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1
노먼 메일러 지음, 이운경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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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먼 메일러는 퓰리처 상을 두 번 수상한 미국 현대문학의 전설로 여겨질 만큼 문학적인 서설과 사회적 담론 그리고 사실주의적 표현기법에 있어 미국의 현대문학을 지켜온 거대한 힘의 한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입니다. 비단 국내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베트남 전쟁을 기반으로 창작한 <밤의 군대> 라는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성 상실과 전쟁의 참혹함을 여과 없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작가 자신이 직접 겪은 체험해서 기반한 그의 작품들은 가히 리얼리즘의 정수를 보는 듯한 강한 느낌을 전해주면서 리얼리즘을 뛰어 넘어 작품속에서 현대사회 특히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과 그 극복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보기 드문 작품을 선사하고 있죠.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와 더불어 전쟁문학의 쌍벽을 이루면서 전쟁문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레마르크가 독일출신의 가해자적인 입장, 그리고 다소 직접적인 전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듯한 거시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다면 이에 반에 노면 메일러는 연합국적인 시각과 직접적인 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미시적인 눈길로 서사하는 면면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나름대로 각각의 차이점들이 전쟁문학을 바라보는 재미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 작품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 는 2차 세계대전을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아노포페이라는 태평양의 가공의 섬을 공간적인 배경으로해서 시작하게 됩니다.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는 아노포페이라는 협소한 섬을 점령해야 하는 미군과 이를 저지하고 방어해야 하는 일본군 그리고 사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정치적인 이슈와는 거리가 먼 듯한 각개 사병들과 하급장교들, 이들이 아노포페이섬에 상륙하여 겪게 되는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본성이라는 패러다임을 아주 드라이하게 끌어가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작품이죠. 이러한 드라이한 서술이 리얼리즘을 더욱 더 강하게 전달해주고 있는 역활을 하고 있고, 커밍스장군을 비롯한 등장인물들 개개인의 성격과 심리분석 역시 상당히 드라이하면서도 시니컬한 맛을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설정들이 전쟁이라는 참혹한 대전제와 맞물려서 더욱 더 건조한 서술의 형태로 이어진다는 것이 이번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반어적으로 전쟁이라는 그 자체가 드라이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도 합니다. 노먼 메일러는 독특하게 직접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이력이 있는 작가로 자신이 체험한 전쟁을 감정적인 과감없이 민낮 그대로 서술하면서 실체적인 모습을 최대한 독자들에게 전달할려고 하는 모습을 여실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치 전쟁에 대한 사전적이고 선입관적인 요소들을 걷어내고 철저하게 전쟁 그 자체만을 보여주기 위해 안달하는 모습처럼 비쳐질 만큼 싸늘하고 냉정한 느낌을 전해주는 내러티브를 고집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말이죠 이러한 드라이한 내러티브만 계속해서 진행된다면 영혼없는 그저그런 한편의 르포로 그칠 수 있지만 여기에 작가의 신의 한수가 등장합니다.


          다름아닌 신의 한수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그들이 왜 지금 같은 자리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공감대와 더불어 상이한 성격과 심리적인 서술들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담론과 절묘하게 뒤섞여서 한편의 휴먼 드라마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인데요. 물론 여기에는 전쟁에 대한 사유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인 질문들을 양념으로 곁들여 휴머니즘다큐를 재현해 내고 있다는 점이 독자들의 눈과 머리를 동시에 움켜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쟁과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출신들이 총검을 손에 들고 생사를 가늠하기 힘든 전장에서 겪어 내는 전쟁이라는 특수성을 상당히 보편적인 측면으로 끌어내려 마치 일상의 한부분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매력있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정말 전쟁이라는 참혹함을 잠시 잊게 하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작품 중간 중간에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외형적인 평가와 성장배경들을 담은 타임머신이라는 주를 읽다 보면 전쟁의 포화도 금새 잊어버리게 됩니다) 부분은 일상의 단편을 보여주고 있죠. 이러한 설정들이 어쩌면 전쟁은 이미 일상의 생활속에서 부터 잠재되었고 다만 공간적인 배경을 차용해와서 확대되고 인정해준 장아래서 일상의 단편을 폭발시키는것이 전쟁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등장인물들의 성장배경과 군입대라는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데요. 자의적이던 도피적이던간에 전쟁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어쩌면 자기 자신의 자발적인 행동에 의한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들이 결국 전쟁이라는 그 자체 역시 인간이 만들어 낼 수 밖에 없는 참혹성의 결정체라고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크게 커밍스장군과 헌소위 두 사람을 대결구도로 잡고 있지만 크로포트하사를 비롯한 수색소대 대원들의 다소 엉뚱한 설정들이 감초 역활를 하면서 전쟁 찬성파와 반대파의 논거를 더욱 빛나게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커밍스와 헌를 필두로 하는 거대한 정치철학적인 담론 보다는 크로포트하사를 비롯한 사병들의 소소한 사유들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이끌리는 작품이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아마도 노면 메일러는 이러한 부분까지 다 계산에 염두해 두고 설정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머리속에 남게 됩니다. 전쟁은 필연적인 역사 에너지의 한 과정이라는 커밍스의 견해나 전쟁는 삼투작용이 있어 결국 승자는 패자의 특징적인 징후를 고스란히 흡수하고 그대로 재현한다는 헌소위 생각등 다소 정치철학적인 고차원적인 사유보다는 죽은 일본군의 금이빨을 발치하면서 어릴적 어머니 지갑에서 동전 몇개를 훔칠때 느껴던 죄책감과 더불어 행복감을 느꼇다는 마르티네즈의 표현이 사실 더 전쟁의 정의를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렇듯 이번 작품은 커밍스장군을 비롯해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심리묘사를 통해서 끊임없이 안팎이 뒤집이는 입방체의 도면처럼 소음과 정적이 별개의 차원이면서도 사실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얼핏봐도 전쟁신의 묘사는 거의 한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듯한 생동감을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죠. 마치 직접 전장에서 돌격 앞으로를 외치듯이 그 명령을 듣고 나도 모르게 튀어 나가야겠다는 욕망을 느끼게 하죠. 그리고 진한 화약냄새와 더불어 귀청을 찢는 폭음소리까지 동반하여 전쟁문학 그 진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시체썪는 냄새, 음식물 썩는, 물이 썩는 냄새등 특히 후각적인 자극을 극대화한 서사가 오히려 시각적인 서사보다 더 전쟁의 참혹함을 느끼게 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봐야할 점입니다. 또한 그러면서 이 와중에 등장인물들의 뜬끔없는 정적이 심리묘사는 왠지 동떨어진 느낌을 강하게 주면서 전장이 아닌 일상의 장소로 점프업을 시켜버리죠.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는 듯이 한쪽은 총질을 해대고 고함을 지르고 앞으로 돌진하지만 막상 본인은 이와 무관한 다른 세상에서 볼일 보고 있다는 착각은 이게 바로 전쟁이라는 야수의 진면목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 는 독자들이 생각하고 대면했던 전쟁문학과는 상이한 뉘양스를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짜임새 있는 특정의 전투장면이 부각되지 않고 소소한 일상의 단면같은 마치 최전선의 전쟁터라는 느낌마저 주지 않는 서사들이 가득하죠. 영화의 플래시백 기법을 차용한 등장인물들의 과거사(타임머신)와 현재 그들이 처해져 있는 현실(코러스)에 대한 서사를 통해 군대과 이념 그리고 전쟁이라는 단순화된 논리와 구조에 대해서 작가는 구성원의 다양성에 대한 특유의 반론을 제기하는 장면이 상당히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무엇보다 내러티브 전체가 한편의 우울한 잿빛하늘을 담고 있는 듯 한데요. 이러한 분위기는 왠지 전쟁 그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서사들이 전쟁이라는 명제에 답을 스스로 내는듯한 느낌을 줍니다.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최후승리하는 결말 역시 무슨 영웅적인 느낌보다는 오히려 더 상실감을 부추기는 쪽으로 결말을 맺고말죠. 그야 말로 반전문학의 정수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특히 작품의 말미에 전의를 상실한 일본군의 소탕장면에서의 서사는 그야말로 전쟁 그 자체에 대한 모든것의 함축적인 메세지를 보여주고 있으면서 동시에 인간성에 그 본연의 모습에 대한 의구심마저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내러티브속에서 발생하는 소규모의 전투장면들 역시 현장감 넘치게 서사되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여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는 이곳이 과연 전쟁터라는 의아심이 들정도 감정의 혼란(아마도 이러한 아노미상태가 전쟁이라는 마수의 본 모습이겠지만요) 를 가져오고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헌의 죽음은 커밍스가 예견했던 "역사는 우익의 수중에 있고, 역사는 이번 세기 동안 아니 어쩌면 다음 세기까지도 우익의 것이 될 것" 말을 곱씹게 되면서 왠지 모를 우울함이 스며드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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