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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절 - 42곳 사찰에 깃든 풍물과 역사에 관한 에세이
장영섭 글.사진 / 불광출판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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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절>은 전국 각도에 산재해 있는 42곳의 절들과 만남이다. 무속신앙과 함께 불교는 우리민족의 정신적인 기둥으로 오랫동안 자리 잡아 왔다. 비록 외래종교이지만 수천년의 명맥을 이어오다 보니 왠지 낯설지 않은 그런 종교이다. 최초로 우리에게 전래될 당시만해도 권력층의 효과적인 민중지배와 구심점 역활을 수행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고려왕조까지는 철저하게 귀족화된 지배층의 화려한 소일거리만 그 역활을 해왔다. 오히려 조선이라는 성리학 중심의 국가가 들어서 철저히 배척당하면서 불교는 일반 민중들의 가슴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이는 석가세존이 말한 손에 쥐고 있을 수록 놓아야 한다는 아주 단순한 계명을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한다.



그 어떠한 종교적 성소보다 사찰에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불교라는 종교자체에 대한 깨달음, 대체로 우리나라의 사찰들이 산속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곳에 자리하고 있다보니 절을 둘로싼 생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우리민족의 역사만큼 사찰은 무언의 역사를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찰을 감싸고 있는 풍경 또한 볼 수록 멋있기 마련이다. 이 책은 이런 4가지의 테마로 절의 존재성을 말하고 있다.

<절안의 깨달음>
경북 문경의 김용사에는 대략 300여년은 족히 넘은 똥간이 있다. 원래 서기 588년에 운달조사가 창건 했다가 다시 김용이라는 사람의 중창으로 김용사로 그 이름이 바뀌었지만 역사가 오래된 사찰이다. 이 절은 성철스님, 서암스님,서옹스님과도 인연이 깊은 절로 한때는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그 이름값을 독독히 했다. 하지만 실화로 인해 절의 반이상이 화마에 휩쓸려 간 이후로 김천 직지사한테 본사 역활을 내주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절이다. 그러나 정작 이 절에서 우리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대웅전의 불상이나 삼층석탑의 단아함이 아니다. 바로 오래된 똥간에서 무위성이 영구성을 보장해 준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치게 된다. 인간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똥을 눈다. 배설이라는 생리현상을 거를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그 배설물을 논이나 밭에 거름이라는 형식으로 뿌려 거기서 나오는 작물들을 먹는다. 식물이 우리의 똥을 먹고 우리가 다시 우리의 똥을 먹는 형국이다. 이처럼 모두가 더럽다고 혐오하지만 결국 똥은 우리의 몸을 몸답게 만드는 것이다. 절에서 똥간을 해우소라고 한다.

<절이 안고 있는 생명>
충남 천안의 광적사에 가면 천연기념물 제39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호두나무가 있다. 고려 충렬왕때 원나라 사신으로 갔던 류청신이 귀국하면서 호두나무 묘목을 가져야 심었으니 그 수력이 대단하다. 천안의 명물 호두과자의 시조인 셈이다.
호두는 원래 서역에서 들어온 종자이다. 그래서 오랑캐 胡자를 쓴다. 중국의 오만함을 알려주는 사례이다. 호두는 인간의 뇌에 좋은 식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인간의 뇌와 흡사하게 생겼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최고의 신이 제우스에게 호두를 제물로 받쳤다.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호두는 인간에게 유익한 식물이다. 조선후기에 이르면 구황작물로서 그 인기가 높았다. 비록 호두나무를 고려에 전래한 류청신의 조국에 대한 배신이나 복수심은 광적사 입구의 호두나무 그늘에 가려져서 이제는 옛이야기일 뿐이다. 지금도 이 호두나무에는 많은 호두가 열린다. 하지만 가장먼저 이 호두의 맛을 보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바로 청설모이다. 그렇다고 미물인 청설모를 탓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이 준 생명력을 나누는 것일 뿐이다.

<절에 잠든 역사>
안성의 칠장사. 칠장사는 조서시대 대쪽 어사로 이름난 박문수가 나한전에 기도를 올리고 장원급제를 했다고 해서 유명해진 사찰이다. 하지만 오히려 도둑때문에 더욱 유명세를 타는 절이 바로 칠장사이다. 임꺽정이 생불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병해대사를 찾아가 감화를 받고 일생동안 스승으로 모셨던 유명한 일화가 있는 절이기도 하고 나한전에 봉안된 7인의 아라한이 본래는 산적이었다는 점이 이채롭기만 하다. 또한 임꺽정이 나라를 훔치는데 실패한 도적이었다면 태봉을 건국한 궁예는 열 살 때까지 여기서 활을 배웠다고 한다.
절에 이렇게 보듯이 많은 역사가 잠들어 있다. 임꺽정세력이 최고 정점을 이룬 황해도는 이후 불모의 땅이 되어버렸다. 왕실에 반역했다는 이유로 하지만 수십년후 임진왜란 당시 민초들은 그런 왕실에 카운터펀치를 날린다. 유독 의병 봉기가 없는 곳으로 자신들의 한을 대변했던 것이다. 사찰은 우리의 이런 저런 역사를 말없이 묻어 두고 있다. 누가 굳이 들추지 않는 이상 역사 만큼이나 사찰은 아무말을 하지 않는다. 절에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비추는 역사라는 거울이 있다.

<절 바깥의 풍경>
전국에 사찰에서 이름을 따온 역은 모두 9곳이라고 한다. 논산의 개태사역, 사천의 다솔사역, 의정부의 망월사역, 장성의 백양사역, 경주의 불국사역, 창원의 성주사역, 김천의 직지사역, 여수의 흥국사역, 영주의 희방사역이다. 이 점을 보아서도 사찰의 오랜 역사성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기차가 현대의 상징이라면 사찰은 전통의 표상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역중 역 본연의 역활을 하는 곳은 망월사역밖에 없다. 그 만큼 전통을 대변하는 사찰의 퇴색을 말해주면서 동신에 현대의 승리를 말해준다. 그러나 왠지 그 현대의 승리가 그리 시원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 만큼 우리가 달려온 현대는 공허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기찻길은 가도 가도 서로 마주봐야 한다. 다른 운송수단 보다 더디고 불편하다. 자유자재로 뻗어나갈 수도 없고 융통성도 없다. 그래서 기찻길은 자동차길에 밀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기찻길이 더 많이 있다.

그러한 한때는 문명의 척도 역활을 했던 기찻길 역시 지금은 사찰과 함께 전통의 저편으로 지고 있다. 기찻길이 굽이 보이는 영주 희방사는 신라 선덕여왕때 마을의 아낙을 잡아먹은 호랑이가 목에 비녀가 걸려 괴로워하는 것을 스님이 살려주고 나서 세운 절이다.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만큼이나 오래된 희방사와 이제 막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기찻길의 조화가 볼 수 록 아름다운 곳이다.

절은 불상과 불경을 모시고 단순하게 승려들이 정진하는 그런 곳은 아닐 것이다. 종교적인 편력을 떠나서 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 절에 묻어 있는 생명력과 절을 오르는길에 느낄 수 있는 풍경, 그리고 절안에 품고 있는 오래된 우리의 역사 이를 통해서 우리는 절로 깨달음을 알게 된다. 그 깨달음이란 큰 것만을 이르는 것은 아니다.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 무단히 협력하여 살아가는 삶이 바로 깨달음인 것이다.

그러면에서 책의 제목과는 달리 길 위에 절은 없다. 현대처럼 자본주의 시스템이 고도로 발달된 세상에서 길 위에 있는 절의 의미는 무의미 한 것이다. 길 위에 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절 위에 길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길을 따라 절이라는 목적지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절 위의 길을 걷다 보면 어느 듯 절에 이르는 것이다.
절이란 우리민족에게 일종의 도피처이자 마음의 고향같은 장소를 제공한다. 그 사상적 근원을 무시하고 절은 그냥 살아있는 생명체를 아무말 없이 어떠한 이유도 없이 품을 뿐이다.

그래서 절에는 주인이 없다. 석가세존도 잠시 머물뿐이지 자신의 집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래서 절까지 걸으가면서 그 길위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 것은 내껏과 네껏이 없는 그런 깨달음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우리는 단지 절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있는 깨달음과 자연과의 화해, 잠들어 있는 역사와 절과 자연을 한아름에 품고 있는 풍경을 만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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