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역사 - 지질학, 생태학, 생물학으로 본
유리 카스텔프란치.니코 피트렐리 지음, 박영민 옮김, 레오나르도 메치니 외 그림 / 세용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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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역사(History of the Earth)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것의 역사]을 보면 빅뱅으로 우주의 탄생에서 부터 현 인류의 역사에 이르기 까지 정말 방대한 역사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화보한장 없는 덕분에 이해하기가 그리 녹녹치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이번 <지구의 역사> 정말 생생한 컬러 화보와 각 시기별 연대표까지 한눈에 지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책이다. 

이런 책 한권 소장했으면 하는 바램이 이루어져서 기쁘다. 초등학생에서 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두고 두고 가족모두가 볼만한 책이다. 물론 이 책을 한번보고 그 내용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여러번에 걸쳐 보아도 실증나지 않는 책이다. 특히 지질학, 생물학, 생태학적인 접근 방식으로 그 깊이 또한 개론의 수준을 상회하는 내용들이 상당수 있는 것 같아 내용도 알차다고 할 수 있다.

책의 구성을 봐도 일반인들이 한눈에 쉽게 파악할 수 있게 지구의 탄생에서 부터 현 인류에 이르기까지 주제별로 생명의 역사와 생태환경에 관한 논점들 그리고 지질과 기후에 관한 이론들과 현상들을 효과적으로 분류해놓은 작은 백과사전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각장마다 제목과 그에 합당한 그림 그리고 정확한 연대표를 첨부하여 시대파악에도 쉬운것 같다. 예전 고등학교 지구과학시대에 그렇게 힘들게 외웠던 누대, 대, 기 돌아서면 잊어버렸지만 이렇게 화보로 한눈에 보니 편리해서 좋은것 같다. 

지구과학이나 생물학 생태학과 기후학 고고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책 한번으로 단숨에 기본적인 맥락을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지구의 역사는 상당한 세월을 두고 진행되어 왔다. 50억년이라는 숫자는 우리가 가늠하기엔 무리가 있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세월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가 이런 오래세월을 거치면서 각종 생명체의 명멸을 통해서 가장 완벽한 진화형태를 갖춘 인간에 이르기 까지 그야말로 눈물나는 과정을 지켜냈다. 하지만 그동안의 발굴과 연구된 자료를 통해 보면 지구는 알수 없고 예기치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것도 생명체의 90%이상을 멸종의 길로 이끄는 대재앙을 간직한 역사이다. 어떠면에서 보면 지금 우리 인간은 마치 지구를 정복한 최후의 승자라는 승리감에 도취해 있지만 향후 지구의 역사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아직도 지구의 역사는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서 인간이란 존재가 정말 보잘것 없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 기나긴 지구의 역사중에 단지 몇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역사를 가지고 인간은 마치 모든 지구의 역사를 지배한듯한 착각에 빠져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구는 인간만의 행성이 아니라는 사실은 그동안의 역사를 돌이켜봐도 알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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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
애덤 필립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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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과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에게 던지는 말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 스스로에게 많은 반문을 하게 된다. 너 정말 정상이니? 멀쩡한거지?  

우리가 흔히들 멀쩡하다는 표현을 수 도 없이 하면서 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멀쩡함이란 대체적으로 정신적인면과 육체적인면을 둘다 아울러서 말한다. 나도 그렇고 필자도 그렇고 이 책을 보고 있는 독자도 그렇고 아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다들 멀쩡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그렇게 믿고 있는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 멀쩡함에 대한 이야기를 굳이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왜? 다들 멀쩡한데 말이다. 

인간의 사고체계는 상당히 복잡하다고 알려진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아주 단순한 이분법적인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다. 포유류에서 진화한 인간의 뇌는 일반 영장류보다 아주 많은 발전을 거듭하면서 논리적인 사고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철학을 논하는 것이고 생과 사에 대한 구체적이고 끊임없는 사고와 문명이라고 일컫는 사회적 제도를 개발하여 그야말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러면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타의 생명체와는 차별있고 선택받은 유전자라는 점을 은근히 과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쩡함이라는 단어 내지는 그 의미는 인간의 사회적 제도가 만든 허상(?) 내지는 바램(?) 일 수 도 있다. 흔히들 우리는 멀쩡함을 사회적 잣대로 정해서 멀쩡함보다 다소 못미치는 경우 미숙함이나 덜 떨어진다는 식으로 치부해 버린다. 또 한편으로 멀쩡함에서 좀더 앞으로 나아가게되면 왠지 거리감을 두게 하는 광기의 소유자로 몰아 간다. 사람을 두번 다시 보게 되는 경우가 대체로 미숙함을 소지한 사람과 광기의 사람일 것이다. 마치 멀쩡한 사람은 그냥 대세에 묻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처럼 멀쩡함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은 마치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약간은 동떨어져 있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본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고 역사적으로 증명된 대부분의 위대한 인물들을 곰곰히 살펴보면 멀쩡함이라는 요소를 가지고 있는 인물은 눈을 씻고 봐도 없을 것이다. 멀쩡함을 가진 이들이 보면 정말 위험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면 멀쩡함이란 표현자체가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광기가 멀쩡함이고 멀쩡한다고 생각하는것은 미숙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아마도 이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가져오는 폐해중에 하나일 것이며 인간이 만든 제도중에 가장 훌륭한 작품일 것이다. 사회적 구성하고 사회를 조직하고 이끌어나가야할 입장에서 이 멀쩡함이라는 단어 전가의 보도처럼 편리함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다수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다수의 멀쩡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이 처럼 위안이 되는 말은 없을 것이다. 멀쩡함을 가진 이들이 대다수이면서 멀쩡한 행동양식에 의거해 멀쩡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어쩌면 멀쩡한 생각일 것이기 때문이다.

명 멀쩡함이라는 단어는 좋은 말이다. 유학에서 말하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길을 의미 하기도 한다. 하지만 멀쩡함은 멀쩡하기 때문에 발전이 있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라 과연 나 자신은 정말 멀쩡한가? 흔히들 어린아이들의 행동과 사고 그리고 우리가 광기라고 말하는 일련의 행동이나 사고들이 과연 멀쩡함에서 벋어난 것일까?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나 이외의 타인의 행동이나 사고는 광기로 생각하고 나 자신의 사고와 행동은 멀쩡함으로 인식해버리는 멀쩡한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정말 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판단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우리는 모두다 미치거나 정상인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멀쩡함이라고 해야 하는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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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개인사 - 한 아버지의 삶
조동환 외 지음 / 새만화책 / 2008년 9월
품절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접하는 있는 역사라는 개념이 대체로 역사적 큰 사건을 배경으로 특정인물중심으로 기술된 역사서를 지칭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만큼 일개인의 삶에 대한 역사적 조명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면에서 [뜻밖의 개인사]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어느 평범한 개인의 삶 그것도 우리 근대사중에서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4.19, 5,16등 가장 격동적이고 일개인으로써는 감당하기 힘든 시절을 보낸 한 개인이자 남편,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출생에서 부터 유년시절의 성장과정 결혼생활과 직장생활등을 유서형식으로 남긴것을 후손들이 일종의 연대기 형식으로 재구성하였다.

일반 연대기와는 사뭇다른 드로잉이라는 기법을 가미하여 개인의 삶을 몇 컷의 드로잉으로 보여준다. 또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나 특별한 기억에 대한 자식들의 회상 역시 드로잉을 통해서 간략하고 단순하지만 정확한 표현을 하고 있다. 제목에서 말하듯이 이 책의 주인공의 시대정신에 대한 지각이나 특별한 의식은 볼 수가 없다. 그러면에서 극히 일개인의 개인사일 뿐인 것이다. 아마도 그 시대를 살았던 대부분의 아버지들의 공통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점이 더 솔직하게 다가 오는 것 같다. 일제감정기에서의 총독부 근무, 미곡생산비 조사업무,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근무와 한국전쟁시 지역인민위원회의 착출로 회계업무를 보고 난 후 국군의 수복으로 겪는 고초등을 기회주의자로 매도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아버지들의 삶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만큼 우리 근현대사에서 정체성이란 존재보다 민초들은 그동안 삶의 결정권 박탈에서 스스로 삶을 결정하는 형태로 나아갔지만 이러한 개인들의 경우 특히 타인의 삶에 적어도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삶을 지탱하였던 것은 아닐까 싶다.

[뜻밖의 개인사]는 또한 우리근현대사를 한눈으로 볼 수 있는 정말 뜻밖의 역사이다. 암울하게만 느껴지는 일제강점기속에서도 우리 개인들은 또 다른 삶을 살아갔고, 전통적인 유교 교육을 받은 집안의 풍속이나 그 시대의 결혼식, 장례식, 수학여행, 그리고 고학생의 학비 마련방식등 어렴풋이 옛어른들의 구전으로 듣던 내용들을 드로잉의 한컷으로 볼 수 있는 즐거움 또한 있다. 그리고 해방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자리잡게 되는 직장의 풍속도와 퇴직 후 겪게 되는 고충 및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이별등 어찌 보면 극히 개인사로 치부 할 수 도 있지만 이런것이 우리의 살아있고 생동감 넘치는 역사라고 할 수 있는것 아닐까?


이 연대기의 주인공은 소위 당시로서는 높은 교육을 받은 인테리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일대기를 유서형식으로 한문의 해서체로 작성할 정도의 식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해방후 세무서에 근무하여 정년퇴직할 때 까지 나름 청렴한 공직생활을 하였고,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 또한 각별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우리와 똑같은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삶을 똑같이 살아갔던 인물이다. 아마 이 책이 더 가슴에 와닿는 것은 시대정신의 표출이나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저항의식보다 순수한 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아버지들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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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 18세기 조선경제학자들의 부국론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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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제학이라고 하면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서양의 학문이며 애덤 스미스, 케네, 밀, 케이즈등 대표적인 경제학자들이 생각날 것이다. 그 만큼 경제학이라는 학문자체가 외래에서 전래되었고 다양한 그래표와 서식으로 가득한 신학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이런 경제학자들이 과연 없었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특히 유교가 국가이념과 개인의 생활을 지배했던 조선시대에 과연 이러한 경제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론은 우리에게도 서양의 경제학자들 만큼 혁신적인 사고를 가진 이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인 13인의 사상을 검토하면서 과감히 경제학자라는 명칭을 수여한다. 사실은 서구의 초기 경제학자들이 대부분 철학자 출신이자 정치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경제학자들 역시 유교적인 철학과 관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나름대로의 경제적 사상을 피력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할 것이다.  

선과 서구의 학자들이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서구의 경우 각종 경제현상을 위주로 경제학이라는 맥을 짚어가고 그 해결책을 찾아 가는 방식이지만 조선의 경우는 經世濟民 이라는 부국안민의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크나큰 차이점이 있다. 이러면이 후대에 경제학이라는 단독의 학문범위을 창출하지 못하였다는 점은 있으나 조선선비들의 생각의 정점은 바로 백성들의 편안삶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이 경제라고 파악했던 것이다.

대동법의 창시자이자 현실화시키는 혁혁한 공을 세운 김육을 필두로 조선시대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가정경제의 개념을 확립한 빙허각 이씨, 사농공상의 인식이 뼈속까지 뿌리 박힌 세상에서 사대부의 위치로 직접 상업을 하여 굶주린 백성을 구제한 토정 이지함, 우리나라 최초의 지리경제학이라는 장을 연 택리지의 이중환, 조선최초 시장자유화조치라는 신해통공을 주창한 체제공, 현실과 괴리한 성리학의 단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살아있는 학문을 주장한 실학자 유형원, 유수원, 이익, 정약용, 오랑캐라는 청나라에게도 배울것은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 박지원, 박제가, 서유구, 쇄국이 아닌 개화통상만이 나라를 부국으로 만들수 있다고 생각한 개화파의 선두 박규수 

들 13인의 사상은 세부적인 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의 가장 근본인 토지에 대한 개혁만이 풍요로운 삶의 질을 높일수 있다고 생각한 중농주의 학파(유형원-->이익-->정약용), 농업으로서는 한계가 있고 상공업만이 부를 진작시킬수 있다고 생각한 중상주의 학파(이지함-->유수원-->박지원-->박제가-->박규수) 로 분류할 수 있지만 결국 이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경세제민을 통한 부국강병과 부국안민이라는 대전제에 있었던 것이다. 특히 경제단위의 가장 기초가 되는 가정경제에 대한 면멸한 고찰을 한 여성 경제학자의 발굴 또한 의미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이들이 주창했던 경제정책은 대동법과 신해통공을 제외하고는 현실로 실현되지 못하였지만 후대에 동학농민혁명과 개화사상가들의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절대군주의 국가였던 조선에서 가히 혁명에 가까울 사상을 주창한 이들의 사상이 일개인의 생각만이 아닌 민중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는 점에서 경제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볼 기회는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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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죽었다
셔먼 영 지음, 이정아 옮김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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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죽었다(The Book Is Dead...)


목 자체가 상당한 충격을 주는 듯하다. 책은 죽었다. 인간의 삶 그 중에 정신적인 삶의 풍요로움을 가져온것은 문자라는 발명과 그 문자를 후세에 전달하는 방식 즉 책의 출판해서 전달하여 인간이 정신적인 가치를 보존하였기에 가능해진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책이라는 명명하에 유산으로 가지고 있는 책과 그리고 지금 이 서평을 쓰는 시간에도 세계각국에서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책들이 서점의 매대를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이런 행위를 반복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 저자는 왜 책은 죽었다라고 과감하게 선언한 것일까?

책은 엄밀히 표현하면 사물의 일종이다. 물리적인 무게와 나무를 원료로 하는 종이 그리고 특정 잉크를 활자화한 사물인 것이다. 그 내용은 두번째 문제로 치더라도 유형적인 사물임에 틀림없다. 저자는 바로 이런 면에서 책은 죽었다고 선언한다. 현대 과학기술을 발달로 인해 그동안 LP 나 CD로 음악을 듣던 시대를 벋어나 이제는 웹에서 바로 다운받아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고, 온라인 게임 및 특정 인기있는 TV프로로 하루를 시작하여 하루를 마감하는 시대에서 책이란 존재가치가 설 자리가 없다고 한다. 또한 책을 읽는 독자가 갈 수록 적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책은 죽었다.

또한 책이란 저자도 표현했듯이 그 책에는 저자의 사상이 담겨있어야 우리가 말하는 진정한 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시대는 진정한 책 정신을 볼 수 있는 경우가 드물다. 시대사조에 따라 인기있는 자기개발서 내지는 웰빙음식서적, 다이어트서적, 내지는 인기연애인의 재테크등의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책 정신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죽었다라고 저자는 선언한다.

경제학적으로 저자는 공급자와 독자라는 수요자가 존재했던 시대에 책은 살아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 서평을 쓰고 있는 나도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쓴 글을 블로그라는 형태로 불특정다수에게 무차별 공개하는 시대에 과연 공급자와 수요자를 구분할 수 있겠는가라는 관점에서 책은 죽었다라고 선언한다.

또한 출판사 역시 엄연한 기업이다. 기업의 최종목적은 영리추구이다. 그러면에서 출판사의 구조는 한마디로 불성실한 기업으로 낙인 찍힐수 있는 소질이 다소 있다. 책의 출판을 그만두던지 아니면 책이라 부를 수 없는 책들만 출판하던지 해야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면에서 역시 책은 죽었다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한 것 중 하나가 책일 것이다. 사무실한쪽에 책한권이 꽃혀있을 것이고 집에 만 가더라도 각종 백과사전을 비롯한 전집류등 책들이 서가를 장식(?)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 만큼 책은 인간에게서 분리할 수 없는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이사를 한번 씩 할때 마다 책정리 한다고 폐기처분하는 책들도 수없이 많지만 그래도 책장에 고스란히 모시고 있는 책들이 더 많이 있는 것이다. 비록 그 책을 읽던 아니면 장식물로 대체를 하던 책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이렇게 말한다면 책은 죽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책은 죽었다는 말은 아마도 책이라는 사물자체를 염두해 두고 하는 말인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책의 사물성을 뛰어넘어야지 진정한 살아있는 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전자책 개념이나 전자도서관같은 개념으로 미래의 책은 사물성을 잃어 버릴 것이고 지금 우리는 이에 대한 준비를 하나씩 해나가야 한다고 한다. 아마도 머지않는 미래에 지금의 책과는 사뭇다른 형태의 책이 우리 곁에 존재할 것이다. 비록 지금의 이러한 시도들이 기술적인 난간에 부딛혀 그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세월이 흐른 가까운 미래에는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는 점에 부인하는 사람들 역시 없을 것이다. 

책은 단순한 몇백그램의 무개와 종이로 된 내지 그리고 하드보드지의 겉장식으로 구성된 활자의 묶음만은 아닐것이다. 책에는 그 저자의 정신이 배여있다. 또한 영화나 비디오게임보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수있는 잇점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소유욕에 부합되도록 장서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는 그런 책정신이 살아있고 묻어 있는 책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생각조차 할 수 없을만큼 시장논리에 묻혀 출판, 저작이라는 행위가 이루어 지고 있다.  

이 죽지 않고 살아있을려면 이런 책정신이 필요할 것이고, 향후 저작과 출판, 그리고 더 나아가 독자층 확보에 대한 많은 숙제를 고민하고 풀어나가야만 책은 진정으로 죽지 않는 것이다. 책을 읽는 목적은 저마다 다르다. 그리고 읽는 방식, 읽는 장소, 읽는 시간 역시 각 개인마다 같을 수 가 없다. 이런면이 TV을 시청하고 게임을 하는 일률단편적인 행위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과 책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렇게 가깝게 있는 책이 지금은 서서히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책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이제는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면에서 이러한 작은 출발점이 있기에 책은 살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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