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게임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책을 소재로한 소설이다. <장미의 이름>은 요한 묵시록을 소재로 벌어지는 중세 수도원에 감쳐진 비밀을 헤쳐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고 <방각본 살인사건>은 조선 정조시대에 문체반정을 불어오게 되는 소설과 관련된 미스테리를 헤어가는 과정을 그리는 책을 소재로 하는 대표적인 국내외 소설이다. 이들 작품들은 각 소설의 소재가 된 책을 통해서 그 책에 기록된 내용대로 현실화 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러면에서 보면 <천사의 게임>은 같은 책을 소재로화 소설이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다른 면을 추구하고 있다. 책을 소재로 한 소설이지만 왠지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작중 다비드 마르틴을 통해 괴테의 파우스트와 뱀파이어와 인터뷰의 로이를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1년도 채 남지 않는 목숨을 연장하는 조건으로 만나게 되는 코넬리라는 의뢰인을 통해 그와 더불어 영생불멸의 삶을 살아가게되는 마르틴의 설정은 파우스트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의 두 주인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가 이 소설을 대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는 것을 책의 페이지를 거듭할수록 또다른 책속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다. 

  
작중에서 고아나 다름없는 마르틴에게 책과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게 했던 지인인 셈페레는 책 속에는 작가의 영혼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 어떠한 책도 소중하다"고 했다
또한 소설의 말미부분에 마르틴은 자신의 작품을 잊혀진 책들의 묘지라 일컫는 영원한 책들의 안식처에 보관하면서 자신의 애제자인 이사벨라에게 책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다. "각각의 책은 모두 영혼을 지니고 있어. 그 책을 쓴 사람의 영혼뿐만 아니라, 그 책을 읽었고 그 책과 함께 살았고 꿈꾸었던 사람들의 영혼도 가지고 있어. 책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누군가가 그 책으로 시선을 떨어뜨릴 때마다, 그 책의 영혼은 커지고 강해지지. 이미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책들, 시간 속에서 잊혀 버린 책들은 이 곳에서 영원히 살면서, 새로운 독자나 새로운 영혼의 손에 이르기를 기다려." 마르틴의 이 말이 결국 다름 아닌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대변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얼핏 들어서는 책이 가지고 있는 진실에 대해서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미사어구로 포장하고 있는듯 하나 작가는 마르틴의 말을 통해서 책속에 담겨져 있는 이러한 영혼과 현실을 보기좋게 혼합해 버리면서 또 다른 공포를 현실로 끄집어 내고 있다. <장미의 이름>이나 <방각본 살인사건>에서 처럼 책에 서술된 내용대로 현실에서 공포가 엄습해 오는 방식과는 사뭇 다르지만 작가는 책속에 담긴 영혼이라는 형태를 현실로 포장하면서 기존의 공포와는 또다른 공포를 독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소설전체를 휘어잡는 공포의 연장이 아닌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무엇인가 알수 없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공포의 유발을 통해서 독자들이 느끼는 공포마저도 혼란케하는 독특한 면을 발휘하고 있는 소설이다.

대부분의 공포영화의 색감자체가 어둡고 습기찬 화면의 연속이라면 만약 이 소설을 영화화한다면 어둠과 밝음의 적절한 조화가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이어지는 공포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주인공인 마르틴이 자신의 영혼을 악마인지 천사인지 분가하기 힘든 의뢰인인 코렐리와의 계약을 마치 작가 자신이나 다른 작가들이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는 과정의 목적성 내지는 정당성으로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하든간에 <천사의 게임>이 내포하고 있는 독창성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읽어나가는 내내 소설과 소설속의 소설사이에서 혼돈아닌 혼돈을 야기하면서 조용하게 다가오는 얕은 의미의 공포는 소설의 정점으로 다가갈수록 그 감정을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오랫만에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고나서 주변에 관심받지 못하고 이러저리로 굴러다니는 책들을 다시금 보게 한다. 마치 그들 책속에 작가의 영혼과 그 책을 읽고 조금씩 자라나는 또 다른 영혼을 느끼면서 이 세상에 활자화된 책은 어떤 책이라도 잊혀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잠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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