인물로 등장시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수록된 작품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가 다소 무거운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많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산업화란 패러다임앞에 그대로 노출된 소서민들의 당황스러운 혼란 그리고 이를 제빠르게 이용하는 또 다른 면을 보면서 들게 되는 자괴감이나 상실감등 매건의 작품에 걸쳐 있는 잿빛같은 색깔들이 주를 이루고 있죠. 그나마 '차나 한 잔' 이라는 작품에서 다소 유머러스한 블랙코미디를 보는 위안을 얻기는 합니다만 왠지 발길 무거운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는 거죠. 뭐 그렇다고 당시 시대상의 정치적인 사유나 철학적인 사유가 진하게 배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1960년대 서울이라는 그 자체가 던져주는 메타포는 충분하게 느낄 수 있는 단편들입니다.  


          수록된 단편들을 한번 살펴보면 음 '무진기행' 은 패스하겠습니다. 워낙 알려진 작품들이다보니 오히려 '무진기행' 으로 인해 다른 작품들이 조명을 제대로 못받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정도로 괜찮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먼저 '차나 한 잔' 이라는 작품은 김승옥 단편중 아마도 유일하게 유머러스한 뉘양스를 주는 작품입니다. 삶을 살면서 한두번쯤을 겪어봤을 설사와의 전쟁아시죠? 무슨 말인고 하니 도저히 교감신경으로는 제어불가능한 거의 천재지변같은 불가항력적인 사태를 맞이해본 독자들 충분히 있을리라 생각됩니다. 특히 출퇴근 시간 북적거리는 대중교통안에서 갑자기 그 분의 호출을 받은 경우, 과연 이런 사태를 어떻게 극복들 하셨나요? 다양하고 아주 구구절절한 스토리들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차나 한 잔' 편을 보게 되면 대충 만화가 이선생의 고충을 짐작하게 됩니다. 신문사에 비평만화가를 연재하던 이 선생 어느 날 자신의 연재가 중단되고 해고 통보를 받아 심히 불편한 상황에서 버스안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설사... 그리고 급히 찾아들어간 뒷간과 해방감... 그 이후 이 선생에게 다가오는 삶의 변화가 마치 급한 설사병에 쳐했을때 처럼 우리 인생의 삶(특히 1960년대 서울에서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삶)과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에피소드일지도 모른다는 거죠.


           또다른 단편중에 개인적인 견해지만 '염소는 힘이 세다' 라는 작품은 참으로 서글픈 스토리를 갖고 있는 작품이면서 국가권력(염소를 상징하겠죠)이라는 거대한 담론에 저항할 수 없는 소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정치적인 뉘양스가 담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상당히 비약적인 견해일수 있지만 염소는 힘이 세다는 것은 권력을 갖지 못한 서민층의 오마주로 비쳐질 소지가 다분히 있다는 것이죠. 단편의 제목에서는 뭔가 활기차고 희망적인 뉘양스를 던져주지만 힘이 센건 염소(가진자을 지칭하면서도 한편으로 가지지 못한 자들의 마지막 희망으로도 비쳐질수 있습니다)뿐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모티프를 가지고 있으면서 결국 그런 염소는 당초부터 가질 수 없는 존재로 비쳐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마 1960년대 서울속에서 살아갔던 모든 소서민들이 가진 애환의 또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서울의 달빛 0장' 은 수록된 단편들 중에서 또 다른 분위기를 감지하게 하는 작품인데요. 암울했던 60년대를 넘어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말해서 산업화, 자본주의, 군부시대등 어느 정도 패러다임에 익숙해져 가는 시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자 동시에 '나'  개인이 가지게 되는 정체성 혼란의 극단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이혼후 경험하게 되는 많은 여성과의 관계를 여행자의 구도로 표현한 서사는 상당히 유니크하게 다가오기도 하는데요, 왠만한 남성독자들이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에 와닿는 서사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에 게재되어 있는 단편들은 1960년대 우리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는 편린들입니다. 특히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작가 자신의 제2의 고향이라할 여수, 순천등을 배경으로 한국전쟁이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파탄난 당시의 소시민들의 실상을 보는듯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감정적으로 상당히 무거운 내용들의 작품입니다. 비록 '차나 한 잔' 같은 유머러스한 작품도 있지만 이 역시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작품임에 틀림없구요. 김승옥은 전체적으로 당시 지배적이었던 소시민들의 정서를 민낯 그래도 여과없이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50여년전 수도 서울의 양면적이고 이질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리 만큼 자조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상당히 현실적인 내러티브를 대면할 수 있는 작품이죠. 김승옥을 비롯한 당시대의 작가들이 이러한 시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으로 승화했지만 사실 김승옥만큼 현실을 기반으로 작품활동을 한 작가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너무 서민적인고 현실적인 그래서 그런지 픽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내 할아버지,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 들었던 아련한 추억들을 깨알같이 쏟아내고 있기 때문에 오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독자들에게 공감을 전해주기엔 충분한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또한 길지 않는 분량의 단편들이지만 상당히 철학적인 사유를 지니고 있는 작품으로 '나' 라는 존재와 '정체성' 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져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당 밀리언셀러 클럽 147
야쿠마루 가쿠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당은 자신이 빼앗은 만큼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도 잘 알고, 그래도 기어코 나쁜 짓을 저지르고 마는 인간 그게 바로 악당이다" 작중 나오는 멘트인데요. 악당의 정의를 이처럼 단순화하면서 머리속에 각인되게 서사한 몇 안되는 명언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때 악당이라는 막연하게 엄청난 나쁜 짓을 하고 상대방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생각하고 있는 그런 악당이 아니게 되는데요. 좀더 확장적으로 범위를 넓혀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악당이라는 범주에서 결코 자신만만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마음속에 걸리는 언행을 상대방에게 부지불식간에 해 오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야쿠마루 가쿠의 <악당> 이라는 작품은 범죄가 시나간 자리에 남는 상처는 얼마나 깊은가?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갈등과 부조리를 조명한 사회파 미스테리의 일종으로 적당한 긴장감과 속도감을 가지고 있는 범죄심리스릴러계열의 작품으로 인식할 수 있겠는데요. 그동안 살인범죄와 관련해서 피해자측과 가해자측의 심리적인 상태와 이를 기반으로 범사회적으로 공감할 수 있게 하는 태제를 형성하는 작품들이 왕왕 있었지만 이번 작품처럼 그 심리적인 상태를 가감없이 적나라하면서 솔직하게 서사한 작품은 그다지 없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야쿠마루 가쿠는 작품의 주 대상을 이들 이해당사자들의 심리상태에 초점을 맞추어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싶어 집니다.


          작가가 작정하고 선보이는 작품인 만큼 이번 작품에 무슨 그럴싸한 추리적 사고나 이를 교모하게 뒷받침 해야 할 다양한 분야의 설정들 그리고 극적이고 감동적인 하이라이트를 구성하기 위한 매력적인 반전등 뭔가 작품의 품격을 높이고 독자들의 흡인력을 고조시키기 위한 추리스릴러의 정석같은 스트럭쳐를 전혀 볼 수 없다는 점, 즉 아예 이러한 구조적인 틀 속에서 작품을 끌어가겠다는 생각자체 없이 이번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사뭇 신선하다는 느낌마저 자아내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작품이 지루하고 왠지 흡인력이나 설득력에서 뒤쳐지는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 수 없다는 것인데요. 어쩌면 왠만한 추리스릴러작품 보다 그 속도감과 긴장감이 더 높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한번 손에 잡으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몰입감을 다름아닌 야쿠마루 가쿠는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의 심리적인 묘사와 행동의 서사를 통해서 디테일 하면서도 리얼리티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그 어떠한 무대적인 장치 보다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게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 작품속에는 묘한 매력이 존재하고 있는데요. 피해자의 대변인인 사에키 슈이치와 가해자측의 대명사로 등장하는 사카가미를 통해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갖고 있는 심리적인 사고, 그리고 그런 사고가 어떻게 가능할까라는 부분에 대한 가감없는 리얼리티를 통해서 양자구도의 멋진 심리적 스리럴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심리적인 서사들이 정말 현실성이 있어 두 진영을 대변하는 인물과 맞딱뜨릴때 마다 독자들의 감정 역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처럼 널뛰기를 한다는 것인데요. 왠만한 작품을 통해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이입이 던져 주는 충격파의 파고가 상당히 강하게 뇌리에 남게되는 작품입니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이런류의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 이나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속에서 한두번쯤은 경험을 했지만, 사실 이번 야쿠마루 가쿠의 작품은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의 경우 이런 양측의 구도를 범사회적 공감대라는 다소 거시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면서 미시적인 개개인의 심리상태로 좁혀가는 면을 보여주죠. 하지만 야쿠마루 가쿠의 <악당> 이라는 작품속에는 범사회적 범도덕적등의 거시적인 패러다임이나 태제보다는 피해자와 가해자 양측의 극히 개인적인 심리상태를 중심으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이 어떠한 사회적인 교육이나 도덕적인 교화를 아우라로 깔아놓는다는 느낌보다 누구나 그 입장에 서게 되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당위성 아닌 당위성을 느끼게 하면서 자신과 반대편에 처하게 되는 이들의 심리적인 상태도 절로(많은 거부감이나 왜곡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테제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신의 한수이지 않나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굳이 거시적인 접근에서 필요한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사회간의 각종 연결고리들의 관계성을 삭뚝 잘라버리고 단순하게 인간과 인간 그 자체의 상호간의 심리상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한층 더 흡인력을 배가 시키는 구조였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네요.


          어느 누구든 그 극단적인 상태나 그 입장에 서보지 않는 이상 그러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들의 심리적인 상태를 이해한다는 자체가 난센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저 그런 입에 바른 소리내지는 영혼없는 위로의 멘트라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마루 가쿠의 이번 작품은 왠지 모르게 독자들로 하여금 양측의 극단적인 면에 절로 녹아들게 하는 묘한 마력을 가진 작품이라는 거죠. 그 만큼 야구마루 가쿠의 심리적 상태의 서사와 태제들이 극히 개인성을 내포하면서도 동시에 범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죠. 작가는 이러한 개인들의 심리태제를 모아모아 하나의 발전된 단계의 사회심리태제로 격상시킬 의도를 결코 내비치지도 않는다점이 상당히 마음에 와닿는데요. 개개인의 심리적인 판단에 정, 반 이라는 이분법적인 판단이나 판결보다는 있는 그 자체로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둔다는 점이 어찌보면 다소 도덕적으로 불순하게 느껴질 수 도 있겠지만 나름의 사유는 충분히 전달되고 있다는 점이 이번 작품의 백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면에서 이번 작품은 범죄 피해자와 가해자의 심리상태를 다룬 장르에서 오래토록 회자될 작품이지 않을까 싶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生> 이미 국내 독자들에게 오래전에 소개된 작품으로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가공의 인물로 콩쿠르 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아시다시피 이 콩쿠르상이라는게 같은 작가에겐 두번 수여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더 화재에 오른 작품이기도 하죠. 어쩌면 작품뿐아니라 그 이면에 밝혀진 작가의 이력등으로 인해 유명새가 더 큰 작품이기도 합니다. <자기 앞의 생> 은 열네살의 모모(모하메드) 라는 어린애와 그를 어린나이때 부터 돌아온 로자 아줌마라는 대모의 이야기를 아주 하드보일드하면서도 나이브하게 담고 있는 작품으로 상당히 슬픈 스토리를 갖고 있는 작품으로 다가 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내러티브 전반을 감싸고 있는 슬픈기조의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시크한 느낌을 자아내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이나 사고 그리고 작품 전반이 표방하고 있는 담론은 왠지 희망적인 느낌을 더 강하게 표출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 작품을 대면하며서 수시로 엇갈리는 감정의 이입을 느끼게 되고 그러한 밑바탕에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의 특징중 하나가 작품이 풍기는 분위기(정말 슬픈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왠지 슬프게 다가오지 않는 이율배반적인 분위기) 만큼 등장인물들의 구성면에서도 상당히 유니크한 면을 볼 수 있는데요. 아랍인과 유대인이라는 물과 기름같은 엇박자의 인물을 중심에 앉혀놓고 있죠. 거기에 세상의 모진 풍파를 다 겪은 황혼의 노인과 세상정이라는 때도 묻지않는 열네살의 꼬마,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두 주인공이 행동하고 생각하는 사유는 나이와 정반대의 개념을 가지고 있어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설정들을 가지고 있는 구도이기도 합니다. 조연으로 출현하고 있는 인물들의 면면도 뭔가 어울리지 않는 면면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그런 부자연스러운 인물들의 구성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조화시키는 역활을 수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뭐 좀 크게 앞서나간다면 이러한 부조화나 뒤틀림이라는 것이 우리네 인생의 정확한 표출이라는 듯이요. 


           무엇보다도 이번 작품은 독자들로 하여금 이율배반적인 감정이입을 가져오는 작품인데요. 왠지 슬퍼야할(정말이지 슬퍼해야 마땅할이라고 해야겠죠) 내러티브가 분명한데 작품을 읽으면서 본인도 모르게 미소짓고 키득거리게 하고 하는 이런 의외의 감정을 불러 오면서 "이거 내 사고나 감정에 살짝 문제가 있는건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인데요. 참 절묘한 앙상블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우리들 삶의 커다란 견지에서 볼때 "生" 이라는 개념이 이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도출하게도 하네요. 여기에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작품의 구도자체나 등장인물들의 설정등이 작가가 추구하는 사유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삶의 진수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 일품으로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뭐라고 할까요 어제 죽은이들에게 왠지 죄스러운 마음을 갖게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 삶은 내 생은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고 희망적이다라는 약간 못된 느낌도 들게 하니까요.


           정말 밑바닥 인생(모모의 표현을 빌리자면 '똥'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의 애환을 그린 작품인데요. 프랑스 빈민가의 코딱지만한 아파트(은밀한 집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왠지 우리의 인생살이 공간을 축약해놓은 것 같은 냄새를 풍기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것도 칠층에 그 흔한 엘리베이터도차 없는 곳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살고 있고, 그 아이들을 돌보는 여인은 100키로에 가까운 거구에 아우슈비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온 로자 아줌마라는 여인과 우리의 주인공 모모(모하메트) 돌보는 아이들의 대부분이 창녀들의 아이들로 정말 오갈데 없는 인생 밑바닥을 출생과 더불어 온몸으로 맞이하는 아이들 주로 북아프리카 핏줄을 가지고 있는  그런와중에서도 부득이하게 아이들을 빈민구제소 같은 곳으로 보내는 날 로자 아줌마는 병이 날정도로 아이들을 사랑하기도 했다 자식을 버리는 엄마들이 제일 나쁜 인간이고, 차라리 동물세계의 법이 인간세상의 법보다 낫다고 믿는 아줌마와 그런 아줌마를 사랑하는 모모. 어디 하나 눈씻고 찾아봐도 정말 제대로된 인생이 없을 정도의 출연진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다보니 대게 이런류의 작품들이 줄것만 같은 잿빛같은 색깔의 처지는 분위기라던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 눈물바다로 만드는 신파조 같은 통상적인 분위기를 독자들은 머리속에 떠올리기 마련인데요. 막상 작품속으로 들어가보면 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죠. 작가의 의도적인 분위기 제거라고는 전혀 찾아볼수 없을 만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키포인트라고 볼수있는데요, 작품 전반이 표방하는 행복이라는 키워드와 살짝 거리가 멀 것 같은 인물이나 설정들이 죽음과 생의 이분법적인 뉘양스를 걷어 냈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은 또 다른 느낌과 색깔로 독자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작품이네요. 분명히 내러티브 전반을 흐르고 있는 분위기가 다소 무겁고 가라앉을 수 밖에 없는 구도 이지만 모모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바라 보는 세상의 분위기와 색깔은 나도 모르게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는 점에서 유니크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마치 백지위에 백지를 켜켜이 쌓아 올리듯이 무의미한 삶과 죽음을 그리는 것 같지만 실상 눈에 보이지 않는 백지위에는 우리들의 생과 죽음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어 상당한 무게감을 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 <자기위의 생> 이라는 작품이 왜 꾸준하게 독자들의 뇌리속을 떠나지 않고 읽혀지는 작품인가 하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어떠한 작가의 의도됨을 엿볼 수 없다는 것이죠. 작중에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건 아니란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희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 라는 표현에서 느낄 수 있듯이 삶, 죽음 그리고 생에 대해서 인위적인 작위감이나 정형화된 사유 내지는 흐름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독자들의 가슴속에 잠시 스쳐지나갈 정도의 임펙트로 다가오기에 이 작품이 오래세월에 걸쳐서도 누구나 공감을 할 수 있는 작품으로 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커다란 감흥이나 카타르시스를 원하는 독자들에겐 다소 싱겁고도 밋밋한 느낌으로 다갈올 수 있는 작품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맛이 MSG에 기들려진 미각보다 오래토록 혀안을 자극하는 것이기도 하죠. 달리 표현한다면 이번 작품만큼 포텐이 크게 묻혀있는 작품도 드물다는 것이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격자들 1 - 조운선 침몰 사건 백탑파 시리즈 4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에 선보이는 김탁환의 <목격자들> 은 큰범주에서는 소설조선왕조실록 시리즈이지만 좀더 세밀하게 분류한다면 백탑파 시리즈의 일환으로 <방각본 살인 사건>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 의 후속작으로 볼 수 있겠네요. 이미 이들 작품중엔 영화로 제작되어 흥행몰이를 하였기에 상당히 검증된 작가라고 봐도 크게 무리 없을 듯 합니다. 일본의 미야베 미유키라는 추리스릴러작가는 현대물도 많이 창작해내지마 에도시대를 축으로 하는 시대물에 대한 남다른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는 작가로 일본내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기로 유명하죠. 김탁환 역시 시대물 특히 조선시대를 소설화하여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라는 점에서 김탁환과 미야베 미유키는 서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추리스릴러기법을 메인축으로 삼아 내러티브를 끌어가고 있다는 점 역시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탁환의 기존의 작품들이 거의 매번 조선시대를 그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것은 다음아닌 조선시대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일제감정기의 왜곡된 식민사관이 지금까지 우리들의 의식속에 자리잡고 있는데요. 그 거대한 담론은 다름아닌 "망국" 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조선시대 전부를 비뚤어진 시각으로 보게 한다는 점입니다. 어찌보면 우리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중세(세계사관점에서 중세는 암흑으로 비유되지만 한국사에서 조선의 비중과 그 이미지는 사뭇 다른다는거죠) 였던 조선시대를 재조명해야만이 올바로 선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바램에서 김탁환은 조선시대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뭐 그런 생각들을 가져보게 합니다.


          이번 작품 <목격자들> 역시 의금부 도사 이명방과 그의 절친인 김진 이 두사람이 사건해결사로 등장하게 됩니다. 전라도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조운선과 소선의 비밀을 파헤치라는 정조의 밀명을 받들고 조운선과 관련된 비리와 부패를 조사하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데 말이죠 참 기묘한 것은 조운선이라는 배가 침몰하고 그 침몰한 시기와 장소가 다름아닌 2년전 발생했던 세월호 사건(굳이 세월호 사고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기에 전 개인적으로 '사건' 으로 보고 있기에 이런 표현을 합니다) 과 거의 흡사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번 작품은 단순하게 역사탐정소설이라는 생각보다는 사회고발르포라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합니다. 내러티브 중간 중간에 깔려 있는 태제라던가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많은 오버랩을 느낄 수 있어 그다지 편하지 않게 작품을 대면하게 된다는 거이죠. 이런 느낌으로 봐서 그런지 아니면 작가의 의도된 기획인지 몰라도 제목 자체에서 풍기는 뉘양스가 약간 불편하게 하죠. 목격자들과 구경꾼은 엄연히 다른 위치의 뉘양스를 주는데요. 어떠한 사건을 분명히 지켜보았다는 점에선 서로 상통하나 그 이후의 행위에 따라서 그 의미는 극과 극을 이루게 되니까요. 김탁환은 벌써 작품의 제목에서부터 독자들의 폐부를 강하게 건드리고 있습니다. 작가 자신이 의도했던 안했던간에 2년전 그 대참사이자 사건을 겪은 대한국민 모두는 과연 떠떳하게 목격자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날 진도 앞바다의 목격자들은 소선이 침몰되는 동안 그 어떤 손길을 쓸수가 없었습니다. 세월은 그리고 모든것을 바다속에 묻은채로 켜켜이 흘러왔습니다. 그리고 2014년 4월 우리는 또 다시 수 많은 인명들이 진도 앞바다에서 수장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소설속의 그날처럼 어떤 손길도 미처 쓰기 전에 그네들은 우리 곁을 떠났던 것입니다. 왠지 작품속의 그날과 현실속의 그날이 자꾸 오버랩되어 돌덩이처럼 독자들 가슴한켠을 짓누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불편하고 열받고 부끄럽고 여러가지 감정이입이 절로 묻어 나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정말 별별 설정이나 서사들 등장인물들의 행동거지와 대사 한마디가 상당한 힘을 가지고 다가오네요. 그 어느것 하나라도 놓친다면 왠지 죄스러움이 더 해질것 같다는 생각과 그렇게라도 해야지 덜 미안하겠다는 자기합리화라는 묘한 두가지 감정이 동시에 줄타기를 한다고 할까요. 사실 이렇하다 보니 이명방이나 김진이 출현했던 작품들에 비해서 그들에게 쏠리는 시선의 무게가 확 떨어져 왠지 미안하다는 생각도 가지게 됩니다. 이명방과 김진은 셜록홈즈와 왓슨박사 만큼이나 뛰어난 콤비로 기존 세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역활을 수행한 탐정들이죠. 물론 이번 작품에서도 기민한 행동과 몇수 앞을 예측하는 추리와 논거로 사건 중심으로 다가가는 그들의 행적을 보는 즐거움이 상당합니다. 여기에 담헌 홍대용의 비중있는 등장과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의 탄생 뒷담화, 조선시대 조운선의 구조, 검무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들 소재들이 상당한 고증과 해박한 지식이 없다면 도저히 접근할 수 없을텐데요. 다시한번 작가의 치밀하고 디테일한 작업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죠.  


          담헌 홍대용이 작고한 사도세자와 진향을 위한 슬픈 이별곡 그리고 이 곡에 맞춰 춤을 추는 주혜와 옥화의 검무 왠지 시간을 오버랩하게 되면 진도 앞바다에서 수장된 우리의 자식들과 부모 형제 그들의 영혼을 보다듬는 진혼곡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춤과 곡은 마치 거울속의 자신을 비추듯이 나의 왼쪽이 또 다른 오른쪽이 되듯이 그날 세월호속에서 생을 하직한 이들과 이들을 무심히 지켜봤어야할 온 국민들의 의식을 함께 묻고 이제는 더이상 슬픔과 고뇌속을 방황하지말고 좀더 나은 무엇인가로 그들과 함께 나아가야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할 대목은 76년마다 지구를 찾아오는 핼리혜성에 대한 설정인데요. 작가는 핼리혜성을 통해서 조선시대의 조운선 침몰이나 현대의 세월호나 같은 맥락에서 구경꾼이 아닌 목격자로 남아줬으면 하는 바램으로 작품속에 등장시키지 않았을까라는 다소 비약된 생각을 들게 하네요.    


          배의 사공을 군왕에 비유한 서사는 사실 현 정권에 대한 더 나아가 한나라의 위정자들에 대한 일침이라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입니다. 얼마전에 보왔던 톰 행커스 주연의 <설리, 허더슨 강의 기적> 이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정말 부끄러운 감정과 더불어 분노가 일어났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부끄러움과 분노가 거의 일회성으로 그친다는 것인데요. 한번즘 깊이 생각해볼 여지를 던져 주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죠. 비록 조선후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물로 치부될 수 있지만 작품속에 담겨져 있는 담론이나 태제는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굳이 문자화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이번 작품을 대면하는 독자들 가슴속에 많은 울림을 줄 작품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1
노먼 메일러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먼 메일러는 퓰리처 상을 두 번 수상한 미국 현대문학의 전설로 여겨질 만큼 문학적인 서설과 사회적 담론 그리고 사실주의적 표현기법에 있어 미국의 현대문학을 지켜온 거대한 힘의 한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입니다. 비단 국내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베트남 전쟁을 기반으로 창작한 <밤의 군대> 라는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성 상실과 전쟁의 참혹함을 여과 없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직접 겪은 체험해서 기반한 그의 작품들은 가히 리얼리즘의 정수를 보는 듯한 강한 느낌을 전해주면서 리얼리즘을 뛰어 넘어 작품속에서 현대사회 특히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과 그 극복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을 선사하고 있죠.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와 더불어 전쟁문학의 쌍벽을 이루면서 전쟁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레마르크가 독일출신의 가해자적인 입장, 그리고 다소 직접적인 전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듯한 거시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다면 이에 반에 노면 메일러는 연합국적인 시각과 직접적인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미시적인 눈길로 서사하는 면면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나름대로 각각의 차이점들이 전쟁문학을 바라보는 재미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 작품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 는 2차 세계대전을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아노포페이라는 태평양의 가공의 섬을 공간적인 배경으로해서 시작하게 됩니다.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는 아노포페이라는 협소한 섬을 점령해야 하는 미군과 이를 저지하고 방어해야 하는 일본군 그리고 사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정치적인 이슈와는 거리가 먼 듯한 각개 사병들과 하급장교들, 이들이 아노포페이섬에 상륙하여 겪게 되는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본성이라는 패러다임을 아주 드라이하게 끌어가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작품이죠. 이러한 드라이한 서술이 리얼리즘을 더욱 더 강하게 전달해주고 있는 역활을 하고 있고, 커밍스장군을 비롯한 등장인물들 개개인의 성격과 심리분석 역시 상당히 드라이하면서도 시니컬한 맛을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설정들이 전쟁이라는 참혹한 대전제와 맞물려서 더욱 더 건조한 서술의 형태로 이어진다는 것이 이번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반어적으로 전쟁이라는 그 자체가 드라이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도 합니다. 노먼 메일러는 독특하게 직접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력이 있는 작가로 자신이 체험한 전쟁을 감정적인 과감없이 민낮 그대로 서술하면서 실체적인 모습을 최대한 독자들에게 전달할려고 하는 모습을 여실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전쟁에 대한 사전적이고 선입관적인 요소들을 걷어내고 철저하게 전쟁 그 자체만을 보여주기 위해 안달하는 모습처럼 비쳐질 만큼 싸늘하고 냉정한 느낌을 전해주는 내러티브를 고집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말이죠 이러한 드라이한 내러티브만 계속해서 진행된다면 영혼없는 그저그런 한편의 르포로 그칠 수 있지만 여기에 작가의 신의 한수가 등장합니다.


          다름아닌 신의 한수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그들이 왜 지금 같은 자리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공감대와 더불어 상이한 성격과 심리적인 서술들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담론과 절묘하게 뒤섞여서 한편의 휴먼 드라마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인데요. 물론 여기에는 전쟁에 대한 사유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인 질문들을 양념으로 곁들여 휴머니즘다큐를 재현해 내고 있다는 점이 독자들의 눈과 머리를 동시에 움켜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쟁과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출신들이 총검을 손에 들고 생사를 가늠하기 힘든 전장에서 겪어 내는 전쟁이라는 특수성을 상당히 보편적인 측면으로 끌어내려 마치 일상의 한부분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있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정말 전쟁이라는 참혹함을 잠시 잊게 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작품 중간 중간에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외형적인 평가와 성장배경들을 담은 타임머신이라는 주를 읽다 보면 전쟁의 포화도 금새 잊어버리게 됩니다) 부분은 일상의 단편을 보여주고 있죠. 이러한 설정들이 어쩌면 전쟁은 이미 일상의 생활속에서 부터 잠재되었고 다만 공간적인 배경을 차용해와서 확대되고 인정해준 장아래서 일상의 단편을 폭발시키는것이 전쟁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등장인물들의 성장배경과 군입대라는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데요. 자의적이던 도피적이던간에 전쟁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어쩌면 자기 자신의 자발적인 행동에 의한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들이 결국 전쟁이라는 그 자체 역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는 참혹성의 결정체라고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크게 커밍스장군과 헌소위 두 사람을 대결구도로 잡고 있지만 크로포트하사를 비롯한 수색소대 대원들의 다소 엉뚱한 설정들이 감초 역활를 하면서 전쟁 찬성파와 반대파의 논거를 더욱 빛나게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커밍스와 헌를 필두로 하는 거대한 정치철학적인 담론 보다는 크로포트하사를 비롯한 사병들의 소소한 사유들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이끌리는 작품이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아마도 노면 메일러는 이러한 부분까지 다 계산에 염두해 두고 설정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머리속에 남게 됩니다. 전쟁은 필연적인 역사 에너지의 한 과정이라는 커밍스의 견해나 전쟁는 삼투작용이 있어 결국 승자는 패자의 특징적인 징후를 고스란히 흡수하고 그대로 재현한다는 헌소위 생각등 다소 정치철학적인 고차원적인 사유보다는 죽은 일본군의 금이빨을 발치하면서 어릴적 어머니 지갑에서 동전 몇개를 훔칠때 느껴던 죄책감과 더불어 행복감을 느꼇다는 마르티네즈의 표현이 사실 더 전쟁의 정의를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렇듯 이번 작품은 커밍스장군을 비롯해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묘사를 통해서 끊임없이 안팎이 뒤집이는 입방체의 도면처럼 소음과 정적이 별개의 차원이면서도 사실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얼핏봐도 전쟁신의 묘사는 거의 한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듯한 생동감을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죠. 마치 직접 전장에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듯이 그 명령을 듣고 나도 모르게 튀어 나가야겠다는 욕망을 느끼게 하죠. 그리고 진한 화약냄새와 더불어 귀청을 찢는 폭음소리까지 동반하여 전쟁문학 그 진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체썪는 냄새, 음식물 썩는, 물이 썩는 냄새등 특히 후각적인 자극을 극대화한 서사가 오히려 시각적인 서사보다 더 전쟁의 참혹함을 느끼게 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봐야할 점입니다. 또한 그러면서 이 와중에 등장인물들의 뜬끔없는 정적이 심리묘사는 왠지 동떨어진 느낌을 강하게 주면서 전장이 아닌 일상의 장소로 점프업을 시켜버리죠.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는 듯이 한쪽은 총질을 해대고 고함을 지르고 앞으로 돌진하지만 막상 본인은 이와 무관한 다른 세상에서 볼일 보고 있다는 착각은 이게 바로 전쟁이라는 야수의 진면목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 는 독자들이 생각하고 대면했던 전쟁문학과는 상이한 뉘양스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짜임새 있는 특정의 전투장면이 부각되지 않고 소소한 일상의 단면같은 마치 최전선의 전쟁터라는 느낌마저 주지 않는 서사들이 가득하죠. 영화의 플래시백 기법을 차용한 등장인물들의 과거사(타임머신)와 현재 그들이 처해져 있는 현실(코러스)에 대한 서사를 통해 군대과 이념 그리고 전쟁이라는 단순화된 논리와 구조에 대해서 작가는 구성원의 다양성에 대한 특유의 반론을 제기하는 장면이 상당히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무엇보다 내러티브 전체가 한편의 우울한 잿빛하늘을 담고 있는 듯 한데요. 이러한 분위기는 왠지 전쟁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서사들이 전쟁이라는 명제에 답을 스스로 내는듯한 느낌을 줍니다.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최후승리하는 결말 역시 무슨 영웅적인 느낌보다는 오히려 더 상실감을 부추기는 쪽으로 결말을 맺고말죠. 그야 말로 반전문학의 정수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특히 작품의 말미에 전의를 상실한 일본군의 소탕장면에서의 서사는 그야말로 전쟁 그 자체에 대한 모든것의 함축적인 메세지를 보여주고 있으면서 동시에 인간성에 그 본연의 모습에 대한 의구심마저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내러티브속에서 발생하는 소규모의 전투장면들 역시 현장감 넘치게 서사되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여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는 이곳이 과연 전쟁터라는 의아심이 들정도 감정의 혼란(아마도 이러한 아노미상태가 전쟁이라는 마수의 본 모습이겠지만요) 를 가져오고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헌의 죽음은 커밍스가 예견했던 "역사는 우익의 수중에 있고, 역사는 이번 세기 동안 아니 어쩌면 다음 세기까지도 우익의 것이 될 것" 말을 곱씹게 되면서 왠지 모를 우울함이 스며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