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그레고리 머과이어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와 그의 누이동생인 루크레치아 보르자에 관한 팩션이다. 팩션이다 보니 역사적 사실성에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적절히 융합되어 전개되고 있다. <거울아 거울아>가 일반 팩션에 비해서 좀 다른 특색이 있는 점은 다름아닌 소설의 전체적인 구도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동화의 줄거리를 패러디했다는 점이다. 독일의 유명 동화작가인 그림형제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을 모티브로 해서 소설의 전체적인 구도를 끌고 가고 있다. 

소설의 초반부는 상당히 지루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16세기의 이탈리아를 주무대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소함과 지역적인 상상력의 부재로 인해 다소 책읽기의 진도가 빠르게 진해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작가는 군데 군데에 몇가지 보물찾기를 뿌려 놓은듯 하다. 주인공 비안카와 주무대인 몬테피오레의 목가적인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의 생동감은 벌써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후반부의 결말을 재촉이라도 하듯이 개개인의 인물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눈치 빠른 독자들 이라면 호수속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거울을 보면서 대충의 감을 잡을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인 거울의 등장은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 가서 나오니 속단하기도 힘들다. 

특히 체사레 보르자와 그의 동생이자 역대 희대의 악녀로 평가받고 있는 루크레치아의 등장으로 그동안 픽션의 부분이 역사속의 한장면으로 재등장하는 부분에서 독자들은 과연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판타지 소설속에나 나올법한 성물을 찾아가는 비안카 아버지의 임무나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하게되는 루크레치아의 전면적인 부각은 서서히 독자들에게 결말에 대한 암시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또한 루크레치아는 그녀의 명성에 어울리게 백설공주의 계모 역활을 톡톡히 한다. 대략적으로 이런 줄거리를 봐서는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를 페러디한 정도로 오인받을 소지가 충분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번 소설 <거울아 거울아>에서의 계모 역활을 맡은 루크레치아의 악행은 백설공주의 계모에 비견하면 왠지 악녀로서의 이미지가 많이 퇴색되는 느낌을 자아낸다. 16세기 이탈리아라는 시대적 공간속에서 그녀의 일련의 행동들에 대해서 역사적 당위성마저 부여하는 느낌을 작가는 그리고 있다. 또한 극중 백설공주로 그려지는 비안카에 대한 이미지 또한 미와 선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를 없애 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 보다 가장 극적인 주제는 다름 아닌 <거울>에 있다. 거울의 역사는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청동기시대에서 출발된 거울은 지금 우리 주변에 흔희 볼 수 있는 거울의 이미지와는 상당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거울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부와 권력으로 대변된다. 극소수의 지배층만이 소유할 수 있는 종교적 성물 같은 존재였다. 작가는 거울을 통해서 인간의 깊은곳에 숨어 있는 다양한 심성들을 하나 둘씩 끄집어 내고 있다.

거울은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항상 사물의 비쳐진 모습을 그대로 가감 없이 투영한다. 그렇지만 인간에서 있어 특히 지금처럼 과학적인 지식체계가 정립되기 이전의 시대를 살았던 이들(지금의 시대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주위에서 쉽게 접할수있다)에게는 환상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칠수 있는 대상이었다. 루크레치아의 시각으로 바라본 거울의 비친 상은 자신의 주변 여건을 그대로 투영한 형식으로 나타났다. 세월이 흘러 어린아이로만 알았던 비안카가 자신의 연인이자 오빠인 체사레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자 루크레치아의 질투심과 불안감이 바로 거울이라는 또다른 자신의 마음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아마 원작인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에서의 계모가 바라 보았던 거울 역시 그녀의 본성을 대변하는 이미지였던 것 처럼 루크레치아가 거울을 보면서 외치고 싶었던 말 역시 자기 합리화였던 것이다.  

<거울아, 거울아>는 비록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를 패러디한 소설이지만 16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진두지휘했던 보르자 가문이라는 역사적 팩트를 등장시켜 팩트와 픽션사이를 적절하게 오가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특히 봉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던 장원제도와 토스카나 지방의 풍경을 아름답게 그린 작품이다. 이탈리아 역사와 고전 동화라는 다소 이질적인 장르을 탁월한 상상력으로 새롭게 그리고 있어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할 작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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