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게임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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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책을 소재로한 소설이다. <장미의 이름>은 요한 묵시록을 소재로 벌어지는 중세 수도원에 감쳐진 비밀을 헤쳐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고 <방각본 살인사건>은 조선 정조시대에 문체반정을 불어오게 되는 소설과 관련된 미스테리를 헤어가는 과정을 그리는 책을 소재로 하는 대표적인 국내외 소설이다. 이들 작품들은 각 소설의 소재가 된 책을 통해서 그 책에 기록된 내용대로 현실화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면에서 보면 <천사의 게임>은 같은 책을 소재로화 소설이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다른 면을 추구하고 있다. 책을 소재로 한 소설이지만 왠지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작중 다비드 마르틴을 통해 괴테의 파우스트와 뱀파이어와 인터뷰의 로이를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1년도 채 남지 않는 목숨을 연장하는 조건으로 만나게 되는 코넬리라는 의뢰인을 통해 그와 더불어 영생불멸의 삶을 살아가게되는 마르틴의 설정은 파우스트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두 주인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가 이 소설을 대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는 것을 책의 페이지를 거듭할수록 또다른 책속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다. 

  
작중에서 고아나 다름없는 마르틴에게 책과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게 했던 지인인 셈페레는 책 속에는 작가의 영혼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 어떠한 책도 소중하다"고 했다
또한 소설의 말미부분에 마르틴은 자신의 작품을 잊혀진 책들의 묘지라 일컫는 영원한 책들의 안식처에 보관하면서 자신의 애제자인 이사벨라에게 책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다. "각각의 책은 모두 영혼을 지니고 있어. 그 책을 쓴 사람의 영혼뿐만 아니라, 그 책을 읽었고 그 책과 함께 살았고 꿈꾸었던 사람들의 영혼도 가지고 있어. 책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누군가가 그 책으로 시선을 떨어뜨릴 때마다, 그 책의 영혼은 커지고 강해지지. 이미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책들, 시간 속에서 잊혀 버린 책들은 이 곳에서 영원히 살면서, 새로운 독자나 새로운 영혼의 손에 이르기를 기다려." 마르틴의 이 말이 결국 다름 아닌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대변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얼핏 들어서는 책이 가지고 있는 진실에 대해서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미사어구로 포장하고 있는듯 하나 작가는 마르틴의 말을 통해서 책속에 담겨져 있는 이러한 영혼과 현실을 보기좋게 혼합해 버리면서 또 다른 공포를 현실로 끄집어 내고 있다. <장미의 이름>이나 <방각본 살인사건>에서 처럼 책에 서술된 내용대로 현실에서 공포가 엄습해 오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지만 작가는 책속에 담긴 영혼이라는 형태를 현실로 포장하면서 기존의 공포와는 또다른 공포를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소설전체를 휘어잡는 공포의 연장이 아닌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무엇인가 알수 없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공포의 유발을 통해서 독자들이 느끼는 공포마저도 혼란케하는 독특한 면을 발휘하고 있는 소설이다.

대부분의 공포영화의 색감자체가 어둡고 습기찬 화면의 연속이라면 만약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면 어둠과 밝음의 적절한 조화가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이어지는 공포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주인공인 마르틴이 자신의 영혼을 악마인지 천사인지 분가하기 힘든 의뢰인인 코렐리와의 계약을 마치 작가 자신이나 다른 작가들이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는 과정의 목적성 내지는 정당성으로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하든간에 <천사의 게임>이 내포하고 있는 독창성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읽어나가는 내내 소설과 소설속의 소설사이에서 혼돈아닌 혼돈을 야기하면서 조용하게 다가오는 얕은 의미의 공포는 소설의 정점으로 다가갈수록 그 감정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오랫만에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고나서 주변에 관심받지 못하고 이러저리로 굴러다니는 책들을 다시금 보게 한다. 마치 그들 책속에 작가의 영혼과 그 책을 읽고 조금씩 자라나는 또 다른 영혼을 느끼면서 이 세상에 활자화된 책은 어떤 책이라도 잊혀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잠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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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심판 2 - 묵시록의 참극을 넘어서는 한반도의 위기와 최후의 선택
김형균 지음 / 휴먼드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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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연구원 소장이자 재야 사학자인 김종서 박사는 그의 저서 <한사군의 실제 위치 연구>에서 중국정부의 체계적인 역사왜곡의 근본적인 이유를 피력한 바 있다. 물론 강단사학계나 일반 독자들에게 다소 엉뚱한 주장으로만 치부 되었지만 김박사의 주장이 바로 <최후의 심판>이라는 소설의 모티브와 연관성이 있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뿐이면서 다시 한번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우려의 감정을 지울 수 없다. 김종서 박사의 주장은 한마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와 발해등 현 중국의 영토내 명멸햇던 모든 국가들의 역사를 중국변경의 역사로 인식하여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프로젝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대한민국의 따가운 눈초리를 무시하면서도 강행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한반도가 통일되어 단일 국가로 탄생할 경우를 대비하여 옛고구려나 발해 땅의 자국 영토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이다. 비록 이번 소설 최후의 심판 줄거리와는 차이가 나지만 큰 맥은 비슷한 주장과 설정인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병사와 남북정상회담을 코앞에 눈 시점에서 발생한 군부구테타로 인해 남북의 정세를 급격히 냉각되고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전직 대통령의 암살과 하나회라는 전쟁광들의 치밀한 계획하에 진행된 북진무력통일 전략은 결국 계엄령을 선포하게 되고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에게 발포직전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주인공인 김철수기자와 유일한 전의원의 목숨을 건 애국행위로 인해 하나회라는 정체가 탄로나면서 한반도는 전쟁일촉즉발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번 소설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존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끔 하는 소설이다. 또한 대한민국과 한민족이라는 정통성의 문제에서 고구려를 정통성으로 보느냐 신라를 정통성으로 보는냐에 따른 시각적인 차이가 어마 어마하는점 또한 이 소설을 통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예로 부터 지정학적으로 반도에 자리잡게 된 우리역사와 주변국들의 끊임없는 야욕을 비록 소설의 형태이지만 충분히 실현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에 또 한번 대한민국과 한민족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는 소설이다. 

현재 핵개발을 무기화한 북한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주변 당사자국들의 이해타산이 과연 어떠한 형태로 그 결말을 이끌어 낼지는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통해서 결국 잘못된 선택의 혹독한 댓가는 오로지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생각하고 지금의 어려운 정국을 헤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북핵의 슬기로운 해법만이 한반도내에서의 전쟁야욕을 종식시키고 평화로운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임을 인식해야 하겠다. 사실상 한반도를 둘러싼 이해당사국들의 한반도내의 통일에 대해선 전혀 관심도 없고 바라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한민족인 남과 북이 이 문제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분단이라는 아픔을 안고 지내온지도 벌써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버렸다. 분단의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결국 가장 큰 피해자는 다름 아닌 한민족일 것이다. 비록 소설의 시나리오이지만 시간이 흘러 소설속의 인물들 처럼 생각하는 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할 수 없는 것 아닌겠는가? 또한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왜곡속에 담겨져 있는 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남측뿐만 아니라 한민족 전체가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출발에서 한반도 통일의 공통점을 찾을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비록 소설이지만 정말 상상하기도 싫고 설령 일어나서도 안되는 시나리오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적대적인 외교관계로 치닫는다면 왠지 발생할 수 도 있지 않을까라는 불길한 생각을 들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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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그레고리 머과이어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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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와 그의 누이동생인 루크레치아 보르자에 관한 팩션이다. 팩션이다 보니 역사적 사실성에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적절히 융합되어 전개되고 있다. <거울아 거울아>가 일반 팩션에 비해서 좀 다른 특색이 있는 점은 다름아닌 소설의 전체적인 구도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동화의 줄거리를 패러디했다는 점이다. 독일의 유명 동화작가인 그림형제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을 모티브로 해서 소설의 전체적인 구도를 끌고 가고 있다. 

소설의 초반부는 상당히 지루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16세기의 이탈리아를 주무대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소함과 지역적인 상상력의 부재로 인해 다소 책읽기의 진도가 빠르게 진해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작가는 군데 군데에 몇가지 보물찾기를 뿌려 놓은듯 하다. 주인공 비안카와 주무대인 몬테피오레의 목가적인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의 생동감은 벌써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후반부의 결말을 재촉이라도 하듯이 개개인의 인물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눈치 빠른 독자들 이라면 호수속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거울을 보면서 대충의 감을 잡을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인 거울의 등장은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 가서 나오니 속단하기도 힘들다. 

특히 체사레 보르자와 그의 동생이자 역대 희대의 악녀로 평가받고 있는 루크레치아의 등장으로 그동안 픽션의 부분이 역사속의 한장면으로 재등장하는 부분에서 독자들은 과연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판타지 소설속에나 나올법한 성물을 찾아가는 비안카 아버지의 임무나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게되는 루크레치아의 전면적인 부각은 서서히 독자들에게 결말에 대한 암시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또한 루크레치아는 그녀의 명성에 어울리게 백설공주의 계모 역활을 톡톡히 한다. 대략적으로 이런 줄거리를 봐서는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를 페러디한 정도로 오인받을 소지가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소설 <거울아 거울아>에서의 계모 역활을 맡은 루크레치아의 악행은 백설공주의 계모에 비견하면 왠지 악녀로서의 이미지가 많이 퇴색되는 느낌을 자아낸다. 16세기 이탈리아라는 시대적 공간속에서 그녀의 일련의 행동들에 대해서 역사적 당위성마저 부여하는 느낌을 작가는 그리고 있다. 또한 극중 백설공주로 그려지는 비안카에 대한 이미지 또한 미와 선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를 없애 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 보다 가장 극적인 주제는 다름 아닌 <거울>에 있다. 거울의 역사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청동기시대에서 출발된 거울은 지금 우리 주변에 흔희 볼 수 있는 거울의 이미지와는 상당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거울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부와 권력으로 대변된다. 극소수의 지배층만이 소유할 수 있는 종교적 성물 같은 존재였다. 작가는 거울을 통해서 인간의 깊은곳에 숨어 있는 다양한 심성들을 하나 둘씩 끄집어 내고 있다.

거울은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항상 사물의 비쳐진 모습을 그대로 가감 없이 투영한다. 그렇지만 인간에서 있어 특히 지금처럼 과학적인 지식체계가 정립되기 이전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지금의 시대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접할수있다)에게는 환상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칠수 있는 대상이었다. 루크레치아의 시각으로 바라본 거울의 비친 상은 자신의 주변 여건을 그대로 투영한 형식으로 나타났다. 세월이 흘러 어린아이로만 알았던 비안카가 자신의 연인이자 오빠인 체사레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자 루크레치아의 질투심과 불안감이 바로 거울이라는 또다른 자신의 마음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아마 원작인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에서의 계모가 바라 보았던 거울 역시 그녀의 본성을 대변하는 이미지였던 것 처럼 루크레치아가 거울을 보면서 외치고 싶었던 말 역시 자기 합리화였던 것이다.  

<거울아, 거울아>는 비록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를 패러디한 소설이지만 16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진두지휘했던 보르자 가문이라는 역사적 팩트를 등장시켜 팩트와 픽션사이를 적절하게 오가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특히 봉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던 장원제도와 토스카나 지방의 풍경을 아름답게 그린 작품이다. 이탈리아 역사와 고전 동화라는 다소 이질적인 장르을 탁월한 상상력으로 새롭게 그리고 있어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할 작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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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코리건 -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크리스 웨어 지음, 박중서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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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형식은 카툰으로 금새라도 읽어나갈 것 같지만 막상 책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하면 그 내용은 마치 깊은 철학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심오하다. 또한 작가의 집필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독자들의 눈을 교묘하게 감추고 있다.     


어릴적 이혼으로 소심하고 내성적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지미에게 어느날 갑자기 날아든 아버지의 편지한통으로 시작되는 여정은 마치 인생을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국면과 마주하는 일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이는 주저할 것이고 어떤이는 뛰어넘을려고 할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지미는 그의 성격이 그대도 보여주듯이 그저 담담하게 아버지를 만나러 떠나게 된다.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를 만나고 자신의 상상만큼이 너무나 다른 아버지에게서 실망을 하고 그러면서 전혀 몰랐던 자신의 가계도에 얽힌 불행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할아버지의 불행한 삶은 또다른 미국의 현대사의 한 일편을 보여주고 있다. 

지미의 할아버지가 당시 시카고에서 개최된 만국박람회장의 일꾼으로 나오면서 보여주는 모습은 서서히 자본주의 시스템속으로 진행하고 있는 미국의 자본주의 초기역사를 말해주고 있고 그의 손자이자 이름이 같은 주인공 지미는 할아버지때보다 훨씬 강화된 신자유유주의 금융자본주의 시스템속에서 주위와 철저하게 차단된 삶을 살아가는 샐러리맨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마천루같은 고층빌딩속의 사무실에서 자기 자신만의 공간이라고는 칸막이로 제단된 책상위 뿐이라는 공허함을 대변하고 있다.  

지미의 가족사는 증조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구도와 할아버지와 지미의 대립되는 구도를 보여 주고 있다. 증조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경우 철저하게 자본의 속성을 터득하고 나름대로의 슬기로운 대처방법으로 삶을 살아간다. 지미의 증조할아버지는 당시 남북전쟁 당시 부득불 하게 참전하게 되지만 스스로 손에 총을 쏘아 제대하고 흑인 하녀를 임신시켜 내쫒고, 결국 지미의 할아버지를 데리고 만국박람회현장에서 유기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보여준다. 지미의 아버지 역시 이점에 대해선 자유로울수 없다.  

반면에 지미의 할아버지는 어린시절부터 어머니를 여의고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한다. 결국 아버지에게 버림 받아 고아원 신세가 된다. 아마도 지미의 어린시절의 모습 또한 지미 할아버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증조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자유분방과는 상반되는 고독하고 우울한 주인공 지미는 결국 아버지의 교통사고를 계기로 일종의 화해를 하게 된다.  

이야기 자체가 시공간을 왔다 갔다하면서 다소 혼란스러운것은 아마도 작가의 의도된 기획이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지미와 지미의 가족사를 통해서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와 현재 미국내의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않는 가치관을 느끼게 하는것 같다. 

전체적으로 지미의 시점과 지미 할아버지의 시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시점에 대한 명확한 내러티브같은 것을 찾기 힘들다. 거기에다 제3자의 시각까지 가미되고 중간중간에 불쑥 불쑥 등장하는 생뚱맞은 광고문, 그리고 종이 공작물 평면도등으로 인해 스토리 전개를 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만화라고 결코 쉬운 책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면들 때문에 오히려 이 책에 대한 매력을 한 층 더 배가 시키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표현 기법들과 시공간을 뛰어 넘어 버리는 진행방식등이 독자들의 이목을 끌게 한다. 특히 카툰의 칸 배치에서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읽어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위,아래,좌,우의 순서가 바뀌더라도 결코 이야기가 엉망이 되지도 않고 또한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 칸의 배열을 찾게 하는 즐거움도 던져준다. 마지막 서비스는 책의 표지에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을 표지를 펼쳐서 보면서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가계도를 보면서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한번 더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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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서아 가비 - 사랑보다 지독하다
김탁환 지음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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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당신의 끝나지 않는 이야기이다 

나는 우유와 시럽이 들어간 카페라테를 좋아한다.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에 시럽을 듬뿍 넣은 아이스카페라테를 즐겨마신다. 원래 커피의 씁슬한 맛보다는 달콤한 맛에 미각이 길들여있어 그런지 몰라도 왠지 단맛과 커피 본연의 향이 잘 어울리는 것이 즐겨 마시는 이유중에 하나이다. 또 다른 이유는 커피를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들이 좋기 때문이다. 술이나 다른 음료와는 달리 커피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묘한 시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가장 개인적인 대화에서 부터 거대한 담론에 이르기 까지 커피와 함께 하는 이야기는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진행중인 이야기들이다. 

불멸의 이순신과 혜초로 일대 인기작가 반열에 오른 김탁환의 신작 <노서아 가비>는 한마디로 에세이 같은 소설이다. 책장 여기 저기 향기로운 커피향이 피어오르는 것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일러스트와 뿌쉬킨의 시는 마치 따냐의 자전적 에세이를 보는 듯 하다. 얼피보기엔 잔잔한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있을 법한 러브스토리 같지만 소설의 진면목을 보게 되면 과연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보았듯한 서로 속고 속이는 전설같은 사기꾼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보는듯 하다. 

역사적 배경은 을미사변으로 인해 명성왕후를 잃고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한 역사적 사건 아관파천과 고종에 대한 독살사건이지만 결코 역사적인 무게감은 전혀 느낄 수 없는 소설이다. 고종의 암살계획을 감지하고 극적으로 무마시키는 따냐의 활약상은 그저 이 소설중에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커피를 즐겨마신 고종과 고종을 위해서 커피를 만든 역관딸의 출신 바리스타의 남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작가는 커피라는 소재를 통해서 커피에 담겨져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종은 커피의 쓴맛을 즐긴다. 단맛나는 감미료를 넣지 않는 순수한 커피의 맛. 고종은 커피의 쓴맛을 통해서 자신의 애환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강대국사이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약소국의 군왕으로서의 비애를 커피를 통해서 확인하고 위안을 찾는다. 그리고 다시 창공을 날아갈 꿈을 꾸고 있다. 반면 이반(김종식)은 자신을 버린 조국에 복수를 하기 위해서 쓰디쓴 커피를 마신다. 미천한 신분으로 구한말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민초들의 삶이 그러했듯이 자신을 버린 조국에 대한 그의 복수는 커피의 향보다 더 진하게 베어있다. 이렇듯 작가는 커피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각 개인의 삶을 커피향속에 녹여놓고 있다. 그러나 고종이나 이반은  따냐만큼 제대로 된 커피의 맛을 몰랐던 것 같다. 진정한 커피의 맛은 어떤것인가에 대해선 따냐의 삶이 보여준다. 비록 그녀의 인생은 사기와 배신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녀는 삶은 오래토록 가시지 않는 러시아 커피의 향처럼 많은 이들의 뇌리에 잡리 잡고 있다. 소설 후반부의 대반전은 그녀가 바리스타로 만든 그 어떠한 커피보다 커피다운 향을 지니고 있다. 

이번 소설역시 그 소재가 김탁환답다고 할 수 있다. 고종이 즐겨했던 커피에서 모티브를 얻은 소설은 그동안의 역사소설에서 볼 수 없는 구도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 사건의 상상력이나 스토리의 긴박함등 보다는 커피라는 객체화된 물질을 통해서 인간군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커피가 우리에게 전래된지 백년이라는 세월이 넘었다. 지금은 거리에 어느곳을 가도 커피를 만날수 있고 부담없이 즐길수있는 시절이다. 우리는 커피를 마시면서 각개인의 이야기도 같이 마시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커피속에 담겨져 있는 개인들이 이야기는 현재도 진행중이고 앞으로도 커피와 같이 영원할 것이다. 그 향이 가시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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