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남들의 세계사 - 2014년 제4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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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에서 왠지 차도남을 다루는 그런 범주의 내용(?)이었거니 하고 이번 작품을 시작했습니다.(물론 차도남과 차남은 엄연히 다른말이지만 하도 줄인말이 대세이다 보니 차도남이라는 말도 너무 길어서 차남으로 줄였나라는 머쩍은 생각을 해봤더랬습니다. 뭐 그래야 왠지 이번 작품이 제목에서부터 끄는 부분이 있을 거란 느낌도 들었구요. 근데 작품을 읽는 내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한가지가 왜 제목을 <차남들의 세계사>라고 했을까라는 의문이 남았죠. 물론 작품 중간중간에 신부니 목사니 교회니 성당이니 무수히 많은 힌트를 제공해 주었지만 정작 끝에가서 아하라는 생각을 갖게 하더라구요. 그만큼 큰범주에서는 작품의 제목이 딱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작품을 읽는 내내 작품의 제목과 본문이 그다지 매칭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네요.

          작품은 군사정권의 피날레를 날렸던 전두환정권의 초기에서 시작됩니다. 그 유명한 부산미문화원방화(일명 부미방사건이라고 알려져 있죠) 사건으로 시작되어서 정말 작가의 표현을 살짝 빌리자면 골똘하게 벽의 한 점을 뚜러져라 쳐다보다가 다시 세수를 하고 와서 맑은 정신으로 눈씻고 찾아봐도 연관성은 단 0.1%도 없는 아주 평범한 사내에게 그 불똥이 치어서 평생을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수배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복만이라는 주인공의 인생사를 다루는 내용입니다. 사실 우리 현대사의 가장 어두웠던 부분중의 하나로 인격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무지막지했던 시대상을 다루고 있는 작품인데요, 지금 40대 후반이상의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겠으나 젊은층의 세대에겐 먼나라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살짝 드는게 사실입니다. 그 만큼 플롯자체가 상당히 암울하고 어두우면서 그닥 기억하고 싶지 않는 그런 내용들이라는 느낌이 우선 강하게 들어 옵니다. 그런데 이런 사막같은 소재들을 가지고 작가는 상당히 재미나게 내러티브를 끌어가고 있는 점이 눈에 띄입니다. 

          우선 이번 작품은 일반의 소설책을 읽는 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치 팩트를 나열하는 신문기사 내지는 칼럼을 대하는 듯한 스트럭쳐를 가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작품을 읽으면서 돌발적으로 등장하는 사건과 그 관계자들을 일일이 스마트폰으로 검색아닌 검색을 해보게끔 만들고 있고요, 음 그러다보니까 작품속에 등장하는 나복만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독자들에게 상당하게 신뢰를 준다는 점이 이색적인 포인트였던 것 같습니다. 괜시리 혹시나 뭐 이런 생각을 한두번쯤 하게 될 정도로 작가는 교묘하게 팩트와 픽션의 경계를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하게 끌어가고 있다는 것입나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소재의 작품을 읽다보면 특히나 지금의 중장년세대(그중에서도 학창시절 소위 운동권에 소속되어 있었거나 당시의 시대상을 같이 공감했던 독자들이라면 더욱더 울분이 터지는 아픈 기억들이겠죠)에게는 상당히 우울하고 되돌아가고 싶지 않는 그런 소재들이라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상당히 다운시켜버릴 소지가 다분한데요. 여기서 또 다시 우리의 작가 이기호의 특유의 입담이 등장하면서 작품의 분위기를 반전시켜 버린다는 것입니다. 작품 곳곳에 숨겨져 있는 촌철살인같은 의미심장한 멘트는 제아무리 시간이 흘러 그 당시보다 훨씬 사정이 나아졌다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사유이기도 하고요. 단지 이번 작품의 경우 어느 연령층의 독자들에게 어필될 수 있을까라는 부분에서는 다소 회의적인 생각도 듭니다. 세칭말하는 7080세대의 경우 그 호응도와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기반이 있는 소재이지만 이후 세대의 경우는 어찌보면 정말 픽션으로 다가올 수 도 있을 것입니다. 달리 생각하면 블랙코미디같은 요소들이 다소 냉소적이고 자조적으로 비쳐질수도 있겠다는 우려감도 들구요.그래도 이번 작품은 시대상에 대한 고증과 우리의 현대사적 아픔을 전달하는 기법에서 색다른 접근을 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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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나라 쿠파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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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골든 슬럼버>로 국내 독자들에게 낯익은 이사카 코타로의 신작 <밤의 나라 쿠파>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제목이나 책 표지의 첫 인상으로는 상당히 판타스틱한 계열의 작품으로 다가오는데요, 막상 본 게임에 들어가서 작품을 따라가다 보니 이거 어디서 봣지라는 느낌을 작품을 읽는 내내 지울 수 없습니다. 마지막 결말의 부분의 반전에 접하면 아! 그렇지 라는 감타사가 절로 나오게 되면서 대충의 내막을 이해하게 되는데요. 작품을 손에서 놓을때까지 그러한 내막에 대해서 독자들은 알송달송한 기분을 간직한채로 작품을 대면하게 된다는 점이 이번 작품의 색다른 묘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가져보게 합니다.

          <걸리버 여행기>를 모티브로 한 우화같은 작품인데요. 실상 모티브의 전제가 되었던 <걸리브 여행기>는 작품의 결말부분에서 상당한 반전으로만 다가오기에 독자들 입장에서는 눈치 채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물론 눈치빠른 독자들이라면 "나" 가 낚시배를 탈고 표류하다가 정신이 들어보니 온몸이 결박되어 있고 늦다없이 고양이 그것도 말하는 고양지인 톰이라는 녀셕이 말을 걸때 대충은 감을 잡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걸리버 여행기>를 머리속에 떠올리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죠. 여기에 철국의 지배를 받게 되는 작은나라와 그 등장 구성원들 그리고 걸어다니는 삼나무 쿠파의 스토리까지 삼중으로 뒤섞이다 보니 도통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게 되는 복잡한 스트럭쳐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에 작품을 읽는 내내 그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는 구조를 갖고 있는 작품입니다. 특이한 점은 1인칭인 "나"가 세번 등장하고 각각의 입장에서 작품을 끌어간다는 것입니다. 아내의 바람으로 마음 고생하는 평범한 공무원 "나", 전설적의 쿠파를 쫒아가는 "나", 그리고 이번 작품의 가장 키워드이자 핵심인 말하는 고양이 톰 "나" 이렇게 3명의 "나"가 각각의 시각과 사유에서 작품을 끌어가고 있는 유니크한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하나로 이어지는 스토리는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번 작품에서 특이한 점은 작품을 관활하는 시점인 1인칭의 "나"와 작품속에 담겨져 있는 무언의 사유라고 할 수 있는데요. 우선 시점적인면에서 보면, 1인칭의 "나" 가 수시로 등장하고 이야기의 시각도 다르고 어수선하면서도 뒤죽박죽인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크게 고양이 톰과 공무원 나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스토리로 보면 그 구조나 내용이 깔끔하게 정리되기고 합니다. 실상 고양이 톰의 관점에서 풀어나가는 것이 주된 내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죠. 공무원인 나는 스토리 전체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부여하는 엄밀하게 보면 3인칭의 시점이라고 보는것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고양이 톰이 살고 있는 나라가 주된 포인트이고 또 다른 나는 그저 톰과 그 나라의 상황을 다시한번 독자들에게 부연 설명하는 정도라고 할까요. 하지만 이 부연 설명이 오히려 독자들을 혼란시키는 설정으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오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화같은 모티브에 우화같은 내러티브 그리고 우화같은 결말등 여러모로 봐서 정말 우화같은 소설임에 틀림없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우화같은 작품속에 상당히 깊은 사유가 내제되어 있는 작품으로 비쳐지네요. 절대 강자인 철국과 절대 약자인 톰이 살고 있는 나라, 고양이와 쥐들의 세계, 그리고 공무원인 또 다른 나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그야말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세상과 전혀 다를바 없는 구조를 갖추고 있고 그들의 역확관계 역시 어디서 많이 보고 피부로 느끼고 있는 현실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무거운 사유가 담겨져 있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특히 고양이를 생포하여 협상을 시도하는 쥐들의 멘트가 정곡을 찌르면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톰의 나라의 국왕인 칸토와 쥐들의 대표인 대표쥐의 행태는 그야말로 썩어가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고요.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은 판타스틱한 스토리와 우화를 모티브로 했지만 실상 그 내면은 다름아닌 순수성을 읽어가고 있는 현대사회를 적나라하게 비꼬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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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세트 - 전8권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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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올 여름 극장가는 영화 <명량>이 한국영화 초유의 기록을 경신하면서 연일 북색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어떤이는 영화자체에 대한 평가가 박하고 단지 이순신이라는 이름으로 히트를 했다고 하지만 그러기엔 뭔가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가 반영되지 못한듯 하고요. 전체적으로 작금의 국내사회를 평가하는 기준에서 <명량> 이라는 영화가 대중들에게 어필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군요. 이런 측면에서 성웅 이순신은 예나 지금이나 대한국인들에겐 뭔가 특별한 메타포임에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지금이야 다른 시절의 이야기이지만 불과 몇십년전 군부정권하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거의 대부분의 남자 어린이의 롤 모델 0순위는 이순신 장군이었죠. 아니 그냥 장군만으로도 부족해서 구국의 영웅인 성웅에 충무공이라는 시호까지 풀네임으로 명명된 이순신이었습니다. 과거 시험장에서 낙마했지만 부러진 다리를 동여메고 끝까지 과업을 완수한 불굴의 의지력과 일본과의 7년전쟁 동안 단한번의 패배도 없었던 전승의 신화를 기록한 탁월한 리더십과  전략, 그리고 마지막 전투인 노량 앞바다에서 장렬히 전사함으로써 그 피날레를 날렸던 그의 삶은 한국사 역사상 그 어떠한 위인에게 찾아볼 수 없는 모델로서 유소년기의 남자아이들에겐 그야말로 다른 대안이 있을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여기에 선조와 원균이라는 조연들이 적절하게 연기력을 발휘하였기에 더욱 더 빛난는 주연의 역활을 머리속에 각인하게 되었구요) 그리고 이러한 일반화된 현상에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이 들어서면서 지정학적 요인이나 정권 홍보적인 요인등으로 인해 이순신은 상당히 왜곡되기 시작했고, 이순신 그 자체보다는 그를 둘러싼 뿌연 안개속에서 홀로 빛을 발하는 등대와 같이 세상과 동떨어진 인물로 말들어 버렸고 그런 메타포들을 확대 재생산한게 사실이기도 합니다. 국가공인 교과서나 위인전 그리고 정부 홍보용 자료(현충사를 비롯한 각종 기념유적물등)등 마치 똑같은 활자체에서 찍어내는 인쇄물처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정말 일맥상통하게 같은 점만을 들어내고 있고 우리는 그런 필요성에 의해 왜곡된 이순신의 형상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하나의 형식으로 영원히 봉인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순신에 대한 조그만한 부정적인 요인이라도 제기된다면 발끈하게 되고 그런 제안자는 사회속에서 공공의 적으로 매장되기 일쑤였고 아예 그런 발상 자체가 국민적인 정서에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이순신은 인간을 뛰어넘어 신으로 자리매김해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이순신을 다루는 문제는 국민제인들의 어느 정도 똘레랑스와 더불어 암묵적인 동의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측면에서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은 김훈의 <칼의 노래>와 더불어 인간 이순신을 아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으로 판단됩니다. 비록 역사소설이라는 장르로 만나게 되는 이순신이지만 역사적인 고증과 사료들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순신의 삶과 그가 살았던 당시 에포크상을 그려보는데 이만한 작품도 드물 것으로 보여지네요. 김훈의 <칼의 노래>가 임진왜란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불멸의 이순신>은 평전에 가까울 정도로 이순신 일대기 전반을 다루고 있어 성장배경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를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을 엿볼 수 있다는 매력이 있습니다. 또한 이순신이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선조와 유성룡, 원균등을 비롯한 동시대인들의 사유와 더불어 심리적인 묘사가 심도깊게 펼쳐져 있어 수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는게 이번 작품의 묘미중에 하나이기도 하죠. 특히 正과 反, 善과 惡의 구도로 각인 되었던 원균과의 관계를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각도로 접근하게 함으로써 그 동안 경직되어온 사고에 유연성을 가미해 주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입니다. 영화 명량도 같은 맥락에서 이순신을 조명하고 있는데요. 한번 비교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또 하나의 특징적인 면에서 허균이라는 인물을 비중있게 다루는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순신과 허균 왠지 뜬금없는 조합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작가의 후작이 될 <허균 최후의 19일>에서 펼치질 허균의 사유를 프롤로그하는 형식으로 미리 독자들에게 선을 보이는 보너스적인 역활을 하게 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절대왕권을 꿈꾸는 선조(광해군)와 이를 전면으로 부정하는 허균 그리고 무엇보다 민의를 최우선으로 여겼던 이순신의 3자구도를 통해서 정치가 가져야 정도가 어떤 것인가를 독자들에게 슬그머니 제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구도 설정은 그동안 독자들의 뇌리속에 깊숙히 각인된 이순신과 그외 인물들이라는 극단적인 구도에서 이순신을 비롯한 당시대 모든 이들에게 저마다의 논리와 사유가 존재했고 그러한 사유들을 선과 악, 정과 반이라는 시각으로 볼수 없다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는 점이 돋보이는 서사이자 이번 작품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이러한 구도설정이 인간 이순신의 삶을 제대로 고찰할 수 있는 눈을 뜨게 하고 그러므로서 인간 이순신에게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죠. 이렇듯 <불멸의 이순신>은 역사적 인물간의 대립구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을뿐 아니라 역사적 인물과 가공의 인물간의 절묘한 매칭으로 한결 맛깔스러움을 더하고 있는 일종의 심리물이라고 해도 그다지 큰 범주내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소설이라는 커다란 메타포속에 담겨진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갈등과 묘사가 역사적 배경과 시의 적절하게 연결되어 한층 내러티브의 힘을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작품의 제목속에 내제되어 있는 '불멸' 이라는 뜻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영원토록 멸하지 않는 영생한다는 뜻으로 직역될 수 있는 불멸의 메타포는 아마도 이순신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하죠. 이는 그 동안 성웅, 구국의 영웅등으로 비쳐진 이순신의 공적 내지는 겉모습의 상징이 아닌 인간 이순신의 내면적인 모습을 투영한 표현으로 이순신 그 자체를 지칭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이순신이 시종일관 지켜왔던 중용(중도가 아닌)이라는 사유의 기반이기도 할 것입니다. 조선내부의 편가르기, 왜라는 적군과 아군, 통제영 내부의 갈등, 군주와 군주의 명에 대한 갈등... 이순신에게는 수 많은 갈등과 고뇌가 부여되지만 이순신은 이쪽 저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걸었고 그 길이 바로 불멸의 길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죠. 이는 광화문 사거리에 표호하고 있는 추상적인 상징 요소로서의 이순신이 아닌 우리 마음속에 영생하고 있는 실제적인 이순신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이순신에 대한 고착화된 이미지를 최대한 완화하고자 하는 작가의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입니다.(사족이지만 개인적으로 명량이라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기에 이런 부분들이 일반대중에게 큰 걸리돌 없이 녹아들어갈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드네요) 작가는 등장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사건(역사적이든 비역사적이든간에)을 마치 교향악단의 지휘자처럼 절묘하게 오케스트레이션을 하면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 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와닿구요. 역사적 사건의 부각으로 인해 자치하면 사건중심으로 편중될 수 있는 역사소설의 한계를 말끔이 걷어내고 사건과 인물(내면적 심리구도)을 유효적절하게 배합함으로써 내러티브를 한결 더 깔끔하게 끌어가고 있는 점이 눈에 돋보입니다. 무엇보다 이순신과 동시대를 살았을법한 역사라는 공식적인 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민초들(임천수,박초희,날발...)을 거의 조연급 이상으로 발탁함으로써 이순신의 가치를 더 부각시키고 동시에 이러한 민초들의 삶을 어깨에 지고 가야하는 불멸의 당위성을 표출하게 하는 스트럭쳐가 인간 이순신을 적확하게 바라보는 시각임을 넌즈시 들어내고 있다는 점이 이번 작품의 핵심적인 사유이지 않을까 싶네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그 동안 하드웨어적이고 국가 공식적인 이미지로 봉인되어 정체되어버린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기억들이 새롭게 재탄생하는 계기가 충분히 되리라 여겨집니다. 공이 추구했던 불멸의 삶을 가슴으로 받아 들이고 이해하는 순간 이순신은 영생불사하는 진정한 불멸의 영웅으로 국민들의 가슴에 자리잡을 것이라는 느낌이 와닿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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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황태자비 납치사건 - 개정판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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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한미일 정상회담차 만나자리에서 우리말로 "박근혜 대통령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고 얼굴에 웃음을 한가득 머금고 친밀하게 마치 영원한 우방의 수장이 안부를 전하듯한 어투로 인사를 했다는 기사가 게재되었습니다. 뭐 국가간의 흔히 있을 수 있는 통상적인 인사치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만 전 개인적으로 이러하 시츄에이션이 바로 "일본 그 자체" 라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역사왜곡으로 경직된 양국간의 분위기를 화해모드로 바꾸자는 의도가 짙게 깔려있다는 우리기자들의 논평 자체가 개인적으로 어이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와 매번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양은 냄비에 물이 끓듯 반짝 달아올랐다가 뒷문으로는 경상수지의 수지차등을 주판으로 튕기고 있는 정치판 그리고 이에 호응하는 언론 마치 다 용서했다는 듯한 국민정서, 아직도 이 지구상에서 일본보다 북한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통령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역사서에 기록된 공시 기록(왠만한 비공식 도발은 기록하지도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도)만 봐도 일본은 500회를 넘게 우리 국토를 침략했던 나라입니다. 그리고 매번 웃는 나짝으로 다시 굽실거리면서 조공무역을 허가해달고 때를 썻던 민족이구요. 그것도 문명이라는 득을 전수해준 나라에 대한 태도가 바로 이런 행태로 표출하는 국가이자 민족성입니다. 즉 다시말해서 속된말로 구제불능의 싹수가 없는 족속들이라는 것이죠. 근데 더 큰 문제는 "대통령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는 말한마디에 공자 가라사대하면서 그냥 묻어버리는 나라와 국민들이 있다는 것이죠. 마치 500번 정도 얻어 터지니고 나니 매집이 좋아진 것인지 아니면 정말 공자의 가르침을 충실히 수행하는 군자들만 사는 나라라서 그런지... 아마 세계사를 통틀어 우리 민족같은 평등호해정신이 높은 민족은 없을 듯 합니다. 뭐 오죽했으면 자국사를 대학입학고사에서 선택과목을 시행했을 정도로 불편한 과거사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데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했고 단지 과거는 과거일뿐 중요한 것은 미래라고 여겼고 그런 기저를 국가정책과 백년지대계인 교육정책에 반영한 나라이기도 하죠. 자 이런 논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죠 바로 일본이 주장하는 역사를 바라보는 해석의 다양성과 일맥상통하는 시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근데 말이죠 바람핀 배우자를 과거지사라고 묻어버리고 다시 새출발하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하물며 내집의 일부를 자기꺼라고 우기고 남의 집에 불법침입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약탈하고 사랑스런 딸들을 겁탈하고 폭행하고선 다 과거지사일뿐이라고 웃으면서 안부인사를 하는 이웃과 과연 진정한 화해가 있을수 있을까요? 정답은 다 아실겁니다. 절대로 못하죠. 단 전제 조건은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더불어 진정한 공식적인 사과가 있어야 공자의 가르침대로 받아들일수 있지만요(물론 형식은 받아들이지만 그 앙금은 가실수 없는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근데 우리의 속사정은 어떻습니까. 전혀 그런게 없어 보입니다. 자국사를 제대로 모르게 키워온 세대에게 이제와서 독도가 우리땅이야 제네들 헛소리하는 거야, 라고 말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심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역사는 알아서 소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버렸습니다. 한사군이 한반도내에 틀림없이 존재했다는라는 통설, 일제감정기를 거치면서 그나마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등 정말 어이없는 학설들이 마치 역사적 사실인양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이런 학설에 반발하는 학자들은 일본보다 더 죄악시되는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김진명의 <新 황태자비 납치사건> 이라는 작품은 많은 의미를 전달해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픽션이죠. 아무리 쳐죽이고 싶어도 우리가 저들처럼 그런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으니까요. 근데 작품을 읽어가면 갈수록 독자들은 이게 픽션인지 사실을 서사하는 기록물인지 왠지 헷갈리게 하죠. 바로 이점이 작가의 힘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 동안 여러작품을 통해서 상당히 충격적인 소재를 기반으로 국내 독자들의 막혀있던 가슴을 시원하게 대변해 주었던 작가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역사적 팩트와 픽션을 절묘하게 버무려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등장인물들에 대한 설정과 그들의 심리묘사 그리고 역활이 상당히 유니크하게 설정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중심인물들이 일본인과 중국인이라는 점도 독특하고요.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성향이 돋보이죠. 그중에서도 다나카 경시정이라는 인물이 풍기는 면면은 상당히 주목받을 수 있을것 같습니다. 사실상 이번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요 이 인물이 상당히 매력있게 다가옵니다. 말투나 사상 그리고 집념등에서 풍기는 아우라를 보면 전형적인 일본인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정도 작기 역활에 충실한 인물입니다. 작가는 바로 다나카 경시정의 심리적 변화를 통해서 이번 작품의 강한 메세지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비록 일본인으로 설정되었지만 다나카 경시정은 우리의 표상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정치적인 타협이 아닌 진정한 사건의 진실만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한일간의 역사 왜곡을 이 지경까지 방치해온 우리의 위정자들에 대한 반성과 그 외침에 아무생각없이 따라온 국민들의 무지를 꼭집어내는 듯 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다나카의 반대진영에서 정말 일본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얄미운 캐리터들로 인해 왠지 다나카 경시정이 일본인이 아닌 왠만한 한국인보다 더 정이 가는 묘한 상황을 만들어 버린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의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합니다.

 

          팩션이다보니 역사적 팩트에와 실존인물들의 등장이 팩션과 가공의 인물들과 절묘한 호흡을 맞추고 있어 실상 작품을 대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픽션이라는 사실 자체를 믿지 못하게 할 정도로 사실감이 크다는 점 그리고 작품을 대면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상황과 인물을 검색하면서 절로 몰랐던 사실이나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리뷰해볼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이번 작품의 기획 의도는 충분히 발휘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가지게 됩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을 통해서 야누스같은 일본의 실 얼굴을 보게 되었고 이와 반대로 정말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 역시 동시에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전반적으로 내러티브의 짜임새가 추리스릴러기법을 동원해서 작품을 읽는 내내 상상의 나래를 펴개합니다. 독자들 나름대로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결말을 유추할 수 있고 결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예견을 할 수 있는 얼핏보면 뻔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작품으로도 보여지죠, 근데 이 작품의 매력은 다름아닌 마사코 황제자비와 황제자비의 행적으로 추적하는 다나카 경시정의 심리적 변화 그리고 추격전을 통해서 서서히 밝혀지는 역사의 진실과 이를 받아들이는 두갈래의 반응에서 그 묘미가 일품인 작품입니다. 대게 이런 소재를 작품으로 표현할 경우 자칫 잘못하면 한쪽의 시각으로 그러니까 음 흔히들 독자들의 얄팍한 심리를 자극하여 흥미위주 내지는 군중심리를 이용해서 이슛만 살아있지 내러티브의 구성이나 짜임새는 떨어지는 삼류로 흐르기 십상인데 작가는 절묘한 시각으로 독자들을 끌어가고 있는 점이 눈에 띄입니다. 오히려 일본에 대한 증오보다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어던 현실들이 더 안타깝게 묻어나고 지키지 못한 자괴감이 강하게 들게 하는 작품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작가의 변에서 기필고 일본국민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는데요. 전 개인적으로 우리 독자들이 먼저 이 작품을 대면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뜻으로 느껴지더라구요. 자국사에 대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제 아무리 진실을 이야기해 봤자 그 의미는 퇴색되기 마련이니까요.

  

          역사의 해석이 다양하듯이 작품에 대한 해석 역시 다양할 수 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개인적인 사견이지만 전 임선규와 펑더화이의 각각 다른 선택이 현재 한중일의 역사 대치 국면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구요, 확대해석해서 과연 그런 국면을 맞을 할 경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가라는 작가의 복선이 깔려있는 설정이 아닐까라는 느낌 지울수 없게 하네요. 지금도 현해탄 건너 섬나라에서는 "독도는 일본땅, 확실히 교육해야한다!", "가미가제 유서를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겠다" 라는 기상천외한 망언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오히려 아베가 신사참배를 강행했다라는 기사는 이에 비하면 조족지혈인 셈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현재 일본은 우익집단들에 의해서 우경화라는 방향으로 돌아선 느낌이 강하게 들어옵니다. 평화헌법 수정논의가 보란듯이 제기되고, 무슨 죽을죄를 지었나는등 세계를 향해서 자기들의 목소리를 드 높이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임선규처럼 호해평등의 정신으로 군자처럼 저들의 몽니를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펑더화이처럼 그에 대한 댓가를 참혹하게 치루도록 해야할지 참으로 고민스러운 일이고 정말 난감한 집단들임에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작품을 읽는 내내 분기탱천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고 쥐구멍이라도 찾아들어가싶은 부끄러운 자괴감도 느꼈습니다.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독자들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고 이런 밀알이들이 쌓여서 우리부터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제대로된 역사인식이 필요한 시점이고 그 중심에 김진명이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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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매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대하면서 하나의 버릇아닌 버릇이 생긴것 같습니다. 각종 인터넷 서점에서 신간내지는 예약상품으로 소개될 때 마다 신청걸어 놓고 잔뜩 기대하곤 있다가 막상 책이 수중에 들어오면 바로 읽어나가지 못하고 여러독자들의 리뷰가 올라오는 것 보고나서여 행여나 누가 되지는 않을까라는 심정으로 작품을 대면하는 버릇아닌 버릇이 몸에 익숙해진것 같습니다. 아마도 <백야> 라는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면서 강한 인상을 받았고 그 이후 전작들을 대면하면서 이런 습관이 생긴것 같네요. 그 만큼 저 개인적으로는 단순한 추리스릴러계열의 작품이라는 느낌보다는 이 양반이 뭔가 어필하는 부분이 내면적으로 상당한 공감의 촉을 자극하지 않았라는 생각이 드네요. 매번 히가시노의 작품을 대할때 느끼는 감정들과 그 이후 오래토록 남는 잔상들은 히가시노가 수려한 문필이나 미사여구, 시각적으로 엔터테이먼트가 강한 요소적 설정,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은근히 뇌리를 자극하는 19금적인 팁 그리고 한없이 독자들의 머리를 혼란케하는 추리의 연속등 뭐 이런 상품적 요소들로 스펙을 장착한 작품이라는 느낌보다는 작품을 읽는 내내 뭔가 내면속에서 내러티브와 더불어 같이 호흡할 수 있으면서 등장인물들과 일체감을 느낄수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뭐 이번 작품 <몽환화> 역시 그런 선입관에 중독된 상태에서 읽게 되었네요.

 

           <몽환화> 는 왠지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는데요 초장에 언급되는 프롤로그부터가 이번 작품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독자들에게 선사하면서 긴 항해의 닻을 올리게 하네요. 핏빛이 낭자한 1962년 늦여름에 발생하는 강한 임텍트는 이번 작품을 출발하는 스타트라인에서부터 독자들의 호흡을 단숨에 제압해 버립니다. 자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그 동안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 중 초장 스타트 부분에서 작품전체를 지배하는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왕왕 있기는 했지만 대게의 경우는 독자들에게 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개요와 더불어 그 사건의 범인을 공개하거나 적어도 최소한의 복선정도는 깔아놓는 경우의 설정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은 그 동안의 스트럭쳐와는 사뭇 다르게 출발하네요.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서두에서 사건의 전말을 공개하는 트릭아닌 트릭을 통해서 독자들을 자신의 페이스로 끌고 가는 기법을 즐겨 사용하죠. 그리고 이런 설정들은 독자들에게 한없는 상상력을 만끽하게 하는 배려도 하는 그런 구조적 내러티브를 선사했는데 이번 작품은 혹여나 하는 독자들의 그러한 일말의 기대를 한꺼번에 잠재워 버립니다. 프롤로그1,2에서 약 40여년이라는 시간차를 가지고 시작되는 스토리는 상당히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하고 바로 그 분위기를 잠재워 버리죠. 그리고 본 게임에 들어가게 되면 앞의 프롤로그를 금새 잊어버리게 하는 전개와 더불어 바로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을 제시하면서 프롤로그를 기억속 한켠으로 밀어 버립니다(물론 독자들은 자꾸만 앞의 프롤로그의 끈을 놓지 못하지만요). 단지 하나 꽃(정체를 알 수 없는 노란색의 꽃) 과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는 등장인물들의 과거사와 이미 벌어졌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사건의 개연성 이것만으로도 왠지 이번 작품은 독자들에게 뭔가 거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기에 무리가 없어 보이는 대목입니다.

 

          내러티브가 중반으로 향해가면서 노란 나팔꽃의 정체가 서서히 윤곽을 들어내고 프롤로그의 두 사건과도 어느 정도 연계성을 들어 내는듯 하지만 독자들은 프롤로그 첫번째 사건에 대한 궁금증을 제어할 수 없어 새로운 인물이나 상황이 돌출할 때 마다 책장을 앞으로 리와인더하게 되는 약간의 초초함을 갖게 합니다.(그러니까 분명이 두 사건이 관련 있는것 같은데 하나는 전혀 감이 안오는 거죠)프롤로그의 두가지 사건중 하나는 초장에 연관되어 있어 어느 정도의 감을 잡아가는데 나머지 하나가 작품을 읽는 내내 찜찜한 뒷맛을 느끼게 하죠. 아마도 독자들 대부분은 이게 대반전의 결정타를 제시해 줄 것이라는 어렴풋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왠지 마음속 한켠이 개운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독자들은 뒷통수를 맞게 됩니다. 프롤로그1과 2가 같은 맥락의 사건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선 생각도 못했는데 말이죠. 바로 이것이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기막힌 설정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독자들은 아차하는 순간에 당하게 되어 있는거죠. 이시점에서 아!라는 수긍의 감탄사 한번 내벹게 되는 것이고요. 이후 우리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보이지 않는 손에 끌려 내러티브속을 쉼없이 쫒아가게 되는 것이죠. 눈치 빠른 독자들은 그 손의 유혹을 뿌리 칠려고 다양한  인물분석이나 상황분석등을 통해서 나름의 발버둥을 쳐보지만 쉽게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말로 끌려가고 다소 어이없고 맥빠지는 배신감을 느끼다가 역시라는 감탄사를 남발하면서 책장을 접게 됩니다.

           이번 작품에서 유심히 볼 필요가 있는 또 다른 점은 이번 작품이 기존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나 유명세를 타는 추리스릴러계통의 작품과 사뭇 다른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스트럭쳐가 이번 작품의 강점이라고 해야 할까요... 대게 추리스릴러소설의 경우 셜록홈즈나 콜롬보반장같은 해결사가 등장합니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속에도 상당히 친근한 유가와교수나 가가형사같은 캐리턱가 등장하여 사건을 추리하고 해결하면서 전체적인 내러티브를 끌어가곤 했죠. 뭐 어떻게 보면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의 기회도 제공하고 복잡다난한 사건을 해결하는데 길라잡이 같은 역활을 톡톡히 하는 임무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캐릭터들은 어찌보면 작가의 분신이라고 할만큼 독자들과 작가 사이의 공감의 징검다리 역활을 한다고 보는 것도 많은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는 그러한 주목받는 사건 해결사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유타의 아빠인 하야세 형사나 소타나 리노같은 인물이 그 역활을 수행하는 것 같지만 작품 전반적인 무게감에서 상당히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죠. 또한 그 동안 히가시노의 작품을 보게 되면 유가와나 가가같은 지배적인 해결사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무게감을 가지고 내러티브를 끌고 가는 인물이 존재했는데 이번 작품속에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실 약간은 어수선하다고 할까 뭐 그런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바로 이런 설정이 이번 작품의 묘미라는 느낌을 지울수 없게 합니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쳤던 시각들이 이번 작품에는 다양한 암시와 가정(물론 책을 읽어가는 동안 독자들 스스로가 갖는 느낌들이겠죠)들이 내러티브를 한층 더 긴박하게 느끼게 하면서 주목이 분산된 각각의 인물들에 대해서 집중하게 한다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에 대해서 눈을 뗄수없는 집중력을 갖게 하죠. 누가 범인이고 누가 해결사일까라는 생각은 독자들로 하여금 싫지 않는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몽환화>라는 제목과 비슷한 뉘양스를 가지고 있는 스트럭쳐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번 작품은 프롤로그의 강력한 임펙트에서 부터 내러티브는 종말로 다가갈수록 그야말로 숨가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됩니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프롤로그와 본 내러티브의 연관성을 나름대로 상상하면서 그 연결고리를 무단히 찾아가고 하나하나씩 밝혀지는 미스테리의 정체를 맞이 하면서 상당히 높은 파고에 몸을 맞낀듯이 내러티브에 집중하게 되는데요. 물론 결말부분에 가서 다소 김빠지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기도 합니다. 사실 그 동안 독자들은 나름의 머리를 짜내서 뭔가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서 프롤로그의 임펙트만한 강도의 반전내지는 결말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약간은 뜬금없다는 느낌마져 들 정도로 사건이 마무리되어 버립니다. 정말 숨가쁘게 쫒아온 그 동안의 노력이 반감되는 느낌을 받네요. 뭐 이양반이 왜이러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다작하다 보니 뭔가 빠진듯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왠지 실망아닌 실망을 하게 되더라구요. 근데 사건의 전말 뒤 이어지는 스토리를 접하게 되면서 앞서의 실망감이 사라지고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야말로 한마디로 명불허전이라는 사자성어가 딱 들어맞는 작품이라는 느낌이 뒤늦게 뇌리를 강타하게 되는거죠. 이런 점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력이지 않을까라는 생각 다시 갖게 하고요.

 

          이번 작품을 접하기전 독자들은 인터넷 선전문구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첫번째 역사물이라는 말을 접하게 되죠. 근데 작품을 읽는 내내 역사물이라는느낌은 전혀 들지 않죠. 번역가도 밝혔지만 역사물보다는 히가시노의 주전공인 과학적인 소재가 담겨져 있는 추리스릴러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근데 역사물이라는 근거를 살표보니 살짝 재미있는 설정이 있었다는 쓴웃음도 짓게 하네요. 무엇보다 이번 작품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회파적인 근성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히가시노 게이고는 자신의 거의 모든 작품속에 사회적 이슈나 인간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대해서 언급을 해왔고 이를 추리스릴러라는 표출구를 통해서 맛깔스럽게 작품속에 녹여 놓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기존의 추리스릴러와는 한차원 다른 재미를 선사했고 아마도 그래서 일본뿐아니라 국내에도 수많은 매니아층을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만큼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작품을 통해서 그 수요대상인 독자들과 가장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있는 작가인지도 모릅니다. 이는 바로 사회적인 이슈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파하고 같이 공감케하고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이번 작품에서도 그런 면면을 독자들은 묵묵히 지켜보게 됩니다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그냥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대로 두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누군가는 받아들여야 해 그게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 ," 모든 걸 과학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착각이다" 라는 사유에 담겨져 있는 담론은 작품을 읽고난 뒤 오랫토록 독자들의 잔상에 남아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로 시절이 수상한 요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사유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지울수 없게 하는것 같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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