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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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가슴이 먹먹하고 짠하면서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는 뭉클한 마음이 절로 나오는 작품을 대면했네요. 사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얼마전에 읽었던 레마르크의 『개선문』『사랑 할때 와 죽을 때』라는 작품을 읽고 나서 성인이 아닌 소년소녀의 시각으로 바라본 전쟁은 어떻게 묘사되고 서사될까라는 호기심에 그리고 전쟁을 겪지 않는 세대 더욱더 그런 전쟁의 한복판에서 빗겨난 제3자의 시각에서 과연 전쟁은 어떻게 묘사될까라는 생각에 서슴없이 이번 작품을 선택했는데... 그야말로 진흙탕속에서 한 줄기의 빛을 본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앤서니 도어의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이 바로 그 작품인데요. 제목 자체에서부터 뭔가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작품이죠. 과학적으로 우리는 모든 빛을 볼 수 가 없고 달리 보면 보고 싶은 빛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에 대한 하나의 상징으로 다가오는데요. 전쟁과 그 전쟁으로 인한 기억들 아마도 이를 빗대어 표현한 말이지 않을까 싶네요. 이번 만큼 각종 리뷰어들의 현란한 찬사가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라고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책 표지에 대해서도 한마디 안할 수 없는데요, 소녀와 소년를 상징하는 두 사진은 보는 독자들에 따라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묘한 뉘양스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작품 전반을 함축적으로 상징하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해 줍니다.


           내러티브는 어느날 갑자기 세상의 빛이 회색빛 하나로 비쳐지는 주인공 마리로르의 새로운 삶찾기로 부터 시작합니다. 눈치 빠른 독자들이라면 대충 감을 잡게 되는데요. 작가는 바로 이 시점과 2차세계대전의 발발을 은유적으로 암시하는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대재앙은 다름 아닌 빛의 소멸이라는 복선으로요. 작품은 1944년 8월과 1934년부터 시간을 추를 돌리면서 시간 역순으로 왔다갔다하는 식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약간의 추리적인 기법(불꽃의 바다라는 다이아몬드에 대한 비밀)을 가미해서 호기심을 한층 더 증폭시킵니다. 내러티브의 전체적인 틀은 두 주인공인 마리로르와 베르너 중심의 극히 개인적인 구도로 비쳐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 감초처럼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서 내러티브는 개인적인 구도에서 전쟁으로 인한 희망과 절망, 가해자측과 피해자측 상당히 범위가 확장된(범위 자체가 확장될 수 밖에 없는 테제니까요) 형국으로 진행됩니다. 마치 서서히 전쟁이라는 절망의 한폭판속으로 내몰리게 된다는 느낌마저 갖게 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눈여겨봐야할 담론이 하나 있는데요. 항상 古來의 일을 돌이켜 보면 어느 일방적인 집단(국가를 포함해서)의 일방적인 지배를 받게 되면 그에 대한 반응은 여러가지로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어느 한쪽은 힘을 논리를 금새 파악해서 점령자에게 부역하는 집단이 발생할 것이고 또 다른 한쪽은 점령에게 저항하는 쪽으로 형성이 되는 거죠. 이번 작품에서는 이런 양극단의 모습을 다 볼 수 있는데요. 여기서 우리는 그 각각의 선택에 의해서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사유를 볼 수 없다는 점이 또 하나 이번 작품의 특징중 하나인데요(물론 엄청나게 얄밉고 한대라도 쥐어 박고 싶죠). 부역하는 자들은 그들 나름의 이데올로기로 저항하는 자들은 역시 그들 나름의 사유로 각자가 선택한 행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하게 느껴지는데요. 뭐 이런 논리를 떠나서 저항하는 측면만 보더라도 레지스탕스같은 군사적인 저항보다 일흔을 넘긴 여성노인들의 아기자기한 저항들을 서사함으로써 오히려 더 빛을 발하는 작품이라는 거죠. 우편물 가로채기, 알러지를 일으키는 꽃배달하기, 배설물 투척하기등 그야말로 이게 무슨 저항의 몸짓이냐고 할 수 있을정도의 소소한 행위들로 보여지지만 어쩌면 일반 대중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의 몸짓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정도 상당히 현실적인 사유를 보여준다는 점이 가슴을 한번 더 먹먹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테제로 하는 작품치고는 상당히 잔잔한 흐름을 일관해서 보여주는데요. 이 부분 역시 참 매력적이다고 할 수 있죠. 포탄과 피빛이 난무하는 전쟁영화보다 더한 공포와 두려움을 갖게하는 잔잔한 서사들이니까요. 여기에 종반부의 반전 역시 왠만한 추리스릴러작품의 반전보다 더한 감동을 던져 줍니다. 


           또한 이번 작품은 작품 전반을 흐르는 몇가지 중요한 테제들이 내재되어 있는데요. 우선 '개구리' 에 대한 테제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물이 끓고 있는 냄비에 개구리 한마리를 집어넣으면 바로 개구리는 밖으로 튀어나오지만 찬물이 담긴 냄비에 개구리를 집어넣고 불을 서서히 올려 물을 끓이면 개구리는 익는다" 라는 마네크 부인의 말에서 전쟁은 이처럼 뜨거운 물밖으로 나온 개구리처럼 어느날 뻥하고 터지지만 전쟁으로 인한 고통과 폐해는 찬물속에 들어앉아 있는 개구리와 같다는 은유적 서사, 베르너가 겪고 두 눈으로 보았던 일들 그리고 마리로르가 겪고 있었던 상반된 전쟁의 다른 측면들이 마치 찬물속에 앉아있는 개구리와 다를바가 없다는 의미를 갖고 있죠. 이 개구리의 의미가 당시대 전쟁을 겪엇던 가해자측이나 피해자측 양측의 모든 것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동시에 저항의 측면에서 성공하지 못한 저항 혹은 레지스탕스같은 무력적인 저항은 아니지만 서서히 가해자측을 압박해나가는 저항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테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라디오' 라는 흥미로운 테제가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라디오" 는 상당히 중요한 개념을 띄고 있습니다. 내부와 외부의 연결고리이자 소통 그리고 희망이라는 테제를 지니고 있죠. 또한 자유와 저항의 의미로서의 라디오(마리로르,앙리,에티엔,유타,베르너) 그리고 억압과 파괴로서의 라디오(베르너,폴크하이머) 이렇게 두가지의 상반된 테제를 담고 있는데요. 베르너의 입장에서 라디오는 이 둘간의 간극을 넘나드는 희망과 절망의 테제로 다가오는 거죠. 고아로서 아무런 희망이 없던 시절에 들었던 라디오와 그 방송(마리로르의 할아버지가 녹음했던 어린이방송은 결국 둘의 연결고리를 찾아주는 희망이라는 매게체 역활을 담고 있죠) 은 희망의 대상이었지만 이후 라디오는 억압과 착취라는 가해자측의 테제로 다가오면서 결국 마리로르와 베르너를 잇는 마지막 끈이자 또 다른 희망의 끈으로 작용하는데요. 죽음의 기로에 선 베르너에게 마르리로의 라디오 중계방송은 그 옛날 고향에서 여동생과 처음 들었던 바로 그 방송이었던 것이고 이 방송이 베러너의 생을 연장해주는 역활을 하고 있죠. 상황이 역전되어서 호텔 지하에 갇혀있는 억압자와 건물 다락방에 갇혀있는 핍박자의 위치 설정에서 우리는 또 다른 의미의 확장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결국 '라디오' 는 희망이라는 치료제 아니 희망이 될 수 밖에는 치료제로 마무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가는 절망을 끝을 치닫는 종반부에서 다시 한번 더 독자들을 즐겁게 하는데요. 바로 쥘 베른의『해저2만리』를 등장시켜 내러티브의 긴장감을 증폭시킵니다. 상황 종결이 다가오고 있는  해저 심해에 갇혀있는 노틸러스호 그리고 이를 공격하는 크라켄이나 대왕오징어를 통해서 더욱 절망과 비극으로의 예열과정을 덧대는 설정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흥미로운 설정들이 몇몇 보여지는데요. 베르너가 동생 유타에게 전하는 편지나 유타가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는 전쟁이 임박해지면서 검열되어 지워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샤리아르 만다니푸르의 『이란의 검열과 사랑이야기』 를 떠올리게 하는 기법이기도 한데요. 검열되고 지워지는 부분이 많아질 수록 전쟁은 심화되고 문제 내용인지 모르는 편지 그 자체가 바로 전쟁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서사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작품 전반 곳곳에 등장하는 숫자들 '1000' '100', 10000' 이라는 숫자, 그저 별 의미가 없는 숫자의 나열인 것 같지만 이 역시 작가의 철저한 설정임을 알게 되죠. 참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한데요. 처음 이 숫자에 대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 하지만 계속되는 숫자에 금새 독자들은 익숙해지는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전쟁이 그러하다는 것 처럼요. 물론 극히 개인적인 판단인데요. 이러한 설정과 기법들이 이번 작품속에서 참 향기로운 야생화의 꽃향기처럼 작용해서 독자들 뇌리속에 은근히 오래토록 각인시키는 역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추리적인 기법차용에 대해서 보자면 이번 작품은 명백히 두 소녀소년 주인공이 작품을 끌어가는 강력한 엔진 역활을 수행하고 있는데요. '불꽃의 바다' 와 '라디오' 라는 매게체를 통해서 두 소녀 소년이 상봉하는 시점을 독자들에게 은근히 주입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미급한 독자(아니 대부분의 독자들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은 그 시점이 언제쯤일까 하고 애타게 기다리죠. 1권을 끝내고 나니 그럼 2권 초반부쯤일까 언근히 기대하지만 작품이 종반부를 달리때나 겨우 그것도 아주 막간을 이용해서 상봉하게 되는데요. 상당히 김빠지는 기다림이지만 이 역시 작가의 철저한 계산속에 담겨져 있는 진실을 볼 수 있습니다.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커다란 명제를 역발상으로 반전시키는 부분이라 상당한 감동을 주는 상봉장면으로 연출하게 되고, 독자들은 마리로르와 베러너의 상봉을 고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그 상봉의 끝이 불행이나 절망으로 맺어지지 않을까라는 노파심을 갖게 합니다.


          전반적으로 이번 작품을 읽은 독자들의 공통적인 느낌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묵직한 기억의 봉인을 덜어낸다는, 아니 좀 더 홀가분해진다는 그런 느낌을 받을 것이라 여겨 지네요. 전쟁이라는 비록 겪어 보질 못했지만 수많은 증언들과 증거들 그리고 전쟁을 서사했던 수 많은 불후의 명작들을 통해서 우리는 전쟁이라는 무거운 짐을 부지불식간에 가슴 한편에 무거운 추를 달아 봉인해 놓고 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전쟁이라는 테제에 대해서 다소 과장된 서사가 난무하고 그런 소재로 인해 기억의 왜곡현상이 일어나면서 전쟁은 서로가 다 알고 있지만 왠지 입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는 금기의 영역으로 남아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작품은 바로 이러한 무거운 봉인들에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지만 좀 더 홀가분한 기억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전쟁이라는 대재앙을 겪지 못한 우리 세대에게 전쟁이라는 대재앙이 어떻게 살아남은 자들(물론 죽어가고 죽임을 당한 자들까지요) 에게 어떠한 의미로 남아있는가에 대해서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죠. 추리적인 기법과 시간흐림의 중첩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독자들의 시선을 단 한순간도 뗄수 없게 하면서 책장의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면 들수록 초조하게 하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마땅히 표현한 형용사를 찾지 못할 정도로 인간 본성에 대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작품이네요. 세상의 빛을 본다고 해서 존재하고 있는 모든 빛을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보지 못하는 아니 볼 수 없는 빛속에서 희망과 자유라는 빛을 볼려고 존재하는 것이 인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합니다. 바로 이번 작품이 그런 볼 수 없는 빛의 현현이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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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선더볼트 1
아베 가즈시게.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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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년전 국내에서도 상영된 <골든 슬럼버> 의 원작자인 이사카 코타로와 아베 가즈시게가 공저한 <캡틴 선더볼트> 라는 작품을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인문학이나 과학계통의 저서에서는 공저라는 개념이 일반화되어 있을 정도로 인식될 수 있지만 문학작품에서 공저라는 개념은 상당히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죠. 국내에서도 이처럼 공저를 시도한 작품이 있었죠. 김탁환과 정재승의 <눈먼 시계공> 이라는 작품인데요. 출간 당시부터 사실 화재를 모왔던 작품이죠. 순수작가와 과학자의 콜래보레이션으로 독자들에게 신선한 경험을 안겨주었던 형태였다고 기억되는데요. 이번 작품은 실은 이런 의미와는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아베 가즈시게나 이사카 코타로라는 두 작가는 일본내에서도 상당한 독자층을 갖고 있는 영향력 있는 작가들이고 각각 개별적으로도 베스트셀러 작가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근데 굳이 이런 작가들끼리 공저의 형식으로 새로운 작품을 집필할 필요성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살짝 갖게 하는데요. 작품 세계로 들어가보면 말만 공저일뿐 한 사람의 작가가 창작했다고 해도 믿을수 있을 만큼 군더더기 없는 내러티브와 스트럭쳐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오히려 작가들 상호간의 장단점이 절묘하게 콜래보레이션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라는 거죠.


         <캡틴 선더볼트> 는 일본내 방송되고 상영되었던 선더볼트라는 어린이용 프로를 오마주한 작품(국내독자들 저 개인으로 한정한다면 무슨 프로인지 모르겠지만요^^)으로 히어로가 악당을 물리치는 전형적인 어린이용 히어물을 테제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초등학교 야구부 동기동창이라는 모티프 그리고 이들 동기동창들이 하나 같이 현실에서 역경을 겪고 있는 것으로 설정된 개연성, 한가지 더 붙이자면 이런 찌지리 내지는 루저 같은 인생들에게 인생역전의 사건이 다가오고 이 사건을 겪고 해결해 가면서 진정한 히어로로 재탄생한다는 래퍼토리는 그야말로 너무나 마니 보아온 스토리라는 생각이 얼핏 들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러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는 속칭 루저장르의 작품들 한두 번 경험해본 독자들이 다반수일 것이고 그들의 스토리는 굳이 확인해 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감을 잡을수 있는 결론을 보여주기에 독자들 입장에서는 그다지 반가운 장르는 아닐거라는 말이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번 작품을 처음 접할때 사실 이런 우려감을 배제하지 못하고 출발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말이죠 이번 작품은 이런 일련의 우려나 혹은 신선함이 반감된 느낌을 작품을 읽으면 읽으수록 머리속에서 지워버린다는 것입니다. 일련의 개연성으로 설정된 것처럼 느껴지게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개연성들이 하나 하나 아귀가 맞아가면서 독자들은 작품속으로 서서히 빠져들게 되면서 상당한 흥미를 유발하게 됩니다. '무라카미 파지' 라는 세균전 그리고 세균테러를 방지하는 우리의 두 히어로 아이바 도키유키와 이노하라 유의 활약상을 보면서 나름의 대리만족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죠. 아마도 이번 작품이 아이바와 이노하라라는 걸세출의 영웅과 대테러 집단에 대한 철저한 계획과 목표의식속에서 일련의 사건이 해결된다는 방식을 취했다면 정말 그저 그런류의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외면당했을 확률이 높았을거라 여겨집니다. 아베 가즈시게와 이사카 코타로는 이 두명의 영웅에게 그 어떠한 우월감이나 특별한 권능등 뭔가 일반인하고 차별화된 스페셜 이벤트성 같은 덤을 전혀 부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초등학교때부터 야구부원이었다는 정도겠죠. 하지만 이러한 스펙도 특별한게 아니라 그저 그런 식으로 묻혀버리는 재능정도로 밖에 부여하고 있지 않죠. 그러다보니 이들 두명이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힘은 우리네 일반인들과 대동소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군데 군데에서 실패하고 사건의 핵심에 도달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들을요. 근데 이렇게 우왕좌왕하는 모습들이 독자들에겐 상당히 신뢰감과 감정이입을 끌어오는 코어가 된다는 점이죠. 뭔가 히어로만이 가지고 있는 그런 스펙들과 힘을 전혀 볼 수 없는 두 주인공의 캐릭터가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오면서 작품 전반을 더 탄탄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죠. 정형화되고 의도된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 어찌 하다보니 그리고 열심히 하다보니 사건의 열쇠를 찾게되는 뭐 우리의 인생사와 비슷한 개념으로 다가온다고 해야 맞을것 같네요. 여기에 결정적인 장면마다 쏟아져나오는 위트와 유머들이 맛깔나게 버무르져 있어 한층 가독성을 높이고 있기도 하죠. 세균전이라는 심각한 테제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도 받지만 결국 인생사라는게 이런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게합니다. 이처럼 이번 작품은 심각한 테제와 더불어 이와는 상반되는 돌출행위로 가득한 주인공들의 행동이 엊박자 아닌 하모니를 이루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두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네요.


          두 작가의 작품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내러티브의 전개가 매끄럽고 탄탄하게 구성되어 있는 작품 같습니다. 당초 책을 들기전에 우려했던 히어로 버전 역시 신파조나 뻔한 스토리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점이 더 눈을 끌게 하고요. 자짓 잘못하면 범죄스릴러 같은 장르를 벤치마킹한 냄새를 풍길뻔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유니크한 캐릭터와 더 유니크한 세균전이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가지 요소가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어 작품을 더 돋보이게 하네요. 오래만에 참 재미나게 읽어 나갔던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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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만을 보았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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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구아르 들라쿠르(아 솔직히 말해서 작가의 이름이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을 것 같네요)의 <행복만을 보았다>는  간만에 접한 프랑스 작품입니다. 사실 프랑스 작품에 대한 약간의 선입관도 작용했고 제목 자체가 선듯 손을 내밀기엔 왠지 2%가 부족한 느낌도 들어서 그런지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다가 손에 들게 되었습니다. 뭐 좀더 솔직하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에 길들여져 있었다는 표현이 정확한 말이 겠지만요. 하여튼 이렇게 손에 쥔 <행복만을 보았다>는 상당한 가독성을 선사하면서 쉬이 책장을 넘기게 하는 거부감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초반부터 비정상적인 유년시절(뭐 이것 역시 개인적인 관점에서 바로보는 것이지만요)을 보내는 주인공의 회상에서부터 그리고 그 고달픈 과정을 서서히 극복해 나가는 과정(나중에 밝혀지지만 극복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면속으로 깊숙히 숨어버리는 과정이죠)이 왠지 신파조로 흐른다는 느낌을 주면서 살짝 지루해 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상당히 황망스러운 전개를 독자들은 맞이 하게 되죠. 전 개인적으로 '어라 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라는 생각이 들정도 작가는 엄청난 사건을 전면에 부각시켜 버립니다. '비속 살인 미수' 이라는 획기적인 파장을 불어넣어 작품 전체를 암울하게 리딩하면서 왠지 이거 정말 신파조로 흘러가는 거 아닐까라는 불안감을 살짝 비춥니다.(뭐 대부분의 신파조가 이런 식으로 흐르잖습니까? 화해할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고 그 강을 건넌 행위를 후회와 속죄의 눈물로 보내고 그러다가 어느 결정적인 순간에 화해의 제스쳐를 취하면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는...) 사실 여기까지 읽어 나간 독자들의 머리속은 대게 신.파.조 라는 세글자가 맴돌것입니다. 뻔한 스토리에 무엇하나 내세울것 없는 내러티브 그리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복선 없는 나레이터들...


          눈치 빠른 독자들이라면 2부가 막을 내리는 시점에서의 씬을 보고 대충의 결말을 예감하리라 생각될 정도로 상당히 어색한 내러티브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 중간 중간에 작가가 날리는 코믹하고 유머러스한 상황들이 오히려 더 어색하게 다가오는 어울리지 않는 엇 박자의 리듬감을 느끼게 하고, 도대체 작가의 의도가 무엇일까라고 한참을 고민하게 합니다. 극히 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오히려 2부를 끝으로 엔딩을 했다면 물론 그 과정은 좀더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서 잘 마무리 했다면 독자들로 하여금 더 많은 생각을 갖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어줍지 않는 생각도 가져보게 하더라구요.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그게 아니였겟죠. 3부 딸의 일기와 편지를 통해서 딸의 관점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스토리는 좀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면서 독자들의 심금을 쥐어짜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책을 덥자 소리 없는 전율이 느껴졋다, 영혼의 근간을 흔드는 작품이다' 라는 북리뷰에는 동의할수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얽히고 얽힌 가족사와 불우했던 유년시절, 여기에서 끝을 내는가 했더니 다시 찾아오는 불행의 시앗을 품고 살아가는 주인공의 비상식적인 선택 뭐 일련의 이러한 설정들은 어찌보면 우리의 안방극장을 독차지하고 있는 막장 드라마 비슷한 느낌을 강하게 전달해 줍니다. 딱하나 작품의 서두에서 부터 불어온 그루미한 분위기가 일맥상통하게 작품 전반의 내러티브를 쥐고 있고 여기에 엽기적인 사건이 임펙트를 가하여 그루미한 분위기를 계속 끌고감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일체의 잡념을 지워버린다는 것인데요 아마도 이는 작가의 일련의 계산된 기법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 보게 됩니다. 나름의 치유과정이나 분위기를 좀더 밝게 하려고 하는 의도 역시 전반적인 작품 분위기를 더 그루미하게 만드는데 일조를 하는 감미료같은 존재로 느껴지게 하니까요. 그나마 책 마지막장의 "그러니까 인생이란 결국 힘겹더라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 이라는 멘트는 공감이 가네요. 결국 작가는 그 어떠한 막장속의 삶속에서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소소하면서도 평범한 멘트를 전달해 주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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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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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왠지 제목에서부터 살짝 종교적인 뉘양스가 풍기면서 끌리는 작품이라는 느낌이 확들어서 주저없이 이번에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뭐 이미 국내에도 정평이 나 있을 정도로 히가시노 게이고는 국내독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검증된 일본 작가중에 하나이죠. 무엇보다 매년 몇편을 작품을 참으로도 많이 출간하는 다작 작가이기도 하고요,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스릴러 작가지만 정작 그의 작품을 추리스릴러라는 장르속에 일방적으로 분류하기엔 뭔가 빠져 있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회적인 이슈를 캐치프레이어로 내러티브 전반에 살짝 깔아놓는 솜씨가 일품인 작가이기도 합니다. <몽환화>를 접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또 이렇게 새로운 작품을 대면하게 되니 역시라는 감타사가 절로 나옵니다. 물론 이렇게 일년에 수편씩의 작품을 쏟아내고(물론 번역의 시차로 인해 국내에 한꺼번에 쏟아질수도 있지만요. 실제로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상당히 다작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작품 하나하나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것은 그 나름대로의 작가의 필력이나 플롯의 참신함 그리고 국경을 뛰어넘어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통된 이슈가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됩니다. 물론 작품의 기본 스트럭쳐가 추리스릴러를 기저에 두고 있기에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효과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심금을 울리는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가입니다.

          <공허한 십자가> 제목 자체가 왠지 종교적이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라는 느낌이 책을 읽지 않아도 퍼득 와닿는데요. 이번 작품은 범죄인의 속죄와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 나아가 지금도 전세계적으로 논의가 끊이지 않는 사형제도의 존폐여부, 범죄인의 교화문제등 개개인의 사적인 영역에서 사회국가 전체의 공적인 영역으로 확대되는 담론을 담고 있다는 점이 우선 눈에 띄는 부분입니다. 사실 그동안 국내에서도 많은 논의가 되어왔던 '사형제도' 는 인권적인 문제와 더불어 종교적인 문제가 결합되어 아직도 그 해결책을 찾지못하고 있는 실정인데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다시 하번 생각해볼 만한 이슈라고 보여집니다. 사실 이러한 무거운 담론을 플롯으로 작품을 끌어가는 것 자체가 자짓하면 독자들에게 외면당할 소지가 충분히 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는 무거운 담론과 개인의 또 다른 담론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오히려 독자들의 관심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추리스릴러라는 기초공사를 충실히 시공해서 작품 전체적인 내러티브가 상당히 탄탄한 구조를 가지게 합니다. 항상 그렇듯이 등장인물들 하나 하나의 심리묘사가 뛰어나고 예측하지 못한 부분에서의 반전과 그 반전을 다시 뒤엎는 또 다른 반전이 작품을 읽는 내내 독자들의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느낌을 주죠.

          늘 그래왔듯이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을 비롯한 사회전반에 작음 울림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기존 추리스릴러의 개념을 바꾼 작품들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한번쯤을 집고 넘어가야할 사유들을 공론화 해서 좀 더 많은 공감대와 문제해결을 독자들 스스로에게서 해답을 구하게 했듯이 이번 작품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저 전지적 작가시점 처럼 무덤덤하게 나레이션을 할뿐이지 명확한 해답은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역시 이번 작품을 읽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는데요 사실 그 몫이 상당히 심오한 부분이라 독자들 입장에서도 어느쪽의 손을 들기가 망설여지는 이슈를 접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늘상 우리사회 전반을 관통하고 있지만 막상 나와는 무관하다고 여겨왔던 이러한 담론들이 '아 정말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막상 그러한 일에 접했을때 어떻게 해야할까 '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사유거리라는 점에서 더욱더 애착이 가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죄와 그에 대한 댓가 그리고 속죄라는 삼각관계를 후미야, 사오리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와 그 심리를 정말 잘 표현한 서사가 상당한 인상을 주죠. 여기에 사건의 피해자인 유족의 입장을 대변하는 나카하라와 사요코의 심리적 상태를 통해서 쌍방의 입장을 독자들에게 여과없이 그대로 전달해준다는 것입니다. 교차로에서 교통신호 고장으로 교통경찰관이 수신호로 직진과 좌회전을 인도하는 방식이 아니고 그냥 날것 그대로 그네들이 가지고 있을 감정을 우회없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어 작품을 읽는 내내 감정의 축이 이쪽 저쪽으로 무게중심을 바꾸게 한다는 점이죠. 예를들어 기존의 사회적 시각은 피해자측에게 다소 호의적이었던 사회적 풍토와 사뭇다른 가해자측과 그 가족들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조심스럽게 들여내어 공론화 하고 있다는 점이죠. 양측의 심정적인 입장과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독자들에게 날것 그 자체로 보여줌으로써 한쪽의 면만 보고 판단하는 방식에 제동을 걸어 준다는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무거운 담론을 다루면서도 추리스릴러의 기법을 통해서 그 무거운 담론을 좀더 가까이서 그리고 현실속에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짜임새 있는 내러티브가 압권인 작품이었습니다. 속죄 그리고 교화, 사형제도의 존폐등 멀리에 존재할것만 같았던 명제들의 작품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주변에서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러한 담론에 대한 최소한의 사유가 그동안 많이 왜곡되어 왔다는 점을 이번 작품을 통해서 재확인할 수 있었고요. 나아가 사회전반이 다시한번 공유해볼 수 있는 메아리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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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의 역사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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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능력자> 라는 작품으로 최민석 작가의 걸출한 입담과 필력은 독자들에게 나름 한번 이상 검증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거침없이 쏟아내는 활자들의 유희(전 개인적으로 헤르만 헤세의 작품인 유리알의 유희 그 제목자체만 들어 온다면 바로 최민석 작가의 활자들에다 붙여주고 싶을만큼 유리알이 땡그렁 흐르는 소리의 유희만큼이나 보고있는 것 만으로도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와 더불어 가슴 깊은 곳에 감추워져 있었던 다양한 욕망의 분출을 만끽하게끔 이끌어가는 내러티브의 조타수같은 역활은 지금도 많은 느낌을 자야내게 하는 작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솔직담백하게 있는 그대로, 민낯으로 다가오는 작가의 작품들이 왠지 기존의 기성작가와는 또 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키기에 머리속에 그의 이름 석자가 각인될 수 있는 기저를 만들어 준것 같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신작 <풍의 역사> 역시 최민석이 아니면 그 연결고리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라는 강한 인상을 또 다시 받게 하네요.

          <풍의 역사> 는 뭐 속되말로 간략하게 표현 한다면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라고 하는게 맞을듯 합니다. 한때 미국의 역사를 한편의 영화로 축약하여 나름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포레스트 검프> 처럼 이번 작품은 '이풍' 이라는 인물과 그의 자손들을 통해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쭉 훌어보게 합니다. 광복에서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을 경험하고 굵직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의 현장에서 풍과 그의 아들 구가 겪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솔직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등장인물의 행위가 작위적인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능동적인(뭐 <포레스트 검프>에서는 상당히 작위적이고 능동적으로 미국 나아가 세계 역사에 관여을 하죠) 영웅으로 비쳐지는 것이 아니라 당신 시대를 살아갔던 일개 서민대중들처럼 비작위적이고 소극적인 참여에 있다는 점이 이번 작품에서 작가가 던져주는 사유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역사라는 거대한 강줄기에 몸을 맡기고 그 물결을 거스러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내는 모습들이 오히려 더 어필되는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이부분이 이번 작품을 빛나게 하면서 차별화하는 컨셉인데요, 마치 영웅들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실상 그 내막은 상당히 비작위적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호응을 받지 않을까 싶네요.(사족이지만 이런 부분이 전형적인 아메리카적인 사관과의 차이점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이구요)

         마치 '풍'이라는 주인공이 각종 역사적 사건에 개입하여 적극적으로 역사를 끌어가는 것 처럼 비쳐지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이죠. 작가는 이 패러다임을 통해서 역사라는 거대한 담론에 묻혀버린 개인들의 삶을 재조명해 보자는 취지로 접근했을 법한데요 다름아닌 풍의 개인사와 가족사라는 이중의 스트럭쳐에 오버랩 시킴으로써 흥미를 배가 시키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역사의 한복판에 서게 하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풍이라는 인물과 작금의 대한민국이라는 조합(뭐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다 해당되지 않을까 싶네요)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아이러니하고 그로테스크한 우리의 근현대사를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풍의 개인사만큼 질곡이 깊고 아이러니한 삶 그 자체가 우리의 근현대사와 어쩜 그리 닮은꼴일까라는 자조적인 생각도 가지게 하지만요 그래도 그와중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풍의 삶은 또 다른 이면의 우리의 근현대사와 일맥상통하는 점을 보여주고 있기에 왠지 풍이라는 인물이 남같지 않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작가의 작품에 대한 플롯이나 내러티브의 조타수역활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작품을 읽는 내내 웃음과 더불어 분노를 비롯한 다양한 감정 그리고 진한 감동이 밀물 밀려오듯이 밀려오는 작품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우리의 역사와 그 속에서 발버둥 쳣던 우리들 뗄레야 뗄수 없는 동전의 양면같은 관계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구요. "삶에는 언제나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순간 비로소 진실이 되는 게 있단다" 라는 풍의 말이 의미하는 사유가 상당히 오래토록 잔상에 남을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에 어디서 많이 본듯한 컨셉이라는 느낌과 더불어 빠르게 진행되는 책읽기가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뭔가 가슴속에 뭉클한 밀알이 커져가는 느낌을 갖게 하면서 작품을 읽는 내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 그땐 그랬지' 라는 단순 무의미한 감탄사가 "아 왜 그랬을까?" 라는 생각유도형 문장으로 바뀌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에서 신선한 감동을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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