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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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옥의 <무진기행> 은 한국 현대문학(본격적인 한글문학)의 시발점이라고 해도 큰 범주내에서 벗어나지 않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전쟁의 후유증을 제대로 치유하기도 전에 4.19혁명이나 5.16쿠테타 그리고 이어지는 경제발전 5개년 계획등 그야말로 초토화된 강토(물론 정신적으로 초토화된 우리네의 정신세계를 아울러서요)에 뜬금없이 정말 갑자기 자리잡기 시작하는 현대성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던 1960년대를 온몸으로 부딪혀 써내려간 작가이기 때문이죠. 1960년대는 지금의 잣대로 제단할 수 없는 근대성과 현대성이 혼합된 시대였고, 그 한복판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작품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들의 공통점을 굳이 찾는다면 그 배경이 서울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지기행에서 무진이라는 가상의 도시가 등장하지만 그 가상의 도시인 무진 역시 서울의 이라는 도시의 또 다른 이름이자 서울이라는 도시와 연결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작가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근대성과 현대성이 혼재하는 그야말로 뚜렷한 정체성이 없었던 당시의 시대상의 집합체로 인식하였던 것이고 하구요. 여기에 서울과 가장 어울릴 것 같은 '나' 를 등장인물로 등장시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수록된 작품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가 다소 무거운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많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맞이하는 산업화란 패러다임앞에 그대로 노출된 소서민들의 당황스러운 혼란 그리고 이를 제빠르게 이용하는 또 다른 면을 보면서 들게 되는 자괴감이나 상실감등 매건의 작품에 걸쳐 있는 잿빛같은 색깔들이 주를 이루고 있죠. 그나마 '차나 한 잔' 이라는 작품에서 다소 유머러스한 블랙코미디를 보는 위안을 얻기는 합니다만 왠지 발길 무거운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는 거죠. 뭐 그렇다고 당시 시대상의 정치적인 사유나 철학적인 사유가 진하게 배어 있는 것도 아니지만 1960년대 서울이라는 그 자체가 던져주는 메타포는 충분하게 느낄 수 있는 단편들입니다.  


          수록된 단편들을 한번 살펴보면 음 '무진기행' 은 패스하겠습니다. 워낙 알려진 작품들이다보니 오히려 '무진기행' 으로 인해 다른 작품들이 조명을 제대로 못받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정도로 괜찮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먼저 '차나 한 잔' 이라는 작품은 김승옥 단편중 아마도 유일하게 유머러스한 뉘양스를 주는 작품입니다. 삶을 살면서 한두번쯤을 겪어봤을 설사와의 전쟁아시죠? 무슨 말인고 하니 도저히 교감신경으로는 제어불가능한 거의 천재지변같은 불가항력적인 사태를 맞이해본 독자들 충분히 있을리라 생각됩니다. 특히 출퇴근 시간 북적거리는 대중교통안에서 갑자기 그 분의 호출을 받은 경우, 과연 이런 사태를 어떻게 극복들 하셨나요? 다양하고 아주 구구절절한 스토리들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차나 한 잔' 편을 보게 되면 대충 만화가 이선생의 고충을 짐작하게 됩니다. 신문사에 비평만화가를 연재하던 이 선생 어느 날 자신의 연재가 중단되고 해고 통보를 받아 심히 불편한 상황에서 버스안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설사... 그리고 급히 찾아들어간 뒷간과 해방감... 그 이후 이 선생에게 다가오는 삶의 변화가 마치 급한 설사병에 쳐했을때 처럼 우리 인생의 삶(특히 1960년대 서울에서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삶)과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에피소드일지도 모른다는 거죠.


           또다른 단편중에 개인적인 견해지만 '염소는 힘이 세다' 라는 작품은 참으로 서글픈 스토리를 갖고 있는 작품이면서 국가권력(염소를 상징하겠죠)이라는 거대한 담론에 저항할 수 없는 소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정치적인 뉘양스가 담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상당히 비약적인 견해일수 있지만 염소는 힘이 세다는 것은 권력을 갖지 못한 서민층의 오마주로 비쳐질 소지가 다분히 있다는 것이죠. 단편의 제목에서는 뭔가 활기차고 희망적인 뉘양스를 던져주지만 힘이 센건 염소(가진자을 지칭하면서도 한편으로 가지지 못한 자들의 마지막 희망으로도 비쳐질수 있습니다)뿐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모티프를 가지고 있으면서 결국 그런 염소는 당초부터 가질 수 없는 존재로 비쳐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마 1960년대 서울속에서 살아갔던 모든 소서민들이 가진 애환의 또 다른 표현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서울의 달빛 0장' 은 수록된 단편들 중에서 또 다른 분위기를 감지하게 하는 작품인데요. 암울했던 60년대를 넘어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말해서 산업화, 자본주의, 군부시대등 어느 정도 패러다임에 익숙해져 가는 시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자 동시에 '나'  개인이 가지게 되는 정체성 혼란의 극단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이혼후 경험하게 되는 많은 여성과의 관계를 여행자의 구도로 표현한 서사는 상당히 유니크하게 다가오기도 하는데요, 왠만한 남성독자들이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에 와닿는 서사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에 게재되어 있는 단편들은 1960년대 우리의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는 편린들입니다. 특히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작가 자신의 제2의 고향이라할 여수, 순천등을 배경으로 한국전쟁이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파탄난 당시의 소시민들의 실상을 보는듯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감정적으로 상당히 무거운 내용들의 작품입니다. 비록 '차나 한 잔' 같은 유머러스한 작품도 있지만 이 역시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작품임에 틀림없구요. 김승옥은 전체적으로 당시 지배적이었던 소시민들의 정서를 민낯 그래도 여과없이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50여년전 수도 서울의 양면적이고 이질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처절하리 만큼 자조적이면서 한편으로는 상당히 현실적인 내러티브를 대면할 수 있는 작품이죠. 김승옥을 비롯한 당시대의 작가들이 이러한 시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으로 승화했지만 사실 김승옥만큼 현실을 기반으로 작품활동을 한 작가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의 면면만 보더라도 너무 서민적인고 현실적인 그래서 그런지 픽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내 할아버지,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 들었던 아련한 추억들을 깨알같이 쏟아내고 있기 때문에 오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독자들에게 공감을 전해주기엔 충분한 작품들이기도 하고요. 또한 길지 않는 분량의 단편들이지만 상당히 철학적인 사유를 지니고 있는 작품으로 '나' 라는 존재와 '정체성' 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져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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