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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회 교수의 삼국지 바로 읽기 (합본)
김운회 지음 / 삼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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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삼국지연의라는 역사소설은 본고장인 중국보다 오히려 일본이나 한국에서 그 인기가 더 높다고 한다. 특히 중국, 한국,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지역에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성경을 앞지르는 인기를 한 몸에 안고 있다. 일시적인 현상도 아니고 이러한 인기는 나관중이 집필했다는 당시로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오고 있으니 스데디셀러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문학계의 거두들이 앞다투어 자신 이름 석자를 걸고 편역에 나설 정도로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럼 왜 그토록 삼국지에 열광하게 되는 것인가? 아마도 그 해답은 삼국중 가장 작은 땅덩어리(사실 삼국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지만)의 주인인 유비와 그의 씽크탱크이자 장자방인 제갈량의 돋보이는 활약상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 것일 것이다. 특히 영원한 간자인 조조와의 대결에서 제치를 발휘하며 조조에게 일격을 가하는 모습에서 독자들은 권선징악이라는 명제를 찾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사실 삼국지는 뻔한 스토리지 않는가? 하지만 나관중(이도 역시 역사적으로 확실히 검정된 것은 아니다)이라는 마술사의 손을 거치면서 화려한 변신을 하였다. 나관중은 대중이 무엇을 원하지를 정확하게 꽤뚤어 보고 그 가려움증을 시원하게 긁어줌으로서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이는 지금까지도 진행형으로 남아 있고 당분간 앞으로도 그런 대세를 이룰 것으로 보는게 정확한 추측이지 않을까 한다.

이런 현상이 있다보니 마치 삼국지라는 역사소설이 정사를 대신하게 되는 주객전도의 꼴을 겪게 되었다. 특히 중국역사에 대한 청소년들의 잘못된 인식의 폐해는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삼국지는 소설이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이 역사적 사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허구로 보면 타당할 것이다.

삼국지를 통해서 가장 혜택을 본 인물은 누구일까? 대체로 제갈공명을 들 수 있으나 그나마 제갈량은 사초에 몇번의 흔적이라도 보이기라도 하는 편이라서 최고의 수혜자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럼 최대의 수혜자는 누구인가?
단연코 관우이다. 관우의 활약상은 실제 역사에서는 거의 미비한 편에 속하지만 나관중은 의형인 유비와의 신의를 지키는 영웅(여기서 나관중은 철저한 중화사상의 가미를 보여준다. 북방 오랑캐에게는 있을 수 없는 정신문화적인 아주 고귀한 충에 관한 개념을 마치 필부인 관우정도도 몸소실천하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을 탄생시켜 일약 후대에 신으로 추앙 받게 된다. 이는 우리의 무속 신앙에도 영향을 미쳐 관우신을 모시고 있는 실정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더욱더 삼국지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인물을 누구인가? 이 대답에 지금은 많은 이들이 조조를 손에 꼽을 것이다. 하지만 조조는 그나마 사정이 많이 나았졌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조조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 지므로서 새로운 조조관이 성립되어 조조에 대한 인식이 사뭇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가장 큰 피해자는 여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다른 이유없이 참혹하고 배은망덕한 인물로 묘사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다름아닌 여포의 출신성분이 한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로도 여포는 그렇게까지 욕을 들어먹을 행동을 하지 않은 인물이다. 한말당시 시대상에서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세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서로 배신과 반목을 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인 것이다. 인자함에 대명사인 유비가 오히려 여포보다 더 많은 신의를 저버리면서 제 살길을 찾아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는것은 이미 아는 사실이 아니가.
하지만 나관중은 자신이 당시 살던 시대상황을 삼국지에 상당한 부분 녹여 놓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여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중국공산당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김산(장지락)이 한족이 아닌 조선족이라는 이유로 배제되었었던 이유나 다른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비록 김산은 복권되었지만 여포는 항변조차 할 수 없이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것이다

오랑캐에 수모를 겪은 자기시대의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 대상이 바로 여포로 결정되었을 뿐이다. 세세히 역사적인 사실과 비교해 보면 한도 끊도 없는 것이 바로 삼국지의 내용들이다. 오죽했으면 중국인 학자가 나서서 <삼국지 강의-이중텐->라는 책을 출간할 정도로 삼국지의 역사 왜곡은 심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중국인의 입장에서 보는 삼국지가 아닌 바로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는 삼국지이다. 특히 삼국지를 탐독하더라도 그 내용의 진위에 대해서는 한번 짚어보자는 의도로 저자는 삼국지에 대해서 매스를 가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측면으로는 아니 역사소설인 삼국지에 대해서 굳이 학술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단지 문학작품인데라는 견해도 있겠지만 삼국지가 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실로 엄청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지켜보면서 역사라는 것은 충분히 그 왜곡이 가능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오히려 이런 동북공정은 그 피해가 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삼국지처럼 오랜시간 동안 자신들의 한족우월주의와 중화사상을 은연중에 독자들에게 여과 없이 주입시키는 것이 더 무섭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라 지금 삼국지를 이런 비판의식을 가지고 읽는 독자층이 얼마나 있을지, 더욱이 역사적 판단이 미비한 이들에겐 마치 삼국지연의가 정사로 인식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점을 지하의 나관중은 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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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냥 2022-12-06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국지 연의에서 한족 중심적 관점의 폐해가 왜 이 책의 평가의 기준이 됐는지? 정작 이 책도 춘추필법의 폐해에 대해 지적하는 것 같은데, 같은 의견을 얘기한 책에 0점을 준 이유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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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절 - 42곳 사찰에 깃든 풍물과 역사에 관한 에세이
장영섭 글.사진 / 불광출판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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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절>은 전국 각도에 산재해 있는 42곳의 절들과 만남이다. 무속신앙과 함께 불교는 우리민족의 정신적인 기둥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아 왔다. 비록 외래종교이지만 수천년의 명맥을 이어오다 보니 왠지 낯설지 않은 그런 종교이다. 최초로 우리에게 전래될 당시만해도 권력층의 효과적인 민중지배와 구심점 역활을 수행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고려왕조까지는 철저하게 귀족화된 지배층의 화려한 소일거리만 그 역활을 해왔다. 오히려 조선이라는 성리학 중심의 국가가 들어서 철저히 배척당하면서 불교는 일반 민중들의 가슴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이는 석가세존이 말한 손에 쥐고 있을 수록 놓아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계명을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한다.



그 어떠한 종교적 성소보다 사찰에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불교라는 종교자체에 대한 깨달음, 대체로 우리나라의 사찰들이 산속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곳에 자리하고 있다보니 절을 둘로싼 생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우리민족의 역사만큼 사찰은 무언의 역사를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찰을 감싸고 있는 풍경 또한 볼 수록 멋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이런 4가지의 테마로 절의 존재성을 말하고 있다.

<절안의 깨달음>
경북 문경의 김용사에는 대략 300여년은 족히 넘은 똥간이 있다. 원래 서기 588년에 운달조사가 창건 했다가 다시 김용이라는 사람의 중창으로 김용사로 그 이름이 바뀌었지만 역사가 오래된 사찰이다. 이 절은 성철스님, 서암스님,서옹스님과도 인연이 깊은 절로 한때는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그 이름값을 독독히 했다. 하지만 실화로 인해 절의 반이상이 화마에 휩쓸려 간 이후로 김천 직지사한테 본사 역활을 내주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절이다. 그러나 정작 이 절에서 우리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대웅전의 불상이나 삼층석탑의 단아함이 아니다. 바로 오래된 똥간에서 무위성이 영구성을 보장해 준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치게 된다. 인간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똥을 눈다. 배설이라는 생리현상을 거를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그 배설물을 논이나 밭에 거름이라는 형식으로 뿌려 거기서 나오는 작물들을 먹는다. 식물이 우리의 똥을 먹고 우리가 다시 우리의 똥을 먹는 형국이다. 이처럼 모두가 더럽다고 혐오하지만 결국 똥은 우리의 몸을 몸답게 만드는 것이다. 절에서 똥간을 해우소라고 한다.

<절이 안고 있는 생명>
충남 천안의 광적사에 가면 천연기념물 제39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호두나무가 있다. 고려 충렬왕때 원나라 사신으로 갔던 류청신이 귀국하면서 호두나무 묘목을 가져야 심었으니 그 수력이 대단하다.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의 시조인 셈이다.
호두는 원래 서역에서 들어온 종자이다. 그래서 오랑캐 胡자를 쓴다. 중국의 오만함을 알려주는 사례이다. 호두는 인간의 뇌에 좋은 식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인간의 뇌와 흡사하게 생겼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최고의 신이 제우스에게 호두를 제물로 받쳤다.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호두는 인간에게 유익한 식물이다. 조선후기에 이르면 구황작물로서 그 인기가 높았다. 비록 호두나무를 고려에 전래한 류청신의 조국에 대한 배신이나 복수심은 광적사 입구의 호두나무 그늘에 가려져서 이제는 옛이야기일 뿐이다. 지금도 이 호두나무에는 많은 호두가 열린다. 하지만 가장먼저 이 호두의 맛을 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바로 청설모이다. 그렇다고 미물인 청설모를 탓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이 준 생명력을 나누는 것일 뿐이다.

<절에 잠든 역사>
안성의 칠장사. 칠장사는 조서시대 대쪽 어사로 이름난 박문수가 나한전에 기도를 올리고 장원급제를 했다고 해서 유명해진 사찰이다. 하지만 오히려 도둑때문에 더욱 유명세를 타는 절이 바로 칠장사이다. 임꺽정이 생불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병해대사를 찾아가 감화를 받고 일생동안 스승으로 모셨던 유명한 일화가 있는 절이기도 하고 나한전에 봉안된 7인의 아라한이 본래는 산적이었다는 점이 이채롭기만 하다. 또한 임꺽정이 나라를 훔치는데 실패한 도적이었다면 태봉을 건국한 궁예는 열 살 때까지 여기서 활을 배웠다고 한다.
절에 이렇게 보듯이 많은 역사가 잠들어 있다. 임꺽정세력이 최고 정점을 이룬 황해도는 이후 불모의 땅이 되어버렸다. 왕실에 반역했다는 이유로 하지만 수십년후 임진왜란 당시 민초들은 그런 왕실에 카운터펀치를 날린다. 유독 의병 봉기가 없는 곳으로 자신들의 한을 대변했던 것이다. 사찰은 우리의 이런 저런 역사를 말없이 묻어 두고 있다. 누가 굳이 들추지 않는 이상 역사 만큼이나 사찰은 아무말을 하지 않는다. 절에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비추는 역사라는 거울이 있다.

<절 바깥의 풍경>
전국에 사찰에서 이름을 따온 역은 모두 9곳이라고 한다. 논산의 개태사역, 사천의 다솔사역, 의정부의 망월사역, 장성의 백양사역, 경주의 불국사역, 창원의 성주사역, 김천의 직지사역, 여수의 흥국사역, 영주의 희방사역이다. 이 점을 보아서도 사찰의 오랜 역사성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기차가 현대의 상징이라면 사찰은 전통의 표상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역중 역 본연의 역활을 하는 곳은 망월사역밖에 없다. 그 만큼 전통을 대변하는 사찰의 퇴색을 말해주면서 동신에 현대의 승리를 말해준다. 그러나 왠지 그 현대의 승리가 그리 시원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 만큼 우리가 달려온 현대는 공허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기찻길은 가도 가도 서로 마주봐야 한다. 다른 운송수단 보다 더디고 불편하다. 자유자재로 뻗어나갈 수도 없고 융통성도 없다. 그래서 기찻길은 자동차길에 밀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기찻길이 더 많이 있다.

그러한 한때는 문명의 척도 역활을 했던 기찻길 역시 지금은 사찰과 함께 전통의 저편으로 지고 있다. 기찻길이 굽이 보이는 영주 희방사는 신라 선덕여왕때 마을의 아낙을 잡아먹은 호랑이가 목에 비녀가 걸려 괴로워하는 것을 스님이 살려주고 나서 세운 절이다.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만큼이나 오래된 희방사와 이제 막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기찻길의 조화가 볼 수 록 아름다운 곳이다.

절은 불상과 불경을 모시고 단순하게 승려들이 정진하는 그런 곳은 아닐 것이다. 종교적인 편력을 떠나서 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절에 묻어 있는 생명력과 절을 오르는길에 느낄 수 있는 풍경, 그리고 절안에 품고 있는 오래된 우리의 역사 이를 통해서 우리는 절로 깨달음을 알게 된다. 그 깨달음이란 큰 것만을 이르는 것은 아니다.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 무단히 협력하여 살아가는 삶이 바로 깨달음인 것이다.

그러면에서 책의 제목과는 달리 길 위에 절은 없다. 현대처럼 자본주의 시스템이 고도로 발달된 세상에서 길 위에 있는 절의 의미는 무의미 한 것이다. 길 위에 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절 위에 길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길을 따라 절이라는 목적지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절 위의 길을 걷다 보면 어느 듯 절에 이르는 것이다.
절이란 우리민족에게 일종의 도피처이자 마음의 고향같은 장소를 제공한다. 그 사상적 근원을 무시하고 절은 그냥 살아있는 생명체를 아무말 없이 어떠한 이유도 없이 품을 뿐이다.

그래서 절에는 주인이 없다. 석가세존도 잠시 머물뿐이지 자신의 집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래서 절까지 걸으가면서 그 길위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 것은 내껏과 네껏이 없는 그런 깨달음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우리는 단지 절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있는 깨달음과 자연과의 화해, 잠들어 있는 역사와 절과 자연을 한아름에 품고 있는 풍경을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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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혁명 삼국지 1
김정태 지음 / 일월서각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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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에게 중국의 의미는 세계사에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쌍방간에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국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대문명의 태동에서 고대국가시기를 거치면서 중국과 요동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을 지배했던 우리와 관계는 사실상 근대라는 시기가 도래하기 전 까지만 하더라도 명확한 구분이 없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삼국시대이전의 시기는 강역적인 면에서 모호한 관계를 형성했고 그 이후론 사실상 문화적으로 그 경계를 구분짓기가 모호하다면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우리에게 친근하다. 특히 중국역사를 우리만큼 잘알고 있는 외국인들도 중국입장에서 보면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본토인 중국보다 대한민국에서 더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고 이런한 삼국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비교검토하는 책자만 해도 엄청나게 출간되고 읽혀지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중국의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을 필두로 하는 역사왜곡 사건을 접하면서 우리 역사와 중국역사 바로알기라는 명분이 많은 사람들을 자극시키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우리에게 중국역사의 최종점을 찾으라고 하면 청조의 멸망까지를 말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니 좀더 나아가면 장제스와 마오쩌뚱의 국궁합작과 분열로 인해 대만과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나뉘는 과정까지일 것이다. 그나마 이 부분은 우리의 독립항쟁과 연관이 있는 부분이라 교과서를 비롯한 공식적인 주입이 있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이후의 과정은 냉전이라는 절대이데올로기시대를 거치면서 알아서는 안되는 금역으로 간주되었고 그러나 영향이 고스란히 지금까지 이어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물론 마오와 저우언라이의 뒤을 이은 덩샤오핑의 개혁정책시대에 도래해서야 중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국혁명 삼국지>는 다름 아닌 청말시대부터 문화대혁명직전시기까지의 비화를 다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에 한제국의 멸망과 그에 따른 조조,유비,손권,제갈량,원술등의 걸세출의 영웅들이 천하을 할거했다면 이 시기에도 쑨원,위안스카이,장제스,마오저뚱,린바오등의 영웅들을 탄생시키는 것이 바로 역사의 공통점인 것 같다. 단지 한말의 삼국지는 전제국가에서 전제국가로 실질적인 왕조의 명칭만 바뀌는 과정을 겪게 되지만 청조말의 시대에는 천하가 개벽할 새로운 사조가 이런 영웅들의 패권집착에 한층더 탄력을 받게 한다. 그간의 절대전제국가 시스템의 종말과 동시에 민주와 평등 그리고 인민의 혁명이라는 개념이 확산되면서 중국은 그야말로 열광과 절망이 뒤섞인 도가니속으로 접어들게 된다.  

변증법적인 역사발전과정의 가장 대표적예가 근현대사의 중국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이들 영웅들을 대표하는 중국의 치열한 근현대사는 많은 점을 안고 있다. 그 땅덩어리에 비례한 어마어마한 민중의 희생을 기반으로 결국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게 되지만 역시 그가 그토록 강조했던 인민의 위상이 과연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 했는가에 대해선 향후 전개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권력다툼을 보면 의구심이 가기 마련이다.
여하튼 이번 책은 중국의 근대국가의 탄생과정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상당한것 같다. 여기저기 나오는 각종인물들과 특히 한국전쟁과 관련된 비화들 그리고 최고층사이의 권력암투등 알려지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서 많은 점을 보여주고 있는 책임에 틀림없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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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나라 사람들 - 목욕탕에서 발가벗겨진 세상과 나
신병근 지음 / 시대의창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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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은 메세지를 던져 주는 책이다. <탕나라 사람들>은 우리모두가 자주 찾아가는 목욕탕을 소재로 삶에 대한 무거운 화두를 아주 재치있게 던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연륜이 짧다는 점이 오히려 더 정확한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고 가감 없이 보여주는 목욕탕속에서의 우리의 삶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우리가 목욕탕을 찾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지금이야 단순히 목욕한다는 개념을 뛰어 넘어 휴식과 재충전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복합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목욕탕의 근본적인 목적은 변함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근본적인 목적은 다름아닌 우리 몸의 묵은 더러운 때를 벗겨내고 아주 깨끗한 몸으로 재 탄생하기 위함일 것이다.


우스개 소리로 목욕탕을 갔다 오면 땟깔이 좋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만큼 육신의 더러운 때를 벗겨내고 나면 태초에 순결했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서 상쾌함을 느낀다. 절로 기분이 한결 좋아 지면서 마치 불가에서 말하는 세속의 연을 털고 열반의 세계로 접어드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마련이다.
어릴적 가장 싫은 것이 목욕탕가는 것이였다. 아마도 이점은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봤을 것이다. 지금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목욕탕에 빼기고 온다는 생각 때문에 그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나 자신의 나신을 남에게 고슨란히 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 왠지 수치심을 자극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복합적인 생각들로 인해 목욕탕은 그리 유쾌한 공간이라고 할 수 도 없는 것이다.

그럼 왜 이제 와서 다시 목욕탕이야기인가?
저자의 의도는 아마도 목욕탕 만큼 만민이 평등한 출발점에서 출발할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에 목욕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나 싶다. 물론 지금이야 때밀이나 피부관리등의 신종직업으로 인해 평등한 출발점이라고 보기에 약간은 무리가 가기도 하지만, 크게 봐서 목욕탕에서는 권력의 높낮이나 부의 대소를 떠나 누구나 실오라기 하나 걸칠 수 없다는 점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때을 스스로 밀던 금전을 지불하고 밀던 간에 모두 때를 미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는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기만 해보았지 그 이상의 생각을 해보진 않았던 것 같다. 때란 다름 아닌 우리 육신의 욕망이나 허세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겉모습의 이런 욕망은 말끔히 덜어내고 오면서 정작 우리 마음속의 때는 언제 밀었는지 기억조차 없는 것이다. 너무 도학적인 말이 될수도 있지만 결국 육신과 영혼이 때를 밀지 않고선 온전한 목욕을 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인간은 목욕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두어왔다. 종교적인 행사나 의례를 지낼 때 목욕을 하면서 그 의미를 더 존중했고 지금도 집안의 재사를 받을땐 목욕을 한다. 바로 이점은 육신의 깨끗함만을 추고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육신과 영혼의 정화를 통해서 완전한 자아를 찾았던 것이다. 목욕이라는 행위가 갖고 있는 의미는 매우 깊고 심오하다고 할 수 있다. 단순히 몸의 때를 미는것이 아니라 마음속을 정화하는 것이 진정한 목욕의 의미인 것이다.

<탕나라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목욕탕이라는 작은 공간속으로 그대로 옮겨 놨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림처럼 목욕탕 자체가 사람의 모습을 띄고 있는지도 모른다.
목욕을 하긴 위해서 우리 몸에 걸치고 있는 옷가지를 벗어 버리고 때를 밀어야 하듯이 우리의 삶 역시 이런 행위와 크게 다른바가 없은 것이다. 이제 몸과 마음속에 가득찬 욕망이라는 때를 벗어 던져야 할 때는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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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화 순례
최준식 지음 / 소나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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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우리나라의 중심지가 된지 대략 600여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흘렀다. 세계사에 유래없이 장수한 조선왕조의 몰락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반쪽짜리이지만 한나라의 수도로서 서울은 우리와 같이 희노애락을 같이한 그런 도시이다. 특히 지금의 서울은 대한민국 경제, 교육, 문화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듯이 서울은 수도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럼 이런 서울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서울에 살던 지방에 살던 오히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정작 서울에 대해서는 더 모르고 있는 내용들이 더 많을 것이다. <서울 문화 순례>는 이화여대 한국학 교수인 저자가 서울의 전통문화를 내국인만이 아니라 외국인들에게 올바르게 전파하기 위하여 남산부터 홍대앞까지 손수 발로 돌아다니면서 집필한 일종의 서울 가이드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여행가이드 도서와는 그 개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서울에 남아있는 우리의 전통적인 유적과 문화에 대한 설명과 그 기원을 소개하고 있지만 서울에 한정된 개념을 뛰어넘는 우리의 전통문화 가이드 라고 볼 수 있다.
처음 소개되는 남산경복궁은 그야말로 우리 선조들의 정신적인 면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예이다. 수도의 궁궐 신축에서 우리 조상들은 비록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조선식으로 개창하였다. 이는 나중에 보조적인 궁인 창덕궁을 보면 두더러진다.
소위 말하는 무위자연의 철학이 녹아 있는 곳이다. 최대한 인위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인 건축방식은 우리 선조들의 철학을 대변하는 일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식은 종묘성균관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된다. 성리학의 원산지인 중국보다 오히려 더 발달한 유교문화의 대표적인 흔적을 볼 수 있다. 오죽하면 공자에 재사드리는 문묘제례를 제대로 보기 위해 지금 중국에서 찾아오고 있을 정도로 명나라 멸망이후 우리의 선조들은 조선이 중화을 잇는 적장자로 생각했던 것이다.

 

또한 이책의 별미중에 하나는 국사당조계사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은 극히 유교적인 도시이다. 지금이야 그 빛이 많이 퇴색했지만 500여년을 유교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에 유교를 제외한 그 어떠한 종교는 배척당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조선건국초기에 설립된것으로 알려진 국사당의 내력을 보면 무교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의식도 확인 할 수 있다. 흔희들 비과학적이고 혹세무민한다는 이유로 집권층으로부터 외면당했던 무속신앙은 불교와 함께 우리 민족의식 깊은 속에 자리잡고 있는 유일한 종교이자 한민족과 그 맥을 같이한 유일한 전통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지나간 서울의 모습만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사동홍대앞을 통해서 우리는 문화라는 컨텐츠의 중요한 역활을 볼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이 두곳은 연령대나 가치관면에서 대립적인 요소를 보여주지만 그 자체로서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렇듯 서울은 전통과 현대가 갈이 살아 숨쉬고 있는 역동감 넘치는 도시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한강변을 둘러싼 고층아파트와 업무용빌딩의 어지러운 스카이라인등이 서울의 전부로만 알고 있던 나에게 서울에 대한 생각과 의미를 다시금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문화유산을 이어받은 우리의 현주소가 안타까움으로 다가 온다. 경제우선정책으로 인하여 무분별한 개발과 그로 인한 문화유산의 회손은 이제 그 복원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가고 있다. 비록 이제야 그 중요성을 깨닫고 부랴부랴 보존절차에 들어갔으나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많이 간다. 전통을 포함한 문화유산은 우리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겨 그대로 후손들에게 대물림하라고 하는 것이지 우리의 입맛대로 이용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번 문화유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 책 한권으로 서울 문화순례를 해보는 것이 생생한 기억으로 남을 것으로 생각된다. 책의 목차에 따라 남산에서 시작하여 홍대앞에서 끝마치는 도심여행은 그 어떤 여행보다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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