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 18세기 조선경제학자들의 부국론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제학이라고 하면 우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서양의 학문이며 애덤 스미스, 케네, 밀, 케이즈등 대표적인 경제학자들이 생각날 것이다. 그 만큼 경제학이라는 학문자체가 외래에서 전래되었고 다양한 그래표와 서식으로 가득한 신학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이런 경제학자들이 과연 없었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특히 유교가 국가이념과 개인의 생활을 지배했던 조선시대에 과연 이러한 경제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론은 우리에게도 서양의 경제학자들 만큼 혁신적인 사고를 가진 이들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조선 중,후기의 대표적인 13인의 사상을 검토하면서 과감히 경제학자라는 명칭을 수여한다. 사실은 서구의 초기 경제학자들이 대부분 철학자 출신이자 정치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경제학자들 역시 유교적인 철학과 관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나름대로의 경제적 사상을 피력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할 것이다.  

선과 서구의 학자들이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서구의 경우 각종 경제현상을 위주로 경제학이라는 맥을 짚어가고 그 해결책을 찾아 가는 방식이지만 조선의 경우는 經世濟民 이라는 부국안민의 관점에서 경제를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크나큰 차이점이 있다. 이러면이 후대에 경제학이라는 단독의 학문범위을 창출하지 못하였다는 점은 있으나 조선선비들의 생각의 정점은 바로 백성들의 편안삶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이 경제라고 파악했던 것이다.

대동법의 창시자이자 현실화시키는 혁혁한 공을 세운 김육을 필두로 조선시대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가정경제의 개념을 확립한 빙허각 이씨, 사농공상의 인식이 뼈속까지 뿌리 박힌 세상에서 사대부의 위치로 직접 상업을 하여 굶주린 백성을 구제한 토정 이지함, 우리나라 최초의 지리경제학이라는 장을 연 택리지의 이중환, 조선최초 시장자유화조치라는 신해통공을 주창한 체제공, 현실과 괴리한 성리학의 단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살아있는 학문을 주장한 실학자 유형원, 유수원, 이익, 정약용, 오랑캐라는 청나라에게도 배울것은 배워야 한다는 북학파 박지원, 박제가, 서유구, 쇄국이 아닌 개화통상만이 나라를 부국으로 만들수 있다고 생각한 개화파의 선두 박규수 

들 13인의 사상은 세부적인 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의 가장 근본인 토지에 대한 개혁만이 풍요로운 삶의 질을 높일수 있다고 생각한 중농주의 학파(유형원-->이익-->정약용), 농업으로서는 한계가 있고 상공업만이 부를 진작시킬수 있다고 생각한 중상주의 학파(이지함-->유수원-->박지원-->박제가-->박규수) 로 분류할 수 있지만 결국 이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경세제민을 통한 부국강병과 부국안민이라는 대전제에 있었던 것이다. 특히 경제단위의 가장 기초가 되는 가정경제에 대한 면멸한 고찰을 한 여성 경제학자의 발굴 또한 의미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이들이 주창했던 경제정책은 대동법과 신해통공을 제외하고는 현실로 실현되지 못하였지만 후대에 동학농민혁명과 개화사상가들의 세계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절대군주의 국가였던 조선에서 가히 혁명에 가까울 사상을 주창한 이들의 사상이 일개인의 생각만이 아닌 민중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는 점에서 경제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볼 기회는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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