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4대 사화 - 무오사화.갑자사화.기묘사화.을사사화
김인숙 지음 / 느낌이있는책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士禍란 조선시대 사림들의 피맺힌 恨으로 남아있는 좋지 못한 기억일 것이다. 조선건국과 동시에 태생적으로 탄생할 수 밖에 없는 공신세력 그리고 초창기 왕권과 신권사이를 저울지 했던 권력의 향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왕권은 성종조에 이르러 일대 변혁을 가져오게 된다. 성종은 본격적인 친정을 시작하면서 김종직을 필두로 하는 사림들을 정계에 발탁하여 훈구세력의 정권장악력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러한 권력의 편중을 막기 위한 방편은 사림들과 왕권의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져 성종의 치세를 뒤받침 하는 원동력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연산군의 등장으로 이러한 균형추는 무너지게 된다. 그리고 그 시초는 어찌보면 아주 단순한 개인적인 사건에서 시작하고 물론 조선의 4대 사화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권력욕보다 더 개인적인 욕구에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이는 후대에 가서 사림들로 형성된 권력층사이에서 분당의 원인으로도 작용하게 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욕심이나 질투는 가히 끊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김일손의 사초와 김종직의 조의제문에서 그 발달된 무오사화는 조선의 사화중 처음으로 대량 살생의 피바람을 불러 오게 된다. 그리고 연산의 생모인 윤씨의 폐비사건과 연관된 갑자사화에서 그야말로 사림들의 씨를 말리는 대대적인 숙청을 가져오게 된다. 이후 중종반정으로 잠시 주춤했던 사림들에 대한 핍박은 걸세출의 영웅 조광조의 정계등장으로 그 대 사건을 예견하였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묘년에 단행한 숙청의 피바람은 그 자신은 물론이고 이제 막 피어나는 꽃봉우리를 꺾어버린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하지만 사림들의 끈질긴 생명력은 무오,갑자,기묘,을사 4대사화를 거치면서도 그 명맥을 유지하였고 결국 조선의 최후의 승리자로 남게 된다. 

흔히 사화라 하면 올곧은 선비들이 훈구세력에게 일방적으로 피해을 본 사건으로 기억되기 쉽다. 하지만 그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훈구세력은 악이고 사림들은 선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위험하다는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권력창출이라는 대명제에서 양대세력의 치열한 다툼이 있었던 것이지 사림들이 일방적으로 훈구세력에게 핍박 받았다는 논리는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정치란 타협과 협의의 산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사림들은 그런 타협이나 협의에 의한 정치구현이 없었다는 점에서 사화의 일부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이 존재하는 정치판은 그 어떠한 대의적인 협의는 없었던 것이고 사림들의 일종의 피해의속에 자리 잡게 된다. 이는 후대의 당쟁에서 살펴보면 그러한 매락이 면면히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 사림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비싼 댓가를 지불하고 배운 정치술이 바로 사화일 것이다. 급진적인 개혁과 앞뒤 타협없는 공론은 그야말로 그들만의 공론이었지 전반적인 공론이 아니였음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4대사화를 보게 되면 한 개인의 욕심이나 투기가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 오는 지를 볼 수 있다. 한개인의 원한이 정치라는 옷을 갈아입게 되면 그 폐악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다. 무오사화에서 유자광이나 갑자사화에서 임사홍, 기묘사화의 반정공신세력, 그리고 을사사화의 문정왕후와 윤원형과 정난정등은 극히 개인적인 원한이 결국 역사상 지울 수 없는 피바람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면에서 보면 정말 사화라고 표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조선의 사화는 정치적인 이슈는 없는 개인의 복수극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개인의 원한이 확대 재생산되어 일단의 공동체의 복수로 그 대미를 장식한 사건을 사화라 불러야 할 지도 의문이다. 그 이유는 이런 일대의 사화를 통해서 살아남은 사림들의 향후의 정치력을 보면 그 해답은 뻔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조선 4대 사화>는 조선시대 사화에 대한 그 발생원인과 내막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등을 통해서 그동안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했다는 사림들의 항변을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화는 사림들의 일방적인 피해로 비약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 그동안 역사는 살아남은 사림들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임을 기억하고 4대사화의 진실에 접근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의 기억은 왜 그토록 불안정할까 과학과 사회 3
프란시스 위스타슈 지음, 이효숙 옮김 / 알마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우주선에 사람을 실어 달을 탐험하고 태양계 밖의 우주를 관찰하기 위해 또다른 우주선을 띄어 보냈다. 또한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개발하여 단순한 업무에서 부터 복잡한 일처리까지 하는 세상이다. 그야말로 지금이 시대는 과학문명이 꽃을 만개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인간은 그 어떠한 분야에서도 만악이 신이 존재한다고 하면 그 신에 대한 과학적 증명의 도구까지 개발할 수 있을 만큼 과학적 우수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 인간은 DNA복제등의 생명공학기술을 발전시켜 장기의 복제등을 통한 무명장수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인간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자신들을 창조했다는 신보다 어쩌면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은 모든분야에서 절대적 위치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유독 한 분야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바로 그 분야가 이런 과학문명의 창출을 담당했던 인간들의 머리구조이다. 어떤이는 이 세상의 어떠한 컴퓨터를 비교해도 우리 인간의 뇌만큼 뛰어난 CPU는 없다고 한다.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알레르트 아인슈타인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같은 천재들도 정작 자기 뇌의 몇 퍼센트밖에 활용하지 못했다고 하는 정도이니 우리 인간의 뇌는 어마어마한 미지의 세계임에 틀림없다. 

바로 이렇게 우수한 CPU를 장착한 인간의 뇌, 이 세상 그 어떠한 천재도 100%를 다 활용하지 못한 지식의 보고인 인간의 뇌, 그런데 왜 인간은 뇌의 역활의 부수물로 기록되는 기억이라는 현상이 왜 그리 정확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렇게 우수한 조직을 가진 인간의 뇌는 자주 자주 잊어 버린다. 가까운 과거의 기억이나 혹은 아주 먼 과거의 기억들이 서로 혼재할 경우도 있고 때론 잘못된 기억으로 오랫동안 남아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뇌신경학자들은 그동안 이러한 기억에 관한 문제 특히 기억상실증 내지는 외부의 충격으로 손상된 뇌가 기억현상에 미치는 원인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하였다. 과연 기억이라는 현상이 정확히 뇌의 어떠한 부분에서 작용하는가 혹은 어떠한 부분이 손상을 받을 경우 인간의 기억에 대한 지장을 초래하는가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를 하였다. 최근에 와서 뇌를 단층촬영할 수 있는 의료기기의 발명으로 인해 그동안 추정했던 많은 연구들의 성과가 나타나게 된다. 물론 추정의 결과가 잘못된 경우도 있지만 환자들을 통한 임상실험결과에 크게 벋어나지 않는 범주에서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게 되었고 기억장애환자들의 치료에 큰 공헌을 하였다. 

우리 인간의 기억을 일화적 기억, 의미적 기억, 절차적 기억, 서술적 기억, 작업기억등 여러 부분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런 각각의 기억들이 우리가 의식하지 않더라도 서로 연계되어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물론 우리가 기억이라는 것을 감각 구역과 가까운 신피질을 거쳐 측두엽 외측에 의미적 기억장소로 전달하고 측두엽 내측 한가운데 해마와 서로 상응하여 코드화하는 여러단계를 거친다는 발견 또한 대단히 중요할 것이다. 이는 기억장애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치료의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그 연구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루어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물론 이 기억 조차도 불안정 하겠지만 기억을 통해서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억은 불안정한 것이다. 기억은 장애를 일으키기 쉬우며,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건에 대한 현상이나 표상은 시간이 흐르면 각자 기억의 주체의 경험이나 희망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이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표상들이 최초로 전달된 표상이라고 단정할 필요도 없도 또한 그 과거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기억이 과거의 좋은 추억을 포함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이 과거를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보다는 나아가 우리 인간의 미래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기억은 항상 수시로 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불안정성이 바로 우리가 최첨단 컴퓨터나 로봇과 다른 역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알아야 할 것이다. 역동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불안정한 것이지 죽어 있으면 불안정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제학은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할 수 없는가 부키 경제.경영 라이브러리 1
로버트 하일브로너. 레스터 서로우 지음, 조윤수 옮김 / 부키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인 하일브로너에 따르면 "경제학자들은 모델 구축에 매력을 느끼지만, 이는 지나치게 오만한 시도로 경제학을 수학적 서술로 격하시킬 뿐"이다. 경제학이란 "진화하는 경제 체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고안하는 학문",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개선하기 위해 경제 체제의 본질과 논리에 대한 철학적인 분석을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라고 경제학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그 역사적 연혁이 다른 학문에 비하면 그리 길지 못하다. 산업혁명이후 대두된 신흥학문이라고 할 수 도 있다. 그렇지만 산업혁명 당시나 지금의 글로벌 시스템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위치는 새삼 글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그 중요성이 대단하다. 특히 1929년 금융위기로 촉발된 세계대공황을 경험하고 다시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로 발발한 지금의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 더욱더 경제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문을 하게 한다. 

이러한 시점에 맞추어 근간에 수많은 경제학관련 서적들이 일종의 붐을 타면서 독자들에게로 다가가고 있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에게 경제학이란 학문적 이론의 체계는 그리 녹녹치만은 않는게 사실이다. 경제 당사자가 복잡해지고 체제 또한 스미스의 시대보다 복잡해짐에 따라 논리적인 사고보다는 수치적 특히 계량적 경제분석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경제학은 그야말로 수학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함수의 집합체로 전락했다고 해도 틀린것은 아닐 것이다. 이렇다보니 정책을 담당하는 기안자에서 부터 경제학을 배우는 학생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정도로 여겨져 왔던 것이다.

특히 일반대중에게는 경제원론 몇페이지만 넘기면 그냥 덮어버리기 만드는 각종 법칙과 그래프로 점철된 경제학은 어렵고 가까이 하기 힘든 학문으로 여겨져 왔다. 

일반대중의 경제학에 대한 갈구로 인하여 근래에 들어서 몇몇경제학자들 중심으로 경제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획기적으로 스토리텔링방식을 도입하므로서 일반독자들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스토리텔링방식의 경우 간단한 경제현상이나 원인 그리고 몇몇 경제용어들의 설명에 만 국한된 한계를 들어냄으로서 보다 근본적인 경제이해에 대한 부분이 소홀히 된 점 또한 사실일 것이다. 

이런면에서 로버트 하일브로너와 레스터 서로의 <Economics Explained>는 경제에 대해서 좀더 깊이 알고 싶어하는 독자층이나 이미 경제원론등을 수강했던 식자층에게 한결 더 경제에 대한 명확한 접근을 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저서라고 보여 진다.

경제학 전반에 대한 흐름에서 부터 거시경제, 미시경제, 그리고 현대의 경제학이 처한 고민에 이르기까지 경제전반을 한번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 같다. 수학적 공식이나 그래프로만 경제를 설명하는 것 보다 가장 근본적인 경제현상의 물음에 대하여 적정한 수준으로 이해하기 쉽고 그리고 예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다. 

자본주의의 출현에서부터 시작된 경제의 특성과 3대 경제주체인 가계, 기업, 정부의 역활분담과 그 한계등을 설명하면서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거시경제의 기초를 열어 준다. 특히 국내총생산, 저축과 투자, 공공부문의 경제, 통화등의 거시경제 요소가 대변해주는 그 이면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항상 우리는 수치와 통계의 시대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 수치나 통계가 정말 말해주는 경제적 설명과 원인 그리고 대처방안에 대해선 무감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책을 통해서 거시적 경제요소의 실상을 좀더 쉽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저서의 마지막부분의 세계화와 외환시장편에서 저자의 의견은 비록 이 책인 간행된지 10년이 지났지만 지금의 금융위기를 설명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그 혜안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촐발된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그동안 인류가 쌓아온 그 어떠한 부의 효과보다 큰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그리고 전기의 발명으로 이어지는 전기혁명으로 부터 잃어버린 하루의 반을 되찾게 되었고 내연기관의 발명으로 시장의 접근성이 효율적으로 증대했으며 제트비행기의 발명으로 일일생활권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는 대략 250여년이라는 인류이 극히 짧은 역사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그러다 보니 사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이러한 혁명적인 진보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던 점 또한 있다. 이제는 컴퓨터라는 획기적인 도입으로 일일생활권이 아닌 리얼타임으로 모든 경제주체의 행위가 시시각각 들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점은 지금의 세계화라는 경제현상을 불러왔고 그리고 한층 더 많은 부의 폭발을 가져다 준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리얼타임의 경제행위가 미치는 반대급부에 대해선 그동안 등한시 하였던 것 또한 사실일 것이다. 결국 이러한 통제력을 상실한 행위가 미국이라는 한 국가의 경제위기에서 곧바로 전세계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 또한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의도대로 경제학은 현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경제행위를 전부 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이는 경제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판단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학은 그동안 경험했던 자본주의 경제체제라는 틀 속에서 취사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단지 그러한 대안을 보지 못할 뿐이다. 경제주체인 가계, 기업, 정부의 역활분담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에 따라 다가오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마음의 여행 1 : 그리움 - KBS 1TV 영상포엠
KBS 1TV 영상포엠 제작팀 지음 / 티앤디플러스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사실 TV를 통해서 보지 못해서 다소 그 감흥이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관을 여지없이 무너지게 하는 책이다. <내 마음의 여행> 이 주는 마음의 넉넉함은 오히려 영상에서 전해지는 감흥보다 더 깊숙히 감정의 이입을 불러 일으킨다고 볼 수 있다. 강원도의 한계령에서 부터 우리국토의 최남단 제주 추자도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무심히 넘겨버린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을 한장의 사진으로 담아 냈다. 이 아름다운 경치나 풍경에 음율의 아름다운 단어로 인하여 한층 더 아름다운 맛을 느끼게 한다.  

<내 마음의 여행>은 단순하게 한폭의 풍경화 같은 전경에 시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보는이들로 하여금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책 제목에서 말해 주듯이 내 마음으로의 여행인 것이다. 바로 사람들의 삶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들의 삶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기 때문이다.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우리 인간들의 모든 감정을 자연에 비치는 모습으로 투영시켰기 때문에 더욱더 이 책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이다. 다름아닌 우리 주변의 인물들의 삶을 말해주기 때문에 더욱더 그런 것이다.  

고래로 부터 우리의 조상들의 삶은 무위자연이라는 큰틀에서 변함없이 살아왔다. 근대화 내지는 서구화라는 세상의 피할수 없는 큰 물결 속에서도 자연과 하나됨이라는 대전제를 버리지 못했던 것은 다름아닌 바로 자연이 우리의 삶을 대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자연이 되고 자연이 내 마음에 들어오는 아주 작은 깨달음을 일찍 깨닫는 이에게 자연은 무한한 평온을 제공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한계령에서 바라보는 끊없이 이어지는 산하는 어머니의 품을 연상하게 하고 울릉도 앞바다의 출렁이는 바다는 욕심을 버리게 하기에 충분한 것일 것이다.  

시골산간의 해질녁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짓는 연기는 하루 종일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했던 노부부의 작은 보상일 것이다. 주워진 환경에서 더도덜도 욕심내지 않고 자식농사짓는 정도만 바랬던 노부부에 대한 자연의 선물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무위자연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들의 삶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이 여유롭지 못할때 여행이라는 출구를 통해서 그 해답을 찾곤 한다. 이렇듯 여행은 현재의 나를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그 여유는 다름아닌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것을 다시금 알게 해준다. 여행을 통해서 견문을 넓힌다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재발견인 것이다. 내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모든 감정들을 재발견하는 해보는 것이 여행의 가장 중요한 소득일 것이다. 

<내 마음의 여행>은 비록 영상과 음향을 같이 곁들여서 보면 더 좋을 수 있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느껴지는 삶의 파편들을 곰곰히 되새겨보는 것 역시 색다른 맛을 전해준다. 또한 후반부 별도의 장에서 소개되는 12곡의 감미로운 음악을 선별해서 들어보는 감흥이 배가 될 것이다.  

내 마음의 여행은 편안하다. 다름아닌 내 마음의 여행이라 내 마음대로 주제를 정할 수 있고 내 마음대로 일정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 마음의 여행은 남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더욱더 기대가 되는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이길상 지음 / 푸른숲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을 읽는 내내 분노와 부끄러운 감정이 가슴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처음엔 아니 몰라도 어떻게 이렇게 모를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답답함이 책장을 덥는 순간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뿌린대로 거둔다고 뭘 뿌렸어야지 거둘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들 뿐이다.  

교과서(敎科書,testbook) 교육에 사용되는 교재를 교수학습에 편리한 형태로 편집한 도서를 지칭. 이것이 교과서의 사전적 의미이다. 좀더 살펴보면 교과서란 한국가의 교육정책과 교육이념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도서이다. 그 나라의 고유의 정신에서 부터 미래지향적인 비젼을 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자라나는 어린세대들의 가치관 형성과 지적탐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나라는 국가가 직접 간행하는 경우도 있고 민간의 자율에 맡기고 일종의 검정이라는 절차를 걸쳐서 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교과서의 간행에서는 직간접적으로 국가라는 권력이 관여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교과서에 대한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교과서를 통해서 살펴 보면 특정 국가에 대한 인식을 볼 수 있다. 그런면에서 이번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는 세계 각국의 교과서에 비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계기가 된 책이다. 필자가 세계전역을 돌아다니면서 교과서관련 출판사와 접촉하고 집필진과의 만남을 통해 과연 세계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서술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끄러운 현실뿐이다. 세계의 교과서가 바라본 한국은 그야말로 별의미가 없는 나라일 뿐이다. 중국의 속국이나 일본의 우산에 가려져 있는 나라정도이다. 그나마 지금의 경제발전상황을 조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한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특히 일본과 독도영유권 다툼이나 동해의 표기에서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의 교과서는 일본해로 명시하고 있고, 독도단독으로 명시한 지도책은 거의 전무한 편이다. 또한 일본제국주의에 희생당한 식민지시대를 일본이 주장하는 대로 서술하고 있는게 공통적인 현실이다. 식민지근대화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유독 한국전쟁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서술하고 있지만 그 역시도 한국전쟁으로 인한 주변국의 정치정세를 서술할 뿐 정작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인 한국에 대해선 별다른 서술이 없을 정도이다. 

믿기지 않을 것 같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 영원한 우리의 우방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의 교과서를 살펴봐도 그 내용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니 지리적으로 머나먼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길어야 한두줄 정도의 언급이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인 교과서 서술도 문제이지만 같은 동북아시아라는 지리적 역사적 접근성을 가지고 있는 대만의 교과서 서술은 거의 분노를 자아낼 정도로 왜곡이 심하다. 오히려 동북공정을 주창하고 있는 중국본토 보다 더 한심한 작태를 보여 주고 있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그동안 우리는 역사교과서 왜곡이라고 하면 일본의 우익교과서인 후소샤의 교과서를 떠올리지만 일본만큼은 아니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들의 교과서에 대한민국의 정확한 기술은 없다고 봐야 한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경제적으로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대열에 합류했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무사히 치른 국가라고 자부하는 나라의 평가가 이렇게 냉혹하고 비관심의 대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해 보면 아니 비교대상도 되지 못하는게 교과서상의 현실이다. 참으로 비통한 심정일 뿐이다.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 것인가? 이는 다름아니 우리 스스로의 잘못이라고 봐야 정확할 것이다. 역지사지로 우리의 교과서에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대한 아주 단편적인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듯이 그들 국가의 교과서에 우리의 올바른 내용이 수록되길 바라는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우리의 한국학에 대한 투자나 관심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일본과의 비교가 되어서 사실 낯이 뜨거웠다. 일본의 경우 메이지유신때부터 시작한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 곳곳에 전파하기 위하여 엄청난 물적 인적 재원들을 투자하였고 그 결과가 지금의 세계 교과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처럼 행동해왔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다들 알겠지만 교과서에 한번 수록한 내용을 수정하는것은 대단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고 우리가 주장해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점들을 감정적으로만 대처해서는 일만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봐서도 알 수 있다. 이제라도 국가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새롭게 한국학 보급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도 제자리로 돌리기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을 인식하고 멀게 보는 정책이 필요할 때이다. 

세계사의 유래없는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 그리고 한류라는 문화적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나라 하지만 그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가까이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는 책이다. 세계교과서의 왜곡된 부분을 바로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것은 우리의 교과서부터 바로 잡는 것일 것이다.
아직도 식민사관으로 점철된 우리의 역사교과서를 바로잡지 않고선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생각들을 한 순간의 열정이 아님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으로 이어 가야 할 것이다.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는 대한민국의 현 주소를 가감없이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